영화이야기
read 3564 vote 0 2002.09.16 (12:24:26)

알고보면 재미있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성공작이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게임 중에 전화가 걸려오면 당신은 게임을 종료하고 전화를 받는다. 그 순간 '희미'는 죽는다. 희미는 게임 속에 살고있는 하나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물론 희미는 죽지 않는다. 희미는 가상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죽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신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가상의 존재이고, 인간의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가상의 존재이다. 진상과 가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자기일관성을 획득할 때 곧 진상이 된다.

'희미'는 당신이 접속하는 순간 탄생하고 당신이 게임을 종료하는 순간 죽는다. 당신은 희미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당신은 평범한 중국집 종업원에 불과하지만 게임 속에 살고있는 캐릭터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전지전능한 주(신)다.

희미는 당신이 게임에 접속할 때 마다 죽고 또 새로 탄생한다. 불교에서 해탈의 개념은 그러한 탄생과 죽음의 순환고리를 끊는다는 것이다.

감독은 불교와 도교, 기독교 등의 논리를 뒤섞어 놓고 있으므로, 필자가 예로 든 불교의 논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내적 일관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하나의 논리를 발췌할 수 있다. 이 극에서 기독교의 논리나 불교 혹은 도교의 논리를 발췌하는 것은 관객 마음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감독이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았나 한다. 불교, 기독교, 도교의 논리가 섞여있기 때문에 하나의 논리를 일관되게 따라가기 힘들다.

어쨌든 게임의 개발자는 로드(道)를 사전에 설정해 놓는다. 캐릭터는 로드를 따라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다. 로드는 '게임의 규칙'이다. 플레이어가 로드에 통달해 있다면 게임마다 승리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처음 로드(道)를 찾으려 애쓰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로드를 바꾸려 한다. 임의로 패치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백전백승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극 중의 불법무기상 '오뎅'은 말하자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백전백승의 패치를 사용하는 게이머와 같다. 실제로 많은 게이머들이 불법적으로 패치를 사용한다.

조금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면, 아예 게임 자체를 해킹해버릴 수도 있다. 게임회사의 서버에 침투해서 리니지게임의 아이템을 대량으로 획득하여 팔아먹는 방법도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일은 불가능해보이지만 리니지를 개발한 엔씨소프트사에 근무하는 직원과 공모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극 중에서는 '추풍낙엽'이 이에 해당한다.

'추풍낙엽'은 시스템을 최초로 설계한 개발자이다. '주'와 '추풍낙엽'의 공모는 말하자면 게이머가 엔씨소프트사의 직원과 짜고 아이템을 빼돌린 것과 같다.

회사와 무관한 일개 플레이어가 뛰어난 실력으로 게임을 해킹해버렸다면, 그건 게임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단지 해커를 비난할 성질의 일은 아닌 것이다.

회사가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보안을 강화해서 해커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높은 수준의 연봉으로 해커를 고용해버리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극 중의 주는 결말에서 막대한 상금을 받는다. 이는 시스템의 결점을 발견하여 알려준 데 대한 회사의 정당한 보상이다.

이러한 논리를 인간의 삶에 적용하여 본다면 어떨까? 신은 세상을 창조하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로드(道)를 설정해 놓았다. 로드에 통달해 있는 인간은 쉽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한 인간도 죽는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플레이어가 접속을 종료하므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므로 로드에 통달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로드를 바꿔버려야 한다.

아니 로드를 바꾸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게임 자체를 해킹해버려야 한다. 그러면 신이 될 수도 있다. 근데 이건 너무 어마어마한 논리이므로 현실적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로드(道)를 사회의 '법률과 제도'라고 하면 어떨까? 법률과 제도에 통달한 인간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가 아니다. 그 법률과 제도를 바꿔버릴 수 있어야 상수다.

하수는 제도와 법률에 적응하려 하고, 상수는 그 제도와 법률을 바꾸기 위해 사회와 투쟁한다. 참된 고수는? 뛰어넘는다.

'성소'는 영감을 준다. 영리한 소년이라면 '성소'를 보고 이러한 영감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하나다. 로드에 적응하라는 것이다. 로드를 전복하라고 가르치는 학교는 아직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상수는 로드에 저항하고, 고수는 로드를 초월한다는 것을. 많은 소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그러한 측면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120억원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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