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3223 vote 0 2002.09.15 (19:20:31)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성공작이다.

두가지 관점이 제시된다. 하나는 창의성의 관점에서 '과연 새로운가?' 하는 점이고, 하나는 구도영화의 관점에서 '게임의 규칙(道)'을 노출시키는데 성공했느냐는 점이다.

부족한 점도 있고 얼버무린 점도 있지만 기대치와 비교할 때 성공작이다. 우선 창의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고 있다.

'성소'의 새로운 점은 게임을 소재가 아닌 주제로 승화시키고, 더 나아가 스타일의 혁신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매트릭스라면 게임을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성소'에서는 게임이 소재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매트릭스는 게임을 소재로 활용하여 멋진 CG를 선보이면서도 게임의 가상성을 비난하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소재주의의 한계이다.

이는 삼류 에로물이 매매춘을 비난하며 그것을 상업화하고, 조폭영화가 조폭을 비난하며 그것을 상업화하는 것과 같다. 이런건 가짜다.

'성소'에서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의 캐릭터들이 게이머들을 상대로 게임을 한다. 이건 저항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비행접시가 나타나고 '희미'와 주는 무인도로 여겨지는 어떤 이상향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 이 상황은 여전히 게임 속에 접속해 있는 상황이다.

관객들은 착각한다. 게임을 종료하고 현실공간으로 나와서 게임회사로부터 돈을 받아 잘 사는 것으로 오해한다. 이런 점에서 '성소'는 어렵다. 요건 문제다.

흥행영화를 만들려면 10대의 눈높이에 맞추되, 주인공들은 20대 이상의 성인이어야 한다. 주윤발 등이 주연하는 홍콩영화들은 수준은 중학생관람가인데 주인공들은 어른이다.

'성소'가 10대의 눈높이에 맞춰진 점은 칭찬할만하나, 주인공들 역시 10대라는 건 잘못된 기획이다. 또 어렵다. 금강경을 옮겨적거나 카오스이론을 주장하는건 넌센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러 가지로 성공하고 있다.

관객들은 게임 속으로, 또 영화 속으로 몰입하고자 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몰입을 방해한다. 이는 '게임의 규칙'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게임은 가짜'임을 부단히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화를 낸다.

작가가 만화 내용에 등장하여 잡설을 넣으므로서 독자의 짜증을 유발하는 것과 같다.(요즘 스포츠서울 연재만화 무대리에 작가가 자주 등장해서 썰렁함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

그러나 '성소'에서 그렇게 보았다면 영화를 잘못 본 것이다. 등장인물인 '희미'와 '주'는 게이머가 아니라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다.

게이머에게 게임은 가짜이지만, 캐릭터에게 게임은 가짜가 아니다. 그건 진짜다. 모 프로게이머가 '성소'를 관람하고 혹평한 사건은 넌센스다. 그는 이 영화를 이해 못했다. 하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소'는 어렵다.(쉽게 만들지 못한 작가의 잘못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데 드는 초기비용이다)

희미는 오락실에서 알바로 고용되어 있고, 주는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 안된다. 그 상황에서 '희미'와 '주'는 관객이다. 아직 게임은 시작되지 않았다.

게임 안에서 '희미'와 '주'는 하나의 캐릭터이다. '희미'는 시스템에 잡혀 있고 '주'는 희미를 구원하기 위해 왔다. 이를 현실의 삶에 비유한다면 '주'는 예수님 쯤 된다. '희미'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다.

당신이 '주'를 사랑한다면 구원된다.(누가?) 주가 인간을 구원하러 왔다. 그러나 인간은 주를 몰라본다. 주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구원되지 않는다.

예컨데 신당동 떡볶이골목에 어느 날 예수가 재림하였다면 일단 근처 중국집에 종업원으로 취직부터 할 것이 틀림없다. 주님도 먹고 살아야 할테니깐 -.-;;

영화에서는 '주'가 '희미'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희미'가 '주'를 구원한다. 예수님이 당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예수님을 구원한다. 이건 역설이다.

이것이 숨겨진 '게임의 규칙'이다. 깨닫는다는 것은 감독(시스템의 창조주)이 제안하는 바 그 '숨겨진 게임의 규칙'을 알아챈다는 것이다.

예컨데 거리에 불이 붙은 자동차가 있다고 치자. 그 자동차 안에는 어린이가 갖혀 있다. 당신이 그 승용차의 문을 열어 어린이를 구출하려고 한다. 이때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친다.

"이봐요. 그 차는 지금 폭발하려고 해! 당신도 죽어!"

여기서 숨겨진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당신이 그 차의 문을 열면 그 차는 폭발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 차의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추어 차는 폭발한다.

■ 문을 열었을 경우 - '차는 폭발하지 않고 어린이를 구출한 당신은 영웅이 된다!'

■ 문을 열지 않고 달아났을 경우 - '차는 폭발하고 당신은 타인의 충고를 듣고 달아난 자신의 현명한 판단에 뿌듯해 한다.'

그러나 문을 열지 않으면 게임은 계속된다. 게임이 계속되는 한 당신이 졌다. 이 게임은 원래 당신이 지는 게임이다. 왜냐하면 요금은 당신이 내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 늘 인간이 시스템에 진다.

당신이 게임에 재도전하는 것은 그 게임에 졌기 때문이다. 간혹 당신이 위너가 되는 것으로 게임이 종료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역시 당신은 졌다.

생각하라! 당신이 이겼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접속하여 요금을 지불하겠는가? 이겼어도 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시 요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게 진거다.

할 이야기는 단행본 한권으로 부족할 정도로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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