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read 3651 vote 0 2002.09.14 (16:09:30)

(작가주의의 탈을 쓴) 한국영화의 문제는 막판에 주인공이 죽어버린다는데 있다. 파이란의 첫 5분간을 보면 "아하 이넘 딱 생긴 것이 뒈지게 생겼구나! 감독이란 작자가 어디서 요런 만만하게 생긴 넘을 하나 호구로 엮어서 칵 죽여버리는 구나" 하고 필이 딱 오는 것이다.

과연 강재는 얼마 못가서 칵 뒈져버린다. 헐헐~ (국가대표 호구였던 강재.. 그는 감독에게도 호구였다)

"얌마 송해성감독아! 겨우 그 소리 하려고 나를 극장으로 불렀냐? 마 치아삐라!"

허나 입장바꿔 생각해 보자. 내가 감독이라도 강재는 죽어야 했다. 왜냐하면 강재가 죽어야만 파이란과의 사랑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강재가 살아있다면 파이란과의 만남은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영화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강재와 파이란이 만난 것으로 착각을 하지마는 실제로 강재는 파이란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본적없는 사람을 사랑한다는게 말이나 되나? 그러니 강재는 죽어야 하지! 사랑이 완성되는 거지.

미완성이다. 미학적으로 완결되지 않았다. 약간 허접한 거다. 어쨌든 강재는 죽어야 했고, 감독이 강재를 죽인 것은 공식대로이다. 뒷맛이 허하다.

"송해성! 니가 밑바닥 삶을 알아! 넌 몰라! 넌 임마 만만한 강재롤 호구로 써먹은 거야! 그래 강재는 너한테도 호구였어! 호구였을 뿐이라고. 넌 강재를 이해못해 임마!"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보면서 3분도 안되어서 "아하 저놈이 또 딱 죽게 생겼구나!" 하고 필이 왔다. 나쁜 남자는 죽어야 한다. 또 김기덕 이 한깡패 하는 넘이 만만한 한기를 호구로 엮어서 칵 죽여버리는 야그다. 안봐도 뻔하다.

과연 한기는 죽는다. 어? 그런데 죽은게 아니다. 이건 좀 뻔뻔스럽다. 죽었는데 또 살아나기가 어딨냐? 하여간 한기는 죽지 않았다. 이건 감독이 내 뒤통수를 때린거다. 난 여기서 꺼벅 죽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사부님~!"

존경해조야 된다. 다른거 없다. 김기덕은 나보다 한 수 위였던 것이다. 하수가 상수를 만나면 숙여주는 거다. 이건 당연하다.

나는 영화를 보는 관점이 좀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공공의 적 보다가 졸음이 와서 참느라고 혼났다.

"우석아 우석아! 그래 함 우끼보겠다고 똥을 다 동원혔냐? 어이구야! 난 니가 불쌍타. 그래 한번 우껴보겠다고 똥무더기를 다 퍼왔니. 화장실개그로 가겠다는 거니?"

영화를 본다는 것은 감독과의 게임이다. 첫 장면을 보고 다음장면을 예측한다. 감독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영화를 끌고간다면 감독이 이긴거다. 내가 예측한대로 되어버리면 내가 이긴거다.

앞 장면과 다음장면이 아무런 인과관계의 연결고리 없이 진행된다면 나는 잠이 든다. 반지의 제왕은 결국 나를 잠들게 했다. 잠들었지만 후회는 없다. 4000원 짜리 할인에 조조를 봤기 때문이다. 그 멋진 뉴질랜드의 풍광을 관광한 셈 치면 된다.

디 아더스도 나를 잠들게 하고 말았는데 딱 한번 놀랐다. 옆자리의 여성관객이 꺅~하고 비명을 질러서 깜짝 놀랐다.(이래서 영화는 결말을 알고보면 안된다니까.)

하여간 영화를 보는 것은 절반을 보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영화를 분석해 보는 것이며 감독의 의도를 알아채고 감독과의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근데 공공의 적 같이 허접한 영화는 분석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여간 영화는 대결이다. 김기덕고수와 김동렬하수가 동시에 총을 뽑는 것이다. 김기덕고수가 조금 더 빨랐다.

"어무이!"

김기덕영화를 너무 철학적으로 해석하는게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씨네21 이번주 것을 보라고. 김기덕의 다음영화(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는 어떤 동자스님의 성장기다.

김기덕은 자궁 속에서 도 닦는 사람이다. 그의 영화는 처음부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목사나 스님이나 철학쟁이를 만나면 괜히 시비를 걸어서 밤새도록 논쟁하는 사람이다.

누가 더 고수냐 하는 것은 누가 더 멀리까지 보느냐, 한 차원 위를 보느냐이다. 몇 개의 시선을 던지느냐이다.

손으로 달을 가리켜서 손가락 끝을 보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달을 쳐다보는 사람은 말귀를 알아먹는 사람이다. 한수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러나 대화상대는 역시 아니다.

진짜는 따로 있다.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목을 빼서 달을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다. 달을 보란다고 달을 보는 바보와 어찌 대화를 하겄냐는 말이다. 관계를 보라는 말이다. 가리키는 자와 쳐다보는 자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면 대화할 수 없다.

이를테면 장선우와 비교할 수 있다. 장선우도 김기덕처럼 도 닦는 사람이다. 근데 이 양반은 바보다. 얼마나 바보인가 하면 이런 정도로 바보다.

장선우의 바리데기 시나리오를 참고하면 바리공주가 도 닦는답시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돌연 깨쳤다 하고 선언하는 신이 있다. 미쳤지! 이건.. 패죽여야 한다.

박상륭의 유리에서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7조가 5조와 6조를 쳐죽이는 걸로 되어있다. 깨닫는다는 것을 내 입으로 깨달았다고 말하는 바보.. 이런 똥대가리와 대화가 되겠느냐이다.

물론 유리에서 제자가 스승을 죽이는 것을 보고, "워매 저 못된 중놈이 큰스님을 때려죽이삔지네" 하는 머저리와도 대화가 안되는 것이다. 스승을 죽인다는 것은 스승이 필요하지 않은 경지에 올랐다는 말이고, 깨달았다는 뜻이다.

로스트메모리즈는 볼 필요가 없는 것이 영화평을 읽어보니 김구 비슷하게 생긴 영감이 나와서 스토리를 그냥 말로 설명해버린다는 거다. 단적비연수도 할멈이 하나 나와서 말로 줄거리를 설명한다. 이건 아니다.

그림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을 말로 설명하는 머저리들 영화는 봐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은하철도 777은 화엄경을 영화화 한 것이지만 화엄경의 화자도 말하지 않는다. 이건 진짜다. 근데 똥대가리 장선우의 화엄경은 으아.. 미친다. 패죽여야 한다.

하여간 똑 같은 구도영화라도 장선우 같이 원초적으로 대화가 안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김기덕처럼 대화가 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김기덕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구도영화를 만든다. 나쁜남자는 훌륭한 구도영화다. 그의 다음작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같다.

보통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1사이클이 끝난다. 나쁜남자의 '벤치에서 벤치까지' 1사이클이 끝난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이동매춘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음이다. 또 봄이다.

이것은 미학적 완결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동자승이 깨달았다 치고 .. 깨달아서 원점으로 돌아온 그 다음은? 그 다음단계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 중놈아 니 깨달아서 뭐할래?"

깨닫는다는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것에 불과하다. 부처가 되어 하늘로 날라간다는건 석가모니의 썰렁 개그다. 그 다음단계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나쁜남자로 돌아가 보자. 나는 이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한기가 죽을 줄 알았다.

"저 어문 감독넘이 또 밑바닥에서 만만한 넘 하나 호구로 불러와서 뒈지게 만드는 구나. 그렇다면 너는 아직 이 바닥을 이해못한 거야. 바보야"

이몽룡어사가 왔다. 출도를 놓았다. 성춘향기생과 붙어먹었다. 잘된 일인가? 그래 우리의 춘향이를 저 상류층 인간에게 빼앗겨 버린 일이 통쾌한가? 그대는 유쾌한가? 기분 째지냐?

내가 방자였다면 이몽룡과 성춘향이 재회를 즐기고 있는 동헌에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모두가 구원되기 전 까지는 아무도 구원되지 않은 것이다. 신데렐라 홀로 왕자님과 짝짜꿍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여전히 팽개쳐져 있다. 달라진게 뭐냐 말이다.

나는 다만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구원되기 전 까지는 아무도 구원되지 않은 것이다.

김기덕은 그걸 알고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봄이 돌아왔다. 그러나 예전의 그 봄은 아니다. 이 봄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이다.

이제 당신이 주인공이다.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어쩔거냐고? 여전히 그대는 한기이거나 선화일건데 어쩔거냐고. 이제 다시 시작인데 어쩔거냐고.


미학적 완결은 관객에게 되돌려 주기다. 그것이 감독 지 이야기로 되면 실패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영화에서 기승전결의 1사이클이 끝나고 그 다음 영화를 관객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김기덕스토리는 끝났다. 이번에는 관객이 한기와 선화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 한기를 찢어죽이든 볶아먹든 당신이 주인공이다. 여기서 감독이 내거는 조건은 딱 하나다.

공생이다. 한기를 죽여버리면 선화 혼자서는 이야기가 안된다. 어쩔래?

페미니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다. 세상 남자를 다 죽여버리면 된다. 이건 정말 손쉬운 해결이 된다. 이때 하느님이라는 고약한 - 거역할 수 없는 것이 개입한다.

"그러기 없다"

말하자면 그건 게임의 규칙에 없는 것이다. 어쩔래? 답은 스스로 찾아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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