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못 깨닫기로 유명한 장선우가 또 다시 깨달음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장감독 본인도 '이번에는 진짜다' 하고 호언하고 있다.

깨닫는다는 것은 '게임의 규칙'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게임의 규칙'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과 이탈리아가 축구를 하는데 이탈리아가 반칙을 하면 "이야! 멋진 기술이군." 한국이 반칙을 하면 "저런 하석주 같은 넘!" 하면서 잘못된 게임의 규칙을 적용하므로서 한국팀이 심판의 편파판정덕분에 승리했던 걸로 잘못 인식하고 마음 속으로 죄의식을 가지는 동포들에게 김어준의 통렬한 한마디 "한국팀은 충분히 강하다!"가 깨우침을 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잘못된 게임의 규칙을 적용하곤 한다. 조선일보의 반칙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MBC의 보도는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 바른 '게임의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할 줄은 모르고, 관료들의 횡포나 귀족들의 특권은 당연한 것으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은가?

여러분이 길거리에서 경찰을 발견한다면 "음 시민의 머슴들이 오늘도 수고하는군!"하고 여기는가 아니면 "윽! 혹시 나 뭐 죄지은거 없나?" 하고 기가 죽는가이다. 게임의 규칙을 잘못 정해놓아서 공연히 기죽어 있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이 점을 깨우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뭐 죄진거 있나?"

필자가 귀염둥이 지만원의 행동을 무시하면서, 사이비 손호철을 적극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 손호철들은 '게임의 규칙'을 혼란에 빠뜨린다. 옳음과 그름을 판단하는 눈을 마비하게 만든다. 이게 가장 나쁘다.

하여간에 필자에게 늘 별 반개씩을 받아온 장선우가 이번에는 별 하나나 혹은 하나 반을 받는 기적을 낳을지도 모른다. 이건 중대한 사건이다. 장선우의 모든 영화를 "똥"으로 표현했던 필자가 곧 개봉될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은 '어쩌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예단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지 못했으므로 필자의 글은 다분히 추측과 예단이다.

필자가 말하려는건 관전포인트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무엇을 배워갈 것인가?' 뻔하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와 비교된다. 매트릭스는 가상현실을 악으로 규정하고 현실을 선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헐리우드식의 흑백논리다.

관전포인트는 장선우가 과연 헐리우드의 이 흑백논리를 극복했는가이다. 북한은 악, 미국은 선으로 규정하는 헐리우드의 최면술을 극복하고 있는가이다.

매트릭스의 세계는 간단히 말하면 북한이다. 북한주민은 가상현실에서 가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집단최면에 걸려있다. 그들은 "우리는 수령님 은덕 속에 행복해요" 하고 말하지만 그 행복은 가짜다.

이것이 매트릭스의 메시지인 것이다. 미국과 헐리우드는 지조때로 정해놓은 이러한 게임의 규칙을 세계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미국이 정한 '게임의 규칙'에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깨달아야 한다.

장선우는 이러한 헐리우드의 논리에 싸움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장선우의 모든 영화에 별 반개를 주어온 필자이지만 이번에는 은혜로이 별 하나반을 주어도 나쁠 것은 없지 않는가?

하여간에 우리가 9월 13일 개봉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봐야할 것은 장선우가 -세상을 '선의 신 야훼와 악의 신 사탄' 간의 투쟁으로 보는 헐리우드를 극복하고 있는가?- 이 하나가 핵심이다. 액션이 짜다르 나오겠지만 그런 따위는 눈감고 봐도 된다.

중요한건 게임의 규칙이다. 깨달음이 엿보이는가 그렇지 못한가는 간단히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본질은 '게임의 규칙'을 의식하고 있는가이다.

하는 이야기가 동어반복의 순환구조로 되어 있다면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반복적으로 표절하면서, 부단히 자기자신을 복제하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본인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 굉장히 많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또 사전에 어떤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서, 그 이야기에 그러한 전제가 깔렸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한다면 역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예컨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이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무의식 중에 성공하는 것이 선(善)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문제는 본인이 그러한 전제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데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면 이런 것이 드러난다.

일기의 맨 첫줄은 "나는 오늘.."로 시작된다. '나는 오늘..'을 쓰지 않으면 일기를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건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을 맨 앞줄에 써버렸기 때문에 초등생의 일기는 날마다 똑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이런 식으로 사전에 전제를 깔고, 범위를 제한하는 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하면서, 자신이 그러한 게임의 규칙 속에 갖혀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깨달음은 그러한 전제를 깨는 형태로 되어 있다. 스님들의 선문답도 모두 이러한 형식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깔고 들어가는 그러한 전제를 알아채고 극복할 수 있는가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비현실은 악이고 현실은 선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근데 비현실이 왜 악이지? 거기에 선악의 개념이 왜 적용되지? 게임은 선도 악도 아니다. 그냥 게임이다.

현실은 무엇인가? 모든 현실은 비현실이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차이는 없다. 있다해도 그 차이가 도덕적 차이는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구분되는 별개의 세계인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흑인이나 여성이나 장애자에게 편견을 가지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게임의 규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공존하기 위해서이다.

이라크와도 이슬람과도 북한과도 유태인과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북한에는 문제가 있지만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일단은 공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통일이 아니라 공존이 선이다. 이 가치가 이해되어야 한다.

장선우는 게임을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들이 싸우는 대상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게임의 규칙이다. 승리는 그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면 시스템은 사망하는가? 만약 시스템이 사망한다면 장선우의 영화는 별 반개이다.

어떤 경우에도 시스템은 사망하지 않는다. 모든 개혁과, 혁명은 시스템의 파괴가 아니라 업그레이드이다.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는 장선우가 시스템을 죽이는가 죽이지 않는가에 있다.

시스템을 죽이면 '성소'는 매트릭스의 아류가 된다. 주인공의 승리로 하여 시스템이 버전엎 된다면 장선우의 영화는 별 두 개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필자는 영화를 보지 못했다. 아직 개봉하지 않았으니까. 장선우가 시스템을 선으로 규정하는지 악으로 규정하는지를 눈여겨 볼 참이다. 그가 세상을 선과 악의 투쟁으로 보는 헐리우드의 기독교논리에 세뇌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지켜볼 참이다.

하여간 깨닫는게 남는거다. 무엇을? 권위주의의 룰에 세뇌되어 이회창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만 껌벅하면 자기도 모르게 알아서 기는 그러한 게임의 규칙을!




일부 과장된 표현은 양념..료해 있으시기를..또 깊이 들어가면 금강경이 어떻고 존재론이 어떻고 논해야 하는데(영화 중에 금강경이 나온다 캄) 다 쓸데없는 수작이고 본질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추종하는 '게임의 규칙'을 노출시키는데 성공하는가에 있다.

사실 장선우의 모든 영화에는 그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 노출하기'라는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달된 적은 한번도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지금까지 장선우의 모든 영화는 실패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장선우가 본전을 못 건진건 화엄경 밖에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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