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렬 선생님의 1인칭 관점론, 에 대해서
제가 충격을 먹은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3인칭 관조 능력이 짱인 줄 알았던,
하지만 3인칭 시점을 상상해내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진정 가득찬 '전체적 1인칭 시점' 인 것일까, 하는 식으로 점점 껍질을 깨나가구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시야가 좁은 '부분적 일인칭 시점'으로 살다가,
상대방 입장을 상상해보고,
상대 뿐 아니라 상황과 시간의 입장에서도 나를 생각해보는 3인칭 관조 시점을 익히고
그 다음에 다시 1인칭 시점으로 돌아온다면
이것이 바로 구조론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1인칭 시점'의 단계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래 글의 내용도 흥미진진합니다. 뭔가 3인칭 관칠자 시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요.
http://m.blog.naver.com/pathtolight/220024653663
제가 충격을 먹은지 어언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3인칭 관조 능력이 짱인 줄 알았던,
하지만 3인칭 시점을 상상해내는 것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진정 가득찬 '전체적 1인칭 시점' 인 것일까, 하는 식으로 점점 껍질을 깨나가구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시야가 좁은 '부분적 일인칭 시점'으로 살다가,
상대방 입장을 상상해보고,
상대 뿐 아니라 상황과 시간의 입장에서도 나를 생각해보는 3인칭 관조 시점을 익히고
그 다음에 다시 1인칭 시점으로 돌아온다면
이것이 바로 구조론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1인칭 시점'의 단계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래 글의 내용도 흥미진진합니다. 뭔가 3인칭 관칠자 시점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것 같아서요.
http://m.blog.naver.com/pathtolight/220024653663
김동렬
링크한 글은 넘 복잡하게 말해놨군요.
그냥 원인측에서 결과측을 보면 됩니다.
예컨대 진보를 진보한 결과로 볼 것인가
진보의 지배로 볼 것인가는 완전히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