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는 현재다]
캔디 고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혈연과 부모자식간 인연으로만
연결지어 생각하는듯 보인다.
그래서 저번에 쓴 글은 그 범위를 넘어가서 쓴 것임을 밝힌다.
물론 캔디 고가 어떤 의도나 목적이 개인적으로 있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캔디 고가 밝혀 놓은 정황과 심리적 추측이 가능한 부분들을
이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인간이 가는 그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이다.
그래서 단정적이다.
그러니 그렇게 읽어주고 보아주면 좋겠다.
인연이 있다면,
그 인연의 범위에 친연도 있다.
더 친한 것이 있다는 얘기다.
사람도 그렇고 부모자식간도 그렇다.
또한 인생의 방향성도 그렇다.
그것이 곧 운명인 것이다.
친한 것을 따르게 되어 있고
더 끌리는 것을 따라 돌게 되어 있다.
운명은 평행선으로 가던 두 개가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벌어진다.
그러나 한번 만나 친한 것은 나선형으로 간다.
DNA 구조와 같다.
친하지 않는 것은 궤도없이 그저 지나가거나 소멸한다.
자신과 의식의 만남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
생각과 정신의 만남
자아와 세계의 만남
이것은 모두 운명적 조우이고 각성이다.
어떤 인연의 고리도 때가 되면 끊어진다. 존재는 생사의 사이클이 마무리되면 존재란 한 사건이 끝난 것이다. 거기서 마무리 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다른 사건이 된다. 존재 그 자체에서 봐야 한다. 지켜보는자의 시선이 아닌 한 존재 그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과거와 미래는 현재이다. 그것을 알고 뭔가를 할때 현재의 자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안대희 낙마도 그렇고 고승덕의 교육감 불발도 그렇다. 딸이 아버지를 디스했다는 것은 그만한 자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막아선 것이다. 자신들에게 제대로된 아버지 역할 못해줬다해도 자질이나 인생의 일관성이 있었다면 이런식으로는 막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복수가 아닌 것이고,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 거라고 본다. 과거는 지금의 현재이고 미래는 또 어느 시점의 현재가 된다. 과거가 현재인 사람과 미래가 현재인 사람은 차이가 있다. 이건 미래가 현재인 사람에게는 미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가치를 현재화 하는 것과 미래가치를 현재화 하는 것에서, 과거와 편 먹는 사람과 미래와 편 먹는 사람의 선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모두 혈연을 넘어서는 선택들인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가 되고 그 현재는 서로에게 다른 현재가 된다.라는 시점에 관한 얘기이다.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그 얘기이다. 무엇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가에 대해서.... (Freedom)
배태현
작년엔 에드워드 스노든, 올 해엔 캔디고 퇴보하는 인류를 각성시키는 영웅적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