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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600 vote 0 2013.06.04 (18:23:14)

    상호작용의 세계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양자의 세계를 우연과 확률로만 설명한다면 어폐가 있다. 확률은 사건의 원인측이 아닌 결과측 보고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닌 언어의 문제다. 의학의 증후군과 같다. 질병의 원인은 불명하지만 증상은 분명하다. 에이즈에 걸려 죽는 사람은 많지만 에이즈로 죽는 사람은 없다. 이런 말은 헷갈린다.


    그런데 사실이다. 에이즈가 면역성을 제거하면 다른 질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확률로만 판단된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의 확률과 같다. 매직 존슨은 에이즈에 걸렸지만 23년째 잘 산다.


    이렇듯 확률과 우연에 지배되는 세계는 우리 주변의 거시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에이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상부구조가 있을 때 이런 헷갈림이 일어난다.


    상부구조(에이즈)와 하부구조(2차감염)가 있다. 이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에이즈에 걸려 죽지만 에이즈로 죽지는 않는다는 이상한 표현이 등장한다. 말 잘 하는 사람이라야 알아듣게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은 말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후학들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중구조에 따른 헷갈림 문제를 해소할 명쾌한 언어를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다.


    총알이 몸에 박혔다면 누군가의 총에 맞은 것이다. 총이 아니라 총알에 맞았다고 우기면 피곤하다. 확률과 우연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총알에 맞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역시 표현의 잘못이다.


    총은 확인하지 못했더라도 총에 맞은 것이다. 확실히 확률로 밖에 기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러나 확률이 사건의 원인은 아니다. 소리만 듣고 판단해야 하지만 소리가 사건의 원인은 아니다.


    담배꽁초만 갖고 판단해야 하지만 담배꽁초가 범인은 아니다. 결정론은 잘못이지만 확률론은 결정론을 대체하지 못한다. 인과법칙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원인측을 나타내는 언어가 필요하다.


    구조론은 상호작용으로 이를 해명한다. 상호작용이 범인이다. 그리고 꽁초를 남겼다. 상호작용이 쏘았다. 그리고 총알을 남겼다. 양자론의 확률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현장의 자국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자국이 범인은 아니다. 상호작용이 범인이다. 그런데 상호작용은 반드시 2 사이에만 성립한다. 1로는 상호작용을 할 수 없다. 짝수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구조론은 양자론의 핵심과 통한다.


    결정론은 입자가 중심이다. 상호작용관계 자체가 하나의 입자처럼 행세한다. 쇠붙이를 가열하면 불연속적으로 빛 입자가 튀어 나온다. 이게 기존의 결정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과연 입자가 튀어나올까?


    ◎ 결정론 – 빛이 공간을 지나간다.
    ◎ 상호작용론 – 공간이 빛을 빨아낸다.


    상호작용은 일방적인 짝사랑이 아니다. 밀도가 걸린 공간이 가열된 쇠붙이를 때려서 빛 입자를 빼내는 것이다. 때리는 공간과 튕겨나오는 빛 사이에 일정한 비례식이 성립한다.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공간이 금속을 때려서 빛 입자를 집게로 빼내므로 광자는 불연속성을 가진다. 수도꼭지의 물은 연속적으로 나오지만 맥주병의 물은 불연속적으로 나온다. 공기가 들어가서 물을 빼내기 때문이다.


    aa1.JPG

 

    우리는 거시세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양자세계의 불연속성을 경험한다. 남녀관계도 그렇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교차통행이다. 한 사람이 들어가야 한 사람이 빠져나온다. 그러므로 불연속적이다.


    ◎ 결정론 - 그냥 줄줄 나온다.
    ◎ 상호작용론 – 들어간만큼 나온다.


    구조론은 사건, 사건은 짝짓기, 짝짓기는 대칭이다. 대칭이 작동하는 모든 곳에 상호작용이 있고 불연속성이 따라온다. 짝지으려면 둘의 사전교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


    그런데 입자는 부분이다. 입자가 놓인 자리를 사건에 포함해야 전체다. 그러므로 항상 2에서 1로 간다. 결정론은 원자론에 기반을 둔다. 원자는 1로 시작한다. 틀렸다. 빛 입자는 1이 아니다.


    병 안에 공기가 한 방울 들어가야 물이 한 방을 나온다. 들어간 쪽과 나온 쪽이 1 대 1 대칭을 이룬다. 빛 입자가 허공을 1만큼 전진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빛과 공간의 자리바꿈이 일어난다.


    빛과 빛이 차지한 자리까지 합쳐서 2다. 구조론의 질 개념이다. 모든 존재는 자리를 가지며 운동은 그 자리와 자신을 교환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역으로 자신은 가만있고 자리만 이동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이동한 사람은 부산까지 이동하지 않는다. 자리만 바꾼 것이다. 마찬가지로 빛이 진공을 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빛은 이동하지 않는다. 계속 자리를 바꿀 뿐이다.


    구조론은 원래 국어사전을 찾다가 착상되었다. 사전의 설명이 메커니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는 된다’는 비례식으로 기술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맥주병에서 물이 그냥 나온다고 기술되었다면 이상하다. 맥주병에 공기가 들어가야 물이 나온다고 해야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는 된다’는 상호작용의 원칙에 맞다. 이는 직관적 판단이다.


    린네의 분류법을 보고 무생물을 분류한 것이 구조론의 출발이다. 이때 처음으로 나열해본 것이 물리≫물질≫물성≫물체≫물건이다. 모두 앞에 물자가 붙어 있다. 일정한 패턴의 반복이다.


    이들을 사건의 기승전결로 전개시킨 것이 구조론이다. 이는 우연한 발견이다. 이론적 보강이 요구된다. 제논의 궤변이 힌트다. 발이 빠른 아킬레스는 한 걸음 앞선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


    거북이를 추월하려는 아킬레스는 지상의 절대공간에 있다. 우주공간이라면 어떨까? 거북이와 아킬레스는 안드로메다 은하 근처 허공에 떠 있고 지구상에서 이를 망원경으로 관찰한다면 어떨까?


    둘의 간격이 좁혀진다는 사실만 관측된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앞과 뒤라는 구분 자체가 없다. 상대성에 의해 거북이와 아킬레스는 마주보고 달려오는 열차가 된다.


    절대공간이 상대공간으로 바꾼다. 이쯤 되면 아인슈타인 등장해주시고.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졌을 때 크기는? 1/무한대다. 뉴턴은 이를 리미트 개념으로 풀지만 야매다.


    비례식으로 풀어야 한다. 아킬레스가 1을 갈 때 거북이도 1을 와야 한다. 둘은 대칭을 이루어야 한다. 빛이 금속에서 튀어나오는게 아니고 사실은 공간이 가열된 금속에서 빛을 빼내는 것이다.


    빛이 1이면 공간 역시 1로 대칭을 이루어야 한다. 이때 공간이 0.5 들어가면? 빛은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연속성을 가진다. 그런데 정지한 공간이 아니라 흐르는 공간이면 어떨까?


    공간의 흐름이 부족한 0.5를 조달한다면? 그 경우 빛은 굴절, 회절, 반사된다. 빛이 태양 주변을 통과할 때 불균일한 공간을 만난다. 흐르는 공간에서 빛은 휘어졌지만 빛 자신은 직진한 거다.


    공간의 흐름이 빛의 궤도를 휘어놓은 것이지 빛이 구부정하게 길을 잡은 것은 아니다. 빛은 버스타고 직진했는데 도로가 휘었다. 이때 공간의 흐름이 치고빠지기를 한다는 사실이 문제된다.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졌을 때 아킬레스가 1을 가면 거북이는 0.5를 간다. 대칭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불연속성이 성립한다. 어차피 가는 건 아킬레스나 거북이 아닌 공간이다.


    결론적으로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가 1/무한대일 때 불연속성이 일어나 점프를 한다. 공간의 흐름에서 0.5를 빼앗아 1 대 1 대칭을 성립시킨다. 공간이 자연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질이 진공을 이동한다는 것은 공간이 자리를 바꾼다는 것이며 자리바꿈은 무조건 1 대 1이다. 들어간 만큼 나온다. 0.5는 없다. 불연속성은 우주공간의 본질적 속성이다. 공간은 자연수다.


    입자가 입자인 이유는 인간의 손으로 만졌을 때 만져지기 때문이다. 질량이란 그 대상을 통제하려는 힘에 대항한다는 것이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듯 저항하지 않고 관통한다면 만져지지 않는다.


    만져진다는 것은 대항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관측자와 1 대 1 대칭을 성립시킨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는 대칭을 성립시키지 않지만 자기네끼리는 대칭이 된다면?


    그것이 구조론의 질이다. 그것이 양자의 세계다. 거시세계에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흔히 무시당한다고 한다. 왕따의 대상이 되면 투명인간 취급을 당한다.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이다.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떻게든 대칭된다는 것이며 일체의 대칭이 없다면 그것은 없다. 한반도마을의 한반도지형은 그 무엇과도 대칭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던 거다.


    누군가 그 지형을 발견하고 명명하자 상호작용이 일어났다. 대칭이 성립했다.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메커니즘을 성립시켰다. 비로소 존재가 우뚝하였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는 정확한 위치가 없다. 관측할 때 위치가 결정된다. 관측했을 때 한반도 지형은 자기 존재를 성립시킨다. 99.5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에 99명이 들어가 있다.


    0.5명의 공간이 비어 있다. 그 빈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한 명을 더 밀어넣으면 된다. 이때 건물의 창문으로 0.5명이 튀어나온다. 창문은 여럿이다. 어디든 나올 수 있다. 확률이 결정한다.


    아킬레스가 우주의 진공 속에 있다. 무엇과도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아킬레스는 없는 것이다. 역으로 아킬레스가 그곳에 존재한다면 우주의 흐르는 진공과 부단히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상호작용 개념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정된 모눈종이 위에 점을 찍으면 일방성이다. 점을 고정시키고 반대로 모눈종이를 움직이면 상대성이다. 상대성이 둘 모이면 절대성이다.


    모눈종이와 점을 동시에 움직이는 것이다. 이때 모눈종이와 점 사이만 본다.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그 사이는 언제나 자연수 1이다. 어느 쪽이 움직였는지는 상관이 없다. 그래서 절대성이다.


    ◎ 일방성 – 바둑알을 하나 놓는다.
    ◎ 상대성 – 놓은 바둑알을 하나 뗀다.
    ◎ 절대성 – 번갈아가며 한 알씩 놓는다.


    바둑판이다. 내가 한 점을 놓으면 상대도 한 점을 놓는다. 두 사람이 교대로 둔 것을 하나의 입자 1로 친다. 우주는 바둑알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둑알의 교대들로 이루어졌다.

 

   

 

    ###

 

   

345678.jpg

 

 

    세상이 입자로 이루어졌다는 관념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입니다. 만족하시겠습니까? 뭔가 허전하지 않습니까? 배후에 뭔가 벗겨질 양파껍질이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레벨:9]길옆

2013.06.04 (23:02:27)

동렬님께서 글 중간에 언급하신 공간의 자리바꿈을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블로거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

 

파울리의  배타원리(排他原理)

 

우리의 직관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인  양자론에서

이상하다 못해 오히려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현상은

볼프강 파울리 (Wolfgang Ernst Pauli, 1900~1958)가  제안한   파울리의 배타원리이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원자에서 방출되는  빛의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것으로

동일한 원자 내에 있는  2개의 전자가  동일한 순간에도  동일한 상태에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후에  배타원리는  전자를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입자에 대해서  일반화되었다.

 

원자에 대한  현대적 관점에  의하면  밀도가 높은  원자핵의 주위에 있는  공간은

각각 2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궤도함수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는  

만일  이 상태 중의  하나가  스핀 1/2(up spin)의  전자로 점유되면  

다른 것은  반대의 스핀,    즉  스핀 -1/2(down spin)의  전자로  채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반대의  스핀을 갖는  한 쌍의 전자가 있는  궤도함수는  완전히  채워져 있어

어느 하나가  궤도함수를  빠져나가지  않는한   더 이상의 전자가  들어올 수 없다.

 

여기서 기이한 사실은

아(亞)원자  입자들 중에서  어떤 짝들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즉시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우주 끝에서  반대 끝까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입자의 스핀이  결정되는 순간

그와 짝을 이루고 있는  다른 입자는  동시에  반대의 스핀을  가지게 된다.

 

두 궤도 사이를   움직이는  전자는

한 궤도에서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다른 궤도에서  나타나지만

그 중간의 공간을  절대로  지나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곳에서  물질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

 

http://blog.daum.net/rre2000/12

 

위 블로그 글의 마지막에

"과학은   자연의 신비를  결코  풀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의 일부인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라는 인용이 있는데요.

 

막스 플랑크는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진실을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진실을 안다고 해도 진실을 표현할 수는 없다.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과연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6.04 (23:33:35)

링크한 블로그를 읽고 두 단락을 더 추가했습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전자는 정확한 위치가 없다. 관측했을 때 위치가 결정된다. 관측했을 때 한반도 지형은 존재를 성립시킨다. 99.5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에 99명이 들어가 있다.  

 

0.5명의 공간이 비어 있다. 그 빈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한 명을 더 밀어넣으면 된다. 이때 건물의 창문으로 0.5명이 튀어나온다. 창문은 여럿이다. 어디든 나올 수 있다. 확률이 결정한다.

[레벨:12]부하지하

2013.06.04 (23:36:16)

전송됨 : 페이스북

거시세계 미시세계 이런 구분이 나온게 방편이군요ㅣ.

[레벨:12]부하지하

2013.06.04 (23:25:49)

 상상이상으로 인간들이 무식다는 자각.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6.04 (23:44:20)

양자세계가

우리의 직관과 다르다는 말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소.

 

우리의 직관과 너무 같지 않소?

양자란 간단히 대칭이오.

 

주변에 대칭은 너무나 많소.

음양 상하 남녀 좌우 전후 고저 장단 원근 대소 등등

 

다 모으면 한 트럭이나 될 것이오.

우리는 온통 대칭 속에 살고 있소.

 

산이 높으면 강이 깊소.

여름이 더우면 겨울은 춥소.

 

베토벤이 있으면 모짜르트가 있소.

대중음악이 있으면 고전음악이 있소.

 

직관과 다른게 아니고 직관력이 없는 거지요.

이런 세계가 없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소?

 

자동차는 있는데 자동차 공장은 없다거나

건물은 있는데 설계도는 없다거나

 

생물은 있는데 유전인자는 없다거나

생각은 있는데 뇌구조는 없다거나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니오?

양파껍질이 한 꺼풀 더 있는게 정상이지.

 

마술사는 있는데 속임수는 없다거나

바둑은 있는데 정석은 없다거나

 

컴퓨터는 있는데 스마트폰은 없다거나

명바기는 있는데 사대강은 없다거나

 

닭그네는 있는데 윤창중은 없다거나

그게 외려 더 이상하지 않소?

 

양자는 대칭이며 대칭은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는 된다’는 비례식이다. 이런 비례식이 없이 설명되는게 더 이상하다. 직관과 맞지 않는다. 산이 높으면 강이 깊다고 해야 직관과 맞다. 그냥 산이 높다고만 말하면 다단계 판매업자의 유혹처럼 뭔가 수상하다. 원자론이 더 직관과 맞지 않는다. 원자는 하부구조, 상호작용은 상부구조다. 어디가나 배후세력이 있고, 윗선이 있고, 감추어진 부비트랩이 있고, 음모가 있고, 상부구조가 있는게 상식과 맞고 직관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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