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柔가 강剛을 이긴다 사물 - 사건 이상의 대칭들에서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기서 패턴을 발견하고 구조를 복제하면 모형적 사고다. 생각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아이디어가 끝없이 쏟아진다. 다만 훈련하여 이를 우연한 착상이 아닌 의도적인 조립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노자는 유柔가 강剛을 이긴다고 했다. 이유극강以柔克剛이다. 오른쪽 줄이 왼쪽줄을 앞선다.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앞선다. 이사회가 CEO를 앞서고, 인터넷이 PC를 앞서고, 마사회가 경마꾼을 앞선다. 배후에 있는 것이 실제로는 앞서 이끈다. 기관차가 객차를 이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앞서고, 설계도가 건물보다 먼저 그려진다. 유전자가 생물보다 먼저 안착했다. 격발이 명중에 앞서고, 시작이 끝에 앞서고,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 양자가 입자에 앞서고, 에너지가 물질에 앞서고, 사건이 사물에 앞선다. 이 원리를 받아들이고 이를 보편화 하면 진정한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만 권의 책이 이 하나의 이치로 갈음된다.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유柔가 강剛을 이긴다고 하나 두부로 칼을 자를 수는 없다. 언제나 단단한 칼이 부드러운 두부를 자른다. 다만 칼을 쥐려면 단단한 칼날이 아니라 가죽이 둘러져서 부드러운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손잡이가 사건에 가깝고 칼날은 사물에 가깝다. 사건이 사물을 이긴다. 사건을 포착하고 알아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물과 사물의 대결에서는 당연히 강이 유를 이긴다. 부드러운 물이 단단한 바위를 뚫지 못한다. 언제나 단단한 바위가 부드러운 물을 막는다. 물이 바위를 뚫으려면 천 년 세월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므로 사건이다. 예의 나열된 대칭들의 왼쪽 줄은 공간에 있고, 오른 쪽 줄은 시공간에서 작동한다. 여기서 패턴을 발견하면 곧 머리에 생각공장을 짓는 셈이며 모든 문제는 일거에 풀린다. 물질은 공간에 있고 에너지는 시공간에서 작동한다. 시간이 없다면 에너지를 측정할 수 없다. 에너지는 속도로 나타나고 속도는 시간에서 측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산백과사전으로 에너지를 검색하면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간이라는 단어는 씌어져 있지 않다. 인류가 아직 에너지 개념을 옳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에너지도 모르면서 세상을 이해하려 하다니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인류는 원래 추상적 사고에 약하다. 사물은 잘 이해하고 사건은 잘 알아채지 못한다. 논쟁에서는 사건을 들이대는 쪽이 무조건 이긴다. 보나마나 상대방은 강한 사물을 들이댄다. 이때 부드러운 사건으로 제압하면 된다. 상대가 바둑으로 나오면 정석으로 받고, 상대가 정답으로 나오면 공식으로 받고, 상대가 ‘1번마가 이겨.’ 하면 ‘마사회가 벌지.’ 하고 받으면 된다. 상대가 ‘곰이 재주부려.’ 하면 ‘되놈이 돈을 가져.’로 받으면 된다. 상대가 강한 사물을 부드러운 사건으로 제압하기다. 이 방법으로 언제나 승리자가 된다. 유가 강을 이기기 때문이다. 다만 바른 유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상대가 칼로 나오는데 두부로 제압하려 들면 실패다. 상대에게 칼날을 주고 자신은 손잡이를 취하는게 테크닉이다. 통제가능한 부분에 정답이 있다. 상대가 메시의 개인기를 찬양할 때 당신은 바이에른 뮌헨의 팀플레이로 제압하면 된다. 강한 사물을 찬양하는 것이 하수들의 세계이면 부드러운 사건으로 제압하는 것이 고수들의 세계이다. 메시의 개인기는 원래 타고난 능력이라 인위로 통제할 수 없다. 바이에른 뮌헨의 조직력은 훈련된 것이라 통제가 가능하다. 이 패턴은 어디에도 적용된다. 만화를 그리든 소설을 쓰던 언제라도 그러하다. 강한 사물이 약한 사물을 괴롭힐 때 부드러운 사건으로 강한 사물을 제압하는 것이 모든 예술작품의 정해진 공식이다. 사건은 팀의 형태를 가지므로 포지션을 정교하게 맞추어야 한다. 대개는 강한 사물의 실력을 부드러운 사랑의 열정으로 제압한다. 그러려면 사랑의 포지션을 잘 맞추어야 한다. 똑똑한 춘향과 유능한 몽룡의 조합이어야 한다. 수다스런 방자와 신경질적인 향단의 조합이면 성공하지 못한다. 시너지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상부구조의 춘향몽룡조합이 하부구조의 방자향단조합을 연쇄적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이것이 사건의 복제능력이다. 예술은 모두 이 구조다. 삼국지의 캐릭터들은 좋은 프로야구팀의 유격수와 내야수 조합처럼 포지션이 잘 맞다. 수호지도 그러하다. 승부의 추는 오직 포지션 조합을 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거기서 설득력이 얻어진다. 구조가 복제되기 때문이다. 초한지의 유방유柔-항우강剛 조합을 삼국지의 유비유柔 조조강剛 조합으로 복제하고, 다시 수호지의 송강유柔-이규강剛 조합으로 복제한다. 이러한 캐릭터 복사는 무한히 진행된다. 그것이 직관적 사유이자 모형적 사고이며, 이 구조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양자론의 세계관이다. 이때 복제된 패턴을 상대방도 써먹으려 하므로 상대방이 당신의 승리를 승인하고 존중한다. 만약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상대를 이긴다면 상대방은 결코 당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얻는게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재도전을 해온다. 그 경우 당신은 이겨봤자 얻는게 없다. 허무한 승리다. 반면 캐릭터의 복제가 가능할 때 상대방은 당신에게 재도전을 하기보다 또다른 대상자를 찾아서 당신의 수법을 그 사람에게 써먹는게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신의 승리를 인정한다. 당신은 충분히 존중받는다. 이 길로 가야 한다. ◎ 상대는 강한 사물로 도전한다.
이 정도만 알아도 직관력과 창의력은 결정적으로 향상된다. 음악인이 길고 짧은 장단 하나만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리듯이, 문학가는 유柔하고 강剛한 캐릭터의 밀고당기기 조합만으로 독자의 혼을 뺀다. 한 달에 한 장의 글도 못 쓰던 사람이 하루에 100 페이지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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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본능적으로 이 패턴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고정된 패턴을 단순히 반복할 뿐 이 구조를 자유자재로 갖고 놀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대가들은 능히 새로운 패턴을 창의해 낼 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그것을 자유자재로 변주하기에도 성공합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다들 하나씩 자기류의 패턴을 완성했습니다. 그 안에 강과 유의 조형적 대립이 있습니다. 고흐는 안료로 강과 유의 대립을 끌어냈고, 마네는 빛에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세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조형적 질서를 자유롭게 창의하고 변주하며 또 타인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설명서까지 첨부해서 말입니다. 피카소가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을 챙겨갔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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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양자론적 세계관 넘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