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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620 vote 0 2013.06.10 (00:08:07)

       산 속에 버려진 집이 있다. 아무도 그곳에 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곳에 확실히 집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곳에 집이 확실히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불완전한 반半존재들이 있다. 구조론으로는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에서 질만 완전한 존재다. 나머지는 지위가 불완전한 반半존재들이다.


    기존의 물리학은 입자를 완전한 존재로 친다.(실은 완전성 개념이 없다. 말하자면 그렇다고.) 입자는 불완전하다. 돌지 않는 팽이는 더 이상 팽이가 아니다. 자연의 팽이는 24시간 쉬지 않고 돈다.


    소립자들은 중력에 대응하여 운동하고 있고, 시공간의 팽창에 대응하여 운동하고 있다. 발동이 걸려있다. 도미노 하나를 슬쩍 건드리면 전체가 일제히 운동한다. 사전에 예열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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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다. 덩어리 전체가 존재할 뿐 각 개체의 존재는 없다. 다만 스위치가 켜져서 개체가 외부와 상호작용할 때만 존재가 완전해진다.


    중간의 마디들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완전성을 획득한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팽이를 누군가 주워서 친다면 즉시 존재의 지위를 획득한다. 버려진 빈 집에 누가 입주한다면 존재로 격상된다.


    반드시 상호작용의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 많은 것들이 몸 속의 암세포처럼 존재도 아니고, 존재가 아닌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팔레스타인은 국가로 상대해주므로 존재한다.


    도버해협의 시랜드는 어느 국가도 상대해주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아니한다. 상해 임시정부는 중국과 에스토니아가 존재를 인정했다. 확고한 존재도 아니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은 국가도 아니다.


    입자를 이루었다고 곧 존재는 아니다. 상대해주는 파트너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의 지위를 얻는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 스스로 독립국가를 선언한 애매한 지위의 무장집단이 활동하고 있다.


    구조론의 질은 입자가 에너지를 획득한 상태이다. 정원 1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에 101명이 탐승한다면 계에 밀도가 걸린다. 그런데 어떻게 1명이 더 들어갈 수 있는가? 속도 때문이다.


    양력의 원리에 따라 속도를 얻으면 밀도가 낮아진다. 그러므로 온도를 올리면 입자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겨서 하나가 더 들어갈 수 있다. 태풍이 강력한 저기압을 형성하는 것이 그렇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 빈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얼음을 녹이면 10퍼센트 가량 더 들어갈 수가 있다. 계 안에서 어떤 이유로 입자가 만원을 초과하면 계에 밀도가 걸리고 극성이 생겨나서 질이 형성되며 방향성을 획득한다. 표준모형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이다. 이는 메뚜기떼의 이동과 같다.


    한 평의 면적에 메뚜기 100마리가 있을 수 있다면 메뚜기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이동할 때 110마리가 있을 수 있다. 이 원리에 의해 전기는 흐르고 빛은 직진하고 메뚜기떼는 이동한다.


    결정론의 입자는 그냥 존재하며 어떻게 집합하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표준모형-힉스 메커니즘의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의해 밀도를 획득함으로써 존재는 집합하며 전체가 큰 덩어리를 이룬다.


    인터넷과 같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의해 극성을 획득함으로써 인터넷의 무수한 사이트들은 공존한다. 10개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공간에 100개도 들어가고 1000개도 들어간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PC통신에는 동호회 숫자가 정해져 있었다. 예컨대 천리안에 등산 동호회가 이미 있다면 등산 동호회를 개설할 수 없는 식이다. 이때 사이트들은 일정한 대칭성을 이룬다.


    자발적 대칭성 깨짐에 의해 지금 다음 까페에는 등산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까페 38800개가 검색되고 있다. 계속 들어가는 것이다.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다. 큰 나무의 가지와 같다.


    야자수는 가지가 없다. 한 그루가 하나의 줄기다. 그러나 큰 나무는 무수한 가지가 있다. 계속 가지를 쳐도 추가로 가지를 더 칠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나무의 가지는 모두 몇 개일까?


    셀 수 없다. 다음넷의 등산까페 38800개보다 많다. 표준모형이 제안하는 자발적 대칭성 깨짐의 가지치기에 의해 비로소 존재가 연출된다. 그러나 서버와 연결이 끊어지면 존재는 사라진다.


    스위치가 내려지면 작동은 정지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몽당연필은 존재의 지위를 잃고 난지도에 묻혔다. 상부구조와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연락이 끊어지면 커플도 솔로로 격하된다.


    스마트폰 주소록에서 정보를 지웠을 때 커플의 존재는 해제되었다. 숨이 끊어진 생명은 존재가 없다. 뇌가 끊어진 일베충은 인간실격된다. 길 잃은 양은 죽는다. 숙주를 잃은 기생충은 죽는다.


    주소가 틀린 우편물은 배달되지 않는다. 잘못걸린 통화는 사망한다. 굉장히 많은 것들이 존재에서 비존재로 추락하여가고 있다. 엎어진 물은 마실 수 없고 재뿌린 밥은 먹을 수가 없다.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처럼 폐기된다. 존재는 소멸한다. 연결이 끊어져 밀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질에서 입자로 추락한 즉 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지며 그 에너지는 다른 곳에 흡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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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위에 가족이, 가족 위에 집단이, 집단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인류가 있습니다. 계속 위에 무언가 상부구조가 있습니다. 여기서 분리해내는 즉시 존재는 사멸합니다. 그러나 착각입니다. 최상층부와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야 진짜입니다. 중간 존재들은 불완전한 가짜입니다. 그것들은 거기에 해당하는 사건 혹은 기능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기능하지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개인이 다이렉트로 연결됩니다. 신과 내가 곧장 연결됩니다. 태양빛이 여러 단계를 거쳐 식물의 떡잎에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일은 오늘에 미루고, 오늘 일은 이번 주에 미루고, 이번 주 일은 이번 달에 미루고, 이번 달 일은 올 해에 미루고, 올해 일은 10년 주기에 미루고 이렇게 계속 중간단계의 거짓존재를 만들어 미룰 수 있는게 아닙니다. 중간단계의 거짓존재에 미루면 아들의 결혼을 방해한 예비 시어머니처럼 벌금 천만원을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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