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405 vote 0 2013.04.15 (20:31:45)

    싸이의 젠틀맨


    젠틀맨은 B급 코드로 일관한다. 그런데 B급이란 무엇일까? 가장 손쉽게 음식맛을 내는 방법은 MSG를 넣는 것이다. 가장 손쉽게 관객의 눈을 붙잡는 방법은 액션, 섹스, 멜로, 최루, 감동, 코미디를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플러스 방향이라는 점이다. 액션은 더 강한 액션으로, 섹스는 더 강한 노출로, 멜로는 더 강한 연애로, 최루는 더 강한 눈물로 더 양을 늘릴 수 있다. 말하자면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질로 승부해야 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질은 하나씩 제거한다. 더 이상 제거될 수 없는 극단에 도달한다. 질은 황금비례가 있으므로 선을 넘을 수 없다. 주인공이 죽으면 영화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 더 오를 수 없다. 남북극의 극점에 도달하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극점을 초극하는 것이 질이다. 질에 도달하는 것이 A급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질에 도달할 수 있는가? 만남으로 가능하다.


    어떤 만남의 지점에는 하나만 통과할 수 있다. 신과의 일대일 만남의 장을 제시하면 A급이다. 선택의 여지는 배제된다. 영화든 소설이든 모든 걸작은 주인공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여 완전성에 도달한다.


    춘향에게 다른 선택의 가능성은 애초에 없다. 몽룡 또한 마찬가지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마찬가지다. 햄릿 또한 마찬가지다. 끝이 죽음임을 알지만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반면 태작은 주인공의 선택이 우연이다.


    무엇인가? 인문학은 인간의 의사결정능력을 향상시킨다. 길은 하나다. 합리적인 판단을 계속하여 조금씩 성공의 확률을 올려가는 거다. 답은 정해져 있다. 걸작의 공식은 정해져 있다. 누구든지 이 길로 가면 걸작이 된다.


    쉽지는 않다. 마이너스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가 위대한 것은 그 사막에 사람은 하나 뿐이기 때문이고, 소로의 월든이 위대한 것은 그 호숫가에 혼자이기 때문이다. 그 상황의 선택은 하나 뿐이다.


    선택이 둘이면 인간의 의사결정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작품은 처절하게 혼자가 되는 장면을 제시한다. 반면 B급은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처럼 무한복제된다. 뭔가 계속 많아진다.


    김성모 만화에 쌈꾼 등장하듯이 계속 등장한다. 드래곤 볼에 인물이 등장하듯이 계속 새로운 인물이 투입된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가면 A급이 되고 반면 다음에 더 센 것이 계속 나오면 B급인 거다.


    속편에는 더 많은 좀비와, 더 많은 강시와, 더 많은 터미네이터가 등장해야 한다.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어야 한다. 더 많은 무기를 동원한다. 고질라는 덩치가 더 커져야 한다. 헐크의 빤쮸 사이즈도 계속 늘어날 뿐이다.


    싸이의 젠틀맨도 등장인물이 많아졌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 나왔다. 그렇다. 싸이는 B급 코드다. 근데 A급이다. 겉보기는 B급이지만 본질은 A급이다. 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서부영화에는 뻔한 공식이 있다. 수천편의 서부영화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서부영화는 B급이지만 그 공식을 처음 만든 사람은 A급이다. 타란티노는 B급 코드에 충실하지만 새로운 B급 공식을 창안했으므로 A급이다.


    딴지일보가 뜨면서 B급문화가 재조명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짜다. 타란티노나 김기덕과 같은 진짜배기는 드물다. 한때 이발소 그림에도 걸작이 있다는 말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조선시대 민화는 우수한 회화일까?


    서양사람이 한국 민화에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한국의 조잡한 민화가 걸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한국의 개밥그릇이 일본에 가서 국보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실은 모르는 사람의 착각이었던 거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재현하기 힘들다. 진짜 걸작은 반드시 B급에서 시작된다. 왜일까? 복잡하지만 이 원리를 알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 주관과 객관이 있다. 이 말은 잘못이다. 사실은 주관이 객관이고 객관이 주관이다.


    subjective(주관)는 속을 보고 objective(객관)는 외양을 본다. 사물은 속이 중요하고 사건은 겉이 중요하다. 결혼식은 사건이므로 겉으로 화려해야 좋고 과자는 사물이므로 속이 알차야 좋다. 벌써 헷갈리기 시작이다.


    ◎ 사물은 속이 알차야 한다. - 사물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 사건은 형식이 내용에 앞선다. - 사건은 주관적으로 봐야 한다.


    관측자와 관측대상은 포지션이 뒤집어진다. 거울의 좌우가 반전되듯 전제와 진술의 구조에서 포지션이 바뀌게 된다. 속은 겉에서 보고 겉은 속에서 본다. 사건은 주관이 객관적이고 사물은 객관이 주관적이다. 바뀌었다.


    이중의 반전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의 ‘달이 뜨다’에 충분히 언급되어 있다. 뭔가 두 번 꼬여있지 않으면 그것은 일단 가짜다. 세상만사 뭔가 그럴듯하게 아귀가 맞아들어가면 당연히 거짓말이다.


    키가 큰 사람은 키가 크므로 위를 보고,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작으므로 아래를 본다. 그럴듯하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큰 사람은 아래를 보고 작은 사람이 위를 본다. 최홍만은 항상 아래를 봐서 등이 구부정하다.


    관측대상은 관측자의 맞은 편에 있기 때문이다. 최홍만의 관측대상은 최홍만보다 작다. 항상 뒤집어서 생각하는 관점의 이동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당연히 그럴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틀린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동차는 사물이므로 객관적으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사랑은 사건이므로 주관적으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사물이냐 사건이냐에 따라 180도로 달라진다. 주관, 객관을 함부로 쓰면 곤란하고 맥락을 살펴야 한다.


    싸이의 젠틀맨은 B급 코드다. B급은 허접하다. 실제로 싸이의 젠틀맨 뮤비를 보면 허접한 구석이 많다. 기본이 안 된 장면이 많다. 그러나 싸이의 뮤비를 비판하는 것은 김기덕 영화를 함부로 비판하는 것과 같다.


    김기덕 영화에도 허술한 대목이 많고 이는 히치코크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비판하면 안 된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기승전결의 기에 서고 사물은 기승전결의 결에 선다. 포지션이 다르다.


    ◎ 사건은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1퍼센트로 평가받는다.
    ◎ 사물은 그 중에서 가장 허접한 1퍼센트로 평가받는다.


    사건이냐 사물이냐에 따라서 평가의 방법은 달라진다. 사건이려면 반드시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새로움은 어떤 만남에 의해 일어난다. 싸이의 시건방춤이나 말춤은 예전부터 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느냐다.


    세계와의 만남으로 보면 말춤은 새롭다. 기승전결의 기에 포지셔닝한 것이다. 사건을 평가할 때는 마땅히 주관적으로 봐야 한다. 백명 중에 아는 사람 한 명이 괜찮다면 괜찮은 거다. 반면 사물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다수가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싸이의 음악이 A급인 이유는 동서양 문화의 접점에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그 접점에서 천장을 뚫고 한계를 뚫고 장벽을 넘어 다른 세계로 가는 것은 언제나 B급이다. 그래야만 한다.


    이 분야의 최고수는 마릴린 먼로다. 먼로는 태생이 B급이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었다. 마릴린 먼로가 뭔가를 잘해서 바뀐게 아니라 통해서 바뀐 거다. 문화의 중심이 귀족의 사교계에서 대중의 실생활로 넘어온 것이다.


    통해야 한다. 통하려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그것은 스타일이다. 봉건 귀족들이 먼로를 보면 화를 낼 것이 틀림없다. 우선 그의 옷은 가난하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입고 잘 옷이 없어서 샤넬 No 5만 걸쳤다고 한다.


    귀족이 귀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수단들은 대개 플러스다. 무엇이 있고 무엇이 많고 무엇이 크다는 거다. 먼로는 반대로 간 것이다. 반대로 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벗을래야 더 이상 벗을 수 없는 어떤 끝단이 있다.


    거기서 완전성은 빛이 난다. 그리고 소통은 이루어진다. 싸이의 뮤비를 놀부 심술 시리즈라고 알아챈 기사가 있었다. 확실히 서양의 기독교식 엄숙주의는 어떤 가식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두꺼운 귀족의 옷을 벗지 못했다.


    딴지일보로부터 시작된 한국 특유의 B급 코드는 기독교적 엄숙주의 때를 벗지 못한 서구문화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유사한 예는 많다. 예전에 여러번 논했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나 홍콩영화의 영향도 그렇다.


    결론짓자. 인문학의 의미는 인류의 의사결정능력을 향상시키는데 있다. 의사결정능력은 소통능력에 연동되어 있다.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B급은 보나마나 쓰레기지만 새로운 B급의 창의는 그 자체로 A급이다.


    앤디 워홀의 팝아트는 B급을 A급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예다. 싸이의 젠틀맨은 확실히 문화권이 다른 동서양이 오해를 풀고 서로에게 다가서도록 돕는다. 하루키 소설 1억부보다 낫다. 인류의 소통능력을 향상시켰다.


    왜?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웃음은 웃음일 뿐 스타일이 아니다. 노래는 노래일 뿐 스타일이 아니다. 노래와 웃음을 결합시키면 스타일이다. 마릴린 먼로를 따라하면 B급이지만 먼로는 B급이 아니다. 스타일이 있으니까.

 

   

     P.S.

    저속한 성적농담은 외국에도 많겠지만 저속하게 생긴 인물이 저속한 장소에서, 저속한 사람을 만나, 저속한 말을 하는 것과 싸이의 젠틀맨은 본질에서 다르다. 일단 제목부터 젠틀하잖는가? 고상하게도 말이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이 관객의 시선을 제시함으로써 그것을 넘어섰듯이 말이다. 실로 쿠르베는 여인의 나신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바라보는 당신의 눈을 그린 것이다. 깨우쳐야 한다. 타자성에 잡혀 '안 물어본 자기소개' 하지 않고 주체성을 얻어 '너'를 이야기했으므로 위대하다. 진술 포지션이 아닌 전제 포지션을 잡았으므로 위대하다.

  

 

    ###

 

   

345678.jpg

 

    당신이 A급인지 B급인지는 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삶과 얼마나 일치했는지가 결정합니다. 좋은 말을 하면 B급입니다. 좋은 노래를 불러도 B급입니다. 좋은 말과 좋은 노래를 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끌어내면 A급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4.15 (20:46:40)

겉보고 판단하지 말고, 

패턴을 보라.


패턴은 두번째로 판단하지 못하고 세번째 가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군요. 


구조론에 와서 착각도 한참 자유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ㅁ


마지막 정리로 하신 표현, 쿵~ 합니다. 


   당신이 A급인지 B급인지는 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삶과 얼마나 일치했는지가 결정합니다. 좋은 말을 하면 B급입니다. 좋은 노래를 불러도 B급입니다. 좋은 말과 좋은 노래를 결합하여 새로운 스타일을 끌어내면 A급입니다.

[레벨:9]길옆

2013.04.15 (22:26:34)

[레벨:10]다원이

2013.04.16 (01:15:42)

후유~~ !!!.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4.16 (02:47:34)

당연히 지나쳤던 만남.


movie_image.jpg


"언젠가 그랬죠?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고요.

이젠 그 말 믿지 않을래요."


만남.png

알아요? 우리 몇 번을 만났지만 이제야 만나게 되네요.


당연하게 지나쳤던 만남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하루. 

그리고 지금까지 나라고 여겼던 나를 넘어선 또다른 세계와의 접속.





첨부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12 꼰대들이여 당당해져라 image 2 김동렬 2013-04-22 11161
511 박근혜와 한화의 패배공식 image 4 김동렬 2013-04-17 12228
» 싸이의 젠틀맨 image 4 김동렬 2013-04-15 13405
509 대처의 몰락 image 3 김동렬 2013-04-10 12476
508 김정은의 낚시정치 image 7 김동렬 2013-04-07 12481
507 부동산 붕괴의 비밀 image 1 김동렬 2013-04-02 17895
506 박근혜의 권력증발 쇼크 image 5 김동렬 2013-03-25 12177
505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김미경 12 김동렬 2013-03-21 17634
504 안철수의 청산절차 image 9 김동렬 2013-03-13 13997
503 당신 안의 짐승 차베스 image 7 김동렬 2013-03-07 13004
502 WBC 대표팀의 예고된 참사 image 3 김동렬 2013-03-06 13991
501 박근혜에 빙의된 박정희 망령 image 11 김동렬 2013-03-04 14055
500 박정희 드라마의 종말 image 6 김동렬 2013-02-25 13789
499 박근혜의 도착 즉시 증발 image 2 김동렬 2013-02-21 14104
498 유시민의 적절한 퇴장 image 9 김동렬 2013-02-19 18823
497 정글의 악몽 image 3 김동렬 2013-02-14 14210
496 정글의 법칙 무엇이 문제인가? image 5 김동렬 2013-02-12 15594
495 박근혜, 이명박을 칠 것인가? image 17 김동렬 2013-02-05 17428
494 진짜 진보란 무엇인가? image 8 김동렬 2013-02-03 30590
493 야하지 않은 마광수 image 9 김동렬 2013-01-31 19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