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30422135108741 이 기사를 본 필자의 소감은, 요즘 꼰대들이 참 비겁해졌다는 거다. 꼰대 맞고, 세월 이기는 장사 없고, 어차피 나이 들고 꼰대화 현상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당당한 꼰대가 되어야 한다. 중간에서 눈치보지 말고, 두루뭉수리 결론 내리지 말고 어느 편이든 확실하게 붙어라. ‘싸이 망한다’에 손모가지 걸든지, 아니면 ‘싸이의 국위선양’에 손모가지 걸든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 ### 젠틀맨을 비판하기는 쉽다. 누가 보더라도 이마를 찌푸릴 수 밖에 없는 단점들이 무수히 있다. 문제는 왜 구태여 그것을 지적하느냐다. 뻔하다. 젠틀맨의 숨은 장점들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뭔가 한 마디 하긴 해야겠는데, 눈에 띄는게 그것 밖에 없으므로 구태여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사실이지 사람들은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한다. 말하자면 포지셔닝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비판받는 경우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잘한게 없어서인 경우가 많다. 대권 가능성이 보이면 단점이 많아도 좋게 보이고, 대권의 싹수가 안 보이면 왠지 얄미운거다. 무엇인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본다는 말이다. 내용을 비판하는건 의미없다. 문제는 형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다. 새로운 춤을 선보여도 저게 과연 새로운건지 알아채지 못한다. 서태지가 등장했을 때 그 의미를 알아챈 전문가는 없었다. 아는 사람도 막연히 감으로 서태지 편을 드는 거지, 서태지의 진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팬들도 모른다는거. 팬들도 막연히 감으로 서태지를 옹호할 뿐, 왜 서태지가 좋은지 모른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감으로 느낄 뿐이다. 막연한 설레임이 있는 거다. 그 설레임에 점수를 준다. 이때 서태지 팬들이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는 방법은? 서태지를 비판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까는 거다. 꼰대들을 열심히 까다보면 저절로 답을 알게 된다. 그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이다. 꼰대들도 어느 면에서는 열심히 까이는 걸로 사회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꼰대는 일단 까고보는게 정답이다. 꼰대들도 당당하게 까여주는게 정답이다. 이는 자연법칙이므로 피할 수 없다. 정리하자. 젠틀맨이 불편하다면 꼰대 맞다. 젠틀맨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도 불편함을 느끼지만 전략적으로 침묵한다. 왜? 자기편이니까. 왜 그들은 젠틀맨이 자기편이라고 믿을까? 젠틀맨이 젊은이들의 활동공간을 늘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역을 지키려는 동물의 본능으로 젠틀맨 편을 든다. 이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고도의 전략적인 판단이다. 그런데 ‘영역확보 본능’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동물적인 영역본능을 잃었다면? 맛이 간 거다. 미녀를 보고도 설레임이 없다면? 물이 간 거다. 걸작을 봐도 느낌이 없다면? 한 물 간 거다. 그렇다. 당신은 꼰대가 된 것이다. 소통이 막혔다. 시대를 따라잡는 촉수를 잃었다. 흐름으로부터 심리적으로 격리, 고립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망가진다.
### http://movie.naver.com/movie/bi/mi/reviewread.nhn?nid=2936092&code=87311 (전형적인 꼰대평) ‘장고, 분노의 추적자’도 비슷한데 온통 B급의 향연. 이런 영화는 애초에 딴지의 똥침정신으로 무장하고 봐야 한다. 영화평을 보면, 무수한 단점을 일일이 적시하여 비난하는 사람도 있더라.
그걸 본 필자의 소감.. ‘이 양반, 인생 참 불쌍하게 사네. 그렇게 살고잡냐?’ 한가지 장점으로 백가지 단점은 면피된다. 한 가지 장점이 보이면 젊은이고 안 보이면 꼰대. 설레임을 잃었다는 증거. 뜨거운 피를 잃어버렸다는 증거. 세상을 방어적 태도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 중요한건 맥락이다. 맥락은 영화의 맥락이 아니고 노래가사의 맥락이 아니고 시대의 맥락이다. 시대는 용이다. 타란티노는 용의 눈을 그렸다. 화룡점정이다. 거기서 용을 찾는 자는 등신이다. 싸이도 마찬가지. 용은 인터넷이다. 용이 이미 그려져 있는데 용을 그리는 수고를 반복한다면 미친 짓. 그러한 맥락이 보이지 않는 자는 뮤비 안에서 맥락을 찾고 영화 안에서 맥락을 찾는다. 영화 안에 맥락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러니 밑도 끝도 없다는 김구라의 푸념이 나오는 거. 미쳤지. 거기서 왜 밑찾고 끝찾나? 대신 스타일이 있잖아. 그게 안 보이나? 그게 안 보이면 꼰대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느 지점에 동기화 되어 있느냐가 결정한다. 인류에게 동기화 된 사람은 피가 끓고, 가족에 동기화 된 사람은 오버이트가 쏠린다. 인간의 선도는 바로 거기서 결정된다.
P.S. 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싸이의 젠틀맨이, 그리고 타란티노의 장고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우리의 무기라는 것을. 베테랑은 무기탓 안합니다. 무기냐 아니냐가 중요할 뿐 그것이 좋은 무기냐 아니냐는 애초에 논외. 동물의 영역확보 본능이 발동하는 사람은 바로 무장 들어갑니다. 젊은이의 공세적 영역확보 본능이냐 꼰대의 방어적 자기보호 본능이냐를 가리는 리트머스 시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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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도전적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곧 죽어도 도전자의 포지션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방어자 포지션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가 영적으로 사망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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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사망 선고.
이거 좋소이다. 글 한 편 나올 주제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