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펀글입니다.

출처는 http://movism.com/ 글쓴이 서일필

지하철신문에 기획광고를 냈더군요. 의도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문 중 일부가 제 생각과 비슷해서 펍니다. 제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으나.


(전략)

충무로에는 3대 불가사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1. 충무로에서 영화제작으로 돈 번 사람 없다.
2. 충무로에는 어른이 없다.
3. 그래도 충무로에서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다.

그다지 논리적으로 구성된 불가사의 시리즈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무로 사람들 사이에서 실제로 회자되고 있는 시리즈이니만큼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충무로에서 돈 번 사람이 없다는 문제는 한 편으로는 경제문제이기도 하므로 이는 대통령도 옆에서 귀기울여 볼만 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관은 경제에 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돈 번 사람은 영화에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서 돈 번 사람들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화를 하기는 했는데 영화에서 돈을 벌지는 못하고 부동산에서 벌었다는 그런 말입니다.

한국 영화계에서 대표적으로 돈 번 사람은 극장주들입니다. 영화에서 깨지고 을지로 극장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하는 와중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돈 번 사람이 한국 영화계의 부를 상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외에 배급이다 스타 배우다 해 봐야 몇 푼 못 벌었습니다.

그럼에도 충무로에서 여전히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돈은 못벌어도 말입니다. 물론 자기 딴에는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영화 하나 대박 나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영화 제작을 할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운하를 파던지 땅굴을 파던지 간에 경제부터 부흥시켜야 합니다.

충무로 나아가 한국 영화계는 기본적으로 매년의 총수요가 고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는 일인당 영화 관람 횟수가 고정적이라는 데서부터 오는 미시경제학적 비극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경제학도라면 고전파 경제학의 임금기금설을 연상함으로써 그대로 이해가 되는 현상입니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아무리 좋은 영화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일년에 영화 10편씩 보거나 하지는 않으며 또한 [밀양]과 같은 한심한 영화가 나와도 아무 생각 없이 일년에 몇 편 정도의 영화는 소비하는 것이 거의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영화 시장에서 밥그릇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 되고 또 그 밥을 먹고자 달려드는 거지가 많으면 많을 수록 영화판은 콩가루 판이 되어 버린다는 뜻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영화가 대박이 나서 이미 정해져 있는 국민 영화 소비 예정량의 상당 부분을 긁어가 버리면 그 이후에 등장하는 영화는 아무리 품질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 영화 제작자는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반면 아무리 한심한 영화라고 해도 경쟁 영화가 없는 시기에 개봉이 되게 되면 그 영화의 흥행은 보장됩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흥행에 성공한 몇 명의 제작자나 감독들이 우쭐해서 까불다가 그 다음 속편에서 다 까먹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 수요를 근본적으로 올리는 것이 영화계 전체를 위해서는 훨씬 중요합니다. 수요 자체가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기존의 밥그릇 갈라먹기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충무로의 2번째 불가사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충무로에는 어른이 없습니다. 아래위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충무로로 흘러든 인간들이 대개가 사회적 낙오자들이라는 점에 기인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폐인들이 모인 사회가 각설이 콩가루 판이 되지 않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생계형이기는 하지만 제작부는 제작부대로, 연출부는 연출부대로, 또 촬영부, 조명부, 특수효과부, 미술부 등등 나름대로 해 먹는 삥땅 기법이 거의 무형문화재처럼 대대 손손 이어져 내려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충무로 인간들의 기본적인 자질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이들의 비리는 결국은 생계 문제에서 오는, 즉 영화판이라는 곳이 먹을 것이 한정된 곳이라는 근본적인 비극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다지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신 욕먹을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영화계를 곰곰 살펴 보면 제대로 된 영화 감독이 없습니다. "영화는 언어다"라는 명제는 영화 제1의 명제임에도 그 말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영화를 찍는 감독은 거의 없습니다. 김기덕 감독 하나 정도 제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 그 외 이창동 감독이나 그 외의 수다한 한국 감독들은 영화언어 그 자체를 모르는 감독들입니다. 그저 좋은 책을 찾아서 그것을 영화로 번역하는 것이 영화감독으로서 할 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게 영화인지 소설(밀양)인지 아니면 만화인지(올드보이) 알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충무로 그 자체가 콩가루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곳에는 제대로 된 감독, 즉 영화언어를 이해하는 감독이 없다 보니 그 곳에서 수업을 받은 제자들 역시 영화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몇 개월 정도의 어깨너머 관찰만으로 감독으로 데뷔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깨너머로 운전을 배우고 실제로 핸들을 잡는 무면허 운전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충무로라는 곳이 이러한 어깨너머 감독들의 무면허 주행 연습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콩심은데 콩 나듯이 콩가루 판에서 콩가루가 날리는 것입니다.

비극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문학에 평론이라는 장이 있듯이 영화판에도 영화평론이라는 판이 있습니다. 아주 희안한 판입니다.

이 곳의 평론은 영화 평론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영화를 파는 곳이 아니라 영화 이외의 것을 파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평론을 했다고 써 놓는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것은 철학 이야기이거나 스스로 수필을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거기에 영화 줄거리 같은 것을 살짝 덧붙여 놓는 식인데 영화 줄거리는 홍보용 팜플렛에 붙일 것들이지 평론에 갖다 붙여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비극 역시 그들이 영화를 배운 것이 아닌 사람들이라는 점에 기인하는 비극입니다. 그들은 파리나 뉴욕에 유학을 갔다 온 것과 거기서 영화를 배워 온 것과를 혼동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대통령이 일단은 대통령이 되고 보자는 심리와 같아서 그들은 무엇을 배워 오던지간에 일단은 영화학과 교수가 되고 보자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들의 영화평론에는 영화가 없습니다. 문학 또는 철학만 난무할 뿐입니다. 이는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같아서 저는 이런 사람들의 평론을 붕어빵 평론이라 부릅니다.

영화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다 보니 영화 이외의 것들만 가지고 영화평을 합니다. 소위 양두구육인데 한자성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말을 풀어 쓴다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축산물만 파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유지나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평론가 전체에 해당됩니다. 영화 감독으로서는 그나마 김기덕 감독 하나 정도는 발견이 되지만 영화 평론가로서는 단 한 명의 제대로 된 평론가가 없이 모두가 붕어빵인 제2의 콩가루판이 바로 우리나라 영화 평론계입니다. 충무로와는 난형난제입니다. 더욱이 충무로의 콩가루는 생계형 콩가루라는 점에서 그나마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영화 평론 특히 우리나라 영화학 교수라는 분야의 콩가루의 성분은 그것이 국민 전체와 영화계 후진들에 대한 사기라는 점에서 그대로 눈감아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현 장관이 눈 여겨 보아야 할 지점인 것입니다.

장미희가 교수를 하고 붕어빵이 평론을 씁니다. 수산 시장에 횟감을 사러 갔더니 육회도 좋다고 하면서 병든 소고기를 내 놓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영화계의 현주소, 그것도 본점 주소입니다. 이에 비하면 충무로는 그들의 프랜차이즈 지점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장 상부에 있는 사람들부터가 썩어 있습니다. 물론 이 사회 어느 판이나 마찬가지이기는 합니다. 영화판이건 정치판이건 썩어 있기로는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나 다름없는 이야기입니다.

충무로의 생계형 삥땅 문화는 사실상 어쩔 수 없는 문제이므로 건드리기 애매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학계나 그 외 상부 사회를 장악한 사람들이 붕어빵을 파는 것은 용납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들은 마치 장난하듯이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계의 국내총수요를 높이는 일이야 경제 문제이므로 현 장관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동방예의지국이라면 남대문은 날려 먹었지언정 그 기본 정신 즉, 양반의 체통만큼은 지켜 나가야 합니다. 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영화 감독은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번역하고 또 평론가들은 평론가대로 철학평론이나 수필문학만 써내려 갑니다.

이것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충무로의 생계형 폐인들보다 더 질이 안 좋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폐인들이 바로 상부 사회의 인간들인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충무로에서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으니 역시 불가사의는 불가사의입니다.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언어다'하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렇습니다. C언어가 있어야 하고.. HTML이나 자바 등등 각종 소스가 깔려있어야 하고 그리고 OS가 있어야 하고 ..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하고.

일단 언어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철학도 문화도 마찬가지. 언어가 없다는 것은 화가에게 물감이 없고 연주자에게 악기가 없다는 것만큼이나 치명적입니다. 그런데도 보세요. 물감이 없으니 진흙으로 대충 그려놓고.. 악기가 없으니 그릇조각으로 대충 연주하고.. 일단 무대만 있으면 관객은 꼬실 수 있다는 의기양양함이라니..

김기덕은 피아노는 있는데 무대가 없고 이창동은 피아노는 없어도 무대는 있고.. 무대를 장악한 자가 이긴다? 맞습니다. 무대를 장악한 자가 이깁니다. 그 대신 진보는 없죠.

노무현 대통령의 웹 2.0 주장도 제대로 하려면 언어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에 눈을 뜬 것입니다. 악기도 없는데 대충 연주하는 충무로 양반들 재주는 좋아요. 구조는 언어입니다. 설계도지요. 설계도 없이 대충 짓고.. 아프리카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대충 흉내내려면 언어가 없어도 됩니다. 베끼면 되거든요. 녹음기 틀어놓고 입만 벙긋벙긋 해도 관객은 옵니다. 그러나 진보하려면, 언어를 얻어야 합니다. 악기를 구해야 합니다. 물감을 얻어야 합니다. 소스를 확보해야 합니다. 근본부터 챙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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