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6733 vote 0 2008.04.21 (12: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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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와 명박

명박이 이번에 굴욕외교를 좀 했다고는 하지만.. 왕년의 고이즈미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거의 아부와 아첨 수준을 넘어 아양 수준으로 놀았다. 정상끼리의 만남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심지어 엘비스 춤을 춘 것은 압권이었다.

게이샤가 손님 비위맞추듯 아양을 떨어댄 것이다. 국가 정상이 웃도리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챙피한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것으로 고이즈미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무엇일까? 없다. 전혀 없다.

그래도 그는 춤을 추어야 했다. 왜? 일부 일본 기득권세력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하여.

무엇인가?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다. 갑과 을의 구분이 확실하다. 봉건영주와 무사 혹은 농노와의 관계다. 어중간한 관계나 대등한 관계 - 수평적인 관계 따위는 일본인의 머릿속에 없다.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할 때.. 대다수 일본인들은 일본이 아시아에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일본 내에서도 원래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밟을 때는 확실히 밟아준다. 그게 일본 방식이다.

2차대전 패전후 미국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주인이 노예를 때려주지 않으면 ‘혹시 주인이 나를 잘 멕여서 다른 데로 팔아치우려나’ 하고 노예는 불안해 하는 것이다. 미국인이 친절하게 나오면 도리어 전전긍긍한다.

일본의 봉건영주들은 농노를 확실하게 밟아주는 대신..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준다. 어떻게든 외부에서 식량을 사와서라도 굶기지는 않는다. 한국의 관리와는 다르다. 한국의 관리는 단지 행정을 집행하고 재판에서 판결할 뿐 생계를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일본의 독특한 주종관계 문화는 종신고용 등으로 작금의 기업문화에도 연결된다. 노동자가 기업에 충성하게 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중일전쟁시절 일본인들은 도처에서 아시아인을 학살하면서 속으로는.. “이것은 일본이 아시아를 책임져 주겠다는 강력한 의사표시다. 이것이 일본의 혼네다. 일본의 본심을 알아다오.”.. 이런 엽기적인 상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반성을 안 한다.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고이즈미의 또라이 행각은 일본의 기득권세력들을 안심시켰다. 고이즈미는 외교를 한 것이 아니라 우회적인 방법으로 내치를 한 것이다. 고이즈미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러 간 것이 아니라 일본 내의 ‘무파벌 돌출정치인 고이즈미’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을 불식시키러 간 것이다.

“나 고이즈미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 기라면 긴다. 궁뎅이로 밤송이를 까라면 깐다. 노래도 부르고 엘비스 춤도 춘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한다. 정통 일본방식이다. 그러므로 기득권들은 안심하라.”

고이즈미의 추태시리즈는 확실히 일본인들을 안심시켰다. 성공한 것이다. 그것이 일본방식이다. 그 방식이 통했다. 일본 내에서는.

일본인들은 서로 간에 서열이 확인 안 되면 이지메 등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옆구리 찌르기 공략을 하는데.. 미국이 일본에 서열확인용으로 본때뵈기 초식을 구사하면 어떡하나.. 하는 일본인의 불안감을 없애주었다. 명박 감동받았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선비문화다. 선비는 대등하다. 누가 갑이고 을이고 그런거 없다. 서로를 존중한다. 한국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세계와 코드와 오히려 가깝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명박을 세계가 존중할 리 없다. 이번에 명박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평등집착인 서구의 그들은 내심 아시아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만델라 있고 아시아에 달라이라마 있고 남아메리카에 룰라 있고 지성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 발굴하자!.. 하는 것이 그들 사이에 유행하는 슬로건이다.)

서구의 그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노예를 원하지 않는다. 주종관계 서열확인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생존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존경받았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후광을 입었다. 알아서 기는 명박은 개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치와와 부시가 떵개 명박을 잘 대접했는지 몰라도 대다수 미국인은 명박을 대접하지 않았다. 개처럼 기면 개만큼 대접해준다. (부시 이 인간도 외국 정상의 안마를 해주는 등 고이즈미 이상으로 개다. 쉴 새 없이 꼬리를 살살 친다. 푸들 블레어와 함께 근본이 개다.)

왜? 등 따습고 배부른 서구의 그들은 ‘지성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인의 태도, 지성인의 눈빛, 지성인의 언어, 지성인의 위엄이 아니면 세계로 부터 주목받지 못한다.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든 그렇다. 돈 벌면 비단 옷 입고 싶어 한다. 졸부가 돈 벌면 명품 사모은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영국이든 마찬가지다. 인간은 다 똑같다. 시골여자가 얼굴에 화장을 떡칠하듯이 한다. 골고루 한다. 영국도 한때 그랬고 미국은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것저것 다 해 본다. 섭렵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 물 가면 최후에는 지성인을 흉내내고 싶어한다.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고수들의 세계에서는 겉치장이 아니라 인격의 수준이 평가된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갑자기 도자기 찾고 차(茶)를 찾고 그런다.

경제동물 - 일본주식회사.. 이걸로 잠시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겠지만 동물원 원숭이쇼에 불과하다. 재롱잔치에 불과하다.

국가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첫째가 무력이고, 둘째가 경제력이고, 셋째가 문화력이다. 무력은 어떤 정치적 격변의 시기에만 의미있는 것이며.. 경제력은 항구적으로 힘이 있는 것이고.. 문화력은 역사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문화만 남는다. 무력으로 설치든 나라 다 망했다. 로마도 망했고 몽고도 망했다. 경제력으로 제패하던 나라도 잊혀졌다. 문화가 남는다. 그리고 그 문화의 궁극은 지성의 문화다. 조선왕조의 선비문화가 그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하나의 모델을 - 본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다. 처음에는 무력을 추구한다. 중국이 무력으로는 대만을 엉덩이로 내리깔고 티벳의 목을 조르고 신장 위구르를 짓밟아 억압하고 있다. 미국도 중국 앞에서는 끽소리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중국은 존경받지 못한다. 북경올림픽에서 여러가지로 망신이다. 무력으로 어떤 국가를 위협할 수는 있지만 그 국가의 국민을 어떻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력은 정상들끼리 악수할 때나 통하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와 문화다. 경제는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문화가 오래 간다. 경제는 가격경쟁력을 좇아 언제든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문화는 삶의 스타일을 바꾸기 때문이다.

무력 다음에는 경제력이다. 경제동물 일본이 변방인 아시아에서 경제력으로 도달가능한 최선을 보여주었다. 주식회사 일본은 우리가 경제로 어느 만큼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고편이다.

지금 일본이 세계에서 누리고 있는 지위가 그 한계다. 우리는 경제력으로 잘 하면 일본만큼 대접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작 그 정도를 목표로 하여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무력으로 중국을 능가할 수 없다. 경제력으로 일본을 능가해봤자 그것으로 주목받을 수 없다. 일본이 20년 전에 이미 한 것을 한국이 지금 재방송해봤자 시청률은 저조할 뿐이다.

후등자가 주목을 받으려면 선등자가 오르지 못한 새로운 봉우리를 개척해야 한다. 그것은 문화다. 유일하게 문화가 남았다. 언젠가 아시아의 문화가 서구인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면.. 서구의 문화가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은 만큼 되돌려 준다면.. 그것은 한국의 해야할 남겨진 몫이다.

유럽사람들도 일본의 선(禪) 문화에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스타워즈나 매트릭스, 킬빌 따위에 은근하게 반영된 일류 말이다. 일본다도든 일본도자기든 일본요리든 일본문학이든 일본미학이든 다 선(禪)이 반영되어 있다. 선(禪)을 빼놓고 일본에 볼 것이 없다.

이탈리아의 요리, 프랑스의 패션, 영국의 체면, 네덜란드의 회화, 오스트리아의 음악, 독일의 장인기질 다 인류의 궁극은 아니다. 문화의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최고봉이 아니다. 정상이 아니다. 주변의 둘러선 잡 봉우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의 문화영역에는 아직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처녀지가 있다. 그 우뚝한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문화에는 중심이 있고 주변이 있다. 패션, 요리, 회화, 음악 따위는 잡다하다. 주변적인 것이다. 들러리다. 구색맞추기다. 진짜는 따로 있다.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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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로는 딴나라에 들어가고 싶지만.. 인간의 근본이 딴나라 혈통이지만.. 지역구가 그렇다는 이유로 딴나라에서 안받아줘서 못간 나머지들 집합인 통합당을 야당으로 쳐주는 수준의 안이함으로는 벅차다. 그 봉우리를 정복하지 못한다.

우리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야당은 없다. 문국당은 튀는게 목적이다. 민노당은 존재가 목적이다. 진보신당은 연예계 데뷔가 목적이다. 그들은 소인배 특유의 소승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중이 큰 길을 함께 가는 진짜는 아니다. 군자대로행이라 했다. 진짜는 작은 길을 가지 않는다. 변방에서 틈새시장을 개척하지 않는다. 들러리 서지 않는다. 구색맞추기 안 한다. 메인요리를 위하여 양념이 되어주지 않는다. 곧죽어도 정면승부다. 끝까지 중앙을 노린다. 대중과 함께 큰 길을 간다.

인기도, 집권도, 승리도, 생존도 우리의 진짜 목적은 아니다. 오직 역사를 바꾸는게 목적이다. 한국사를 바꾸려고 이러는 것 아니다. 신(神)과의 고독한 대면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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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는 심이 있다. 양초의 심지처럼 있고 불꽃처럼 있다. 심은 이심전심의 심이다. 심은 통한다. 어디라도 통한다. 울림이 있고 떨림이 있다. 메아리가 있다. 전율함이 있다. 하늘과 통하고 자연과 통하고 세계와 통한다. 진정성으로 통한다. 그것은 지성이라는 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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