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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619 vote 0 2007.12.27 (23:02:05)

정조임금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북쪽으로 가면 북극성의 고도가 높아지고 남쪽으로 가면 그만큼 낮아진다. 보이지 않던 별자리가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중국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신하들과 이를 문답한 기록이 남아있을 뿐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도전한 흔적은 없다. 서양의 천문학이 들어오면서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왜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는가? 아쉬울 뿐이다.

갈릴레이가 지구는 돈다고 말하기 전에 지동설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단지 압도적인 기독교의 영향 아래서 아랍의 도서관에서 얻어온 천문학 서적을 은밀히 돌려보며 다들 쉬쉬하고 있었을 뿐이다.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미 부분에서 단서를 보았다면 이를 전개하여 단번에 전체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송두리째 뒤집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김홍도는 원근법을 알고 있었다. 김홍도의 책가도에서 보여지는 원근법은 사면측량화법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문제는 틀렸다는 것이다. 김홍도의 원근법은 사실이지 정확하지 않다.

김홍도의 그림에는 서구의 명암법도 나타나고 있다. 틀렸다. 용주사 후불탱화에 나타난 김홍도의 명암법에는 광원의 위치가 나타나 있지 않다. 김홍도의 소실점 이론과 명암법은 어깨너머로 배운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북경을 드나들던 사신 일행이 들여온 서구 선교사의 그림을 보고 적당히 모방한 것이다. 청나라의 강희제는 서구의 사신들로부터 많은 시계를 선물받았는데 특히 독일 사신은 시계를 선물하려다가 망신을 톡톡히 당하였다.

강희제가 특별히 보여준 시계방에는 사면 벽에 수십개의 시계가 가득 들어차 있었던 것이다. 강희제의 일기는 서양의 시계와 똑같은 시계를 중국의 장인이 만들어낸 사실을 자랑스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진자의 원리는 모르고 있었다. 단지 당시 유행하던 음악상자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신기한 요술 정도로 생각하고 모방하였을 뿐이다. 끝단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를 보고 단서를 얻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 마음 속의 의심이 다 풀릴 때 까지 단서의 끈을 잡고 거슬러 올라가서 궁극의 원천을 확인하고 내려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표피를 모방하였을 뿐 이면의 원리를 파악하려는 시도는 애초에 없었다. 목숨걸고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다. 왜인가? 세계관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정조도 그랬고 강희제도 그랬고 김홍도도 그랬다.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되 표피를 모방했을 뿐 원천을 파헤치지 않았다. 합리주의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용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란 무엇인가? 하나가 잘못되면 라인을 스톱시키고 전체를 다 바꾸는 것이 합리주의다. 원근법과 진자의 원리 그리고 지동설은 세계관을 다 바꾸어야 하는 명확한 하나의 단서다.

중국의 유교가 합리주의를 강조하지만 단지 관료들의 통치술에나 영향을 미쳤을 뿐 대다수 중국인들은 도교적 실용주의에 빠져 있었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이 우연히 등장한 것은 아니다. 중국인은 원래 그렇다.

그들은 진지하지 않았다.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 왜인가? 세계를 사유하지 않았고 보편을 탐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모습을 신기해 하며 단지 용도를 캐묻고 쓸모를 따졌을 뿐이다.

중국은 안 된다. 왜 중국은 안 되는가? 중국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세계관을 바꾼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자기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이래 러시아가 성공한 것을 중국은 시도조차 못한다.

더 나아가 세계를 통째로 바꾼다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중국은 크다. 중국인 입장에서 중국을 바꾸는 일은 곧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 나라가 클수록 실용주의적으로 변한다. 좌절하기 때문이다. 포기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륙을 다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인들은 포기하고 타협하였다. 중국의 서원이 조선과 달리 불교와 도교, 무술 따위를 가르친 예가 그러하다. 합리주의의 바탕인 비판정신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문은 진실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다. 두 가지 상충되는 진실이 공존할 수 없다. 유교와 불교와 도교를 하나의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중국의 서원은 일종의 직업학교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다. 오늘날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시키는 미국식 실용주의 미국식 처세술이 그렇다. 서점에 넘쳐나는 성공지상주의 미국식 실용서들을 보라. 그것은 미국의 좌절을 의미한다. 미국은 포기한 것이다.

거대한 미국을 송두리째 바꾸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가 부시를 말리겠는가? 아무도 부시를 말리지 못한다. 미국에 지성은 죽었다. 그들은 합리주의를 버렸다. 그들은 더 이상 완전성을 탐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진리나 세계나 사랑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 단어를 쓰지만 그 의미는 변질되었다. 진리는 교리를 의미하게 되었고 세계는 지배를 의미하게 되었고 사랑은 섹스를 의미하게 되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따위의 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류의 수치다. 그들은 드디어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타락한 것이다. 그런 것을 책이라고 입에 담는 사람과 절교하지 않는다면 한심한 거다.

유럽이 진보한 것은 쪼개졌기 때문이다. 작은 나라는 바꿀 수 있다.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누구나 공유한다. 그러므로 논쟁한다. 합리주의자가 된다. 하나의 작은 단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기어이 원천을 확인한다.

끝단을 확인하고 온다. 완전성을 발견하고 온다. 진리와 세계와 보편을 사유하게 된다. 거기서 진보가 비롯된다. 하나가 바뀔 때 공명할 수 있고 전파할 수 있다. 모두가 바뀌게 된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큰 나라는 바꿀 수 없다. 중국에서는 바꿀 수 없다. 너무 커서 바꿀 수 없다. 대화가 안통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여럿이 모인 자리에 상해출신이 두 명만 있어도 상해식 방언으로만 대화한다고 한다.

50가지 소수민족이 제각기 제 민족어로 말하고 수백가지 한족 방언을 제각기 떠들어대면 소통은 불가다. 한국에서 특별히 유교주의가 강조되어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보다 더 유교적으로 변한 것은 나라가 작기 때문이다.

미국은 점차 중국화 된다. 영어를 쓴다지만 인종별로 문화가 다르고 정서가 다르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관습이 다르다. 소통할 수 없다. 진지해질 수 없다. 표피를 논할 뿐 깊이 따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이제는 세계가 통일되었다. 정치로는 분열되었지만 정보로는 통일되었다. 세계의 끝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지식이 초 단위로 전 세계에 파급된다. 그럴수록 인간들은 나약해진다. 좌절한다. 포기한다.

이제 아무도 보편을 탐구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도 세계를 사유하지 않는다. 틈새시장을 노릴 뿐이다. 기특한 아이디어로 한건 올리고 치고 빠지려들 뿐이다. 세계 전체를 설득하는 방법은 기발한 아이디어라야 한다.

얄궂은 사진 한장으로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의 수십억 네티즌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진득하게 논하며 완전성의 경지를 일러주기는 불가능이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대화는 가벼워지고 우스개는 경박해진다.  

지지 말아야 한다. 그럴수록 큰 판을 벌여야 한다. 콩나물 시루에 갇혀버린 인간들이여. 끝이 궁금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기백은 사라지고 말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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