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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5039 vote 0 2006.08.17 (21:44:27)


전작권 환수는 대선 때 까지 갈 이슈인데 한나라당이 이번에 제대로 걸려든듯 하다. 이걸로 젊은층을 투표장으로 데려올 수만 있으면 우리가 이긴다.

최근에 한중일러가 경제적으로 결속되는 것에 반비례하여 정치적으로는 멀어지고 있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냉전체제가 종식되면서 동맹의 의미가 격하되자 각국이 제 각기 살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구질서가 이미 해체되었으므로 신질서를 창출해야 한다.

미국은 구소련의 해체로 한반도에 대규모로 군대를 주둔시킬 이유가 사라졌다. 가상적 소련이 없어졌는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로 예전처럼 많은 전비를 들일 이유가 없다.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미군이 주둔한다는 망상을 가진 초딩도 더러는 있는 모양인데 미군은 구소련을 막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며 소련이 사라진 지금은 중국이 가상적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한미 양국에 실익이 있는만큼 이제 준비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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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러시아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냉전체제 해소로 위험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갈등이 부각되는 것이다.

2차대전을 경험한 전쟁세대가 다 죽을 때 까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서둘러 화해할 필요가 없다. 어느 정도는 갈등을 즐길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가 뜬금없이 사과를 하고 친하게 지내자고 해도 징그럽다. 불가근 불가원으로 갈등을 조절하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지식인들의 냉소주의와 허무주의가 큰 문제다. 일본 지식인들은 우리와 같은 국가의식이 없다.

그들은 자기네가 일본이라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식이 엷다. 그러다보니 일제의 침략은 군국주의 세력의 문제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일본의 잘못이 아니라 몇몇 일본 내 수구꼴통들의 잘못이요 그들은 어차피 대화가 안되는 자들이니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대다수 일본인들이 야꾸자 문제의 해결을 포기하고 있듯이 그들은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야꾸자는 시민을 해치지 않고 시민은 야꾸자를 용인한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 내 수구꼴통들을 그냥 건드릴 수 없는 존재, 상종 안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 뭐 이런 식의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그들의 큰 문제는 유교주의 혐오에 있다. 명치시대 대정봉환의 이념을 제공한 유교주의가 군국주의를 낳았다는 이상한 생각에 빠져있다.

그들은 대륙세력, 곧 중국에 대한 뿌리깊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이 중국의 유교체제에 편입되지 않은 것을 크게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의 유교주의 영향권에 있던 나라들은 다 망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대륙과 적당히 간격을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2차대전은 유교주의의 정사론에 물든 일부 군인들이 덴노를 중심으로 명분론을 일으킨데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일본의 전쟁책임을 논하는 것도 일종의 명분주의인데 유교의 정사(正邪)론 자체가 잘못이므로 전쟁책임을 논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일본에는 제대로 된 지성이 없다. 앞으로 일본에 지성이 태어날 가능성도 없다. 그들이 도교주의나 선종불교사상, 청담사상에 빠져 있는 한.

유교의 본질은 합리주의다. 독일은 철학가의 나라다. 교과서에 이름이 나오는 철학자만 대략 30여명이 넘는다. 그래서 독일은 합리주의다.

영국은 실용주의다. 영국철학이 더 실용적으로 변한 미국은 철학이 없는 나라다. 대략 대륙은 합리주의, 섬나라는 실용주의 경향을 가진다.

대륙은 북한처럼 골치아픈 이웃이 있으면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섬나라들은 골치아픈 이웃은 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실용주의다. 실용주의의 문제는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이 없다.

대륙국가인 독일이 일본과 달리 사과하는 이유는 철학이 있고 지성이 있기 때문이고 섬나라 일본이 사과 안하는 이유는 철학이 없고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영미가 세계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깡패짓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용주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깡패짓을 한다.

학문은 뿌리깊은 전통이기 때문에 섬나라인 일본이나 영미가 100년 안에 합리주의로 갑자기 바뀔 가능성은 없다. 민족기질에 지정학적인 영향은 크다.

여기서 일본 지식인들의 무기력함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선종불교나 도교사상혹은 청담사상에 빠져 있어서 냉소적이다.

그들의 문학은 섹스와 죽음을 논할 뿐이다. 그들은 허무주의에 빠져있다. 그들은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집권을 욕망하지 않는다.

일본의 정치시스템은 막부시대 봉건영주로부터 이어져온 직업 정치인 가문들에 의해 세습구조가 정착된지 오래다.

일본의 도공은 300년 전부터 도자기를 굽고 일본의 목수는 천오백년 전부터 집을 지었고 일본의 정치인도 비슷하다.

그들은 집권에 대한 의욕이 없다. 그들은 일본을 바른 길로 이끌어갈 비전이 없다. 그들은 ‘일본은 어차피 안돼’라고 말하면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세계시민으로 도망친다. 그렇다고 유럽에서 대접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신기한 원숭이로 취급받을 뿐.

한국의 지식인들이 일본의 지식인들을 향해 ‘문제해결에 나서라’고 다그치면 ‘얘네들 촌스럽게 왜이러냐’는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실용주의에 오염된 일본으로부터 제대로된 사과와 과거청산을 받아내려면 일본의 사과가 일본인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에게 제공할 굉장한 이익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 즉 우리가 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강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쨌든 일본이 계속 지금처럼 성의없이 나오면 장차 확대될 중국시장을 한국이 독식하게 된다. 즉 한국의 일본때리기는 한국에 이익이다.

당분간 한국은 중개무역을 하게 된다. 즉 일본 부품을 사서 중국에 완제품을 파는 것이다. 대일 무역적자가 커지는 만큼 중국으로부터 흑자도 커진다.

물산이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일본이 한국을 완전히 제치고 백프로 중국과 직거래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구조가 정착된다면 1세기 안에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의미있는 정도의 사과를 받아낼 가능성은 없다.

한국 역시 과거의 문제를 청산하는 것이 이익이 아니다. 일본이 명성황후를 죽였다는 것은 우리가 덴노를 죽일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 권리를 쉽게 포기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일본으로부터 반대급부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과는 적당히 나쁜 구조로 계속 가도 된다. 현상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맞다.

경제적으로는 친하고 정치적으로는 친하지 않는 이중구조로 가야한다. 중국과 러시아와 한국이 모두 강해져서 세 나라가 연대하여 일본을 압도할 정도가 되어야 일본이 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아리송한 행태는 그들의 섬나라 특유의 실용주의 때문이며 실용주의를 제압하는 것은 오로지 물리력 뿐이다. 우리가 힘으로 앞설 때 일본은 한국을 따를 것이다.

일본에는 참다운 의미의 지성이 없다. 국가전략도 없고 비전도 없고 일본 지식인은 집권욕망도 없다. 그들이 겨우 생각해내는 것은 ‘일본침몰, 고질라 출현’ 뭐 이런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이다.

일본사를 보면 그런 점이 있다. 즉 일본은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는 국가 이상의 국제연합 비슷한 것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위에서 일어난 일을 까마득하게 밑에 있는 내가 알랴 하는 식으로 모른체 하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서 일어난 모든 정치사건에 관심이 있고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일본인과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것은 자기와는 무관한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무기력하기는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인도는 워낙 땅이 크고 인구가 많고 복잡해서 작은 원칙을 하나 세우는 것도 문화혁명 같은 10년대란을 해야 하기 때문에 회피한다.

그들은 민주화를 욕망하지 않는다. 민주화에 민자 하나를 꺼내는 데도 문화혁명 같은 천하대란의 대소동을 겪게 되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송나라때 한족이 몽골에 저항하다가 실패한 바 있고 또 청나라 지배 때 명나라 한족 충신들이 앙앙불락하다가 대략 포기하고 말았듯이 그들은 포기가 체질화 되어 있다.

우리가 유엔의 결정에 무관심하듯이 일본인들은 국가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다. 심지어는 그런 무관심이 세속의 일에 달관한 현자의 점잖은 태도라고 착각한다.

한국인들이 일본인들 보다 고이즈미의 이름을 더 잘 알고 있다. 많은 일본의 중고딩들은 자기나라 총리 이름도 잘 모른다.

그런 일본인들과 뭔 대화를 하겄냐 이거다. 결론은 한일중러의 민족주의 경향은 일정부분 지정학적 문제가 끼어있는 역사의 흐름인 만큼 이 현상을 무리하게 뜯어고치려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민족주의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소통을 해야하는데 소통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창구를 열어야 한다. 민족주의는 그 소통의 창구를 얻을 때 까지 계속간다.

대화하려면 의사결정을 해야하고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려면 의사결정의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밑바닥의 에너지가 작동하여 민족주의가 대두되는 것이다.  

어차피 일본과는 말이 안통한다. 일본의 지식인과는 그래도 약간 말이 통하는데 그들은 냉소와 허무에 빠져서 무기력하게 일본침몰 영화를 보고 있다.

한반도를 통째로 떼서 제법 말이 통하는 합리주의의 유럽으로 이사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합리주의가 지나친 것도 나쁘다. 무리하게 질서를 세우고 서열을 정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 끝내 판명하려는 것도 옳은 태도가 아니다. 적당한 무질서가 있어야 거기서 새 질서의 싹이 움트는 것이다.

말이 안통하는 실용주의자는 힘으로 눌러주는 것이 맞고 말이 통하는 합리주의자와는 인간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맞다.

한국인 역시 실용주의적 기질과 합리주의적 기질을 두루 가지고 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합리주의로 앞에서 길을 열어가는 것이 맞고 한국의 대중들은 실용주의로 이익을 취하는 것이 맞다. 갈등을 두려워 하지 않는 그것이 반도기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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