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의 원인, 이유의 이유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는 원인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 원인은 다섯 가지가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그것이다. 량의 원인은 운동, 운동의 원인은 힘, 힘의 원인은 입자, 입자의 원인은 질이다.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량은 침투한다. 이에 만유는 비로소 이루어졌다. 원인과 결과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하여 사건을 구성한다. 우리는 과학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과학의 근거는 인과율이다. 인과율을 해명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석가다. 석가의 방대한 사유는 원인과 결과를 잇는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인류는 석가 이후로 조금도 전진하지 못했다. 인과율을 응용한 수학으로 만족할 뿐 인과 그 자체는 탐구하지 않았다. 셈을 세는데 열중할 뿐 수학의 근거를 사유하지 않았다. 백과사전을 뒤져봐도 원인에 대해서는 아예 항목조차 없거나 설명이 빈약하다. 석가 역시 인과율의 발뒤꿈치를 슬쩍 보았을 뿐 전모를 본 것은 아니다. 논리는 없고 대개 경험에 의존한다. 내가 살펴봤는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더라는 식이다. 그런 말은 바보도 할 수 있다. 인과는 사건을 구성한다. 인과를 모른다는 것은 사건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사건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머리가 원인이면 꼬리는 결과다. 그런데 몸통도 있다. 우리는 원인과 결과 두 단어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존재의 내막은 복잡하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열어야 할 관문이 셋이나 더 있다. 보통은 원인의 원인이라거나 근본적인 원인이라거나 하며 둘러댄다. 사건의 머리와 몸통과 꼬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인류문명의 한계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사실 꼬리는 입이 없다. 꼬리는 꼬리를 물 수 없다. 사건의 머리와 꼬리를 분간하지 못하므로 꼬리에 꼬리를 연결하는 실패를 저지른다. 기관차에 객차를 연결해야 하는데 객차에 객차를 연결하는 오류다. 그 전에 아예 사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머리든 꼬리든 그것은 사물이다. 인과는 사건에 적용된다. 존재는 곧 사건이다. 사물은 사건이 인간에 인지되는 한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물리적 반응이 짧은 사건들이 모여 사물이 된다. 양자역학으로 깊이 들어가면 모든 존재는 본래의 사건으로 돌아간다. 인류는 인과율에 의지하면서도 정작 인과율이 무엇인지 모른다. 인과율은 그냥 경험으로 그런게 있다는 정도로만 안다. 인과는 사건의 연결구조다. 사물에만 구조가 있는게 아니고 사건에도 구조가 있다. 사물에 머리와 몸통과 꼬리가 있을 뿐 아니라 사건에도 머리와 몸통과 꼬리가 있다. 꼬리에 꼬리를 연결할 수 없고 머리에 꼬리를 연결해야 한다.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해명되는 사건의 방향성이다. 세상은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다. 각각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대응된다. 인간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보의 변화, 정보의 원인은 시간의 변화, 시간의 원인은 공간의 변화, 공간의 원인은 물질의 변화, 물질의 원인은 에너지의 변화다. 반대로 에너지의 작용한 결과는 물질, 물질의 작용한 결과는 공간, 공간의 작용한 결과는 시간, 시간의 작용한 결과는 정보다. 원인과 결과 두 단어만으로 복잡한 세상을 해명할 수 없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하나의 사건에는 층위가 다른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원인과, 원인의 원인과,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 있는 식이다. 정확히는 다섯 가지 원인이 있다. 근본적으로 병에 걸린 원인과 하필 그날에 병에 걸린 원인은 다른 것이다. 병에 걸린 원인은 허약하기 때문이고, 그날에 걸린 원인은 원인균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원인균과 접촉해도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접촉은 발병시점을 특정할 뿐 진짜 원인이 아니다. 다섯가지 원인을 모두 찾아야 한다.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 사건의 주체를 결정하는 원인, 사건의 공간적 장소를 결정하는 원인, 사건의 시간적 타이밍을 결정하는 원인,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는 원인이 있다. 보통은 이 다섯 가지 원인 중에서 하나만 찍어주면 만족하고 더 이상 탐구하지 않는다. 아픈 이유는? 맞았기 때문이다. 왜 맞았지? 때렸으니까 맞았지. 왜 때렸지? 계속 추궁해야 한다. '맞았으니까 아프구나. 그렇구나. 이제 이해했어.' 이러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게 보통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먼저 째려봤기 때문에 때렸다고 변명한다. 이렇게 되면 헷갈리고 만다. 두 사람을 하나의 공간에 가두어 폭력이 일어날 개연성을 담보한 것이 진짜 원인이다. 물리적 구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통제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건은 시스템으로 존재하며,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스트럭쳐로 결정하며, 액션으로 진행되고, 코드로 나타난다. 각각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해당한다. 또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와 같다. 시스템을 아는 것이 사건의 전모를 아는 것이다. 메커니즘과 스트럭쳐와 액션과 코드는 시스템에 종속되어 사건을 구성하는 부분들이다. 역시 스트럭쳐는 메커니즘에 종속되고 액션은 스트럭쳐에 종속되고 코드는 액션에 종속된다. 사건 - 시스템, 메커니즘, 스트럭쳐, 액션, 코드 존재 - 에너지, 물질, 공간, 시간, 정보 원인 - 질, 입자, 힘, 운동, 량 중요한 것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의 진행과 다른 사건의 연결을 헷갈리는 것이다. 도미노가 연속적으로 쓰러진다. 왜 도미노는 쓰러지는가? 앞의 먼저 쓰러진 도미노 때문이다. 앞의 도미노는 왜 쓰러졌지? 역시 그 앞의 도미노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무한반복은 문제를 해명하는게 아니다. 인류는 대개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관차가 객차 70량을 달고 간다. 70번째 객차는 왜 가는가? 69번 객차가 끌어주기 때문이다. 69번 객차는 왜 가는가? 68번 객차가 끌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동형반복을 70번 반복한다. 삽질하고 있는 것이다. 인과법칙은 같은 층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량은 량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운동은 운동의 원인이 될 수 없고, 힘은 힘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입자는 입자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질은 질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객차는 객차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층위가 낮은 것은 높은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부분은 전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항상 전체가 부분의 원인이 된다. 머리가 꼬리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꼬리는 머리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역시 엔트로피다. 결과는 원인이 될 수 없다. 결과는 결과다. 원인이 원인이다. 순서를 바꿀 수 없다. 헷갈리는 이유는 A사건의 결과가 B사건의 원인이 될 때다. 두 사건을 섞어서 뒤죽박죽으로 생각하므로 헷갈리게 된다.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무조건 원인이 결과에 선행하며 그 역은 없다는게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을 결정할 수 없다. 만약 작은 것이 큰 것을 결정하는 것을 봤다면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한다. 뒤에 더 큰게 숨어 있다. 어른이 아이를 때릴 수 있으나 아이는 어른을 때릴 수 없다. 만약 때렸다면? 아이 뒤에 다른 어른이 숨어 있다. 아이와 뒤에 숨은 어른을 포함한 상대방 가족 전체가 원인이다. 원인과 결과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작동한다. 원인이 밖에 있으면 그 밖을 포함하는 더 큰 단위의 전체에서 사건을 촉발하는 닫힌계를 찾아야 한다. 형이 동생을 때렸다면 가족이 있고, 일진이 급우를 때렸다면 학급이 있고,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면 거기에 한반도가 있다. 반드시 둘을 통일하는 더 큰 단위가 있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 수평적으로 대칭되어 상호작용하는 둘은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왼발은 오른발이 가는 원인이 될 수 없고 오른발은 왼발이 가는 원인이 될 수 없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하는 것을 보면 왼발이 오른발의 원인이고 오른발이 왼발의 원인으로 보여진다. 착각이다. 원인은 몸통이다. 항상 주최측이 있고 상부구조가 있고 더 큰 집단이 있으며 원인은 거기에 있다. 상부구조의 스트레스가 하부구조에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가 있으므로 형제가 다툰다. 부모가 없으면 형제는 흩어져서 다툼도 사라진다. 부모가 상속할 유산을 가진 것이 형제가 다투는 원인이다. 대개 이런 식이다. 구조는 공유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구조를 알면 다른 것에 응용하여 무한히 많은 지식을 복제할 수 있다. 수학이 그러하듯이 우주 안의 모든 지식을 통섭할 수 있다. 구조론이 수학의 근거인 까닭이다. 어떤 대칭되는 것에는 반드시 공유되는 구조가 있다. 공유되는 대칭의 축이 반드시 있다. 축이 움직여서 대칭을 만드는 것이다. 화살이 가만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데 움직이면 앞뒤의 대칭이 생긴다. 선과 악은 하나의 사건 속에 있다.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다. 수요와 공급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때렸기 때문에 맞았다고 착각한다. 때린게 원인이면 맞은 것은 결과다. 때린 사건과 맞은 사건으로 두 개의 사건이 된다. 구조를 안다는 것은 둘을 하나의 사건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축구시합이라면 공격과 수비는 하나의 게임으로 통합된다.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 사건으로 착각하므로 선과 악, 수요와 공급, 진보와 보수가 평행선을 그리면서 결론을 내지 못한다. 공산당은 보수를 없애고 진보만 남기려 한다. 수요를 없애고 공급만 남기려 한다. 악을 없애고 선만 남기려 한다. 일본팀을 없애고 한국팀만 남기려 한다. 그래서는 경기를 할 수 없다. 보수가 없으면 진보도 없고, 악이 없으면 선도 없고,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흑이 없으면 백도 없다. 둘 중에 하나를 없애면 다른 쪽도 사라진다. 수평공간에서 남탓하므로 답을 찾지 못해야 한다. 위를 탓해야 한다. 흑과 백은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선은 악을 탓할 수 없고 악은 선을 탓할 수 없다. 진보는 보수를 탓할 수 없고 보수는 진보를 탓할 수 없다. 수요는 공급을 탓할 수 없고 공급은 수요를 탓할 수 없다. 상부구조를 탓해야 한다. 아이를 탓하지 말고 부모를 탓해야 한다. 부하를 탓하지 말고 간부를 탓해야 한다. 개인을 탓하지 말고 집단을 탓해야 한다. 거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원인을 모르는게 문제다. 때렸기 때문에 맞은게 아니다. 원인은 더 높은 단계에 있다. 시합이 열렸기 때문에 권투를 한 것이다.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게 아니다. 시장이 있기 때문에 수요공급이 있는 것이다. 선이 있기 때문에 악이 있는게 아니다. 사회성이 있기 때문에 선악이 있는 것이다. 진보가 있기 때문에 보수가 있는게 아니다. 권력이 있기 때문에 진보보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팀이 있기 때문에 일본팀이 있는게 아니다. 그건 거짓말이다. 주최측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시합이 열리는 것이다. 수요를 건드려서는 공급이 해결되지 않고, 선을 건드려서는 악이 해결되지 않고, 보수를 건드려서는 진보가 해결되지 않고, 일본팀을 탓해서는 한국팀이 해결되지 않는다. 흑과 백은 서로를 탓할 수 없다. 상대방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잠시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못가서 다시 원위치 된다. 게임의 상대방을 공격할게 아니라 주최측을 건드려야 한다. 일본팀을 건드려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 우리가 월드컵 주최국이 되자 4강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고전하는 것도 원인은 상부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수요를 없애면 공급이 해결된다는게 공산당 사고방식이다. 야당을 없애면 국정이 안정된다는 식이다. 그들은 원인을 모르고 남탓하고 있다. 왼발과 오른발은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몸통을 찾아야 한다.
- 시장에 의해 수요공급이 있다. 대칭을 이루고 상호작용하는 둘을 원인으로 지목하므로 순환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원인은 항상 높은 층위에 있다. 둘이 공유하는 대칭의 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구조다. 원인cause은 꾸짖는다는 뜻이고 이유reason는 일어난다는 뜻이다. 원인cause을 꾸짖음은 벌어져 있는 일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책임자는 위에 있다. 이유reason가 말미암는 것은 곡절crank이 꺾어져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수평은 이유가 될 수 없고 항상 수직으로 꺾여야 이유가 된다. 까닭의 까는 뭡니까 하고 물을 때의 질문이고 닭은 말한다는 뜻이다. 닥쳐(말치워), 닦달하다, 다그치다로 알 수 있다. 왜 그랬습니까 하고 다그치는게 까닭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뭘까? 그것을 할 수 있는 구조가 격발되었기 때문이다. 대칭의 축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축은 위에 있다. 량의 축은 운동에 있고, 운동의 축은 힘에 있고, 힘의 축은 입자에 있고, 입자의 축은 질에 있고, 질의 축은 다른 사건에 있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는 질에 이르기까지 추궁할 수 있다. 질이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므로 더 이상 추궁할 이유는 없다. 왜 그랬을까?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 것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언제든 계기만 주어지면 그것을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총이 쥐어져 있으면 언제든 쏜다. 총을 빼앗아야 한다. 아이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다면 언제든 찌를 수 있다. 왜 사람을 찔렀지 하고 묻지 말고 왜 아이가 칼을 지니고 있지 하고 캐물어야 한다. 량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운동이고, 운동할 수 있는 구조는 힘이고, 힘을 쓸 수 있는 구조는 입자이며, 입자를 세울 수 있는 구조는 질이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코드다. 코드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반복되면 우리는 그것을 인지한다. 하나는 인지하지 못한다. 이제 시작인지 중간인지 끝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 세번 반복되면 간격을 헤아려서 코드를 인지한다. 같은 냄새를 두 번 맡으면 공통점을 생각한다. 같은 물건을 두 번 보면 둘 사이에 공통점을 찾는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 코드의 공통점은 액션, 액션의 공통점은 스트럭쳐, 스트럭쳐의 공통점은 메커니즘, 메커니즘의 공통점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이 최종보스다. 시스템은 외부와 연결되며 에너지를 통제한다. 입력부와 출력부가 있다. 에너지의 입출력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밥을 안주거나 화장실을 못가게 하면 항복한다.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다면 메커니즘을 해결해야 한다. 메커니즘은 두 개의 액션이 연결되어 있는데 머리와 꼬리로 나눠져 있다. 사건은 머리에서 시작된다. 엄마곰을 잡으면 새끼곰은 따라온다. 액션의 출발점이 되는 코어를 장악하는게 메커니즘의 해결이다. 메커니즘도 접근이 어렵다면 스트럭쳐를 조치해야 한다. 그것은 공간을 좁히는 것이다. 구석으로 몰면 항복한다. 홀리필드가 타이슨에게 접근하여 공간을 주지않자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다. 스트럭쳐는 공간을 사용하므로 공간을 없애면 된다. 스트럭쳐도 어렵다면 액션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시간을 좁히는 것이다. 바둑이 초읽기에 몰려 시간이 없으면 항복한다. 액션도 어렵다면 코드를 막아야 한다. 그것은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다. 이길 수 없으면 졌다는 사실을 감추면 된다. 구조는 공유하는 것이다. 공유하는 것에 조치하면 된다. 왼발과 오른발은 몸통을 공유한다. 두 개의 바퀴는 축을 공유한다. 남북한은 휴전선을 공유한다. 선과 악은 사회성을 공유한다. 진보와 보수는 권력을 공유한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을 공유한다. 민주당과 국힘당은 국민을 공유한다. 야당을 때리지 말고 국민을 기쁘게 해야 한다. 공유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것은 언제나 수평에 없고 수직에 있다. 더 높은 층위에 있다. 차원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
머리 몸통 꼬리를 인연과라고 합니다.
이것을 응용한 것을 연기(緣起paticca-samuppāda)라고 합니다.
https://blog.naver.com/synup/220750414362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