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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287 vote 0 2019.06.12 (13:07:59)

    연역하는 방법


    대리기사가 도로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달아났다가 차주가 차를 이동시키자 음주운전으로 신고한 일이 있다. 판사가 '긴급피난' 한마디로 억울하게 기소된 차주를 구하고 바보들을 침묵시켰다. 오히려 대리기사를 교통방해죄로 처벌해야 한다. 요는 '긴급피난'이라는 단어의 힘이다.


    그런 단어가 없으면 논쟁이 끝나지 않는다. 승복하지 않는다. 국뽕이라는 단어로 환빠들을 잠재울 수 있다. 사이비 목사는 개독이라는 말로 제압해야 한다. 안보장사 하는 자한당은 적대적 공생이라는 말로 타격할 수 있다. 현장을 무시하는 무뇌좌파는 정신승리라는 말로 압박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은 오직 연역에 의해서만 생산된다. 귀납은 연역하는데 필요한 데이터의 조달이다. 지식은 체계적이어야 하며 연역에 의해 체계화되는 것이다. 물론 '연역적' 혹은 '귀납적'으로 '적'을 붙이면 범위가 넓어진다. 이 경우는 연역과 귀납이 뒤섞여버린다. 중요한 것은 뇌의 활동이다.


    인간은 귀납으로 데이터를 조달하고 연역으로 체계화해서 지식을 생산한다. 중요한 것은 뇌 안에서 연역적 과정으로 데이터를 재구축하는 절차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 과정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므로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연역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예컨대 셈을 배운다고 치자.


    어느 순간 셈을 이해한다. 기적처럼 뇌 안에 불이 켜진다. 그때부터 연역이 시작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장님에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소녀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었다. 교사의 노력에도 절대 이해를 못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스펀지처럼 정보를 빨아들인다.


    '헬렌 켈러'처럼 말이다. 인간의 뇌 안에는 원래 연역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그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문제는 그 능력을 의식적으로는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문장으로 풀어서 말하면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 개가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말을 잘 알아듣는 개가 있다.


    천재견 행복이가 그렇다. 단어뿐 아니라 문장까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단순한 지능차이가 아니다. 지능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스위치가 켜지듯이 뇌 안의 메커니즘이 작동을 시작한다. 그 연역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려면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명사로 말해야 한다.  


    시장원리라 치자. 물건을 비싸게 팔면 이익이고 싸게 팔면 손해다. 문제는 시장붕괴다. 비싸게 팔면 시장이 불신을 받는다. 용산 용팔이 망하고 노량진 어시장 망한다. 공급자는 시장의 파이를 키운다는 전제하에 이익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여기에 내밀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시장의 보호가 우선순위 1번의 판단이고 이익실현은 그다음 판단이다. 금융업이라도 그렇다. 은행이 파산하면 여러 사람이 망한다. 은행보호가 우선순위 1번의 판단이다. 그 전제하에서 각자 이익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균형이 작동한다. 생태계의 균형과 같다. 사자가 사슴을 먹는다.


    사슴이 사라진다. 사자도 죽는다. 생태계가 붕괴하면 안 된다. 근본을 이해해야 한다. 근본은 수다. 모든 수는 자연수가 아니라 비례수다. 우리가 1이나 2나 3이라고 쓰는 것은 대거 생략된 것이다. +(1/1)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즉 사과나 밤이나 호박의 사정을 숫자로 나타내는 게 아니다.


    사람과 연결된 라인을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개념을 알아야 한다. 어떤 대상을 지목하는 게 아니고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관계 속에는 펑션function이 들어있다. 우주는 펑션의 연결이다. 즉 우리가 사과가 하나 있다고 말하면 사과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펑션이 있는 것이다. 


    이걸 모르는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다. 펑션은 밸런스로 나타나며 밸런스는 어떤 대칭된 둘을 토대의 공유로 묶어낸다. 내가 이렇게 하면 네가 저렇게 할거잖아 하고 플러스로 말하면 안 된다. 문장은 어설픈 것이고 단어로 조져야 한다. 문장은 플러스 방향이라는 게 걸린다.


    플러스는 확산방향이므로 합의되지 않는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어떻게든 인간이 작위한다면 플러스다. 플러스는 반드시 상대방이 맞대응을 해서 무력화시킨다. 그러므로 먹히지 않는다. 마이너스 어법으로 수렴하여 말해야 한다. 이 경우는 작위가 없으므로 맞대응을 할 수 없다.


    둘이 한배를 탔다고 말해야 한다. 그 배가 실재하여 있다. 펑션이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신이 있다면 집단의 의사결정중심이라는 펑션이 있다. 하나의 펑션이 하나의 존재자가 된다. 이때 펑션은 수렴방향이므로 상대가 맞대응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서로 공유하는 배를 장악하려 한다. 


    내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상대는 왼쪽으로 꺾으려 든다. 교착되고 마는 것이다. 맞대응이다. 플러스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문장으로 풀어서 말하고 동사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명사로 조져야 한다. 메커니즘이 포착되면 상대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대신 자동차를 장악하려고 한다. 


    남북관계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면 보수꼴통 조중동은 오른쪽으로 꺾는다. 반드시 맞대응을 한다. 교착되고 만다. 세계사의 흐름 안에서 대한민국의 비전을 보여줘야 이들이 따라온다. 인터넷시대의 비전을 보여주면 할배들이 갑자기 유튜브 배운다며 따라온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보호라는 한배를 타고 있다. 시장의 파이를 일단 키워야 각자에게 유리하다. 자한당과 김정은이 적대적 공생이라는 한배를 타고 있다. 사자와 사슴은 생태계 유지라는 한배를 타고 있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마찬가지다. 뇌를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해야 한다.


    생태계의 균형에 따라 상실이 있으면 보상이 있다. 대머리가 되면 눈썹은 김영배 의원의 사무라이 눈썹이 될 수 있다. 인간은 털을 잃은 대신 긴 머리카락을 얻었다. 이런 것을 개별적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먼저 장이 있고 자원이 있으며 자원운용의 최적화로 최대효율을 찾는 것이다.


    자석이 쇠를 잡아당긴다고 말하면 안 된다. 자기장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자기장은 자석과 쇠가 공유하는 것이다. 사실은 반대로 쇠가 자석을 당기는 게 아니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공유하는 토대는 반드시 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일단 있다고 치고 거기에 명명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에 지식은 대량 복제된다. 그것이 연역이다. 숫자는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은 고유한 연역능력에 의한 것이며 이를 알고 의식적으로 연역하느냐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연역하느냐의 차이다. 모르고 하면 동사로 표현하게 되고 동사로 표현하면 플러스 방향이다.


    이 경우는 반드시 반박이 들어온다. 맞대응 들어온다. 중간에서 교착된다. 플러스로 가면 수렴되지 않고 흩어진다. 이렇게 될 수도 있고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익은 플러스고 시장보호는 마이너스다. 시장은 원래 만들어져 있는 것이고 거기서 망하는 방향의 선택지만 있다. 


    시장이 부자 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수렴방향이다. 이때 모두가 납득하게 된다. 숫자 1이 사과를 가리킨다면 벌레 먹은 사과니 풋사과니 하며 시비가 들어온다. 플러스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건 메커니즘이 망한 것이다. 숫자 1은 사과나 호박이나 호두나 밤의 사정을 가리키지 않는다. 


    사람의 인식과 연결하는 라인을 가리킨다. 사과는 추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플러스다. 그러나 라인은 추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커플이 되려면 상대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둘 사이에 라인이 개설된다. 여기서 라인을 새로 추가할 수 없다. 


    이미 커플이 되었는데 또 파트너를 추가한다면 개설된 라인이 파괴된다. 공유되는 메커니즘은 손댈 수 없는 것이다. 파괴되거나 작동하거나뿐이다. 마이너스 방향으로 통제되면 수렴방향이므로 합의될 수밖에 없다. 시장보호의 방향으로 하는 행동은 가격을 올리든 내리든 합의된다. 


    반대로 시장파괴 방향의 기동은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합의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배를 타고 있는데 자기 쪽으로 화물을 더 가져오는 플러스 행동을 한다면 상대쪽은 배가 기울어서 죽는다. 반드시 맞대응을 한다. 반드시 배의 규모를 키워 안정시키는 결정을 하면 상대가 합의해준다.


    인간의 뇌에는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다.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장님에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는 장벽이 있다. 어느 순간 장벽을 넘으면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 장벽을 넘으면 천재견 행복이처럼 단숨에 300단어를 알아듣게 된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반대하는 자한당 소행도 그렇다. 지금 40퍼센트인 국가부채를 60퍼센트까지 늘려도 탈이 없다. 매년 20조 원씩 추경해도 괜찮다. 일본은 200퍼센트인데도 버티고 있다. 메커니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명사가 없다. 동사로 말해봤자 절대로 먹히지 않는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사회든 이런 식으로 받쳐주는 장이 있고 시스템이 있고 그 안에 에너지를 운용하는 메커니즘이 있고 그에 따른 밸런스가 있다. 사건의 방향성이 있다. 빚이 없으면 관성력의 상실로 죽는다. 가만있는 배는 파도에 흔들리지만 달리는 배는 파도를 타고 넘는 것과 같다. 


    그 이치를 동사로 설명하지 말고 명사로 조져야 한다. 정부가 빚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면 자한당은 무조건 반대한다. 경제학자가 만들어줘야 할 단어 하나가 없어서 문재인 정부가 개고생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상당한 빚을 안고 있어야 외력에 흔들리지 않고 내부를 잘 조율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해서 여러 가지로 이득을 봤다. 신용이 올라가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있고 각종 공제를 받아 세금도 절약할 수 있다. 결혼이익이 100이라고 치자. 그럼 결혼을 한 번 더 하면 200이잖아. 3번 결혼해서 300 챙기자. 이게 보통 사람이 빠지는 플러스 사고의 함정이다.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추가로 결혼할 수 없다. 어떻게 하든 무언가 플러스를 꾀하면 그 연결된 라인이 깨진다. 마이너스 쪽을 관리해야 한다. 그 연결된 라인이 무너지지 않게 사랑과 믿음으로 받쳐야 한다. 뭐든 추가로 더 얻을 수는 없고 이미 확보되어 있는 것을 지킬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메커니즘적 사고다. 비로소 연역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결혼한 주제에 두 번 더 결혼하면 이득이잖아. 이러고 있다. 내 논에 물대기식 플러스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 경우 공유하는 토대를 흔들므로 반격이 들어온다. 메커니즘 위주로 레토릭을 잘해야 산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챠우

2019.06.12 (17:55:34)

헬렌 켈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인도영화인 "블랙(2005)"입니다. 

https://namu.wiki/w/%EB%B8%94%EB%9E%99(%EC%98%81%ED%99%94)


#


외부에서 끌어들이는 돈의 평가를 할 때, 

투자유치와 빚 중에서 무엇으로 볼 것이냐는 

선수냐 후수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듯 합니다. 

비전에 의하면 투자유치고 생활고에 의하면 빚이죠. 

주어가 나면 비전이고, 남이면 생활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6.13 (04:48:56)

"공유하는 토대는 반드시 있다.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일단 있다고 치고 거기에 명명부터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지식은 대량 복제된다. 그것이 연역이다."

http://gujoron.com/xe/1096866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9.06.13 (13:01:07)

빚은 관성력의 획득; 관성력은 신용(화폐)창조의 관건!
“빚이 없으면 관성력의 상실로 죽는다. 가만있는 배는 파도에 흔들리지만 달리는 배는 파도를 타고 넘는 것과 같다.”
; 근디 이제야 잔당 하는 짓이 뭔 짓인지 보이기 시작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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