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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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0215 vote 1 2018.01.02 (16:08:30)


    뭐든 알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구조를 안다는 말이다. 자본을 알려면 자본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생명을 알려면 생명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정치를 알려면 정치의 구조를 알아야 하고, 마음을 알려면 마음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구조는 지식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구조론의 의미는 인류에게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는 사실의 폭로에 있다.


    구조는 얽힘이다. 공간으로도 얽히고 시간적으로도 얽힌다. 공간의 얽힘이 구構, 시간의 얽힘은 조造이니 합쳐서 구조構造가 된다. 구조는 공간과 시간으로 얽혀 사건을 만든다. 그러므로 구조는 사건의 구조다. 무엇인가? 우리는 그동안 공간에 놓인 사물의 구조에 주목했을 뿐, 시간에 놓인 사건의 구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의사결정단위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사건의 구조를 알아채기다.


    사건이 자연으로 가면 물질이 되고 인간으로 오면 사회가 된다. 우리는 물질의 에너지 구조를 알아야 하고, 또 사회의 의사결정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 이전에 크게 깨달아야 한다. 세상이 근본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에너지 복제로 이루어졌음을 깨우쳐야 한다. 물질이냐 에너지냐의 차이는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로 발전한다. 물질이라면 대상 내부의 고유한 속성에 답이 있다.


    밤의 답은 밤송이를 까봐야 알고 호두의 답은 호두알을 까봐야 안다. 부럼을 깨물어야 쭉정이와 알밤을 가릴 수 있다. 수박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는 칼로 잘라봐야 안다. 답은 언제라도 내부에 있다. 그러나 에너지는 다르다. 에너지는 무조건 밖에서 온다. 전기의 스위치는 바깥에 있다. 전구 속에 스위치가 들어있는 경우는 없다. 전기가 바깥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외부로 나가 먹이활동을 해야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식물이 의지하는 햇볕과 물도 바깥에 있다. 자본이 의지하는 시장과 혁신도 바깥에 있다. 정치가 의지하는 민심도 의사당 바깥에 있다. 그러나 보라. 오늘날 좌파든 우파든 모두 고립주의와 배타주의 외길로 치닫고 있다. 안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진보는 반일, 반미에 분주하고 보수는 반북, 반중에 분주하니 모두 바깥을 겁낸다.


    구조의 답은 언제라도 바깥에 있다. 안도 물론 중요하다. 밖에서 에너지를 끌어댄 다음에는 내부에서 처리해야 한다. 상황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라. 좌파들은 노상 서구를 숭배하기에 바쁘니 외부에 줄을 대는데 분주할 뿐 내부에서 그 에너지를 처리하지는 못한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득세는 한국 내부에서 그 에너지를 처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수순이다. 선외부 후내부다. 장기전은 외부를 보고 단기전은 내부를 본다. 좌파들이 이 길이냐 저 길이냐 노선타령에만 분주한 것은 세상을 밤이나 호두와 같이 껍데기를 까고 알맹이를 꺼내먹는다는 원자론적 발상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밤이나 호두를 고를 때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쭉정이가 나온다. 정치라면 노선이 중요한 것이다. 주식이라도 종목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로 보면 다르다. 종목은 중요하지 않고 운용이 중요하다. 좋은 차를 수렁으로 몰면 망하고 나쁜 종목이라도 물타기를 열심히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고수는 주가가 오르면 올라서 벌고 떨어지면 공매도로 번다. 양쪽으로 돈을 번다. 변동성만 있으면 무조건 번다. 바람이 순풍이면 배가 잘 가고 역풍이라도 지그재그 항해로 전진할 수 있다. 배는 뒷바람보다 옆바람일 때 빠르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 가지 매개변수에 따라 대응방법이 달라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번째 입자 관점이다. 세상을 호두나 밤으로 알고 쭉정이가 걸리지 않게 선택을 잘해야 한다는 거다. 고등학생은 대학교를 잘 선택해야 한다. 졸업하면 직장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배우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틀렸다.


    왜 자신이 선택하려고만 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지 않을까? 선택하면 하수다. 상대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자가 고수다. 북한과 중국과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 치이며 우리의 선택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북한과 일본과 중국과 미국으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선택을 고민한다면 큰 틀에서는 이미 패배해 있다. 선택을 강요하라.


    선택하려 한다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세상은 바깥에서 답을 찾는 에너지도 있고 안에서 답을 찾는 물질도 있지만, 수순으로 보면 에너지가 먼저고 바깥이 먼저고 내부는 그다음이다. 바깥의 활동공간을 먼저 확보해놓고 내부를 정돈한다. 바깥의 생명줄을 먼저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삿짐을 나르더라도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먼저 개척하고 내부의 짐을 운반한다. 일머리다.


    섬나라 일본처럼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면 안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지만 지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중러미일 주변 사강을 서로 교착시켜 놓고 중간에서 교통정리를 잘 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답을 낼 수 있다. 이는 강자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과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무조건 안을 헤집고 보는 패배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왜? 약하기 때문이다.


    5천 년 동안 우리는 강했던 적이 없다. 밖에서 얻어맞고 집안에서 화풀이하는 폭력가장처럼 행동해왔다. 아니래도 인류의 대부분은 사실 약자다. 월드컵에 32강이 올라가도 어차피 우승팀은 독일팀 하나다. 나머지 31개팀은 독일을 위해 들러리를 서는 약팀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자의 사고에 익숙한 것이다. 강자의 사고를 익히지 않으면 강해질 수가 없다. 강자는 결코 남탓을 하지 않는다.


    강하면 단기전으로 이기고 약하면 지구전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이길 수 있다. 무조건 이긴다. 단, 장기전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이 개인 내면의 사정이라 할 선이나 악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의사결정구조에 지배됨을 깨우쳐야 한다. 선악은 사건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사회관계의 긴밀함이다. 사회관계가 느슨하면 그것이 곧 악이다.


    자연의 물질은 원인이 아니라 에너지 복제과정에서 도출된 결과이며 인간의 선이나 악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사결정구조의 작동에 의해 도출된 결과다. 만유는 반드시 자궁이 있으며 그 자궁은 단단한 알갱이나 고유한 속성으로 된 것이 아니라 활동적이고 부드러운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뭐든 딱딱한 것은 임시미봉책일 뿐 궁극적인 해답이 아니다.


    구조라 하면 딱딱한 것을 떠올리기 쉽다. 건축구조나 동물의 뼈대나 이런 걸로 구조를 배웠기 때문이다. 진짜는 의사결정구조다. 정치라면 민심의 구조다. 물질도 깊이 들어가면 양자화되어 부드러운 구조로 변한다. 구조는 어떤 둘이 하나의 토대를 공유하는 형태로 모순을 일으켜서 얽힌 것이다. 부부 둘이 하나의 건물을 공유하고 사는 것과 같다. 구조는 일정한 조건에서 딱딱하게 변한다.


    딱딱하다는 것은 외력에 대항하여 위치를 지킨다는 거다. 그것은 구조의 한 가지 형태일 뿐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빨아들이는 구조와 맞서는 구조와 비트는 구조와 움직이는 구조와 깨지는 구조가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 맞서는 구조 하나만 알고 있다. 맞설 때 딱딱한 거다. 미혼남녀의 밀당처럼 부드러운 것이 진짜다. 딱딱한 사람은 기혼자다.


    우리는 건물처럼 제 위치를 지키는 딱딱한 구조를 알 뿐 생명의 복제구조처럼 부드러운 구조를 알지 못한다. 노자는 이유극강이라 했다. 사실은 부드러운게 먼저고 딱딱한 것이 따른다. 만날 때 부드럽고 만나서 얽히면 딱딱해진다. 딱딱해진다는 것은 이미 포지션을 잃고 에너지를 잃고 활동성이 죽었다는 의미다. 미혼자가 기혼자로 바뀌어 외부와의 관계맺기에서 선택지를 상실한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대하여 상태변화가 어려워졌다. 문재인의 미소처럼 부드러운 것이 살갑고 좋은 것이며 목에 기브스한 박근혜처럼 뻣뻣한 것은 냉담하니 좋지 않다. 칼날은 딱딱해야 좋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그 칼을 지배해야 한다. 에너지는 언제라도 부드러움을 따라간다. 딱딱한 연탄보다 부드러운 석유를 쓰는게 그러하다. 딱딱한 다이아몬드를 쓰더라도 부드러운 손가락에 끼어야 반지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구조를 모른다는 점이다. 딱딱한 사물의 구조를 알되 부드러운 사건의 구조를 모른다. 딱딱한 것은 내부에 집합되고 부드러운 것은 외부로 연결된다. 우리는 안에 잡아가두고 통제하는 방법을 알 뿐 밖으로 풀어놓고 통제하는 방법은 전혀 모른다. 인간은 대개 선악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평판공격이다. 이는 내부에 잡아가둬놓고 딱딱한 것으로 통제하는 방법이다.


    밖으로 길을 열고 에너지 낙차를 조직해 놓으면 가만 놔둬도 저절로 한곳에 모이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한 것을 찾아 만만한 것을 지배하려고 한다. 에너지의 진행경로가 되는 결이다. 물이 바다로 가듯이 사건의 결을 만들어놓으면 저절로 한곳에 모인다. 억지로 잡아가둘 이유도 없고 고함질러 꾸짖을 이유도 없다. 붙잡지 않아도 붙잡혀 있고 부르지 않아도 찾아와 있다. 답은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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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Quantum

2018.01.02 (20:06:58)

저는 철학과 과학, 사상, 역사 등을 찾아 오늘도 서점 인문 코너를 해매는 사람들이 왜 구조론을 찾지 않는지 의아합니다. 정말 의아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레벨:2]현강

2018.01.03 (02:13:10)

의아하다고 하셨으니 퀀텀님께선 이미 분석을 해놓으셨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을 던지는 선에서 말을 맺으셨다는 건 다른 구조론 회원분들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먼저 들어보자는 의도에서 물꼬를 트신 걸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겠지요.


구조론 세력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보았을 주제라 여겨지며 저 또한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있었기에 좋습니다, 이참에 글로 옮겨보는 것도 좋겠지요. 먼저, 이미 알려져있듯이 구조론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대전제 하에 출발해야겠습니다. 


인간은 사실 모두들 대칭과 호응을 이용해 맥락적 사고를 하죠. 누구나 이 세상에 덜렁 던져지듯이 태어나 자라다보면 겪는 일들이 있죠. 눈에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주위 흐름이란 녀석에게 어떻게 호응해야 할지 고민할 때. 


새롭거나 기존의 것과 상반된 지식이나 경험을 얻음에 있어서 머릿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정보체계에 어떤 식으로든 호응시켜야 할 때 혹은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정보체계를 손 볼 필요가 있을 때. 


특히 살아가면서 기존에 들고 있던 사고 틀을 흔드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마다 나름 불안함이 해소되어 만족할 수준까진 어떻게든 머릿속을 정리하게 되죠.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나중에 혹은 더 나중의 나중에, 같은 식으로 새로 갖춘 사고 체계 역시 용도폐기해야 할 수 있다는 불안함을 떨쳐버릴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조론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좋든 싫든 인간은 분기점에 서게 됩니다. 염려되어 불안한 구석이 있는 채로 구조론의 부재감을 느낀 채로 어떻게든 깨달음을 갈구하는 구석을 지니며 삶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구조감이라는 맥락을 뇌에서 잘라버려 맘 편하게 생존본능에 자신을 던져버리든가. 전자의 결을 타게 된 인간은 되도록 커다란 세계관을 지향하며 구조적인 사고를 하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시스템을 진보시키는 기의 포지션에 서게 됩니다. 


반면 후자는 주위 흐름에 무의식적으로 쉽게 편승함에 따라 호르몬적으로 점점 구조론의 부재감을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가 없게되어 집단에서 보수 꼴통의 포지션을 맡게 되죠. 분기점마다 어떤 결을 타느냐는 맞닥뜨린 인간에게 있어 그 상황이 장기적 전략을 짤 수 있는 여건인가가 크다고 봅니다. 


즉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 것인가는 그 사람 자체의 타고난 소양도 있겠지만 젊을 적 겪는 환경과 사건 역시 대단히 크다는 것이죠. 만약 환경이 개인에게 당장의 생존전략만을 강요하고 열등감을 안겨주어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면 인간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입장이 되어 당장 사고의 틀을 굳힌 채 달려나가기만 하는 호르몬 상태가 된다는 거죠. 


대표적으로 동렬님이 말씀하신 이문열이 같은 사람처럼 한 번 크게 맥락적인 사고체계와 멀어지게 되는 결을 타버리면 더 이상 겉잡을 수가 없는 거겠죠. 꼭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별 수 없이 묶여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주는 사건을 겪지 않거나 그것이 사람이든 예술이든 인생관을 크게 뒤집을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주위의 어떠한 관계에 기대려 하게 되며 대게 그것들은 쾌락이나 생존본능과 서열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행복감 같은 것들 일겁니다. 


즉, 우선적으로 인간은 주위의 넘쳐나는 관계들에 너무 묶여있지 않아야 하며 그래야지 비로소 살면서 마주치게되는 어색함, 기시감, 신의 시선, 자신의 어리광부리는 모습에 대한 충격 역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봅니다. 


한 번 깨달음의 청량함을 맛보면 그 이전으로는 못 돌아간다고 하죠. 이런식으로 어떻게든 기의 포지션에서 세상을 접하게 되면 그 이후엔 어떤 사건에서라도 통제가능성을 찾아나서는 결을 타게 됩니다. 


꼭 구조론을 모르더라도 이런식으로 흥하는 결을 따라 대가가 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류가 일구는 큰 프로젝트의 팀플레이를 이해하며 집단으로부터 자신에게 유도된 에너지를 예술, 학문, 사회시스템에서의 진보를 통해 승화시켜왔죠. 


하다보니 말이 꽤나 길어졌군요. 한 마디로 일찍이 인간들에게는 구조론에 대한 갈구함이 우리 기준으로는 전반적으로 부족하기에 구조론이 생각보다 널리 퍼지기 힘들었을 거란 얘기였습니다. 


이미 보수화되어 구조론의 부재감을 못 느끼는 인간들은 패스할 수 밖에 없겠죠. 이런 사람들에게 깨달음의 대화에 있는 글을 말로 전해봤자 자신들 입맛에 맞게 고민 해결용으로만 받아들이려 하더군요. 더 큰 세계를 만날 야심 자체가 없어요. 


이미 대가가 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사고 체계로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본인의 철학이 있으므로 옆에 가서 '구조론 한 번 배워보시라' 하는 소리를 감히 누구에게 직접 듣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저는 그들이 어떤 기회를 통해 깨달음의 대화라도 접해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제대로된 일원론을 알아볼 정도 안목은 있을테니 그 포지션에 가 있을테죠. 


실제로 깨달음의 대화의 조회수를 보면 상당하죠. 전 그 독자들 중 이미 어느 분야의 대가들이 상당 수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봅니다. 혹은 이미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세계를 때릴 야심을 가져 훗날 거장이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 안목을 가지고선 꾸준한 독자층을 이루지 않았나 보는 거죠. 


답은 나왔네요. 구조론은 가야할 길을 잘 가고 있습니다. 구조론을 접하지 못했어도 세계를 때려주며 진보로 이끌어가는 대가들은 어차피 우리의 동료다. 이에 더해 만약 그들이 구조론으로 엮인다면 큰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구조론을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 중 뇌의 청량함을 느껴 큰 세계로의 가능성을 본 자라면 이미 도망갈 수 없는 관계에 엮인거다. 그렇기에 구조론 세력에선 머지 않은 미래의 어느 분기점에서 각 부문을 선도할 거장들을 대거 배출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조론 연구소가 출현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즉 이미 연구소 회원분들이나 독자분들은 자신이 접하는 인간들 중 안목을 가늠해 될 성 싶은 나무한테는 구조론에 대해 다 한 번 씩 은연중에라도 찔러보고 가담시켜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괜히 말 꺼냈다가 심한 꼴 보이게 할까 봐서 '좋은 거 남 안 준다'는 생각으로 회원분들이 건드리지 않은 거니 패스. 같은 맥락으로, 구조론을 접하고서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인간은 그냥 미래의 보수꼴통 자리 맡아놨다고 치고 패스. 


구조론이 흥하는 구조가 이미 공간적으로 성립되었으니 남은 건 시간의 호응 뿐. 결국은 널리 퍼지게 될 것이지만 그 때가서 구조론 떠받들어봤자 그런게 어딨음, 우리는 안 쳐줌. 


그리고 나중에 어차피 흥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을 앞서서 발굴해서 흥하게 될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일이 원래 재미보는 부분이므로 그렇게 아쉬워할 것도 없음. 이제 퀀텀님 차례임. 

[레벨:2]현강

2018.01.03 (02:44:52)

제가 댓글을 딥따 길게도 써놨군요. 결론은 소실점을 소실점이라고 부르고 나서 구도가 비약적으로 진보했듯이 인간들이 교육을 덜 받았을 뿐이지, 초등학교 때부터 구조론적 합리적 사고 훈련을 하면 동렬님 같은 사람들이 마구마구 쏟아질 수 있다는 거.


훈련을 시키려면 일단 구조론 세력이 커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서 수상소감 때 구.조.론. 세 글자만 말해주면 됨. 그 때부턴 결따라서 복제.복제.복제 될 것. 


맞다. 위에다가 말은 저렇게 해놨어도 아직 구조론에 닿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저의 경우도 몇 년 전에 누군가 깨달음의 대화를 타 사이트에 게시했을 때 우연히 접해서 구조론연구소까지 길 찾아오게 된거니 말입니다.

[레벨:4]김미욱

2018.01.02 (21:06:58)

지금까지의 모든 철학사를 구조론이 종결하는 듯.
여태껏 없던 새로운 것이라기보단 지금까지 있어온 것들을 제대로 자리매김하여 개념화시켰기에 오히려 새롭습니다. 올해도구조론 화이팅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5]수원나그네

2018.01.02 (21:14:15)

천하 명문입니다~
'21세기 논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8.01.03 (04:45:14)

'구조 코인' ICO 할 때 모두 참여하기요 - 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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