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구조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양은 침투한다.
구조는 역학적 하나다 구조는 별개의 두 부분(部分)이 서로 맞물려 ‘역학적 하나’를 이루는데 따른 질서를 의미한다. 구조는 ‘외력’의 영향에 따라 본래의 둘로 해체되면서 힘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으로 일을 한다. 자연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덩어리’의 구조체를 이루고 있다. 덩어리는 물체이기도 하고, 분자이기도 하고, 원자이기도 하고, 소립자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지만 역학적 환경에 있어서는 ‘하나’처럼 반응한다. 더 작은 개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덩어리가 하나의 단일한 개체와 같은 역학적 반응을 보이는 것을 ‘역학적 하나’라 한다. ‘역학적 하나’는 하나가 아니지만 부분과 부분이 서로 맞물리는 방식에 따라 ‘하나’처럼 행동한다는 점에서 ‘가상의 하나’일 수 있다. 나란히 놓인 두 물체의 한 쪽에 힘을 가할 때 작용과 반작용이 평형을 이루어 두 물체는 외견상 하나의 물체처럼 움직인다. 힘의 방향을 바꾸어주면 물체는 둘로 분리되면서 하나가 아니면서도 하나처럼 행세한 구조를 드러내어 보인다. 구조는 본래의 둘을 외견상 하나처럼 보이게 하는 ‘접점’의 질서, 혹은 그 하나의 덩어리가 본래의 둘로 갈라지는 접점의 형태라 할 수 있다. 외계를 받아들이고 내부를 유지한다 돌로 만든 건축물이 지상에서 그 형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중력 때문이다. 중력이 제거되면 건축의 구조는 와해되고 만다. 모든 건축은 중력에 의해 지구 중심 방향으로 수직적인 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외력의 개입에 의해 그 질서는 와해될 수 있다. 건축구조는 수평적 배열이 일정한 조건 하에서 수직적 질서를 갖는 것이다. 즉 수직으로 가해지는 힘의 방향을 수평으로 바꾸어주는 것이 건축이다. 특히 건물의 층과 지붕이 그러하다. 한편으로 건축은 수평으로 가해지는 힘에 대응하여 수직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건불의 벽과 기둥이 그러하다. 건물의 지붕과 층은 수직적 질서를 수평적 질서로 전환하고, 벽과 기둥은 수평적 질서를 수직적 질서로 전환한다. 힘의 방향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구조는 힘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으로 ‘외계’에 대응하며 닫힌계의 내부를 유지한다. 그 방법으로 구조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일을 한다. 구조로 하여금 일하게 하는 조건은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진다. 구조는 외부에서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여 시간 상에서 일을 진행하는 방법으로 외계와 시공간적 관계를 맺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부에 구조를 가진다.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물이든 외부의 영향을 받아들일 수 없고 내부를 유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구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란 무엇인가? 존재는 언제나 일정한 단위로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여러 개체가 집적하여 하나의 개체처럼 움직인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구조다. 구조가 없다면 존재는 일정한 단위로 집적할 수 없고, 집적하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를 지탱할 수가 없다. 이때 존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에 독립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생명이 생명일 수 있는 것은 생명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듯이 존재가 존재이기 위해서는 ‘존재반응’을 나타내야 한다. 존재반응은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기다. 구조가 없다면 외력에 대응하지 못하므로 존재반응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개체는 구조가 없이 존립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구조는 곧 존재다. 구조의 의미가 그대로 존재의 의미로 된다. 존재란 무엇인가? 내부에 질서를 가지며 그 질서로 말미암아 내부를 유지하고 외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외계와 관계를 맺고 존재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리영역에서 어떤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시공간 상에서 외계와 관계를 맺고 내부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자기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뉴튼의 규명 존재가 존재일 수 있는 것은 외계와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자기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튼의 고전역학이 그 존재와 외계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규명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 관성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한 뉴튼의 운동 3법칙이 성립한다는 것은 존재가 외계의 작용에 어떻게든 대응한다는 것이다. 존재로 하여금 외계에 대응하여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성립시키게 하는 것, 존재로 하여금 내부를 유지하여 관성의 법칙을 나타내게 하는 것, 존재로 하여금 집적하여 덩어리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유인력의 법칙을 가지게 하는 것이 구조다. ● 작용반작용의 법칙 - 외력의 작용에 대응한다. ● 관성의 법칙 - 내부질서를 유지한다 ● 만유인력의 법칙 - 집적의 방법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것은 내부를 유지하고 외력에 대응하며 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것이 곧 존재이며 구조는 곧 존재의 질서다. 구조체의 존재반응 하나의 덩어리 곧 ‘구조체’는 ‘꼭지, 전개, 대칭, 평형, 동그라미’로 되어 있다. 이 중에서 구조의 핵심적 역할은 세 번 째의 대칭으로 나타내어진다. 구조는 곧 대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대칭은 힘의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가진다. 작용반작용의 법칙 혹은 관성의 법칙 혹은 만유인력의 법칙이 성립한다는 것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 어떻게든 힘의 방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만약 힘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밀어도 밀리지 않고, 눌러도 꺼지지 않고,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존재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구조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일을 한다. 구조의 일은 곧 외계에 대응하여 존재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칭은 일의 조건이 변경될 때 일의 형태를 바꾼다. 대칭은 외계에서 전해지는 힘의 강도와 방향을 해석하고 이에 따라 힘의 방향을 바꾸어 전달한다. 평형은 대칭에 그 해석되어야 할 일의 조건을 전달한다. 가해지는 외력의 방향과 크기와 속도를 해석하여 전달한다. 또 동그라미는 외부에서의 힘의 개입을 받아들인다. 동그라미 - 외계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받아들인다. 평형 - 내부를 유지하고 받아들인 외계의 조건을 저장한다. 대칭 - 외계로부터의 조건을 해석하여 내부질서를 바꾸도록 명령한다. 전개 - 명령된 내용에 따라 현재의 시간 상에서 일을 진행한다. 꼭지 - 진행된 일을 다시 외계에 나타낸다. 구조는 출입문을 가지고 있다. 출구와 입구는 별도로 존재하며 입구와 출구가 그 역할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 동그라미가 입구이고 꼭지가 출구이다. 동그라미와 꼭지 사이에는 평형, 대칭, 전개가 있다. 입력(받기).. 동그라미(질).. 외계에서 가해지는 힘의 입구가 된다. 저장(쌓기).. 평형(입자).. 들어온 힘을 모아서 일정한 단위로 묶는다. 제어(틀기).. 대칭(힘).. 묶인 힘의 크기를 해석하여 내부질서를 바꾼다. 연산(풀기).. 전개(운동).. 변화된 질서를 시간상에서 풀어서 배열한다. 출력(주기).. 꼭지(량).. 변화된 질서를 외계에 나타내는 출구가 된다. 구조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 힘의 방향을 바꾸는 1 단위가 된다. 구조의 각 ‘구성요소’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내부적으로 이를 구성하고, 시간 상에서 일을 진행하고, 또 바깥에 전달한다. 존재는 구조이고, 구조는 일하며, 일은 힘의 방향을 바꾸기다. 일은 일정한 조건을 필요로 하며 그 조건은 반드시 외부에서 주어진다. 내부에 그 조건을 해석하는 각 단계의 구성요소들이 존재한다. 구조는 외부의 개입에 의해 일정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때 그 조건들을 해석하여 내부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이를 다시 외부로 되돌려 보낸다. 역학적 구조와 물질적 구조 구조는 역학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구조를 물질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구조는 어떤 개체가 아니라 그 개체가 다른 개체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존재하되 그 존재는 우리가 통념으로 말하는 그 존재는 아닌 것이다. 물질적 존재는 손으로 만져지는 것, 느낌이 딱딱한 것, 일정한 공간의 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 물질운동의 시간성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조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므로 구조 그 자체로는 만져지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으며,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대신 물질적 존재로 하여금 만져지게 하고, 딱딱하게 하며,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게 하고 현재시간에 대응하게 한다. 구조는 어떤 개별적인 물체나 사물에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물질적 개체가 서로간에 관계를 맺는 조건 그 자체로서의 존재이다. 역학적 구조는 ‘점, 선, 각, 입체, 공간’의 다섯 가지 차원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각각의 역학적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세 번째 각(角)은 우리가 흔히 면(面)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그러나 역학적 구조의 세계에 각은 있어도 면은 없다. 면은 인간의 착각에 불과하다. 역학적 구조는 작용반작용의 원리에 따라 거울에 비친 ‘역상’의 반전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사물에서 관찰하는 구조는 실은 거꾸로 보는 것이다. 빛의 3원색과 색의 3원색이 있다. 빛은 더할수록 희고 색은 더할수록 검다. 빛과 색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다. 그러나 허상이다. 실상으로 말하면 다만 빛이 존재할 뿐 색은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인간의 착시다. 색이 거울과 같이 ‘반영(反影)’되기 때문이다. 구조 역시 착시를 낳는다. 물질적 구조는 역학적 구조를 뒤집어 반영(反影)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각은 있고 면은 없다. 역학적 구조의 세계에서는 모든 운동이 직선운동이다. 원운동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원(圓)은 무한각이다. 즉 원은 각(角)의 무한집합인 것이다. 역학적 구조는 ‘점, 선, 각, 입체, 공간’이 0,1,2,3,4차원을 이룬다. 공간 이상의 구조는 없으며 5차원 이상의 차원은 없다. 5차원 이상의 세계가 없는 이유는 역학적 구조의 전개가 0,1,2,3,4로의 전개가 아니라 실상 4,3,2,1,0으로의 전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조를 뒤집어 반영(反影)으로 보기 때문에 0,1,2,3,4의 전개로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5차원 이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는 잘못이다. 차원은 질서다. 질서는 일의 질서다. 일은 입력에서 출력까지 1사이클의 주기성을 가진다. 입력은 4차원에서 일어난다. 3,2,1,0차원의 순서대로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1사이클이 완결된다. 5차원 이상이나 0차원 이하는 없다. 차원은 동그라미를 이룬다. 동그라미는 처음과 끝이 다시 만나기 때문에 동그라미다. 일은 4차원에서 시작하여 0차원으로 끝난다. 높은 질서의 일에서 0차원은 더 낮은 질서의 일에서 다시 4차원으로 환원된다. 질서의 높고 낮은 단위에 따라 0차원이 곧 4차원으로 환원되므로 질서는 일정한 순환의 패턴을 나타낼 뿐 더 이상의 복잡한 질서는 없다. 하나의 동그라미 내부에서 구조는 4차원에서 가장 높은 질서를 가지며 0차원에서 가장 낮은 질서를 가진다. 그 이상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고 그 이하의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점 보다 낮은 질서는 없으며 공간보다 높은 질서도 없다. 정교한 기계장치나 생명체들은 고도의 복잡한 질서를 가지지만 중복을 제거했을 때 기관이나 조직과 같은 높은 단위의 질서가 4차원에서 출발하여 0차원에서 완결되기 까지 완전히 해체되어 낱낱의 부품으로 쪼개졌을 때, 그 분해된 개체가 다시 각각의 일에서 4차원의 질서를 가지는 것으로 동일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비유하면 초등학교 6학년이 중학교 1학년으로 되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높고 낮은 단위의 질서를 나타낸다. 역학적 구조에서는 4학년으로 입학하여 차례로 학년이 낮아져서 0학년으로 졸업하면서 동시에 더 낮은 단위의 질서에서 4학년으로 입학되는 형태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 구조는 만질 수 없다 물체는 접촉할 수 있고 물질은 만져볼 수 있지만 역학적 구조 그 자체로는 만질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다. 단지 추상적인 개념으로 파악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학적 구조가 반영(反影)된 물질적 구조를 관찰할 수 있다. 거꾸로 비친 모습이긴 하지만 우리는 물질적 구조를 보고 추론하여 역학적 구조를 판단할 수 있다. ● 꼭지, 전개, 대칭, 평형, 동그라미 ● 점, 선, 각, 입체, 공간 ● 0, 1, 2, 3, 4(차원) ● 출력, 연산, 제어, 저장, 입력 위 순서는 반대이다. 존재는 자연에서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의 순서대로 전개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은 자연을 반영(反影)하여 부분에서 전체로 귀납하므로 인식의 편의에 따라 여기서는 반대 슨사로 설명한다. ‘꼭지’의 점(點)은 두 구슬이 마주치는 접점이다. 점(點)은 자연에 실재하지 않는다. 물질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이 위에 그려놓은 점은 진짜 점이 아니다. 그것은 점을 나타내는 부호일 뿐이다. 인간은 점을 눈으로 볼 수 없다. 단지 주변의 물리적 관계를 유추하여 점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두 구슬이 마주칠 때 그 마주치는 접점이 존재한다. 그 점의 크기는 0이다. 크기가 0이므로 보이지 않는다. 크기가 0이므로 종이 위에 그려 나타낼 수 없다. 역학적 구조는 다만 동그라미 안에서 ‘역학적 하나’를 이룸으로 하여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개’의 선(線)은 마주친 두 구슬 중 하나가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동선이다. 이때 구슬은 곡선으로 움직이지만 구슬의 표면에는 직선이 성립한다. 역학적으로 볼때 그 선은 분명히 직선으로 성립하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선은 곡선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원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또 직선운동을 곡선운동으로 전환할 수 있다. 피스톤의 원리가 그러하다. ‘대칭’의 각(角)은 두 힘이 작용과 반작용의 대칭을 이룬 채로 하나의 중심점에 맞물려 있는 형태이다. 이 때 대칭은 그 두 힘의 맞물림 그 자체를 의미한다. 위사(緯絲)와 경사(經絲), 곧 가로선과 세로선의 얽힘이 아니라 가로와 세로의 접점에서 수직방향으로 힘이 꺾이는 성질 그 자체를 의미한다. 두 개의 힘이 충돌할 때 힘은 90도 각도로 꺾여 수직방향으로 전개하는 성질을 갖는다. ‘평형’의 입체(立體)는 두 힘의 맞물리는 접점에서 성립한 바 90도 방향으로 꺾인 가상의 힘을 포함한 네 방향의 힘이 계의 평형을 이루어 그대로 유지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이때 수직으로 꺾인 성립한 가상의 힘은 최초의 맞물린 수평의 두 힘이 자기복제된 바 가상(假象)의 존재이므로, 수평으로 성립한 본래의 힘이 사라질 때 동시에 사라지는 ‘쌍발생과 쌍소멸의 법칙’이 성립한다. ‘동그라미’의 공간(空間)은 평형에서 접점이 성립하는 중심과 그로부터 꺾여 전개한 주변 사이에서 성립하는 밀도차로 존재한다. 평형은 대칭으로 맞물린 두 힘이 자기복제하여 수직방향으로 전개한 가상의 힘을 성립시키므로 그 힘의 중심점이 더 높은 밀도를 가진다. 여기서 가상의 힘은 본래 힘에 종속하여 연동(聯動)하므로 그로부터 새롭게 힘을 복제할 수 없다. 동그라미는 이때 밀도가 높은 각(角)의 중심이 밀도가 낮은 각의 주변을 지배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자기복제 원리 역학적 구조의 핵심은 대칭원리다. 대칭은 세 번째 각(角)에서 성립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맞섬에 의해 두 힘이 대칭을 이룰 때 직각박향으로 복제된 힘이 하나 더 만들어진다. 두 개의 힘이 네 개의 힘으로 복제되는 것이다. 이때 쌍소멸과 쌍발생의 법칙에 의해 최초의 힘이 가상의 힘을 지배한다. 이러한 복제의 원리에 의해 정보의 저장기능이 성립한다. 동그라미의 1 사이클이 전개되는 바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에서 두 번 째 입체(立體)의 저장기능은 이러한 자기복제 원리에 의해 탄생하고 있다. 또 이 원리에 의해 물질은 가지를 치고 집합을 이룰 수 있다. 나무가 가지를 친다든가 조직의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거느린다든가 상부기관이 하부조직을 지배하다든가 하는 따위는 모두 이러한 구조체 자기복제에 따른 정보의 저장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구조가 외력에 대항하여 내부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 원리 때문이다. 물질이 인과율에 따라 부분과 전체 사이에 서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도 역시 이 원리에 의한 것이다. 만약 이 원리가 없다면 물질은 가지를 칠 수 없고 그러므로 집적될 수 없고 따라서 소립자나 원자나 분자와 같은 형태로의 구조체 덩어리를 이룰 수 없다. 모든 존재는 일정한 형태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중심에 집적되기 대문이고, 집적되는 이유는 역학적 구조가 자기복제하여 하나에서 둘로 산술적인 배증을 이루면서 그 과정에서 얻은 잉여를 손발로 하여 서로를 붙잡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