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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257 vote 0 2013.03.24 (23:23:14)

      바른 명상법


    수행
    기도, 염불, 108배와 같은 절하기, 라마교의 마니차 돌리기, 채소밭 가꾸기 등의 육체노동, 태극권과 같은 무술수련, 그 외에 요가, 음악연주 따위의 어떤 육체적 행위를 동반한 수행이 모든 명상의 기초가 된다.


    종교의 계율을 지키는 행위도 이 범주에 속한다. 불교의 차 마시기, 향 피우기, 회교 시아파 수피즘의 세마 춤추기, 기독교의 금욕, 금식, 할례, 토굴수행 따위가 있다. 이들은 어떤 황홀경의 영적체험을 기대한다.


    사마타(지, 止)
    잡념을 막고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깊이 몰입하는 삼매(사마디, 정, 定)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빠사나(관, 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의 전체과정을 분석적으로 관찰한다. 사마타로 삼매에 이른 다음 생성과 소멸의 사이클, 곧 자연의 완전성을 포착한다. 자연의 완전성에 반영된 패턴에서 입체적 모형을 탐구한다.


    간화선(禪)
    자연의 패턴을 통합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직관이다. 직관을 불러내는 단서가 되는 화두를 들고 그것을 해결하여 타파한다. 화두는 어떤 일의 전체과정에 대한 모형이며 모형은 어떤 구조적 모순을 반영한다.


    모순의 극복은 관점의 이동으로 가능하다. 관측자의 포지션을 깨달음으로써 선형사고에서 입체적 사고로 비약할 때 화두는 타파된다. 선형사고는 작용과 반작용이 선 상에서 교착되는 흑백논리-이분법적 사고다.


    화두의 타파는 선형사고를 극복하는 입체적 사고로 가능하며, 그것은 서술형사고를 극복하는 모형적 사고이다. 모형을 얻을 때 사건은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비약하며 모형은 에너지의 순환경로를 반영한다.


    직관적 모형
    명상하려면 몸이 반응해야 한다. 몸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은 자연의 패턴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이 말하면 집중하게 된다. 자신의 잊혀진 추억을 다른 사람의 시(詩)나 노래에서 발견하면 기쁘다.


    참된 명상은 그러한 뇌의 물리적 반응에 기초하며 그 반응은 사건에 관측자를 투입하여 포지셔닝한 모형적 사고에서 얻어진다. 모형적 사고를 하려면 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메커니즘이다.


    존엄, 자유, 믿음, 사랑, 이상과 같은 추상적 단어에는 ‘A가 이렇게 되면 B가 이렇게 된다’는 관계식을 품고 있으며 그것은 모형으로 기능한다. 물리학의 표준모형처럼 존재의 보편적인 모형이 존재한다.


    정답은 르네상스 시대의 소실점(원근법),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들어 있다. 공식에 대입하여 산수문제를 풀어내듯 모형에 대입하여 풀어내는 명상이 진짜다. 모형은 직관력에 의해 포착된다.


    모형의 기본은 인과율이다. 석가의 연기법과 사성제, 탈레스의 물 일원론, 퇴계의 이원론, 율곡의 일원론, 유교의 주역과 원형이정, 음양론과 오행론,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유물론도 모형의 일종이다.


    구조론은 완전한 모형을 제시한다. 그것은 귀납적 사고를 극복하게 하는 연역적 사고다. 모형없는 사고는 없다. 모든 사고는 모형에 기초하며 단지 낮은 단계의 모형이냐 제대로된 모형이냐의 차이 뿐이다.


    그냥 생각해서 답을 찾는 경우는 없으며 대개 경험에 기초한 원시적인 모형에 짜맞춘다. 그 모형은 대개 고저, 장단, 원근, 상하, 시종, 강약, 음양, 길흉과 같은 이항대립의 서술구조로 되어 있다.


    ◎ 원시모형 – 원인과 결과의 상호작용 쌍

    ◎ 입체적 모형 – 원인과 결과의 상호작용/관측자(에너지)


    경험에 기초하는 원시모형에는 관측자의 포지션과 에너지의 순환개념이 빠져 있다. 원시모형에 관측자 혹은 에너지를 투입할 때 입체적 모형이 획득된다. 화두는 깨지고 위빠사나와 사마타는 전개된다.


    명상의 발달


    ◎ 수행
    ◎ 사마타
    ◎ 위빠사나
    ◎ 간화선
    ◎ 직관적 모형


    명상의 발달단계는 수행≫사마타≫위빠사나≫간화선≫직관적 모형이나 이러한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순서는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인간이 명상을 이해하는 단계이다.


    문제는 인간의 귀납적 사고다. 실패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라야 한다. 명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명상한다면 가짜다. 마음이 상황을 만나 생각을 일으키는 순서대로 가야 한다. 결대로 가야 한다.


    실제로는 모형의 직관≫간화선≫위빠사나≫사마타≫수행의 순서다. 모형을 모르는 상태에서 우연히 모형이 떠올라 약간의 성과를 얻는 식이기 때문에 그 모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서 거꾸로 된 것이다.


    ◎ 질 - 직관적 모형
    ◎ 입자 - 간화선
    ◎ 힘 - 위빠사나
    ◎ 운동 - 사마타
    ◎ 량 - 수행


    명상은 두뇌의 흥분에 따른 쾌감에 의한다. 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직관이다. 직관은 자연의 기승전결로 전개하는 패턴에서 모형을 포착한다. 모형은 입체적 모형이며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A면 B다’ 하는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이 모형에 숨어 있다. 이를 일어난 사실에 대입하여 독립적 사건으로 풀어내는 것이 참된 명상이다. 이때 사건에 관측자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중요한 테크닉이다.


    ◎ 모형은 사실에서 사건을 도출한다.
    ◎ 사실은 흩어진 여러 단서들이고 사건은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다.
    ◎ 흩어진 단서를 모으는 것은 관측자 또는 에너지다.
    ◎ 관측자의 이동과 에너지 흐름에 따라 연동됨을 본다.


    관측자가 없으면 빛에 연동되어 그림자가 생기는게 아니라 그림자가 원래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빛과 그림자는 쌍이다. 경험과 재현도 하나의 쌍이다. 경험이 재현되며 쌍의 짝짓기가 일어날 때 전율한다.


    이때 A와 B의 일치, 원인과 결과의 호응, 작용과 반작용의 반응, 질문과 대답의 대칭, 시작과 끝의 일치, 노력과 보상의 합일에서 전율하는 마음의 하이파이브가 일어날때 쾌감을 얻는다.


    쾌감에 의해 집중하여 사마디의 지(止)에 이르면 진짜다. 느낌이 없는데 억지로 육체적 고통을 가하고 그것을 쾌감으로 착각하는 수행은 가짜다. 대부분의 수행은 명상없이 억지 쾌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금욕, 금식, 할례, 신체절단, 목욕금지, 눕지않기, 잠 안자기 등의 극단적인 신체자극을 추구하거나 무술수련, 호흡조절, 기도, 노래, 춤과 같은 예술에 준하는 활동 혹은 엄격한 계율의 실천을 추구한다.


    이는 본질에서 샤먼의 무아지경이나 무속인의 신내림, 굿판, 기독교의 은혜받기, 방언하기와 유사한 준정신질환 또는 신경증이다. 이들은 일종의 정신병적 황홀경 상태에 도달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명상의 쾌감은 직관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다른 방법으로 그런 느낌을 얻으려는 노력은 어리석다. 중요한 점은 구조론의 결인 질≫입자≫힘≫운동≫량의 절차를 따르지 않고 량에 바로 도달하려 한다는 점이다.


    양은 침투한다. 수행은 육체에 무언가를 침투시키려는 것이다. 사마타 역시 접근방법이 잘못되어 있다. 명상을 해서 사마디에 이르는 것이지 사마타를 해서 사마디가 되는 일은 없다. 대개 머리에 힘 주고 있다.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자기를 학대하여 쾌감을 느끼려 한다. 정신나간 상태가 되면 무아지경의 체험이라며 만족해 한다. 기독교의 ‘은혜 받는다’는 주술이나 무속의 신내림 현상과 다를바 없다.


    위빠사나는 관찰이다. 생성과 소멸의 완전성을 순서대로 관찰한다. 관찰하려면 관찰대상이 있어야 한다. 화두가 있어야 위빠사나가 가능하다. 화두가 없이 그냥 관찰은 수준이 낮다.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포착하려면 먼저 그 이치를 알고 있어야 한다. 직관의 모형을 가진 깨달은 사람만이 위빠사나를 할 수 있고, 위빠사나를 통해 사마타에 이르며, 사마타를 통하여 수행이 되는 것이다.


    간화선은 입자가 있다. 입자는 패턴이다. 관(觀)은 생성과 소멸의 완전성을 탐구한다. 완전성의 단서가 화두다. 모퉁이길에서 돌출한 뿔을 보았다면 그 뒤에 숨은 소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관측자의 포지션이다. 관측자의 포지션이 고정되면 모순이 성립하여 선형사고의 한계에 갇힌다. 화두를 깨는 것은 모순을 깨는 것이며 이는 관측자의 포지션을 깨닫는 것이다.


    관측자는 에너지로 대체된다. 정지해 있는 공은 앞도 없고 뒤도 없다. 그러나 공이 회전하면 앞과 뒤가 생긴다. 회전력이 에너지다. 지구에서는 달 뒷면을 볼 수 없다. 달이 한 달에 한번 자전하기 때문이다.


    달의 자전을 알아채려면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달 뒷면을 보아야 한다. 자기가 사물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관이다. 이때 달을 회전시키는 만유인력의 존재가 곧 에너지다.


    버스 안의 파리가 버스가 달린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면 버스 밖으로 나가보아야 한다. 관측자의 포지션을 바꿈으로써 사건의 전모를 보게 될 때 화두는 깨진다. 역시 관측자가 에너지 역할이다.


    관측자의 포지션을 바꿀 때 소실점을 발견하고,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기승전결의 전체과정을 발견하고 완전성을 발견한다. 그러한 포지셔닝 없고 포메이션 없는 막연한 간화선은 실패다.


    그냥 화두를 든다고 들어지는게 아니다. 연장을 써야 한다. 도구가 있어야 한다. 공식에 맞추어 풀어야 한다. 참된 깨달음은 직관을 쓰며 인간의 직관은 자연의 패턴에 대응한다. 둘은 대칭된다.


    ◎ 자연의 패턴 ↔ 인간의 직관


    패턴은 시작과 끝, 원인과 결과, 질과 양, 빛과 어둠, 앞과 뒤, 생성과 소멸처럼 짝지어진 둘을 평면상의 선으로 이해하지 않고 거기에 관측자의 포지션을 포함한 입체적 구성으로 비약시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에 에너지를 투입하면 평면에서 입체로 비약한다. 서술에서 이미지로 차원을 올라선다. 그럴 때 메커니즘이 포착되고, 상호작용이 포착되고 상부구조가 확인된다. 장(場)이 파악된다.


    에너지의 진행경로가 확인된다. 전체가 한 줄에 꿰어진다. 수영장에서 발이 바닥에 닿을 때의 뻑적지근하게 차오르는 충일감을 느끼게 된다. 뿌듯하고 당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피아구분의 장벽이 없어지고 세상과 하나가 된 전일적인 느낌을 얻게 된다. 느낌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다. 거짓 느낌을 얻으려고 육체의 활동을 수반하는 어떤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수행이다.


    기도를 하든, 삼천배를 하든, 태극권을 하든, 찬송을 하든, 금식을 하든 모두 가짜다. 무엇보다 존재에 대한 개념을 잡아야 한다. 대개 입자에 빠져 있다. 입자는 가짜다. 존재는 에너지며 에너지는 동(動)이다.


    입자는 정(定, 사마디)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관측자가 있다. 정(定, 사마디)의 입자에 관측자를 투입하여 동(動)을 끌어낼 때 존재는 일어선다. 그럴 때 낳음의 자궁은 세팅된다. 그래야 진짜다.


    말은 동(動)이나 그 말을 탄 기수는 정(定, 사마디)이다. 말을 타지도 않고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정(定, 사마디)타령을 하면 가짜다. 명상이 고요함이나 편안함, 마음의 이완된 상태를 추구하면 가짜다.


    진짜는 파도를 타는 서퍼와 같다. 고요하지만 고요하지 않다. 맹렬하다. 에너지가 있다. 기승전결이 있다. 진정한 고요함은 대상을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권에 의지한다. 창작자는 고요하고 표절자는 분주하다.


    우주왕복선이 우주정거장에 도킹할 때의 고요가 진짜다. 멈추어야만 관측자를 태울 수 있다. 멈추어야만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다. 달리는 자동차도 주유소에 서야만 기름을 넣을 수 있다.


    그냥 서 있는 것은 고장난 거다. 달리면서 아기를 낳을 수 없다. 진정한 것은 탄생의 고요함이며 그것은 매우 격렬한 것이다. 그것은 정(定)이 아니라 혜(慧)다. 혜는 관측자가 있고 에너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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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배기를 깨달으면 명상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총을 만들었다면 다음엔 그 총을 쏘아야 합니다. 계속 총을 만들고 있다면 아직 총을 만들지 못한 것입니다. 계속 명상하고 있다면 명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명상의 결과물을 제시하면 됩니다. 그 결과물은 영화도 될 수 있고, 시도 될 수 있고, 음악도 될 수 있고, 패션도 될 수 있고, 친구도 될 수 있고, 여행도 될 수 있고, 삶도 될 수 있습니다. 풍성해져야 진짜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25 (09:46:35)

글 잘읽었습니다.

 

다만 할례는 포경수술인데, 유대인들은 나은지 8일된 남아에게 시행하므로 수행의 모습이 될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그건 좀 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방언 추구, 은혜를 받는 것, 토굴 수행, 금식, 황홀경 체험 등을 주술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금식을 수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건 아주 과학적이며,

장청소라든가, 피를 정화시키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요즘에는 금식도 100% 음식을 안먹는 절식이 아니라,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단위 기간 동안에 섭취하지 않는 방식 즉 부분 금식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얼마전에 베스트 셀러가 된 요시노리가 지은 일일일식도 금식의 한 차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명상보다는 묵상을 좋아합니다.

이걸 Devotional 혹은 reflection이라 표현하는데,

글쓰기 - journaling 이라든가

진리를 올바로 분변하는 (Discerning) 과정을 통해 삶을 통찰해 보는 지적인 반추과정이라 보시면 됩니다.

 

소위 말하는 명상을 통해 자기를 비운다는가, 뭔가 황홀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독대하는 과정이라 보면 좋겠지요.

 

요즈음에는 동일한 Text를 가지고 여러사람이 자신들의 이해, 경험, 진리 발견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것은 집단지성, 집단지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과도 아주 유사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을 함께 논할 때는 group counseling 효과도 있구요.

 

개인의 직관 - 반추 - 집단과 정보 나눔 - 분변/판단/소통 - 집단 지성으로 연결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25 (10:22:35)

오독이십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명상의 범주 안에 있는 의미있는 수행이 아니라

무술, 기예, 다도 등 일체의 종교적 혹은 유사종교적인

육체 및 정신적, 생리적인 욕구에 대한 금압 또는 안정 혹은 교류나 합일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하며

여기에는 할례, 성인식, 문신새기기, 번지점프와 같은 1회의 주술적 행위도 포함됩니다.

번지점프도 원래는 성인식이며 신과의 합일을 꾀하는 의식입니다.

고대 신라에는 등에 꼬챙이를 꿰어 통나무를 매달고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는 성인식이 있었습니다.

할례는 본래 신과의 교류를 꾀하는

종교적 의식의 이유에서 시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포경수술은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요.

요즘 아프리카 등에서 문제되는 할례는 주로 여자의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 도달하여야 할 것을

명상이 아닌 방법으로 추구하는 일체의 유사 신접행위를 말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25 (11:07:16)

바른 명상법이란 제목에서 읽었듯이 오독은 아닙니다.

의미있는 수행을 추구해야 올바른 명상인 것은 알겠고요.

말도안되는 여자 할례식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한 할례는 유대의 할례에 국한 했던 것이고,

금식과 할례를 기독교에 국한해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사실 종교라는 틀 안에서 행해지는 의식 중에 원래 인간의 존엄을 제대로 살리는 건 많지 않지요.

 

그래서 바른 명상을 해야하는 것이겠구요.

 

개인적으로 종교 집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이나,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행해지는 여러 종류의 콘서트를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느낌은 결과일뿐 목적이 아니란 말씀 동감합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묵상하고, 제대로 믿으라고 하는데,

이를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보지 못하니까, 듣지 못하니까 깨달음이 올 턱이 없지요.

 

지금이 어떤 세대인데 여전히 신접을 추구하려드는지.

이미 신과 독대하고, 인간이란 존재 안에 신의 형상이 충만한 것을........

뭔가 인생이 허접해 보이니 신접을 원하는 거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3.25 (11:15:24)

아프리카에서

할례를 하다가 죽는 소녀가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할례를 할까요?

신을 접한 사람과 접하지 않은 사람으로 카스트가 갈라지는 것이며

할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신과 교류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쳐서

불가촉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하지 않으면 부족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할례는 매우 중요한 수행의 절차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3.25 (20:23:33)

그렇지요. 구분하기 위함이지요. 종교의 의식이라는 것은 in 이냐 out이냐를 명확히 하기 위함이지요.

 

제가 갖고 있는 신과 믿음에 대한 생각은

신은 force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사람들은 신을 ultimate power 최고의 권력으로 만들어 놓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신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위한답시고 자신들이 control 하는 것이죠.

하등 종교일수록 그렇고, 고등 종교일수록 공개되어 있지요.

 

수치심

죄의식

슬픔

후회

두려움

욕망, 집착

분노, 미움, 화

모멸감 등을 느끼게 하면서 조작한다고 보면 됩니다.

 

집단의 룰을 만들어 강요하는 건 전혀 인간적이지도 신적이지도 않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니까요.

 

아프리카 할례 뿐 아니라, 여기 저기 종교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은 매우 중요한 수행의 절차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8일된 남자 아이의 할례를 이야기 한 것은 외부의 압력과 수행과 상관없이 자의성이 전혀 없이 행해지는 것이라서 언급한 겁니다. 수행이라함은 어쨌든 성인이나 어떤 연령 층에 도달해야 하는데 유대인의 할례의 경우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선교에 획을 그은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라는 책이 있는데,

동렬님의 말씀하시는 입장과 통하는 면이 많습니다.

 

이번 글의 제목 "바른 명상법"에 이미 답이 제시되어 있다는 거 잘 압니다. ^^

고맙습니다.

[레벨:3]낙오자

2013.03.25 (12:23:11)

관측자의 포지션을 바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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