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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345 vote 0 2008.12.29 (12:50:54)

 ● 응용

구조주의 교육론

구조주의 경제학

구조주의 미학

구조주의 진화론

구조주의 양자론

 

구조론은 문제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제공한다. 세상 모든 문제는 얽혀서 일어났으므로 풀어서 해결할 수 있다. 풀어내는 절차가 프로세스다. 프로세스를 알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구조론은 이론적 확신을 준다. 정답은 있다. 분명히 있다. 프로세스는 나와 있다. 절대경로는 확실히 밝혀졌다. 단지 최단시간, 최소비용으로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느냐는 상대경로가 관건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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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랄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한 때는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도 백 년이나 뒤의 일이다. 콜롬부스는 그의 산타마리아호에 오르기 전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이가 그의 주장을 철회하고 있을 때도, 어부들과 항해사들은 이미 지동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강단학자들의 이론싸움과 무관하게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타당한 이론은 학자의 골방에서 증명되기 전에 현장에서의 효용성에 의해 먼저 입증된다. 구조론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이미 활용되고 있다. 각론의 오류가 있겠으나 총론에서는 이미 검증되었다.

경영가는 시장의 구조를, 예술가는 소통의 구조를, 리더는 조직의 구조를, 교육가는 창의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모든 움직이고 진보하는 것, 작동하는 것, 프로세스가 필요한 것에 구조론은 응용된다.

구조주의 교육론

창의의 구조

교육의 핵심은 창의다. 창의는 다르게 생각하기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가? 다름은 같음의 전제 안에서의 다름이다. 색깔이 다르다면 흑백이 아닌 컬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맛이 다르려면 음식이 있어야 하고, 냄새가 다르려면 향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이 다르다는 것은 하나의 구분지와 구분대상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다음에서 아래가 다르다면 위가 같다는 뜻이다.

● 낳기    - 이다/아니다

● 하나되기- 있다/없다

● 짝짓기  - 같다/다르다

● 맞물리기- 옳다/그르다

● 만나기  - 맞다/틀리다

같고 다름은 구조가 물린 수준에 따라 다섯 층위의 계급을 가진다. ‘맞다/틀리다’는 가장 낮은 표면의 같고 다름이다. 점점 더 깊숙이 맞물려 들어서 최종적으로 ‘이다/아니다’의 소통구조에 도달한다.

‘이다/아니다’는 근본적인 질의 판별이고 ‘맞다/틀리다’는 말초적인 양의 판별이다. 둘 사이에 또 입자와 힘과 운동의 판별이 있다. 양의 다름이 모여 운동의 다름을, 운동의 다름이 모여 힘의 다름을 이룬다.

이러한 집적구조를 모르면 결코 다름을 끌어낼 수 없다. 다름을 끌어내지 못하면 창의할 수 없다. 미학을 모르는 소년들이 제각기 개성을 추구하지만 도리어 지나친 개성추구라는 몰개성에 빠져버리는 격이다.

하위 단계가 다르려면 상위 단계가 같아야 한다. 모양의 다름을 추구하면 모양을 잘 내는 소재로 획일화되고, 색상의 다름을 추구하면 색을 잘 받는 소재에 의해 획일화된다. 다르려 할수록 같아져 버린다.

머리를 빨갛게 물들이든 노랗게 물들이든 울긋불긋 하나로 몰개성, 바지를 찢어입든 뒤집어입든 키치패션 하나로 몰개성이다. 겉모습의 다름을 추구하는 한 진정한 다름에 도달하지 못한다.

소재≫기능≫성능≫효능≫디자인의 1 사이클이 있다. 외양의 다름을 추구하면 디자인에 몰입하여 획일화된다. 소재와 기능과 성능과 효능에서 달라야 진정한 창의가 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소재가 진짜다.  

디자인의 다름은 쉽다. 효능으로, 성능으로, 기능으로, 소재로 수준이 올라갈수록 다름을 끌어내기 어렵다. 그러나 한 번 성공하면 완전히 달라진다. 근본적인 차별화가 가능하다.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하다.

절대경로의 차별화와 상대경로의 차별화가 있다. 절대경로는 소재≫기능≫성능≫효능≫디자인의 계급순서다. 절대경로는 연동의 법칙이 적용된다. 소재의 다름은 근본적으로 레벨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것이다.

소재를 바꾸면 환골탈태 수준으로 완전히 바뀐다. 소재의 변화에 연동되어 기능이 달라진다. 기능이 바뀌면 성능이 바뀌고, 성능이 바뀌면 효능도 바뀐다. 무수한 다름을 대량복제할 수 있다.

상대경로는 짝짓기다. 그것은 일하는 것이다. 절대경로의 차별화가 부모가 다르고 족보가 다르고 출신성분이 다른 것이라면, 상대경로의 차별화는 파트너가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직업이 다른 것이다.  

짝짓기는 포지션이다. 승부에 임하여 공격수와 수비수로 역할이 다른 것이 상대경로의 차별화다. 포지션이 있는 이유는 대결할 상대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결하지 않으면 상대경로의 다름은 얻어지지 않는다.

절대경로의 차별화는 탄생시점부터 선천적으로 결정되고, 상대경로의 차별화는 어떤 상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후천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세상 앞에서 어디에 대척점을 세우느냐가 중요하다.

뛰어난 디자이너라 해도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면 진정한 창의에 성공할 수 없다. 앙드레 김의 의상이 연예인의 기호와 맞아도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얻지 못하여 문화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함과 같다.

밤과 낮은 대칭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대칭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다. 반드시 대립각을 얻어야 한다. 나아가 세상과 만나고, 세태와 맞서지 않으면 진정한 창의는 얻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창작품은 시대와의 충돌에 의해 얻어진 상흔과도 같다. 대중이 슬픔에 빠져 있는데 홀로 행복한 서태지는 입지가 없다. 부단히 맞서고, 집요하게 대응하고, 무수히 충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의는 차별화로 가능하다. 사장≫단장≫감독≫코치≫선수의 수직적 차별화가 절대경로 차별화라면, 공격수와 수비수의 수평적인 역할분담은 상대경로 차별화다. 이러한 구조를 모르고 창의할 수 없다.

상대경로의 창의는 짝짓기다. 짝짓기는 대결이다. 암수의 짝짓기는 암수의 대결이다. 사랑은 대결이다. 당신이 예술가가 되고자 한다면 역사와 대결해야 하고, 시인이 되고자 한다면 역시 시대를 고민해야 한다.  

대결한 만큼 사랑한다. 그러한 고민이 없는 막연한 다름의 추구는 너절할 뿐이다.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그 너절함, 어수선함, 산만함으로 획일화된다. 시대의 격랑 속으로 몸을 던지지 않는 자가 가짜다.

이상주의란 무엇인가?

모든 아이디어들은 그 아이디어의 자궁에서 쏟아져 나오는 법이다. 그냥 창의한다는 따위는 없다. 반드시 모태가 있고 자궁이 있다. 서구의 사상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라는 두 자궁에서 복제되어 나왔다.

근본은 헬레니즘이다. 그 이상주의다. 서구 합리주의 정신은 고대 수학과 그리스의 이상주의가 결합하여 낳은 것이다. 창의의 수준은 이상주의의 수준이다. 창의할 수 있느냐는 참된 이상주의가 있느냐에 달렸다.

이상주의란 무엇인가? 완전성에 도달하려는 태도다. 왜 완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완전해야 소통되고 소통되어야 짝찟고 짝지어야 낳기 때문이다. 그래야, 창발성있는 아이디어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계가 있다. 입력에서 출력까지 있고 시작에서 끝까지 있고 인풋에서 아웃풋까지 있다. 그것이 완성될 때 소통한다. 완전한 종은 울음을 토하고, 완전한 피리는 소리를 내고, 완전한 꽃은 향기를 낸다.

완전하지 못한 씨앗은 싹트지 않는다. 제 역할을 못하고 죽는다. 무릇 인간의 창의란 그 완전성의 경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스의 이상주의는 다신교 사회였던 고대 헬레니즘 세계의 영웅숭배와 관련있다.

그들은 인간이 완전해져서 신이 된다고 믿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헥토르야말로 완전한 인격을 가진 이상적 영웅이라는 따위의 담론들 있다. 헬레니즘의 이상주의가 헤브라이즘의 메시아 개념과 겹쳤다.

그들은 신(神)의 모습에서 완전성을 찾았다. 완전한 음악, 완전한 건축, 완전한 회화, 완전한 인격으로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서구의 모든 창의는 이러한 완전성 개념에서 유도된 것이다.

클래식 개념이 그러하다. 여기에 수학적 사고가 결합되어 합리주의로 나아간 것이 고전주의 개념의 완성이다. 수학이야말로 완전한 건축, 완전한 균형, 완전한 대칭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동양의 창의력 빈곤은 이상주의 결핍에 원인이 있다. 신의 완전성에 다가서려는 클래식 개념이 빈곤하니 그것을 입증하려는 수학적 사고도 결여되었다. 동양정신은 완전한 음악, 완전한 그림에 도전하지 않았다.

동양에도 이상주의는 있다. 도교의 소통하는 이상주의와, 불교의 초월하는 이상주의, 유교의 배려하는 이상주의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마음의 긴장보다는 편안한 이완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긴장은 과녁을 겨냥한 화살과 같아서 문제의 핵심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절대경로를 알려준다. 이완은 짝짓기와 같아서 우회하는 상대경로를 알려준다. 서구의 긴장이 절대경로면 동양의 이완은 상대경로다.

서구는 신 중심, 동양은 인간중심이다. 서구가 절대주의에서 비롯되는 극적인 긴장을 강조한데 비해, 동양은 상대주의에서 비롯되는 중용, 중도, 평상심의 편안한 이완을 강조한다. 동양이 더 휴머니즘에 가깝다.

존재는 포지션이다. 포지션은 대칭구조 안에서 성립한다. 대칭은 긴장을 유발한다. 여럿이 하나의 지점과 물려 있어서 하나가 움직이면 다른 것도 그에 연동되어 일제히 움직이므로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서구의 이상주의는 팔등신의 인체비례나 건축의 황금비례나 소실점이론과 같아서 여럿이 하나의 극점과 물려 있다. 그 중 하나가 어긋나면 모두 붕괴된다는 점에 있어서의 긴장된 이상주의다.

동양의 이상주의는 미인을 논하되 오똑한 코, 땡글한 눈, 삼단 같은 머리칼을 열거하는 식이어서 긴장이 없다. 유교가 강조하는 주나라의 이상정치나 도교가 강조하는 역설의 관점은 긴장의 해소다.

무엇인가? 완전한 것은 소통하는 것이다. 서구의 이상주의가 소통의 절대적인 조건을 충족함에 주의를 두고 있다면, 동양의 이상주의는 그 소통의 상대적인 실천에 주의를 두고 있다는 거다.

성숙한 남자와 성숙한 여자가 만나야 아기를 탄생시킬 수 있다. 그 성숙과정은 긴장된다. 성숙한 남녀가 만나는 과정도 긴장된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가 결합하여 아기를 탄생시키는 과정은 이완이다.

긴장만 하고 있으면 아기를 낳지 못한다. 편안하게 이완하여 파트너가 자신에게 접근함을 허락해야 아기를 맹근다. 짝짓기의 구애과정은 긴장되지만 결합과정은 오르가즘에 의해 이완되는 것이다.

서구의 신성지향은 절대경로의 차별화다. 동양의 인성지향은 상대경로의 차별화다. 서구는 수준을 끌어올려 차별화를 꾀하고 동양은 짝짓기로 차별화를 끌어낸다. 동양정신에 인류문명의 대안이 있다.  

참된 이상주의는 긴장을 거쳐서 이완으로 간다. 먼저 대칭구조의 긴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장이 연병장에 모인 일만 병사를 하나의 구령으로 통제함과 같아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완은 특수부대 요원들이 계급구분 없이 누구든 먼저 상황을 포착하는 자가 리더 역할을 맡아 동료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서로에 대한 완전한 신뢰와 이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 긴장 - 리더가 요원을 통제한다. 뇌가 몸으로 정보를 보낸다.

● 이완 - 요원들이 서로 협력한다. 몸에서 뇌로 정보를 보낸다.

인간은 직관으로 파악한다. 사랑과 증오, 떳떳함과 부끄러움, 아름다움과 추함, 자연스러움과 어색함, 시원함과 답답함으로 구조를 꿰뚫는다. 완전한 것은 사랑스럽고, 떳떳하고,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시원하다.

직관과 통찰은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여 자연의 포지션구조를 파악하게 한다. 자연의 대칭성을 통찰함이다. 자연의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 때 자신에게 어떤 감정이 느껴졌는지 관찰해서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큰 산이 있는 곳에는 큰 강이 있고, 큰 바위가 있는 곳에는 큰 폭포가 있다. 이러한 자연의 대칭성을 포착할 때 인간은 긴장한다. 집중한다. 몰입한다. 열정을 가지고 달려들어 창의한다.

이성을 만나서 긴장된다면 내 안에 사랑이 싹텄다는 증거다. 상대가 내게 무슨 짓을 해도 경계심이 일어나지 않고 편안하다면 사랑이 무르익었다는 증거다. 이렇듯 긴장과 이완에 의해 직관된다.

지적 능력이란 무엇인가?

지능의 차이에서 가장 큰 부분은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긴장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벌레도 위기를 당하면 한순간에 지능이 급속하게 높아진다고 한다. 인간도 화가 나면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된다.

인간에게 분노가 없다면 표피를 보고 안이한 대응을 하게 된다.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분노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학계의 연구로 이런 내용의 실험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예도 있다. 지적 능력의 큰 부분은 집중력이다. 집중력은 긴장하고 흥분하고 몰입하는 능력이다. 집중은 뇌의 특정 부분을 극대화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긴장은 뇌의 특정 부위만 활성화되게 하고 다른 부분은 활동을 멈추게 한다. 긴장을 통제할 수 있다면 학습효과는 극대화된다. 어떤 사실과 맞물려 연동된 변수의 수가 늘어날 때 인간은 긴장한다.

어떤 사건이 다른 많은 사건들과 동시에 맞물려 있어서 특정 사건에 대한 대응이 다른 사건으로 파급될 때 인간은 긴장한다. 연동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어를 암기할 때 뇌의 어느 부위를 사용하는가다. 입으로 중얼거리고 펜으로 끄적거린다면 입과 손을 사용할 뿐이다. 눈과 코와 귀와 몸을 전부 사용하여 기억한다면 학습효과는 극대화된다.

그것은 상황의 포착이다. 하나의 단어가 단지 하나의 의미만을 나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칭되는 상대가 존재하여 있다는 것이다.

상대와의 대칭을 이루는 대결구조가 있다. 스포츠게임과 같다. 나의 행동이 상대의 행동과 연동된다. 그러므로 긴장이 있다. 긴장한다는 것은 대칭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안에 밸런스의 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밸런스의 평형이라는 목표를 얻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상황의 숨은 대칭구조를 포착하여 평형이라는 목표를 얻음으로써 동기부여 된다. 그러한 극적 긴장이 해소될 때 이완의 쾌감으로 보상받는다.

그 쾌감에 중독될 때 학습능력은 최고조에 이른다. 집중력은 ‘상황≫대칭≫연동≫긴장’에 따른 동기부여와, 그 긴장의 이완에 따른 쾌감의 보상을 유도하는 능력이다. 학습에 중독되어야 한다.

한국인이 어학을 못하는 이유는 상황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의미가 전제와 진술, 주어와 술어, 명사와 동사의 포지셔닝 게임에 의해 상황 안에서 2차적으로 유도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긴장이 없으면 이완도 없다. 동기가 없으면 보상도 없다. 집중이 없으면 쾌감도 없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상황이고 하나의 대결이고 짝짓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직관의 공식

창의력은 직관력이다. 직관력은 집중력을 낳는다. 집중력은 긴장하는 능력이다. 긴장하는 능력은 자연의 대칭성을 포착하는 능력이다. 어떤 일의 1 사이클이 진행되는 전체과정에의 참여할 때 얻어진다.

반제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추구하는 것이다. 완제품≫완전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이상주의다. 무엇이 완전한가? 성당의 첨탑처럼 뾰족한 서구의 이상주의와 산수화처럼 편안한 동양의 이상주의가 있다.

둘 다 중요하지만 서구가 앞서고 동양이 뒤따른다. 최후에는 동양정신이다. 현대문명의 위기는 긴장은 있는데 이완이 없다는 데 있다. 짝짓기를 경쟁할 줄은 알지만 짝에게 허락할 줄은 모른다.

● 낳음   - 사랑하는가/분노하는가(긴장과 이완)

● 하나됨 - 떳떳한가/부끄러운가(자부심과 소속감)

● 짝지음 - 아름다운가/추한가

● 맞물림 - 자연스러운가/어색한가

● 만남   - 시원한가/답답한가

사랑은 열정이다. 자연의 대칭성에 몸이 반응함이다. 그것은 최고도의 긴장이다. 남녀 간의 사랑만 사랑이 아니다. 흙을 빚는 도공이 흙을 사랑함과 같다. 악사가 악기를 애지중지함과 같다. 후끈 달아오른다.

떳떳함은 자랑스러움이다. 절대경로와 상대경로에 따라 두 가지 감정으로 나타난다. 절대경로에서 자신이 주도할 때 자부심을 느끼고, 상대경로에서 상대가 주도할 때 소속감을 느낀다.

상대의 주도를 거부하면 열패감을 느낀다. 자부심이 잘못되면 지나친 승부욕이 되고 소속감이 잘못되면 노예근성이 된다. 이렇듯 감정을 읽어서 이면에 어떤 구조가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느껴지는 감정을 통하여 자신이 주도하는 게임인지 아니면 상대가 주도하는 게임인지, 협력해야 할지 대결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때로는 이겨도 씁쓸하고 때로는 져도 유쾌한 것이 그 때문이다.

집중력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시원함≫자연스러움≫아름다움≫떳떳함≫열정(사랑)으로 감정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고조되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물려 있을 때 가능하다.

한 가지 답을 찾았을 뿐인데 거기에 연동되어 있는 많은 성과를 얻을 때가 있다. 하나를 풀었을 뿐인데 전부 풀린다. 뽕을 땄을 뿐인데 님도 본다. 열심히 했을 뿐인데 칭찬도 듣고 용돈도 받는다. 그럴 때 집중한다.

집중력은 일의 전체과정에 대한 이해에서 얻어진다. 전체과정의 이해란 시원함≫자연스러움≫아름다움≫떳떳함≫열정으로 집적도가 상승하는 각 단계의 밸런스를 사전에 세팅해 두는 것이다.

베테랑이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음과 같다. 그 경우 긴장과 이완 하나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나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되도록 사전에 각 부위의 밸런스를 세팅해 둔다.

투수가 인체의 모든 관절을 직결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한다면 뇌에서 하나의 명령만으로 직구를 원하는 각도로 꽂을 수 있다. 어깨와 팔과 손목과 손가락의 근육에 별도로 명령하지 않아도 된다.

지식의 문제는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들은 일이 진행되는 1 사이클 전체과정에 참여해 본 경험이 없다. 반제품을 만들어놓고 이를 완제품으로 착각하고 대중에게 강권한다.

대중은 흥미를 잃고 등을 돌리지만 지식인은 그 이유를 모른다. 하나의 조작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밸런스의 축이 있는데도 만남≫맞물림≫짝지음≫하나됨≫낳음의 각 부분에 일일이 개입하려 든다.  

지식은 본래 반제품이다. 지식을 현실에 접목해야 가치가 창출된다. 지식인은 일의 전 과정에 참여했을 때 받는 쾌감의 보상을 모른다. 대중은 그것이 반제품이라는 사실을 직관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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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중 한쪽이 바람을 피운다. 이는 일상의 부자연스러움으로 나타난다. 파트너가 그 부자연스러움을 포착한다. 그러나 포착한 내용을 언어적으로 해석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포착했는지 모른다.

단지 기분이 나쁠 뿐이다. 넘겨짚는다. ‘당신 바람피웠지?’ 상대가 당황한다. 표정을 보고 알아챈다. 이것이 여자의 직감이다. 경험이 쌓인다. 점장이가 그렇고 베테랑이 그렇다. 느낌만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직업이 화가라면 그리는 중에 기분이 나빠진다. 연주자라면 연주 중에 기분이 나빠진다. 어색함을 포착한다. 예술가들은 그 점을 포착하는데 능한 사람이다. 그것이 눈치다. 형세판단이다.

상대와 내가 맞선 중에 누가 높은지, 누가 주인이고 손님인지, 누가 갑이고 을인지 형세를 잘 읽어야 한다. 천재는 직관한다. 감정이 섬세한 사람이 천재다. 민감한 사람이 천재다. 천재의 영감은 감정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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