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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387 vote 0 2008.12.29 (12:49:14)

 구조주의 미학

미학적 완성도

미학은 양식학이다. 양식은 소통의 양식이다. 소통의 접점에서 요철(凹凸)이 맞아야 하므로 양식이 필요하다. 입력과 출력의 볼록하고 오목한 부분이 일치할 때 의미있는 소통은 일어난다.

전축의 바늘과 레코드판의 홈이 만날 때가 그러하고, 안테나가 전파를 잡아챌 때가 그러하고, 남녀의 만남 또한 그러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온전한 만남을 위해서는 절묘한 밸런스가 필요하다.

접점의 일치를 위하여 완성도 문제가 제기된다. 완성될 때 통한다. 통해야 낳는다. 낳을 때 울림과 떨림이 있다. 전율함이 있다. 오르가즘이 있다. 그렇게 보상을 받는다. 널리 공명된다. 증폭된다.

완성이 없고, 통함이 없고, 낳음이 없는 소통은 가짜다. 울림이 없고 떨림이 없으면 진짜가 아니다. 말로 떠드는 소통은 헛될 뿐이다. 진정한 소통은 이심전심이어야 한다. 소통이 막히니까 말이 많다.

포지션들의 바른 결합이 소통이다. 순서와 방향이 올바른 관계맺기다.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포지셔닝이 바르게 조합되었다면 구태여 말이 필요하지 않다. 절로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그래야 소통이다.

자연은 언어 없이도 소통하고 문자 없이도 소통한다.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꽃은 그 컬러의 완전함으로 벌을 초대하고 그 향기의 완전함으로 나비를 초대한다. 넉넉하게 소통하여 열매를 낳는다.

모든 소통하는 것에 완성도의 문제가 걸려 있다. 소통의 접점이 있다. 도킹이 이루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 부분은 본래 불완전하다. 서로 다른 둘의 만남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완전은 없다.

입력과 출력이 일어나는 소통의 접점은 디지털 구조체가 아닌 아날로그 구조체를 이루므로 제어가 일어나는 노즐이 보호되지 않는다. 밖으로 열려있다. 외부에서 교란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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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의 도킹이 일어나는 그 한 순간은 완벽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凹凸의 양측이 완전히 정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잡아주는 자궁이 필요하다. 소통의 양식에서 미학적 완성도가 문제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예술을 논하고 문화를 찾고 심미안을 닦는 것은 이상적인 소통의 자궁을 세팅하기 위해서다. 모든 예술은 소통의 자궁 만들기다. 양식은 시스템이다. 시스템은 불완전하다. 최후에는 인간이 나서야 한다.  

완벽한 관제탑, 완벽한 비행기라도 안전한 착륙이 있을 뿐 완전한 착륙은 없다. 그 소통의 순간, 접촉의 순간에 조종사는 주시해야 한다. 승객들도 대비해야 한다. 첫 키스처럼 긴장해야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소통의 자궁

디지털구조는 세팅된 자궁 속으로 일(work)이 통과한다. 음식이 식도를 통과하듯 파이프 속을 지난다. 아날로그 구조는 그 만남의 접점에서 순간적으로 자궁이 성립한다. 그 자궁은 불완전하다.

전축의 바늘과 레코드판의 홈이 만나는 접점이다. 접점은 열려 있으므로 불완전하다. 교미가 입력이면 출산은 출력이다. 입력과 출력이 일어나는 순간은 무방비 상태다. 가장 약한 상태다. 완벽한 안전은 없다.

퍼펙트는 없다. 어떤 호출방식이라도 외부에서 약간의 잡음은 반드시 끼어든다. 미학은 양식이다. 양식은 소통을 성립키는 凹와 凸가 사전에 약속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구조를 최대한 디지털구조로 변환하는 것이다.

디지털구조로 세팅하더라도 최초의 출발점과 최종 종결점은 아날로그 구조일 수 밖에 없다. 몸속의 식도와 위장은 안전한 파이프 형태지만 입과 항문은 위험하게 외부로 노출되어 있다.

소통은 아날로그다. 모든 예술은 아날로그다. 아날로그는 2인의 의견이 일치해야 하는 주관의 영역이다. 디지털은 사전에 세팅해 두는 방법으로 1인이 판정하게 하는 객관의 영역이다.

예술의 소통은 작가와 관객의 의견이 일치해야 성립한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 순간 예술은 사기가 된다. 모든 예술은 사기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씨앗은 발아에 실패할 가능성을 가진다.

소통은 독립된 둘의 사전 약속에 의해 이루어진다. 둘을 한 순간에 한 지점에 모여야 한다. 마주 보고 정렬하여 일이 통과하는 파이프를 성립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사전약속이라는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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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 꽃과 나비, 바이올린의 활과 현, 도공의 손과 흙, 凹와 凸을 한 순간에, 한 지점에 마주보고 정렬시켜 절묘하게 세팅해야 한다. 열정이 아니면 안 되고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

누구나 소통을 말하지만 공허할 뿐이다. 소통은 실질적인 낳음을 끌어내는 것이며, 이심전심에 의한 포지션의 바른 조합과, 절묘한 타이밍의 일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언어로 소통하더라도 그 안에 의미를 운반하고 가치를 판정하고 개념을 잡아주는 알맹이가 들어 있어야 한다. 언어와 문자는 세팅되어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구조에 해당한다. 소통의 본질에서 멀다.

언어로 소통하더라도 출발점은 아날로그다. 두 사람의 첫 대면은 아날로그다. 포지션이 맞아야 한다. 한 쪽이 등돌린 채로 귀를 닫고 있다면 소통은 실패다. 마주보고 눈을 맞추어야 진짜다.

5단계 완성도

완성도에 따라 다섯 가지 미가 있다. 예쁘다≫곱다≫어울린다≫아름답다≫멋있다 순으로 미의 격이 상승한다. 만남의 밀도가 상승한다. 만나기≫맞물리기≫짝짓기≫하나되기≫낳기 순으로 더 깊숙한 만남이다.  

● 멋있다      (낳기) - 소통의 자궁이 완성된다.

● 아름답다(하나되기) - 호흡이 정지된 상태에서 A에서 B로 통과한다.

● 어울린다  (짝짓기) - 접점이 일치하여 밸런스를 이룬다.

● 곱다    (맞물리기) - 마주보고 눈을 맞춘다.

● 예쁘다    (만나기) - 상대가 눈에 띈다.

예쁘다는 것은 ‘눈에 띈다’는 것이다. 파트너를 만났을 때의 판정이다. 곱다는 것은 상대에 의해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만나고 난 다음의 판정이다. 먼저 예쁘다를 통과해야 곱다로 상승할 수 있다.

만나지 못했는데 맞물릴 수는 없다. 맞물린 다음에 짝짓고, 짝지은 다음에 꼬치에 꿰듯 관통되어 하나된다. 최종적으로 소통의 자궁을 완성한다. 그리고 낳는다. 소통은 그렇게 점진적으로 수준이 상승하여 완성된다.

표면에 가시가 있거나 끈적한 이물질이 묻어있다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징그러운 것이다. 곱다의 반대는 ‘징그럽다’다. 포유류와 조류가 부드러운 털과 깃을 가진 이유는 무리없이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포유류의 새끼가 귀여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받아들여져야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탐미적 존재이다. 어떤 동물보다도 어미에 의해 보호되어야 하는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어울린다는 뜻은 짝짓기에 있어서 콜라와 햄버거처럼 서로를 보완한다는 의미다. 포도주와 치즈, 막걸리와 김치처럼 맞는 궁합이 있다. 앙상블이 있다. 상승효과가 있다. 서로의 약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끌어낸다.

아름답다는 것은 요소들이 하나의 테마에 의해 통일된다는 것이다. 아름은 팔로 안아서 한 아름이다. 요소들이 서로 마찰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대외적으로는 대표자 1을 내세우는 것이다.   

어울린다는 것이 날 2가 밸런스의 평형을 이루는 것이라면, 아름답다는 것은 그 밸런스의 축이 되는 심 1이 날 2를 보듬어 안는 것이다. 외부에서 한 번의 작용으로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다.

멋있다는 개념이야말로 미(美)의 진정한 의미에 가깝다. 아름답다가 단지 보기에 좋은 것이라면 멋있다는 그 이상의 어떤 각별함이 있다. 그것은 외부와 통할 수 있게 하는 소통의 자궁을 세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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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쉽다. 심 1로 날 2를 꿰어내기 쉽다. 서로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멋있다는 개념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두 독립적 존재에 해당된다.

밖에서 둘을 잡아주고 일치시켜 주는 들러리가 필요하다. 타이밍을 맞추도록 기다리게 하고 포지션이 일치하도록 유도하는 특별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거기에 고도의 섬세함과 정밀함이 요구된다.

양복에 넥타이는 어울린다. 양복에 고무신은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둘이 소통하게 하려면 특별한 분위기가 필요하다. 바닥에 은은하게 깔아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멋이다.

남자는 축구경기장에서 남자끼리 어울리고 여자는 카페에서 여자끼리 수다떤다.따로 노는 남자와 여자를 어울리게 하는 것은? 역시 배경으로 깔아주는 무드가 있다. 사랑이다. 열정이다. 멋이다.

고흐는 진흙과 같은 안료의 두터움으로 깔았다. 영화 클라이막스에 배경음악 깔리듯 깔았다. 박수근은 안개처럼 희미한 터치로 깔았다. 이중섭은 어린이의 볼과 엉덩이 같은 오동통함으로 깔았다.

추사 김정희는 금석학 연구로 얻은 추사체 특유의 속도감으로 깔았다.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헤쳐나가는 기세로 깔았다. 원교 이광사는 단단한 화강암의 골체미로 깔았다. 양식은 다르나 본질은 같다.  

미의 완성은 멋이다. 멋은 사랑이다. 사랑의 결론은 낳음이다. 그것은 창조다. 멋은 창조의 자궁이다. 그 자궁에서 낳는다. 아기를 싸는 포대기처럼 바탕에 깔아주는 무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스타일이다.

모든 창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잘 어울리게 함에 의해 얻어진다. 천에 잉크가 묻으면 천이 못쓰게 된다. 천과 물감은 상극이다. 어울리지 않는 천과 물감이 어우러져 멋진 그림을 낳는다.

의미와 가치의 완성도

미(美)는 서로 다른 둘이 소통하는 양식이다. 양식은 둘이 만나기 위한 사전약속이다. 일방적인 지시와 통보는 소통이 아니다. 반드시 사전에 약속해야 한다. 무엇으로 약속하는가? 의미와 가치와 개념으로 약속한다.

의미는 둘을 연결하고, 가치는 그 연결의 접점을 일치시키고, 개념은 그렇게 합체된 둘을 외부에 대해서 1로 대표한다. 1에 의해 대표되어야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다. 낳을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아기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만들지만 그 탄생의 순간에는 엄마가 전적으로 대표한다. 아빠는 단지 옆에서 보조할 뿐이다. 반드시 한 명의 리더, 한 명의 CEO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

낳는 것이 진짜다. 진정한 미(美)는 낳음에 의해 날로 새로와지는 것이다. 발전하고 진보하고 뻗어나가는 것이다. 그냥 낳는 경우는 없다. 반드시 둘이 연결되고 일치되고 대표되어야 낳는다.

그 만남≫연결≫일치≫대표≫낳음이 관계다. 미학은 관계의 수준을 평가한다. 남남인지 친구인지 부부인지 그 관계의 깊숙한 정도를 판별한다. 최고의 관계가 최고의 미다. 그 미를 완성하기다.

● 사실의 만남 : 보았는가?

● 의미의 연결 : 그를 아는가?

● 가치의 일치 : 서로 사랑하는가?

● 개념의 대표 : 둘이 부부를 이루었는가?

● 원리의 낳음 : 둘 사이에 아기가 있는가?

미는 짝짓기에 의해 얻어지고, 짝짓기는 가치의 판별에 의해 이루어지며, 가치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둘 중에서 하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선택을 위한 판정의 기준이 가치다. 비교우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진학을 앞두고 전공을 선택하든, 취업을 앞두고 직장을 선택하든,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를 선택하든 인생은 부단한 선택과 짝짓기의 연속이다.

● 성속(聖俗 - 낳아내기) - 창조인가 모방인가?

● 주종(主從 - 하나되기) - 주도하는가 종속되는가?

● 미추(美醜 - 짝짓기)   - 보완하는가 충돌하는가?

● 선악(善惡 - 맞물리기) -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 진위(眞僞 - 만나기)   - 보이는가 감춰지는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성≫주≫미≫선≫진의 순으로 선택해야 한다. 창조하는 것이 멋있고, 주도하는 것이 아름답고, 보완하는 것이 어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곱고, 보이는 것이 예쁘다.

두 가지 선택법이 있다. 연역과 귀납이다. 연역적 상황은 완성된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이고, 귀납적 상황은 그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이다. 둘은 전혀 반대방향으로 작동하므로 선택방법이 달라야 한다.

실천에서는 연역적 선택을 하고 학습에서는 귀납적 선택을 한다. 연인을 구할 때는 진≫선≫미≫주≫성의 순으로 나아가야 하고, 연인을 얻었을 때는 성≫주≫미≫선≫진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모든 실패는 이 순서를 잘못 적용하여 일어난다. 가치판단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문화가 양식을 필요로 하고 인간이 예술을 찾는 이유는 바르게 선택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병뚜껑을 열고 물을 마셔야 한다. 이 순서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뚜껑을 열지 않고는 물을 마실 수 없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전에 세팅해 두는 것이 문화의 양식이다.

일상의 많은 문제들은 양식이 세팅되어 있지 않아서 그 순서를 틀리게 적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먼저 인사하고 다음에 거래해야 하는데 그 규칙을 어기는 것이다. 그럴 때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아기들은 삐치고 돌아앉는다. 엄마가 먼저 ‘왜 그러니?’ 하고 물어주기를 기대하면서. 꼬마가 관심 있는 여자아이 주변에 얼쩡거리며 놀이를 방해하듯이 상대방이 먼저 내게 말을 걸게 하는 작전이다.

이런 식의 소통시도는 주도권을 내주고 만다는 점에서 실패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인사’라는 소통의 양식을 개척한다. 정치인은 뇌물이라는 인사법을 쓰고 연인들은 꽃다발이라는 인사법을 쓴다.  

진≫선≫미≫주≫성

진≫선≫미≫주≫성에 계급이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 이 개념들이 관계의 밀접한 정도에 따라 단계적 접근을 하기 위한 레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치의 수준이다. 명백히 수준차가 있다.

진선미 개념은 알려져 있지만 주종(主從)의 주(主)와 성속(聖俗)의 성(聖) 개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진선미는 주를 거쳐 성으로 가서 완성된다. 주(主)는 상대방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다.

꼬마의 ‘삐치고 돌아앉아 상대방이 먼저 내게 말 걸게 하기’ 혹은 ‘좋아하는 여자친구 앞에서 방해하며 얼쩡거리기’ 또는 ‘오줌 싸서 선생님의 주의 끌기’ 수법은 주도권을 놓치게 되는 잘못된 방법이다.

성(聖)은 소통의 자궁을 완성함이다. 완전한 자궁에서라야 창조된다. 모든 가치는 궁극적으로 창조에서 나온다. 낳음에서 나온다. 낳지 못하는 가치는 벤치에서 대기하는 후보신세일 뿐이다.

진(眞) 개념을 단순히 진짜와 가짜의 구분으로만 판단해서는 부족하다. 진(眞)은 그냥 참이 아니라 참된 만남이다. 만남이 중요하다. 진은 바른 만남이요 위는 잘못된 만남이다. 수컷과 수컷이 만나서 짝짓지 못한다.

가치들 중에서 진(眞)이 으뜸인 이유는 진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인식론적 관점이다. 진은 시작일 뿐 끝은 아니다. 완성은 아니다. 완성은 낳음이 있는 성(聖)이다.

중요도가 있다. 우선순위가 있다. 건물을 짓는 단계에서는 진≫선≫미≫주≫성의 순서로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완성된 건물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성≫주≫미≫선≫주의 순으로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무엇이 선(善)인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선이다. 걸인에게 동전을 던져주었는데도 상대가 도리어 화를 내는 수가 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악(惡)이다. 악이 악인 이유는 배척되기 때문이다.

진이 참이 아니라 참된 만남을 의미하듯이, 선은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데도 자꾸만 선물을 건네고 프로포즈 하는 들이대기는 착한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는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서로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끌어내서 성공적으로 짝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술은 과감하게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과 맞서고, 세상과 짝짓고, 세상과 하나되고 마침내 낳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낳고 퍼뜨려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죽은 것이다. 예술이 허영심 많은 호사가의 귀족취미로 끝나서 안 된다.

주는 미의 밸런스를 돕는다. 줄기가 가운데서 중심을 잡아주므로 가지가 사방으로 자유로이 뻗어나갈 수 있다. 만약 주(主)가 없다면 마른 논에 올챙이처럼 오골오골 한 곳에 모여 있게 된다.

리더가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다. 집안에 어른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들판에서 뛰놀 수 있다. 든든한 주의 구심점이 있을 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  

성(聖)은 완전한 것이고 속(俗)은 불완전한 것이다. 성은 통하고 속은 막힌다. 성은 낳고 속은 흉내낸다. 성은 진보하고 속은 보수한다. 성은 향기가 있고 속은 향기가 없다. 아우라가 없다.

도공이 흙을 빚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가가 작문을 할 때는 진≫선≫미≫주≫성의 순서로 진행되지만 그 완성된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할 때는 성≫주≫미≫선≫진으로 전개된다.

● 자동차를 운전할 때 - 운전할 차가 완성된 차인지 판단한다.(연동되어 판단된다. 완성차라는 판정을 얻으면 진짜 차라는 점은 저절로 확인된 셈이다.)

● 자동차를 제작할 때 - 만들 차가 장난감인지 진짜 차인지 판단한다.(연동시켜 판단할 수 없다.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완성된 차인지를 판단할 수 없다.)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이 순서의 오류 때문이다. 문화가 양식을 필요로 하고 또 상류사회가 엄격하게 격식을 따지는 이유는 그 순서가 혼동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사전에 절차를 세팅해놓자는 거다.

대가들은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다. 순서를 혼동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움이 그 안에 있고 진정한 소통이 또한 그 안에 있다. 양식을 완성한 다음에는 그 양식을 초월해야 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모든 음악, 문학, 조형, 예술에 구조가 있다. 구조는 긴장을 끌어낸다. 인간을 긴장시키는 것이 예술이다. 숨막히게 긴장된다. 불꽃처럼 번뜩이는 소통의 한 순간에 호흡을 멈추지 않으면 소통은 실패로 되기 때문이다.

시조를 예로 들 수 있다. 4.4조의 대칭이 중심이 된다. 4.4와 4.4가 겹으로 대칭을 이룬다. 그 겹대칭으로 이루어진 초장과 중장이 역시 대칭을 이룬다. 대칭≫대칭의 대칭≫대칭의 대칭의 대칭이다.

최후에는 ‘초장+중장’과 종장이 대칭을 이룬다. 초장은 문을 열고 내용물을 꺼낸다. 중장을 그것을 마루에 펼친다. 초장과 중장은 자연의 전개다. 종장은 자연과 대칭되는 인간의 감정을 담아낸다.

시의 의미, 예술의 의미는 자연의 참모습을 복제하여 그것을 인간사회로 이식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 자연을 복제하고 인간의 삶으로 이식하는 수단이 자연에 숨은 대칭과 평형의 원리다.

왜 대칭인가? 대칭이 인간을 긴장시켜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걸음을 멈추고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마주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칭이 반복되어서는 지루하다. 마땅히 파격이 있어야 한다.

초장과 중장은 대칭되며 반복되지만 종장에 이르러서는 파격이 있다. 종장의 1로 초장과 중장의 2를 감당한다. 종장에는 함축과 풍자와 감탄의 밀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접힘목이 있다는 거다.

‘어즈버!’ 하고 감탄할 때 거기에 여운이 있고 무게감이 있다. 그 묵직한 중량감으로 초중장의 넉넉한 길이에 맞선다. 반복적 대칭의 속도감에서 파격에 의한 무게감으로의 전환이다. 질적인 비약이다.

선의 길이에서 밀도의 질량으로 차원을 점프한다. 그 방법으로 완성한다. 끝단을 드러낸다. 딱 접어서 매조지한다. 클라이막스에 따른 오르가즘이다. 소통한다. 방아쇠는 격발되고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그 화살이 이심전심의 심중에 맞을 때 소통은 일어난다. 파문이 길고 여운이 떤다. 절정의 쾌감을 넘어선 편안한 이완이 있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쏘아진 화살이 다시 전체로 메아리 되는 오르가즘이 있다.

중요한 것은 완성이다. 완성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완결된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초장에서 문을 열고, 중장에서 내용물을 꺼내놓고, 종장에서 다시 뚜껑을 덮고 빗장을 채워 갈무리한다.

점에서 촉발된 사건이 선으로 전개하다가 비선형으로의 비약을 거쳐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밀도의 세계에서 끝이 난다. 메아리가 1 사이클 완성의 증거다. 더 이상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는 느낌이 있다.

아쉬움 없는 매조지를 위하여 예술에는 형식이 있다.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 없어도 숨은 형식이 있다. 자유시에도 보이지 않는 호흡이 있고 긴장이 있고 파격이 있고 이완이 있다. 그것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다.

음악이라도 그러하다. 제1악장의 장중한 전개가 있고, 제2악장의 구석구석 탐색이 있으며, 제3악장에서 강한 임팩트로 마무리 짓는다. 1악장이 큰 집을 건축함과 같다면 2악장은 집 주위에 정원을 꾸밈과 같다.

3악장은 그 정원에서 뛰노는 주인공들의 열정을 담는다. 완성된 집의 가꾸어진 정원에서 멋들어진 춤을 춘다. 폭풍 같은 연주로 감정의 찌꺼기를 모두 쏟아내면 미련없이 완결된다. 완전히 소진된다.

그 절정에서 객석을 향해 방아쇠가 당겨지고 심중에 화살은 쏘아지며 파문 하나 남긴다. 배우가 객석을 향해 쏜 한 발의 화살이 관객과 관객 사이에서 무수한 반향을 낳는다. 메아리가 있으면 소통이 일어난다.

그것은 하나의 프레이즈 안에서의 대칭성을 고리로 부단히 바깥에서의 대칭을 탐색하는 연쇄고리다. 고리가 고리를 만들고 더 큰 고리로 나아간다. 높고 낮은 음역에서 길고 짧은 음역으로 탐색한다.

김기덕 감독의 활이 그러하듯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긴장의 조각들을 결집시켜 큰 활에 시위를 매기고 살을 올린다. 작은 긴장들이 모여 큰 긴장을 이루었을 때 그 팽팽함을 끊어버린다. 완전히 이완된다.

미술이라도 그러하다. 동양화라면 정과 동의 대칭이 있다. 산과 물, 음과 양, 빠름과 느림, 높음과 낮음, 공간과 시간의 얼개가 있다. 그리고 최후에는 덮개 역할의 통일성이 있다. 문자향 서권기가 있다.

고흐는 두터운 질감으로, 박수근은 희뿌연 안개로, 이중섭은 아이의 동적인 곡선으로 통일성을 주어 부분과 부분이 분리되는 어색함을 막고 그것으로 뚜껑을 삼아 자물쇠 채워 마무리한다. 매조지 된다.

미학의 완성은 스타일에 있다. 멋의 연출이다. 그것은 양식이다. 스타일이란 인식의 핵심이라 할 통일성을 성립시키는 테마가 강조될 때 주변의 배경과 분리되는 데 따른 어색함을 다스리는 기법이다.

어떤 작품이든 테마에 의해 요소들이 꿰어지고 긴장이 유지되며 관객이 집중한다. 그러나 테마를 강조할수록 어색해진다. 권선징악을 부각할수록 유치해진다. 틀에 맞춘 것 같고 관객을 가르치려 드는 것 같다.

그런 부자연스런 느낌을 잠재우기 위해 바닥에 깔아주는 배경음악이 있고 배경무늬가 있다. 웹사이트에도 스킨이 있고 데이트에도 무드가 있다. 고가의 비싼 장식품일수록 배경무늬가 화려하다.

톤을 주고 질감을 주고 양감을 주면 어색함이 줄어든다. 동양화는 여백을 두어 산과 물이 마주치는 접점을 불분명하게 처리하는 수법을 쓴다. 모든 어색함은 둘의 긴장된 마주침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물을 그린다면 뒤의 배경과 인물의 충돌이 문제된다. 인간의 눈은 초점에 모이지만 그림은 평면이라서 3차원 입체의 초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경을 또렷하게 그리면 인물이 죽는다.

서양화는 배경을 어둡게 하고 인물에 조명을 주는 기법을 사용한다. 유치한 기법이지만 다들 의존하고 있다. 모든 예술가는 이 하나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며 결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았을 때 작가가 된다. 그것이 스타일이고 멋이고 창조의 자궁이다. 나만의 자궁을 이루었을 때 진정한 작가로 거듭난다. 남의 자궁을 빌려 낳는다면 아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문열이 억만권 책을 팔아도 남의 둥지에 탁란했기 때문에 껍데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외수나 김기덕은 다르다. 그들은 자기 세계가 있다. 자기류의 조형적 질서를 창안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 별거 아니다. 지푸라기와 같다. 신통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슬퍼할 일도 없고 분노할 일도 없다.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다. 멋지게 살든 우울하게 살든 종이 한 장 차이도 아니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은 말하자면 붙여놓은 장식, 걸어놓은 타이틀, 명목상의 표제에 불과하다. 그대의 삶이 성공이든 실패든 그러하다.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대에게 그것을 구분하게 하는, 가려보는 눈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보는 눈이 타락하고, 그 느끼는 가슴 죽어버렸다면 인생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진짜는 사람이다. 사람이 걸작이어야 한다.

고흐는 캔버스에 해바라기를 그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캔버스에 고흐라는 인간 하나 완성해놓고 떠났다. 고흐의 완전성과 그대 가슴의 완전성이 반응하지 못한다면 그대 삶의 걸작되기는 실패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잘 되고 잘못되고가 문제는 아니다. 잘된 것과 잘못된 것에 반응하는 그대의 섬세한 가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늙어서 죽지 않는다. 그 눈과 가슴 잃어서 죽는다.

비위가 세지고, 수줍음을 잃고, 순수를 잃고, 부끄러움 모르게 된다면 살아도 이미 죽은 것이다. 예술의 의미는 그 눈과 가슴을 보호하여 인간의 본래를 회복하는 데 있다. 인간이 걸작이어야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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