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edia.daum.net/digital/all/newsview?newsid=20160317182033462
'만약 무거운 물체가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서로 연결해 떨어뜨리는 경우를 고려하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그보다 늦게 떨어지려 할 것이다. 그 결과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돼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서 더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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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적 사유입니다. 구조론 역시 실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많은 노벨상을 받은 이유 중의 하나는 일본은 돈이 없기 때문에, 실험장비가 필요한 쪽으로 가지 않고, 종이와 펜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쪽으로 특화했는데, 그게 오히려 이득이었다는 거죠. 비싼 실험장비로 쉽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일 수 있다는 거죠. 종이와 펜만 있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험실습이 과학의 토대라는 생각은 상당부분 볼테르와 같은 계몽주의자들이 지어낸 망상입니다. 계몽주의자들은 대중이 납득할만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대기 좋아하는 거죠. 과학교를 만들려는 식.
실험으로 뭔가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증명할 수 있지만, 뭔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가 떨어지는지 뉴턴이 눈으로 볼 필요가 없고,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를 떨어뜨려 볼 필요 없습니다. 단 알아낸 다음에는 실험으로 그것을 증명해야죠. 아이디어는 연역적으로 도출됩니다. 저는 학이 두 다리로 물에 서 있는 것은 어색하다고 생각해서 새들이 한 다리로 서는지 관찰했습니다. 관찰해서 안 것이 아니라 알아서 관찰한 것이며 그 계기는 의심입니다.
갈릴레이 역시 아리스토텔레스가 써놓은 글을 읽다가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하여서 생각을 해본 거죠. 과학은 의심에서 답을 얻는 것이며 의심은 문제 그 자체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도출되는 것이며 그냥 다 의심해보는 겁니다. 뭐든 의심하는 거죠. 저는 만유인력이라 하길래 과연 인력일까 하고 의심한 겁니다. 척력이 아니고? 뭐든 반대로 한 번 가보는 거죠. 이것이 연역적 사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