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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ahmoo
read 3797 vote 0 2016.04.15 (09:04:26)

세계적인 김녕의 마을길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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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건축은 콘크리트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안정적 구조와 더불어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한다. 개개의 건축물은 개성을 한껏 추구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한 재료로 모양만 비틀어 낸 것들 뿐이니 오히려 몰개성이다. 필자는 얼마전 제주의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함덕, 김녕, 월정, 행원 등지를 둘러보면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대체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거기 우뚝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안정적인 재료와 구조적 정합성으로 알파고와 같은 효율을 추구한다고 해도 건축에는 효율 그 이상이 담길 수밖에 없다. 건축은 삶의 터전이므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출된 진솔한 삶의 흔적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도 그놈의 효율 때문인지 깊은 주름과도 같은 건축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바로 이곳 제주에서 그 뚜렷한 지층을 발견한 것이다. 

제주 건축의 주재료는 검고 질감이 거칠고 어디에서나 굴러다니는 현무암과, 사시사철 불어제껴 사람을 못살게 구는 바람이다. 김녕의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걷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바람이 돼 그 거친 담벼락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다. 제주 사람들은 사나운 바람과 싸우다가 그렇게 화해를 한 것으로 보이는데, 담벼락 돌을 엉성하게 쌓아 그 너머로 열려있는 것이나 길이 안마당으로 또는 얕은 담 너머로 마치 혈관처럼 이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넘치도록 굴러다니던 시커먼 돌들은 담벼락으로, 길가로, 마당으로, 밭으로 옮겨져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쌓아올려졌다. 사람들은 거센 바람에 지치지 않고 맞섰고 그 결과 어디서 보아도 높낮이가 다양한 경쾌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건물은 본시 길의 확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녕의 마을길은 가장 역동적인 건축이다. 요즘처럼 멋없이 자로 그어진 길에서만 살아가다가 제주의 이 마을길을 걸어보면 누구라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듯 아련한 기억에 빠져들 것이다. 

검은 담벼락 위에 아슬아슬 걸친 지붕들은 또 어떠한가. 비비람에 몇번이나 벗겨지고 다시 칠해진 지붕의 색은 끈질기게 쌓아올린 고집 센 화가의 붓질과 같더라. 게다가 그 깊은 원색과 검은 담벼락의 산뜻한 대비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가히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만한 것이다. 아마도 거무튀튀한 밭돌이나 담벼락 너머에 불현듯 나타나는 유채의 선명한 노랑, 얼키설키 쌓아놓은 검은 담벼락 너머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의 인상이 재현된 것이 아닐까.

거칠면서도 풍요로운 환경과 오랜 상호작용을 통해 켜켜이 쌓아올린 삶의 힘찬 표현인 이 풍경은 우리의 소중한 유산일 뿐만 아니라 인류의 귀한 자산이다.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박제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법 안목 있는 건축가라면 이 풍경을 한번만 보아도 속에서 뜨거운 불이 나 가만 있지 못할 것이다. 

지난 3월 알파고 대국으로 인공지능은 강렬하게 우리 시대에 데뷔했다. 21세기는 이른바 '정보의 시대'라고 한다. 아무런 해가 없어보이는 정보라는 단어는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대상으로 실체화되면서 정보의 시대에 대한 실감을 전해주고 있다. 당장 일이십 년 안에 지금 직업의 절반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하니 어찌 강건너 불구경만 하겠는가.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최상의 결과를 향해 확률적 오차를 좁혀가는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무정한 업무처리 방식은 이번 대국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엄청난 효율을 자랑할 것이기에 인류는 상실감과 자괴감을 자주 느낄 게다. 그럴수록 우리는 대체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효율성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본질적 가치를 발견해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우리의 디자인 자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민일보  webmaster@jemin.com


[레벨:15]떡갈나무

2016.04.15 (18:13:16)

아름다움은~
볼 줄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인대요 ^^
프로필 이미지 [레벨:23]의명

2016.04.15 (22:28:42)

전문가의 숨결이 필요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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