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
존재
1 .
현실에 실제로 있음. 또는 그런 대상.
신의 존재를 부인하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어쩌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상대방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출처 : 이동하, 도시의 늪
2 .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 만한 두드러진 품위나 처지. 또는 그런 대상.
악명 높은 존재
독보적인 존재
그는 우리 고장에서 무시하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
3 .
<철학>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외계(外界)에 객관적으로 실재함. 또는 그 일. 그 양상에 따라 물리적ㆍ수리적ㆍ사회적ㆍ인격적인 것 따위로 구분한다. [비슷한 말] 자인10(sein).
4 .
<철학> 형이상학적 의미로, 현상 변화의 기반이 되는 근원적인 실재.
5 .
<철학>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객관적인 물질의 세계를 이르는 말. 실재보다 추상적이고 넓은 개념이다.
위키백과
존재(存在) 는 이 세계의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일정한 조건을 채운 현상들을 두루 일컫는다. 보통 그 현상들이 물리적인 인과 관계를 가질 때, 그 현상들은 "존재한다"라고 인식된다. 이를테면, 어떠한 덩어리에 힘이 가해져서 움직였을 때, 사람들은 그 덩어리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표면의 색, 모양, 느낌으로 그 재질이 나무인지 알아낼 수 있고, 또 그 모습으로부터 기능을 추정하여 그 덩어리를 의자로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물리적 존재를 옛날이나 앞날, 또는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을 상상해 보자. 이 때에도 그 물건은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의자를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면, 사람들은 그 의자가 일찍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한다. 또, 다세계 논리에서는 여러 세계에 각 의자가 존재하여, 의자에 앉을 때 사람들의 의사가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는 형이상학을 전개한다. 이러한 존재의 느낌이 밑바닥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재"(reality)라고 여긴다.
지식백과 철학사전
존재
[ Being, 存在, Sein ]
외국어 표기
Être(프랑스어)
유(有)라고도 한다. '있음'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가장 추상적이고 넓은 개념이며, 이것은 개개의 사물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추상하여 일반적인 유(類)개념으로 도출해 낸 것이 아니라, 모두 어떠한 사물이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무규정적인 추상적 개념이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 규정되고 탐구된 의미를 가진 실재ㆍ인간존재ㆍ현실 등과는 구별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선 존재라는 말로 객관적 세계, 물질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물질적인 것이라는 것과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같은 말이며, 관념론자가 주장하듯이 물질에 앞서 그것과는 독립되게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또는 존재를 의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동시에 존재는 객관적이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존재가 제1차적이고 의식은 부차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다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만 하는 것으로는 정신적 존재(신과 같은)로서 성립되는 것도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객관적 세계는 물질이고 그것이 근원적인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적 존재는 그것에서 후에 생기는 소산(부차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한다고 해서 의식ㆍ정신활동이 단순히 소극적인 것에 불과하고 능동성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존재 [Being, 存在, Sein]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
철학의 첫 주제는 마땅히 '존재'여야 한다. 내가 있기 전에 세상이 먼저 있었고, 세상이 있기 전에 존재가 먼저 있었다. 근데 '존재'가 뭐지? 국어사전이든 백과사전이든 위키사전이든 만족할만한 답변은 주지 못한다.
문제는 말이다. 이런 똥같은 소리를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이 검색해 봤을 건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인간들은 이런 엉망인 현실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을까? 이거 개판 오분 후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이 맨 앞에 오는 법이다. 성경에 창세기가 맨 앞에 오는 것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존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존재가 가장 앞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래 시궁창이다.
이게 근대문명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일단 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착실히 말아먹는다. 이런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개수작을 하고 있으니 인문은 종교에 밀리고 자본에 밀린다. 그들은 자격이 없다. 발언권이 없다.
대중들 앞에 나설 근거가 없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참! 500방 맞고 시작하자.
구조론은 통째로 존재를 해명하고 있다. 존재는 인식에 맞선다. 대칭된다. 인간이 어떤 것을 인식하려고 할 때, 그 인식대상을 상호작용이라는 도마에 올려야 한다. 일단 도마에 올린 다음 칼질을 하더라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끄러워서 계속 놓쳐버리고 도마에 올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존재다. 유령이나 헛것이나 UFO 따위다. 기, 몸에 좋다설, 산수유가 남자한테 참 좋은데도 그러하다. 이런 허접대기들은 도마에 올릴 수 없다.
만약 그것을 냉큼 잡아서 도마에 척 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다. 헷갈리는 건 따라붙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거미를 올렸는데 거미줄이 따라붙는다. 거미는 아침에 줄을 쳤다가 저녁에 먹는다.
거미줄은 거미의 신체 일부인가 아닌가? 인간의 뱃 속에 사는 기생충은 인간의 신체일부인가 아닌가? 이런 헷갈리는 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칼질을 하는데도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바로 구조론의 완전성 개념이다.
존재를 도마에 올리는 방법은 인과법칙에 따른 사건의 연결고리를 추적하여 올리는 것이다. 우주 안에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고 반드시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는 사건 속에 있다.
공간이 아닌 시공연속체 속에 있다. 추적하는 방법은 자연의 대칭, 비대칭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궁극에서 인간은 자연의 공간적 대칭성과 시간적 비대칭성, 곧 반복성을 통해 그것을 나꿔채서 도마에 딱 올릴 수 있다.
그 다음은 칼질 들어간다. 요리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