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합법화, '나를 고루하다고 해도..'
시사INLive | 남재희 |
요즘 '성적 소수자'라는 말이 크게 떠오르고 있다. 동성애자는 영어로 호모라 하고, 남자 동성애자는 게이, 여자 동성애자는 레즈비언이라 부른다. 오래전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프랑스의 앙드레 지드의 소설을 읽던 사람들은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신기해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니얼 퍼거슨 교수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동성애를 끄집어내어 비방한 일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또 < 국화와 칼 > 의 루스 베네딕트가 똑같이 유명한 마거릿 미드와 동성애 관계였다는 사실이 신문에 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없는 게 아니었다. 옛날 시골에서 혼기를 한참 넘긴 노총각들이 동성 간에 성욕을 해결하는 일이 있어왔고, 나이 든 남자가 소년과 동성애를 갖는다는 이야기를 가끔 들었다. 이와 관련한 용어들이 사전에도 여럿 올라 있다.
동성애는 서양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자주 화제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미국도 빠질 수 없다. 4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 갔다가 게이들이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대적인 행진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 민주노동당이 성적 소수자 문제를 크게 들고 나와서 권영길 전 의원과 가벼운 논쟁을 벌인 일이 있다. 프랑스에 오래 체류했던 권 전 의원은 매우 강경했다. 프랑스물이 흠뻑 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관점은 성적 소수자에게 '관대한 묵인'을 하는 것은 괜찮겠으나 그것을 굳이 합법화 방향으로 해서 진보 정당이 큰 쟁점을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국회 민주당 사람들이 그 합법화가 포함된 법안을 내놓았다가 보수 기독교 쪽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진보 정당 쪽에서는 비슷한 법안을 아직 제출한 상태이다. 심지어는 최근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의 '성 소수자 혐오'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내기까지 했다.
나는 솔직히,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족 유지 본능에서 성 문제가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역행하는 것은 반(反)생물학적, 반(反)인류학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차별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선진 외국을 중심으로 동성 결혼 합법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가 그 14번째 국가가 되었단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적 풍토는 구미 나라들과 많이 다르다. 그러한 차이에서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지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성애 찬성 측의 오랜 노력이 효과를 나타냈는지 지금 그것을 옹호하는 것이 마치 리버럴(자유민주적)이고 진보인 것처럼 비쳐지는 듯하다. 거기에 반대하면 비(非)리버럴(illiberal)이고 반진보로 몰릴 것 같다. 그쪽이 여론몰이에 앞서고 있는 것 같고 또한 모방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여러 분야 소수파의 연합인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 해결 아닌 '해소'의 방식으로
나는 그들로부터 고루하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로 "아니요"라고 말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속마음으로는 동성애 합법화에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다중 앞에서 그 의견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는 듯하다. 군중심리에 이런 법칙이 있단다. "사람은 개인으로는 매우 이해심이 있고 합리적이기도 한데,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서는 웬일인지 바보가 되기도 한다."
인간사에는 드러낼 것과 감출 것이 있다. 모두 있는 대로 까발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은밀하게 놓아두어서 오히려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는 일도 많은 것이다. 그런 것이 문화이기도 하다. 예술도 그렇고.
나의 해법은 동성애의 합법화가 아니라, 군형법·호적법 등 관련 법의 처벌·불이익 조항들을 알 듯 모를 듯 아주 서서히 사문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란이 많은 사형제도 문제를 놓고도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알게 모르게 사문화하는 그런 방향으로 현명하게 해소하고 있지 않은가. '해결'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를 순조롭게 '해소'되게 하는 방향이다. 우리 사회도 그만큼의 관용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너그러운 묵살은 모르겠으나 드러내놓고 선양하는 것은 영 다르다. 서양 누군가가 말했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반복해 말할 수 있었다면 많은 재난은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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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루하기 짝이 없는 꼴통할배 글을 왜 진보매체가 다루어 주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
고재열을 비롯해서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 글을 리트윗하거나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를 누르는 실정이오.
단체로 미친 거 아니오?
진보진영에 어른이 없으니 다들 미쳐서 돌아가는 거.
최장집같은 어린애는 설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구조론의 관점에서 말해주시오.
의견을 묻는게 아니라 구조론적 관점 곧 사물이 아닌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묻는 것이오.
내 생각은 이렇소 하고 자기 의견 들이대면 황당하오.
아 누가 물어봤냐고.
자기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자연의 법칙을 끌어대야 비로소 말이 통하는 것이오.
자기 의견.. '이 커피 맛있다.'
자기 배제.. '이 자리에서는 이 커피가 어울린다.' 반드시 A면B다.. 전제와 진술의 형식으로 세팅해야 하오.
구조론은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본다는 것이 강력한 힌트이오.
대상의 관점이 아닌 주체의 관점이라야 하오.
주체의 관점은 자신이 사건의 공범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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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닥 객관적이지 않소.
진보편에서 보지 말고 과학편에서 법칙으로 말하기요.
예컨대 .. 여권신장은 당연히 해야한다.. 는 대전제를 깔아놓고
'어떻게?'를 생각하면 이미 틀렸소.
여권신장을 당연히 해야한다는게 어딨소?
안 하면 그만이지.
여권이 앞선 나라가 뒤진 나라를 잡아먹는 현실을 지적해야 대화가 통하는 것이오.
소비의 주체인 여권신장 없이 GDP가 1만불을 넘을 수 없소.
아랍이나 회교권 동남아가 가난한 이유는
남자들이 원래 공산당이라서 사적소유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오.
저커버그도 꾀죄죄한 후드티 입고 다니는 판에, 빌 게이츠도 구멍난 스웨터 입는 판에,
스티브 잡스도 청바지 하나로 때우는 판에 남자에게 맡겨두면 경제가 망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오.
살려고 여권신장 하는 것이오.
동성애 합법화가 옳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면 대화가 안 되오.
동성애 불법화가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는지를 지적해야 대화가 되오.
사형제 폐지가 어떻게 범죄를 줄이는지 이야기해야 대화가 되오.
도덕적 당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면 초딩이오.
당연히 그렇게 안하는 것도 내 맘이오.
A면 B다!
동성애 합법 지역 동성 결혼1
다른 방식의 동성 결합 (혹은 명시되지 않은 동거)1
외부 동성 결혼 인정1
동성 커플에 대한 미명시 |
|
동성애 불법 지역 경범죄
중범죄
무기징역
사형 |
1아직 발효되지 않은 최근의 동성 결합에 대한 법 혹은 법원 판결을 포함 할 수도 있음.
의견 주실 분이 더 없을듯.
나는 솔직히,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족 유지 본능에서 성 문제가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역행하는 것은 반(反)생물학적, 반(反)인류학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남재희의 이 발언은 정신병자 수준입니다.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 맞구요.
동물들도 동성애 다 합니다.
아담과 이브 때는 근친혼도 했습니다.
자연은 의도적으로 다양성을 유발합니다.
획일화 되면 죽습니다.
그런데 획일화 전략도 경우에 따라서 다양성 전략이 됩니다.
동굴생물처럼 고립된 지역의 경우 근친전략을 통해 생태계 전체의 다양성을 획득합니다.
갈라파고스의 핀치새들도 근친전략으로 서로 다른 부리모양을 얻었습니다.
만약 핀치새가 다른 섬으로 날아가서 족외혼을 했다면
다양성을 잃고 멸종의 확률을 높이게 됩니다.
성문제가 종족유지 본능 때문에 있는건 아니구요.
단지 종족을 유지하는게 문제라면 자가생식 해도 됩니다.
열성유전자 때문에 근친혼 안하는게 아니구요.
실제로는 동물들이 근친혼을 많이 하고 근친혼을 진화의 전략으로도 씁니다.
그러므로 단성생식 해도 종족유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성애는 종족유지와 직접관련이 없는 자연의 다양성 전략이며
이는 생태계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식을 얻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즉 성은 특정 종 단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태계 단위로 보지 않으면 절대 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양성을 가진 종이 생존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때문에 성이 있는 겁니다.
성은 생태계 전체의 상호작용 총량을 늘려 비대칭을 유발할 목적이고
동성애는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양자역학의 표준모형 개념으로 보면
성의 대칭행동이 비대칭(진화)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동성애 문제는 진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거구요.
그 이유는 동성애자가 많은 활동을 하는 나라가 경쟁에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는 5~7퍼센트 있는데
특정한 직업군으로 범위를 좁히면 5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미국이라면 샌프란시스코의 특정한 직업군은
거의 100퍼센트 동성애자로 구성될 수도 있습니다.
미래사회는 디자인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만 모이면 디자인이 망합니다.
여자들에게 옷 선택을 맡기면
최악의 아줌마군단 파마머리 등산복패션 되구요.
한 마디로 여자들은 디자인 센스가 없습니다.
그럼 남자들은 어떠냐?
남자의 세계에는 원초적으로 디자인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여자는 센스가 없고 남자는 개념이 없는 거에요.
그렇다면 디자인 좀 하는건 뭐냐?
디자인은 남자가 여자의 시선을 의식할 때
여자가 남자의 시선을 의식할 때
곧 서로 상대방의 심중을 읽으려 할 때 탄생합니다.
모든 좋은 디자인은
서로 상대방의 감추어진 속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의 산물이며
동성애자들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특정 직업군으로 범위를 좁히면 동성애자가 탁월한 성적을 내며
사회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즉 뛰어난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합법화를 끌어낸 것입니다.
동성애가 불법화 된 나라는 망하는 거죠.
인류가 진보하려면
대칭행동으로 상호작용 총량을 늘려
비대칭을 유발하는 방법 뿐이며
이는 많은 결혼, 많은 연애, 많은 이혼, 많은 동성애를 필요로 합니다.
아랍이 가난한 이유는 소비주체인 여자들이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고
한국의 성장이 멈춘 이유는
노인들이 이혼하지도 않고 연애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사실상 퇴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5만불 국가로 도약하려면
이혼율, 결혼율, 출산율, 연애율, 동성애율을 다 같이 높여야 하며
벤처기업을 특구를 지정하여 모아놓음으로써 시너지효과를 얻듯이
동성애특구 등을 만들어 모아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건너 들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예술이나 디자인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동성애자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감각은
(물론 모든 동성애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성애자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통찰력의 수준이 국력임을 느끼오.
나름 진솔하고 자연스런 얘기일법한 것이
초딩에 정신병자 수준의 얘기였다니...
상호작용율 총량을 늘리는 것이
바로 창의적 경제의 기틀이 되겠고,
향후 1-2세대안에 초일류국가가 되는
지름길인 걸!
그녀는 꿈이나 꿀 수 있을까?
'통찰능력 높이기 특별 위원회' 앞으로
10년간 가동해라...
위원장으로 한 분 추천할 사람 있다!
존재는 질입자운동량으로 진행합니다.
이 속에서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질에서 양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사회는 진보하게 되어있습니다.
무기물이 유기물을 낳고
유기물은 생물을 낳았습니다.
생물은 자웅동체에서 시작하여 암수를 구별할 수 있는 영역까지 진화했습니다.
여기서 사회는 종래 기준으로 분류하기 곤란한 형태의 동성애자를 발견합니다.
동생애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은
방향성(질-->량)을 가진 자연의 흐름에 따라 당연한 것입니다.
역사는
무분별에서 분별로
분별에서 비분별로
낮은 평등에서 불평등으로
불평등에서 높은 평등으로
한방향으로 진보하기 때문입니다.
허튼소리
나는 솔직히,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족 유지 본능에서 성 문제가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역행하는 것은 반(反)생물학적, 반(反)인류학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 만나보면
동성애에 대해서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는 다고 합니다.
상대에 대해서
반생물학적, 반인류학적 존재라는 기반을 깔고 들어가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한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동정이나 시혜일 뿐이지요.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반생물학적 존재로
보는 이들이 나아갈 길은 결국 나치입니다.
나치가 유태인, 집시, 슬라브족 학살 등
반인류적 범죄를 자행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다 결대로 가는 것입니다.
자연의 절대법칙은
가만두면 가만있는게 아니고
엔트로피에 의해 망한다는 것입니다.
* 비대칭 원리 - 그냥 두면 반드시 망한다.
자연의 근원적인 비대칭에 따라
초창기 지구에 등장한 생물은 거의 멸종했습이다.
35억년 쯤 전에 지구에 등장한 생물은 거의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생물활동은 산소를 배출하고 산소는 생물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독 중에서 제일 고약한 맹독이 산소입니다.
5억년 쯤 전부터 본격적인 진화가 시작됐는데
이는 자연의 비대칭을 진화의 비대칭으로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비율이 균형점에 도달한 거죠.
산소가 1퍼센트 증가하면 산불은 100배 늘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는 절묘한 균형상태이며 산소의 증가는 좋은게 아닙니다.
* 진화원리 - 비대칭으로 비대칭을 극복한다.
성은 대칭행동에 해당하는데 진화라는 비대칭으로 결과합니다.
그러나 성행동 그 자체도 하나의 비대칭입니다.
진화를 촉발하지만 동시에 진화를 방해합니다.
남녀가 없이 모두 중성이면 인류는 진화하지 못합니다.
성역할 구분없이 모두가 평등하면 인류는 망합니다.
극도로 성개방이 이루어진 사회는 발전이 없습니다.
남녀사이에는 분명한 구분과 차별이 있어야 합니다.
남학교 여학교, 남자반, 여자반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장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장벽이 없으면 망하고 장벽을 허물지 않아도 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남녀혼탕을 쓰면 망하고 남녀별탕을 쓰는 사회도 망합니다.
밖에서는 별탕, 집에서는 혼탕으로 가는게 맞습니다.
성구분이라는 대칭이 비대칭을 낳지만
성구분이라는 대칭행동 그 자체에 대한 대칭도 필요하다는 거죠.
양성자와 음전자 사이에 중성자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논리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비합리적으로 보는 관점은 연속적 사고입니다.
양자의 불연속적 관점으로 봐야 이해가 됩니다.
문명의 진보는 그래프에 선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은 일정한 단계마다 비약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자의 불연속성에 따라 진보 또한 불연속성을 가집니다.
진보는 RPM을 올리는게 아니라 기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2000RPM에서 3000RPM으로 올라가는게 아니고
3단기어에서 5단기어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대칭계와 대칭계 사이를 건너뜁니다.
문명은 양자점프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런 식의
외견상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을 낳습니다.
성구분이라는 대칭행동 그 자체에 대한 대칭도 필요하다는 거죠.
성구분이라는 대칭행동에 대한 대칭은 성개방인가요?
양성자와 음전자 사이에 중성자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논리는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같은데....ㅣ
남녀를 완전차별해서
모든 것을 따로 하면
남녀가 완전히 같아져 버리는 역설적 현상이 생깁니다.
아마존 정글에서 이런 현상이 관찰되는데
여자부족이 있어요.
얼마전 TV에 나왔는데 그 종족에는 남자가 없습니다.
결과는?
여자가 하는 행동이 남자와 정확히 같습니다.
남녀를 완벽하게 차별하면 여자가 완벽하게 남자로 변합니다.
여자그룹 안에 예쁜척 하는 여자는 한 명도 없어지고
모든 여자가 남자처럼 억세게 행동합니다.
성구분이라는 대칭행동은 남녀를 다르게 할 목적인데
결과는 남녀가 정확히 같다입니다.
즉 완벽한 남녀차별은 완벽한 남녀평등이라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남녀차단입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대칭행동은 극단적인 비대칭으로 결과합니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가 되는 거죠.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남녀가 50 대 50이 안 되게 해야 합니다.
중간에 박쥐그룹이 있어서 남자편과 여자편을 교대로 왔다갔다 하는
캐스팅 보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녀집단 안에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즉 남녀차별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진보는 남녀차별에서 남녀평등으로 가는 과정에서만 일어나며
완전한 남녀차별에도, 완전한 남녀평등에도 진보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차별이나 평등은 수학적 밸런스일 뿐 사회적 의미가 아님)
동성애자가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해서
때로는 남자편 때로는 여자편을 들어야 합니다.
덧붙이면 여자만 있는 여자반에는
꼭 남자역할을 하는 가상남자가 있습니다.
동성애자가 그 가상남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자반의 가상남자
남자반의 가상여자가 없으면 그 집단은 깨질 확률이 높습니다.
성구분이라는 대칭행동 그 자체에 대한 대칭은
남녀가 50 대 50으로 정확하게 나누어져 영이별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정글에는 남자부족과 여자부족으로 완벽하게 나누어져
종족이 몰락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남녀의 성역할은 다분히
의사결정 스트레스를 덜 겪으려는 뇌사용 회피현상에 따른 것입니다.
뇌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향성을 일으켜서
그 쪽으로 더욱 뇌를 더 많이 사용하게 합니다.
이거 중학교 때 관찰한 바 있소.
머스마들만 보인 반에도 꼭 일종의 여자역할을 하는 애들이 있었소.
나는 솔직히, 동성애는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족 유지 본능에서 성 문제가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역행하는 것은 반(反)생물학적, 반(反)인류학적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남녀가 50 대 50으로 나누어져 교착된 사회도 아니고
남녀가 70 대 30으로 나누어져 장가도 못 가는 사회도 아니고
남녀가 5.5 대 4.5와 4.5 대 5.5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면서
부단한 상호작용을 일으켜 끝없이 긴장을 유발하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싫어하지만
스트레스야말로 진보의 동력원입니다.
이 구조가 가능하려면 중성자가 있어야 합니다.
중성자는 남자편과 여자편 사이를 오가면서 대칭의 교착을 타개해야 합니다.
동성애에 끊이지 않는 이론은 선천적(생물학적)이냐, 선택적(문화적)이냐는 것인데, 두 가지 다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한쪽 면만 보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두가지 결과가 다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바꿀 수 없다도 맞고,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도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게이, 레즈비언으로 성향을 갖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문화적인 영향을 받아 게이, 레즈비언으로 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양성애자일 가능성도 많지만, 결혼해서 애 잘 낳고 살다가 게이 레즈비언으로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건 법적으로 동성혼인을 두번째로 받아들인 캐나다의 현실입니다.
토론토, 밴쿠버 뿐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게이 퍼레이드를 공식 도시 행사로 하는 나라라서 이러한 논쟁은 거의 끝났다고 봅니다.
이미 법적으로 끝난 게임입니다.
단, 종교적인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과학적인 발표보다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다 갖다 붙이는 설명은 대부분 귀납적일 뿐입니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종교적인 목소리도 하나의 의견으로 들어야 할 것은 아닌가 싶군요. 다양성의 측면에서.
물론 대화의 개방성에 있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겠지만........
하다못해 신혼부부가 살 집을 구할 때도 일단 가장 큰 평수부터 알아보고 서서히 줄이는 판에,
뭐? '아주 서서히 사문화?'
웃기는 짬뽕이오. 이건 그야말로 구조를 모르는 자들의 무식이라 할 수 있겠소.
무슨 일이든 <기>에선 최대한 크게, 넓게, 깊게 세팅해야 하오.
옛날 이야기를 해도, 일단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하면서 시공을 최대한 확장시켜 놓아야 꼬맹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오
스터워즈 각본을 써도, 일단 처음에는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하고 구라를 세게 쳐야지 관객들이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소. 그리고 이런 패턴은 모든 일에서 반복되오
우선 헌법으로 최대한 큰 틀을 짜고, 법률로 갈무리하며,
일단 본사에서 올해의 목표를 크게 잡으면, 현장에선 목표치를 현실에 맞추어 조종하고,
먼저 터를 넓게 다져 놓으면, 그 위에 아파트도 짓고, 경로당도 세우고, 놀이터도 만드는 것이오.
동성애 문제도 마찬가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이니 서서히 눈치보아가며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기다려선 안되오.
그렇게 해선 절대 변하지 않소. 저쪽은 이미 일베, 기독교, 수구꼴통으로 세력화되어 있고, 이미 고기압을 형성하여 역한 냄새를 동반하는 바람을 뿜어내고 있소.
그렇다면 이쪽에선 바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어선 안되오. 바람을 만들어야 하오.
이쪽에서 졸라 큰 기압대를 형성해서 바람의 방향을 원하는대로 세팅할 수 있어야 하오.
세력화를 하려면 커다란 이상을 세워야 하고 최대한 바운더리를 넓혀야 하오.
많은 사람을 태우고 커다란 에너지를 실으려면 돛단배로는 어림없소. 최소 크루즈선이어야 하오.
나름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흔히 저런 실수를 하오.
그들은 상부구조의 비대칭에 눈을 감고 하부구조에서 어떻게든 대칭을 이루려고 하고 있소.
하지만 그렇게 해선 되려 하부구조의 대칭이 상부구조의 비대칭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낳소.
19세기~20세기의 100년에 걸친 여권신장운동에서도 그러했소.
일단 여성의 인권을 단계적으로 서서히 보장하자는 주장을 당대의 나름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지식인들이 주장했소.
그러나 그들은 여권의 신장에 '한 치'도 기여한 바 없소.
진짜 여권의 신장은 치마 길이가 서서히 짧아지는게 아니라 미니스커트로 단 번에 짧아지듯,
일단 투표권부터 찾아서 남자와 동등한 참정권을 획득하는데서 출발하였소.
일단 가장 큰 <권리>를 확보한 후 그에 따른 자잘한 권리들을 하나 둘씩 되찾는 것이 여권 신장의 역사였소.
흑인들도 그러했소. 일단 가장 우선인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전엔 인간이 아니라 처분 가능한 사유재산이었음-를 획득한 이후 그에 따른 시민권, 참정권, 교육권 등을 획득해 나아갔소.
"논란이 많은 사형제도 문제를 놓고도 실질적으로 사형제를 알게 모르게 사문화하는 그런 방향으로 현명하게 해소하고 있지 않은가?"
졸라 개무식한 소리.
논란이 많은 건 미국같은 후진국에서 그런 거고. 이미 선진국에선 사형제도는 천부인권에 어긋난 것으로 결론 나 있소. 그리고 그 결론이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파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오. 시간차의 문제이지 논란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사형제가 사문화되고 있는 것은 현명한게 아니라 다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비겁함이고 무지함이고 눈치보기일 뿐이오.
사실, 진보는 알고 있소. 일단 <학생인권조례>부터 만들어야 바리깡들고 설치는 개새끼들의 행패를 멈출 수 있고, 학생의 자잘한 권리 확보도 가능하고, 학교에서 자행되는 그 모든 폭력을 스톱시킬 수 있소. 일은 그렇게 해야 하오.
본질적으로 이 모든 것은 영토 싸움이오. 그리고 영토싸움에서 일단 후퇴했다가 서서히 넓히자는 넘은 목을 쳐야 하오. 본질적으로 권을 획득하는 과정은 전쟁이오.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소. 일단 최대한도로 영토를 확보한 후 협상에 들어가야 하오. 안 그러면 어림도 없소. 적은 이미 영토를 가지고 있고, 세력을 가지고 있고 물리력도 확보하고 있소. 여차하면 처들어와서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소. 그런 적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끝이오.
남재희류는 졸라 지딴에는 현명한 조언이랍씨고 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천천히, 서서히, 조금씩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넘들의 비겁함 때문에 지난 반세기 동안 무고한 이들의 무수한 피를 흘려야 했음을 잘 알고 있소.
적의 눈치를 보는 순간 끝이오.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단, 우리가 바람을 만들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