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가능하면 그게 맞는 거다. 닭으로 달걀을 설명할 수 있으니 닭이 달걀에 우선한다. 정보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정보는 이제부터 그 출처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추론의 이유나 단서가 될 뿐이다.
근데 정보가 뭐지? 분명 나한테서 없던게 나에게 왔다. 틀렸다. 왔다는 거 자체가 정보다. 어떠한 정보가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뭔가가 나에게 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보이다. 이렇듯 정보는 운동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운동이 뭐지? 분명 운동을 하여 공간이 자리를 바꾸었다. 틀렸다. 자리바꿈 자체가 운동이다. 뭔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뭔가에 밀려버려서 자리가 바뀐게 운동이다. 이렇듯 운동은 미는 힘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힘이 뭐지? 분명 방향을 가진 힘이 작용하였다. 틀렸다. 방향 자체가 힘이다. 뭔가 방향이 정해지고 그걸 따라서 힘이 작용한 게 아니라 뭔가 충돌하여 꺽여버린 방향이 힘이다. 이렇듯 힘은 딱딱한 입자를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입자가 뭐지? 분명 내부에 밀도를 가진 것이 입자이다. 틀렸다. 입자가 밀도를 갖는 게 아니라 공간의 밀도차가 발생할 때 밀도가 높은 쪽이 입자이다. 이렇듯 입자는 외부끼리는 밀도가 불균일하지만 내부끼리는 균일한 질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그런데 어째서 나로부터 정보가 나간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정보가 왔지? 그것은 내가 입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외부에 비하여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반적인 불균일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통째로 균일해 버리면 아와 피아도 없으며 비존재 비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균일은 공간의 밀도차이며 결국 국소적인 균일을 의미한다. 이 때 밀도가 낮은 쪽은 외력으로서, 밀도가 높은 쪽은 계로서 성립한다.
외력에 대하여 계 내부적으로 결합하는 상태가 질이다. 그런데 질은 이미 계의 성립에서부터 계 내부가 외부에 비하여 밀도가 높음을 내포한다. 또한 질은 이러한 밀도차에 대한 정보인 량과 계의 성립인 입자로의 독립 가능성을 가진다.
입자는 깨지지 않으려고 외부에 대하여 힘껏 버틴다. 밀도차에 대한 외부와의 정보가 입자의 축과 자리바꿈한다. 이후 축의 위치가 복원되며 다시금 정보를 밖으로 내쫓는다. 축의 복원이 개입된 최후의 정보는 최초의 정보보다 부정확하다.
외력ㅣ 입자 는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정보ㅣ(-축-) 이러한 상태에서 힘이 작용하여
(-정보-)ㅣ축 축을 이동시킨다.
(-축-)ㅣ정보 다시금 축이 복원되면서 정보를 반대쪽으로 내뱉는다.
이렇듯 보통 우리가 얻는 정보는 관측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회 걸러진 것이다. 내부의 자리바꿈 두번을 외부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정보와 입자 간의 자리바꿈 한 번으로 인식된다. 날개2의 운동이 심 1의 운동으로 인식된다.
'질'->'량+입자'->'운동+힘'->'힘+운동'->'입자+량' 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때 '운동+힘'->'힘+운동'은 힘의 방향이 꺽임을 의미한다. 꺽인만큼 방향이 소모되는 것이다. 밀도차인 질로 입자힘운동량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
정보에는 정보가 없지만 운동에는 정보가 있다. 운동에는 운동이 없지만 힘에는 운동이 있다. 힘에는 힘이 없지만 입자에는 힘이 있다. 입자에는 입자가 없지만 질에는 입자가 있다. 정보가 가장 먼저라는 건 알이 가장 먼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주의 순수한 정보를 향한 대상화는 알을 키울 생각없이 알인 채로 볼일을 다 보려는 관점이다. 어떠한 알만 가지고는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닭을 가지고서는 어떤 알을 낳을지 알 수 있다. 뻔히 병아리 달걀이다.
근데 정보가 뭐지? 분명 나한테서 없던게 나에게 왔다. 틀렸다. 왔다는 거 자체가 정보다. 어떠한 정보가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뭔가가 나에게 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보이다. 이렇듯 정보는 운동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운동이 뭐지? 분명 운동을 하여 공간이 자리를 바꾸었다. 틀렸다. 자리바꿈 자체가 운동이다. 뭔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뭔가에 밀려버려서 자리가 바뀐게 운동이다. 이렇듯 운동은 미는 힘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힘이 뭐지? 분명 방향을 가진 힘이 작용하였다. 틀렸다. 방향 자체가 힘이다. 뭔가 방향이 정해지고 그걸 따라서 힘이 작용한 게 아니라 뭔가 충돌하여 꺽여버린 방향이 힘이다. 이렇듯 힘은 딱딱한 입자를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그런데 입자가 뭐지? 분명 내부에 밀도를 가진 것이 입자이다. 틀렸다. 입자가 밀도를 갖는 게 아니라 공간의 밀도차가 발생할 때 밀도가 높은 쪽이 입자이다. 이렇듯 입자는 외부끼리는 밀도가 불균일하지만 내부끼리는 균일한 질을 추론해야 할 이유이자 단서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그런데 어째서 나로부터 정보가 나간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정보가 왔지? 그것은 내가 입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외부에 비하여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반적인 불균일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통째로 균일해 버리면 아와 피아도 없으며 비존재 비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균일은 공간의 밀도차이며 결국 국소적인 균일을 의미한다. 이 때 밀도가 낮은 쪽은 외력으로서, 밀도가 높은 쪽은 계로서 성립한다.
외력에 대하여 계 내부적으로 결합하는 상태가 질이다. 그런데 질은 이미 계의 성립에서부터 계 내부가 외부에 비하여 밀도가 높음을 내포한다. 또한 질은 이러한 밀도차에 대한 정보인 량과 계의 성립인 입자로의 독립 가능성을 가진다.
입자는 깨지지 않으려고 외부에 대하여 힘껏 버틴다. 밀도차에 대한 외부와의 정보가 입자의 축과 자리바꿈한다. 이후 축의 위치가 복원되며 다시금 정보를 밖으로 내쫓는다. 축의 복원이 개입된 최후의 정보는 최초의 정보보다 부정확하다.
외력ㅣ 입자 는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정보ㅣ(-축-) 이러한 상태에서 힘이 작용하여
(-정보-)ㅣ축 축을 이동시킨다.
(-축-)ㅣ정보 다시금 축이 복원되면서 정보를 반대쪽으로 내뱉는다.
이렇듯 보통 우리가 얻는 정보는 관측대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회 걸러진 것이다. 내부의 자리바꿈 두번을 외부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정보와 입자 간의 자리바꿈 한 번으로 인식된다. 날개2의 운동이 심 1의 운동으로 인식된다.
'질'->'량+입자'->'운동+힘'->'힘+운동'->'입자+량' 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이때 '운동+힘'->'힘+운동'은 힘의 방향이 꺽임을 의미한다. 꺽인만큼 방향이 소모되는 것이다. 밀도차인 질로 입자힘운동량을 전부 설명할 수 있다.
정보에는 정보가 없지만 운동에는 정보가 있다. 운동에는 운동이 없지만 힘에는 운동이 있다. 힘에는 힘이 없지만 입자에는 힘이 있다. 입자에는 입자가 없지만 질에는 입자가 있다. 정보가 가장 먼저라는 건 알이 가장 먼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주의 순수한 정보를 향한 대상화는 알을 키울 생각없이 알인 채로 볼일을 다 보려는 관점이다. 어떠한 알만 가지고는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닭을 가지고서는 어떤 알을 낳을지 알 수 있다. 뻔히 병아리 달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