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하여가 바른 방향이니 순방향이다. 위하여는 틀린 방향이니 역방향이다. 무엇인가? 바른 방향은 엮이고 틀린 방향은 끊긴다. 일은 항상 다음 단계가 있다.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 정동에는 반동이 있다. 반동에는 반동의 반동이 있다. 그렇게 계속 굴러가는 거다. 이렇게 기승전결로 치고 나가는 것이 순방향이다. 반대로 끊기는 것은 역방향이다. 진보가 순방향인 이유는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보수가 역방향인 이유는 다음 단계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의 특징은 시장원리건, 민간자율이건, 지방자치건 일단 맡겨놓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다. 서로 칸을 가르고 담장을 높이고 장벽을 쌓고 분리하여 등을 돌리고 그다음은 없다. 백인은 백인 칸에 타고 흑인은 흑인 칸에 탄다. 등을 돌린다. 그다음은? 없다. 그게 끝이다. 보수는 어떤 일을 종결시킬 뿐 새로 시작하지 못한다. 시장원리도 좋다. 구조론은 시장원리를 부정하지 안는다. 문제는 시장에 맡겨놓고 손 놓고 있겠다는 거다. 시장원리에 맡긴 다음 시장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반칙하는 자는 반드시 있다. 제재해야 한다. 차를 탄 다음에는 운전해야 한다. 실제로 가는건 버스다. 그러나 버스에 맡겨놓으면 안 된다. 운전기사가 붙어야 한다. 초반에는 운전기술이 서툴러 차라리 시장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 된다. 그러나 시장이 발달할수록 정밀제어가 필요한 법이다. 정부는 적절히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 거기에는 고도의 실력이 필요하다. 이명박이 시장에 개입하면 망하고 문재인이 시장에 개입하면 흥한다. 실력이 관건인 거다. 그런데 진보 중에도 말로만 진보할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자가 많다. 막연히 정부정책에 반대할 뿐 대안은 없다. 생태니 환경이니 하면서 대놓고 반대만 한다. 그런 자들은 진보장사를 하는 거지 진보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진보는 상황의 변화에 긴밀히 대응해야 한다. 멈춘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의하여는 반드시 맞고 위하여는 운이 좋으면 맞을 수도 있다. 에너지는 효율성에 의하여다. 지식은 도덕적 목적을 위하여다. 에너지로 보면 언제나 맞고 지식으로 보면 간헐적으로 맞다. 사실이지 때로는 진중권, 유시민류 진보 지식인의 말이 맞다. 구조론은 말한다. 가끔 옳으면 곤란하고 항상 옳아야 한다고. 그렇다면?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틀려도 결국 맞고 맞아도 맞는 것이 전략이다. 전술은 맞거나 아니면 틀리지만 전략은 언제나 맞다. 왜? 다음 단계의 대응이 있기 때문이다. 전술적 패배는 패배다. 전략적 패배는 승리하기 위한 미끼다. 이기면 이기고 지면 사석작전이 되어 나중 이득을 보는게 전략이다. 그러므로 에너지로 가면 틀려도 결국 사석작전이 되어 옳게 된다. 반전 일어난다. 에너지는 일의 다음 단계가 있고 지식은 토막나 있다. 에너지는 설사 잘못된다 해도 다음 단계에 회복한다. 시행착오가 있어도 오류시정이 있다. 그러므로 의하여는 길게 보면 항상 맞고 오류는 없다. 의하여는 맞아도 맞고 틀려도 반전이 일어난다. 왜? 엮여 있기 때문이다. 틀리면 남은 에너지가 개입하여 시소를 바로잡는다. 저울이 평형을 회복하듯. 오류가 있어도 회복되는게 에너지다. 단 시간이 걸린다. 반면 지식의 위하여는 맞을 때 맞고 틀릴 때 틀린다. 왜? 토막나 있기 때문이다. 오류가 시간이 지나면 바로잡아지는게 아니고 그냥 틀린 거다. 에너지가 틀리면 저울추가 움직여서 추가로 에너지가 들어와서 바로잡지만 지식이 틀리면 그냥 틀리고 그걸로 끝이다. 바로잡아주는 일은 절대로 없다. 세상의 방향은 큰 틀에서 정해져 있다. 무한이 틀렸고 극한이 정답이다. 확산은 무한이고 수렴이 극한 곧 리미트다. 세상에는 열린 방향과 닫힌 방향이 있을 뿐이다. 열린 무한을 닫힌 리미트로 바꿀 때 에너지가 유도된다. 의하여는 닫혔고 위하여는 열렸다. 열린 것을 닫을 때 거기서 에너지가 얻어지고 사건은 촉발되며 일은 다음 단계로 진행해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