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인가 상호작용인가? 애덤 스미스 이래 학계는 인간의 이기심을 경제원리의 근간으로 보았다. 개인의 이기심이 모여 집단의 발전을 이룬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 아니라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양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이 집단을 위해 희생하려 들기 때문에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다. 많은 경우 피상적 관찰로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게 무의식의 명령에 지배되는 행동이다. 집단 내부에서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인간은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쪽으로 기동한다. 스트레스는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며 호르몬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이코패스는 당연히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사이코패스가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기업의 CEO나 권력자가 호르몬의 변화를 일으켜 점차 사이코패스에 가깝게 변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사람은 집단 안에서의 협력을 꾀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집단 안에서의 균형이다. 균형을 이루어야만 상호작용을 활발히 하기 때문이다. 집단과 상호작용이 활발해야 호르몬의 측면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돌림을 당하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로 괴로워지며 억지 상호작용하기 위해 자학하게 된다. 외부의 타자와 상호작용을 못하므로 대신 자신과 상호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며 심한 경우 동물원에 갇힌 동물의 정형행동과 유사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에너지 넘치는 삶이며 그것은 활력이다. 편안한 행복이나 나른한 쾌락이 아니다. 행복은 감정이 이완되는 것이지만 인간은 신체와 정신이 고양되기를 원한다. 이완상태를 원하기도 하지만 먼저 고양된 다음에 휴식의 이완을 찾는다. 사랑이나 여행이나 놀이나 취미활동은 모두 정신과 신체를 고양시키는 것이지 이완시키는 것이 아니다. 만족스런 섹스 후의 나른한 상태보다 도박꾼의 업된 상태를 원한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자초한 것이며 함부로 자신을 고양시키려다가 환경과 마찰하게 되는 것이다. 영장류 유인원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인간 4세 아기의 행동을 비교하는 실험이 있었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둘이서 협동작업을 하면 3 대 1의 비율로 나오도록 되어 있는 포도알을 각각 3과 1로 차지했다. 유인원들도 포도알을 갖기 위해 협동작업을 하기는 했지만 고루 나누지 않고 되는대로 챙긴 것이다. 인간 아기는 높은 비율로 구슬을 2개씩 나눠가졌다. 과학자들은 이를 인간 특유의 협동정신으로 해석했지만 틀렸다. 권력지향 행동이다. 타인을 위한 희생도 집단 안에서 의사결정권을 지향하는 행동이다. 어떻게든 집단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4살 아기라면 어머니 품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니 집단에 의존해야 한다. 엄마가 옆에 있다면 얻은 구슬을 모두 엄마에게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침팬지니 오랑우탄이라면 4살이라도 이미 독립해 있으니 자기의 생존부터 확보하려고 눈앞의 포도알을 독점한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인간의 행동이 희생과 봉사와 양보와 타협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는 모두 이성적인 권력지향 행동이다. 인간은 이익지향이 아니라 권력지향이다. 권력은 균형에서 나온다. 석가의 중도든 공자의 중용이든 그 이면에는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중간에 선 자가 권력을 차지하더라는 현실에서의 경험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다투다가 결국 중간에 있는 아기의 결정을 따르게 되는 것은 일상의 경험이다. 여당과 야당이 다투다가도 중간의 국민을 따르게 되며 호남과 영남이 노상 다투지만 결국 중간의 충청이 승패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균형을 꾀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공급측 시장지배 권력에 맞서 균형을 회복하려는 수요측 시장지배 권력이 작동한 것이다. 권력 대 권력의 충돌에 의한 힘의 균형이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 반대로 움직이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공급측 시장지배 권력에 굴종하여 오히려 비싼 물건만 사들이는 탈균형화 권력행동도 있다. 명품만 사는 탈균형화 행동도 가난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적 기동이라는 점에서 권력지향이라는 본질은 같다. 포지션이 중요하다. 약자는 아기처럼 집단에 의존하려고 하고, 강자는 침팬지처럼 오만해져서 집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전략의 차이다. 내부지배냐 외부대항이냐다. 값싼 물건을 사는 사람은 외부에 대응하는 세력전략을 쓰고, 비싼 물건을 사는 사람은 내부를 지배하는 생존전략을 쓴다. 군중은 숫자가 많으므로 세력전략을 쓰고 예술가들은 고립되어 있으므로 생존전략을 쓴다. 군중은 가격을 낮추어야 하고 예술가는 가격을 올려야 한다. 부자들은 자기들만의 소수그룹에 속해 있으므로 생존전략을 쓰고 대중들은 다수그룹에 속하므로 세력전략의 밴드왜건효과를 기대한다. 지식인들은 자신을 고립된 소수로 여기므로 생존전략을 쓴다. 선거만 하면 당연히 진다. 이는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다. 지식인 역시 본능에 무너진다. 인간은 집단의 일원이므로 집단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말은 헛소리고 대부분 집단 안에서의 시기심을 따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사회발전의 동력원이다. 배가 아파야 정상이다.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다면 자연히 사촌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사촌은 부자가 되어 강남으로 이사를 간다. 왕래하지 않게 된다. 사촌과의 상호작용이 차단되어 씨족붕괴로 가는 것이다. 상호작용에 따른 균형을 원하는 행동이 또다른 불균형을 낳는 패턴으로 인류문명은 계속 가는 것이다. 인간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기심을 추구하기보다 집단 내부의 상호작용을 늘리는 쪽으로 기동한다. 다만 집단 안에서 자신이 강자냐 약자냐, 혹은 다수파냐 소수파냐에 따라 다른 전략을 사용할 뿐이다. 피아구분이 중요하다. 약자는 집단을 아我로 규정하고 자신이 다수파에 속해 있다고 믿지만, 강자는 집단을 피彼로 규정하고 자신이 소수파에 속해 있다고 믿는다. 친박은 자신을 친박으로 여기지만 박근혜는 자신을 친박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자신을 공주로 규정하고 친박을 몸종으로 규정한다. 그런 포지션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은 언제라도 상호작용을 원한다. 피아간에 균형이 맞아야 상호작용이 지속되며, 균형이 기울면 상호작용은 중단되고 대항하는 권력을 잃게 된다. 상호작용이 증대되는 방향으로의 기동이 보이지 않는 손 곧 시장원리로 나타난다. 강자의 지배권력 뿐 아니라 약자의 대항권력도 역시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서는 권력임을 이해해야 한다. 집단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동이 권력이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 아니라 이타적 동물입니다. 문제는 박근혜의 타가 최순실이라는 거지요. 박근혜가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했으면 좋았을텐데 최순실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니 나라가 망하는 거지요. 김정은을 위해 이타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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