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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929 vote 0 2016.08.07 (23:30:05)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의미는 구조의 복제에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알고 있지만 실재로 보면 오직 사건이 있을 뿐이니 사건은 스스로를 복제한다. 원본과 복제본의 관계로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개별적인 존재자들이 모여 하나의 집합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근본에서 갈라져나온 여러 갈피들이다. 복제본이 멀리가지 못하고 원본 주변에 자리잡으니 모여있는 것처럼 보일 뿐 모이지 않았다. 우주는 고르게 흩어져 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그 사건의 변화를 보는 방법이다. 시간과 공간은 늘어놓고 비교해보는 절대적 관점이고, 물질은 인간이 신체감관으로 건드려보는 상대적 관점이다.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 역시 상호작용이라는 형태로 서로 건드리더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건드리기 이전의 모습인 에너지로 환원된다. 우주에는 다만 에너지가 존재할 뿐이며,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에너지에 관측이라는 이름의 칼라를 입힌 즉 인간위주 인식방법에 불과하다.


    비유하면 컴퓨터와 같다. 우리는 거기에 게임과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다고 믿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반도체가 있을 뿐 거기에 아무 것도 들어있는 것이 없다. 반도체에 게임을 집어넣는다고 해서 질량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태초에 사건이 일어났고 이에 에너지가 쏟아졌으니 시간과 공간이 연출되었다. 그 이전에 무엇이 있다고 말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을 인식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사건이 있기 전에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으니 사건이 있기 전이라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태초 이전은 없다. 태초 이전은 없지만 태초와 동시는 있다.


    우리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쌍둥이 우주가 건너편에 탄생되었을지도 모른다. 다중우주 개념을 떠올릴 수도 있다. 다른 세계에 무언가 있을 수 있으나 그곳에 우리우주의 시간과 공간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태초에 서로 다른 두 우주의 충돌이 있었을 것임을 추측할 수도 있다.


    ◎ 사건, 에너지, 복제, 상호작용, 세계가 존재한다.


    컴퓨터게임 속의 아바타가 게임의 탄생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논하는 것은 의미없다. 우리우주라는 하나의 닫힌계가 존재하며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은 에너지 내부의 상호작용에 의해 연출되었다.


    최초에 커다란 에너지의 출렁임이 있었으니 서로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건드려진 바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연출되었다. 확실한 것은 사건과 에너지의 복제와 서로 건드리기 뿐이다. 곧 상호작용이다. 그 결과로 세계가 존재한다. 나머지는 모두 허상이다. 인식을 돕기 위한 임의적 설정에 불과하다.


    뉴트리노가 지구를 관통해도 지구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니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건드림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물질은 건드려진 것이니 관측방법에 대해 상대적이다. 공간은 관측자에 대해 상대적이며, 시간은 내부 상호작용에 대해 상대적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건드려졌다는 의미다. 건드릴 때마다 매개변수가 추가된다. 하나의 사건은 5개의 매개변수를 가진다. 물질은 5회에 걸쳐 건드려진 결과다. 건드림이야말로 모든 논리의 궁극적 근거가 된다. 곧 상호작용의 논리다. 건드려진 바 상대적인 결과값을 보지 말고 건드리는 절대적인 주체를 봐야 한다. 그것은 사건의 복제다.


555.jpg

 

    성경이 창세기부터 시작하듯 역사를 쓰려면 우주의 역사부터 써야할 것입니다. 결과가 있으니 원인도 있습니다. 세계는 결과입니다. 원인은 사건입니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으니 상부구조는 닫힌계 내부에서 에너지의 자기복제요 하부구조는 그것의 2차적인 상호작용입니다.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2차적인 상호작용의 세계 곧 물질우주의 세계입니다. 건드려진 세계입니다. 혼잡해졌습니다. 건드렸다는 것은 손을 탔다는 것이며 왜곡되었다는 것입니다. 건드리지 않은 순수한 세계로 보아야 합니다.


[레벨:11]큰바위

2016.08.08 (11:33:56)

태초

태극

태고

태시

창시 


처음을 이르는 말들은 시간언어다. 

공간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문제인데, 


지금 우리는 공간을 더하고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물질이 더해져 

이 삼자 관계를 규명하려는 것이다. 


이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를 사건으로 설명하려 하는 것.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때의 사건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 

이 모르는 사건을 알려고 드는 시도가 

창세기의 질문이고, 

물리학자들의 질문이고,

철학자의 질문. 


이미 존재해 있었다고 믿는 시간, 공간, 물질은 거기에 없었다. 


이것은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의 문제이고,

전제 설정의 문제고,

결국 언어의 문제다. 


숙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8.08 (11:40:28)

공간과 시간은 분리되는게 아닙니다.

시간이 조금 더 크고 공간이 더 크기가 작죠.

그래서 우리말은 시간을 맨 앞에 말하고 영어는 시간을 맨 뒤에 말합니다.

우리말은 큰 것이 앞에 오고 영어는 큰 것이 뒤에 가죠. 

공간은 사건 안에서 관측자와 대칭관계가 성립해 있고 

시간은 관측자가 사건 바깥에 있는 거죠. 

그러므로 시간은 관측자에 대해 절대적이고 

공간은 관측자에 대해 상대적인 것이며

물질은 관측방법에 대해 상대적이고

동서남북은 태양에 대한 지구의 자전이 기준이지만 

좌우는 관측자인 인간이 기준이죠.

그래서 공간은 상대적인 것.

그러나 시간도 더 높은 세계에서는 상대적입니다.

이 경우는 관측자에 대한 상대성이 아니라 

상호작용에 따른 상대성을 의미하는 거. 

[레벨:11]큰바위

2016.08.08 (22:36:40)

저도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분리 될수도 없고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일단 상대적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일전 시간 안에서 볼 때 절대성이 부여되기도 합니다. 


이게 저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상대성이 곧 사건이라는 말이지요. 


상호작용에 따른 상대성이란 말은 결국 동의어 반복입니다 .


상호작용이 곧 상대성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8.09 (16:01:42)

참고용 동영상




관찰자가 자신과 같은 차원의 대상을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을 더하는 방법이 있다.

, 내가 움직이거나 대상이 움직이면 그것의 동차원을 탐구할 수 있으며 나아가 

원형을 탐구할 있다.


원형은 사건이나, 관찰된 데이터는 사물이다. 정지해있다. 그러나 뇌는 시간을 입혀 재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재현할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9]id: 태현태현

2016.09.01 (09:04:52)

좋은 자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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