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권력이다. 혹은 권한이다. 권權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권’이라고도 하고 ‘천부인권’이라고도 한다. 동양의 ‘천명’이나 서구의 ‘천부인권’이나 표현이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대체 ‘하늘 천天 자’가 거기에 왜 들어가느냐고? 어휘력이 딸려서다. 국어가 안 되기는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구조론을 모르므로 옳게 표현하지 못할 뿐 직관으로는 의미가 전달된다. 과학의 언어로 접근하자. 권權은 사건의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기 단계가 승단계를 지배하는 원리다. 이는 수학법칙에 근거한다. 구조론은 밀도, 입체, 각, 선, 점으로 설명한다. 선 하나를 자르면 점 두개를 얻는다. 둘이 하나를 공유하는 만큼 이익이다. 여기서 지배종속 구조가 만들어진다. 일은 기승전결로 이어진다. 뒷단계에 복무하는 사람은 앞단계를 공유한다. 그만큼 이익을 본다. 그 이익만큼 앞단계에 돌려줘야 하니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야 한다. 국가에서 도로를 닦으면 그 도로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가게주인은 세금을 내야 한다. 징세권이다. 선점권, 기득권, 특허권, 저작권, 통치권 등 다양한 권이 있다. 모두 일의 앞단계에 서서 뒷단계를 지배한다. 봉건시대의 군주들은 이 원리를 이상하게 해석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으로 유명한 율곡의 ‘천도책’이 그러하다. 임금이 통치권의 근거를 자연법칙에서 얻고자 하니, 율곡이 기 일원론으로 풀어 칭찬받았다. 물론 이理도 슬쩍 언급해서 함정을 피했다. 글자 한 자 잘못 썼다가 역적 되는 수가 있다. 임금 비위 맞추려고 애매하게 써놨지만 본의는 기 일원론이다.
◎ 천명파.. 사계절이 법칙이듯이 임금의 통치권도 법칙이다. 천명사상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사계절과 같다. 봄 다음에 여름에 오는 것이 정해져 있듯이 고려 다음에 조선이 오는 것도 천명에 따라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이성계의 권력은 정당한 것이며, 표현의 자유도 원리는 같으니 자연권에 속하므로 무제한이다. 이런 식으로 진중권도 한 순간에 꼴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민의파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도량형으로 보자. 미터법이든 파운드법이든 정하기 나름이다. 법은 임금이 정하기 나름인데 거기에 무슨 얼어죽을 천명이 있겠는가? 이것이 한비자 생각이고 마키아벨리 생각이다. 생각하는 수준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서구인들은 제왕의 통치권이 신으로부터 주어진다고 여겼다. 마키아벨 리가 ‘아닌데요? 사람이 하기 나름인데요?’ 덜컥 진실을 말해버렸으니 겁대가리 상실한 거다. 위험하다.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권을 부정하고 있다. ‘법을 정하기 나름이라고?’ 진시황이나 김정은이나 차베스나 시장원리를 부정하고 함부로 법을 휘두르다가 경제를 말아먹은 것은 같다. 법은 정하기 나름이 아니고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자연권은 신이 내려주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법칙도 아니고, 운전기사의 핸들처럼 적절히 조작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통제가능성이다. 천명파가 득세하면 지방의 호족들과 기득권들과 지식인이 발호해서 나라가 여러 갈래로 찢어진다. 중앙의 권력이 약해진다. 가야연맹처럼 된다. 신라의 침략에 당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가 초나라 도왕을 도와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쳤으나 귀족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삼국지 시대에도 오나라는 부족연맹 구조를 답습하다가 사마씨의 진에 멸망한다. 초나라는 묘족의 나라다. 이후 묘족은 20세기 까지 한 번도 잘 나간 적이 없다. 민의파가 득세해도 곤란하다. 진시황부터 나폴레옹, 마오쩌뚱, 스탈린에 히틀러까지 모두 민의를 앞세워 나라를 말아먹었다. 법이 자연권 위에 있다는 새누리 생각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새누리가 걸핏하면 법치주의 타령하는게 그렇다. 초딩생각이다. 법은 자동차의 핸들과 같아서 그냥 붙잡고만 있으면 죽는다. 커브에서는 핸들을 꺾어야 한다. 법에도 융통성이 있고 정상참작이 있어야 한다. 구조론의 정답은? 대칭원리다. 권은 대칭이 있다. 왜인가?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으로는 질≫입자≫힘≫운동≫량의 5회에 걸쳐 세부적인 대칭을 만든다. 구조론은 기득권을 인정하면서도 5회에 걸쳐 기득권을 무효화 시킨다. 우리는 막연히 평등을 주장한다. 위험하다. 흑인과 백인을 동등하게 대접하면? 흑인이 불리하다. 백인이 편 먹고 흑인을 배제한다. 흑인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놔야 엇비슷해진다. 평등하게 가면 빽있고 돈있고 힘있는 자만 살판나는 것이다. 그들은 짜고 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이 잘하는거 있다. 우리는 양성평등을 주장하지만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초등학교 교사가 백퍼센트 여교사로 채워진다면? 오히려 쏠림현상을 가속화 시킨다. 기계적인 평등주장은 조중동의 기득권의 논리나 진중권들의 극단적 표현의 자유 주장만큼 위험하다. 공정하게 하면 반칙하는 넘이 다 먹는다. 무엇인가? 권을 인정하면서 권에 대항해야 한다. 권을 인정하면 차별이 일어난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가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건 말이 안 된다. 창작한 자와 표절한 자가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 분명히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대항해야 한다. “군자는 천하의 일에 있어서 반드시 옳다거나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 없으며 오로지 의를 따른다.”君子之於天下,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논어] 우리는 법에도 대항해야 하고, 기득권에도 대항해야 하고, 불평등에도 대항해야 한다. 저작권이나 특허권도 무제한일 수 없다. 정답은 긴밀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모든 권리, 권력에는 대항하는 권리, 권력이 있다. 단 대항하는 쪽은 숫자가 많아서 의사결정이 어렵다. 주주총회라 해도 몇 안 되는 대주주가 농간을 부리기는 쉽고, 숫자가 많은 소액주주가 맞서기는 어렵다. 막연히 단결만 하면 된다고 우기는게 좌파의 무개념이다. 단결 그거 원래 잘 안 된다. 어떻게 통제되는가? 일의 다음단계에 의해 통제된다. 약한 고리가 있다. 기에서 승으로 넘어가는 단계가 약한 고리다.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운동으로, 량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통제가능한 고리가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파업을 하더라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세금제도라도 그렇다. 이익을 낸 다음에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보통은 상속세가 그러하다. 그 지점이 통제가능한 고리다. 소비세도 그렇다. 그런 연결지점에 대항하여 맞서는 것이다. 버스라고 치자. 우파들은 운전기사에게 절대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좌파들은 승객들에 권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림은 화가에게 절대권이 있을까? 아니다. 음악을 소비해준 대중에게도 권력이 있다. 버스를 탈 때는 운전기사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내릴 때는 승객이 원하는 장소에 내려줘야 한다. 이것이 구조론의 방법이다. 그런데 대중이 화가를 지배한다면? 이발소 그림이 된다. 관객이 영화를 지배한다면? 한류드라마처럼 조잡해진다. 독자의 비위를 맞추면 문학이 망한다. 작가에게 절대권이 있다고 믿는 진중권류는 수구꼴통이고 독자에게 권력이 있다고 믿는 부류도 상업주의적 타락으로 간다.
◎ 무뇌우파.. 기득권은 무조건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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