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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473 vote 0 2016.02.09 (14:12:00)

     

    제 7편 술이述而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니 옛것을 전술하되 지어내지 않는다.”


    유명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다. 구조론은 복제, 조합, 연출한다. 자연에 있는 것을 복제하여 사회로 들여온다. 원래부터 자연에 있는 것이 옛것이다. 진리는 원래 있으니 옛것이다. 자연의 완전성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니 옛것이다. 구조론은 원래부터 자연에 갖추어져 있는 옛것을 복제, 조합, 연출하여 사회를 진보시킨다. 공자는 깨달음을 얻어 이를 직관한 것이다. 공자의 술이부작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혁신을 반대한다면 잘못이다.


    공자는 대단한 학문시스템을 발명한 점에서 대단한 혁신가였다. 다만 당시에는 학문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옛 자료만 긁어모아도 훌륭한 학문이 되는 형편이었다. 이는 한국의 지식인이 서구의 원서를 들여와서 번역만 해도 한 분야의 태두가 되고 곧 종조가 되어 떠받들어지는 것과 같다. 학문은 번역이 아닌데 한국에서는 번역으로 치게 되었다. 지식인이 창피한줄 모르고 외국의 석학 아무개가 말했는데 하고 말을 꺼내는 처참함에 이르렀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고 남의 생각을 옮기다니 이보다 수치스런 일이 있다는 말인가? 이는 한국의 특수성이다. 공자의 시대는 특수한 시대였다. 공자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으므로 자연의 것을 번역하여 인간에게로 옮겨오기만 해도 학문이 되었다. 노나라의 서고에 있는 책을 정리하기만 해도 학문이 되었다.


    술이부작이 문제가 된 것은 선비들이 과거시험 답안지를 이용하여 황제를 비판하는 풍조를 금지시키기 위해 명나라 황제가 꼼수를 써서 팔고문 외에 공부하지 못하도록 하며 술이부작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다. 명나라 황제가 공자를 망쳐놓은 것이다.


    조선에도 전해져서 일체의 진취적인 기풍을 차단시켰으니 이는 권력자의 횡포였을 뿐 공자의 본의는 아니다. 특히 주자의 성리학이 처음 나왔을 때 선종불교의 변종이라고 까였기 때문에 주자가 공자의 시경에서 성리학의 힌트를 얻었다고 변명한데서 비롯되어 이후 유교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답답해진 원인이 되었다. 주자 역시 망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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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道를 바라보고 덕德을 이루며, 인仁에 의지하고 예술藝에 노닐다.”


    자연의 도道를 인간에게로 가져와 내면화 한 것이 덕德이다. 도道는 자연법칙이니 법칙이 인간을 돕는다. 덕德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도우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만나서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한 공간에 아름답게 공존하는 것이 인이다. 인으로 타인과 공존하다보면 곧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 즐거워 하게 된다. 공존하는 것에 즐거움이 있으니 이는 곧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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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린고기 열 장의 적은 수업료를 내더라도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지혜를 열어주지 않고, 스스로 표현하지 않으면 깨달음을 격발해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가르쳐서 세 모퉁이로 반응하지 않으면 다시는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수업료를 적게 내는 사람도 가르쳐 주지만 멍청한 녀석은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이 근본 깨달음에 기초함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지식의 전수라면 굳이 가르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책만 베껴가도 배움을 이루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고 난 다음에는 모두 책을 통해서만 배움을 이루게 되었다. 책으로도 배움이 가능하다면 굳이 공자의 가르침이 필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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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용되면 실천하고 버려지면 은거한다. 안회와 나만이 그리할 수 있다.”


    공자가 등용되지 못한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등용되는 즉시 실천하려 하므로 임금들이 공자의 실행을 기피한 것이다. 임금들은 공자를 옆에 붙잡아 두고 그의 명성을 이용할 생각 뿐이었다. 왜 공자는 등용되지 못했을까? 어느 의미에서는 안회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적당한 후계자를 얻게 되자 굳이 왕도정치의 가치를 입증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은거할 생각이 실행할 생각에 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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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로가 묻기를
    “삼군을 지휘한다면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
    공자 가로되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가 물에 빠져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는다. 반드시 큰 일에 임하여는 두려워하고, 계획을 세워서 차근차근 이뤄내는 이를 나는 좋아한다.”


    자로는 삼군을 지휘할만한 용사다. 공자의 지성과 자로의 용맹이 합쳐지면 최고의 팀이 이루어진다. 자로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거였다. “자로처럼 용맹한 장수가 받쳐준다면 나의 식견과 지혜로 능히 삼군을 지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역설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의 언어는 되도록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자신을 개입시키는 실수를 저지른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자로에게는 자공과 같은 지혜있는 참모가 필요하다. 자로가 공자의 입장을 물었는데, 공자는 자로를 염두에 두고 답변했다.


    지식인과 비지식인이 여기서 갈린다. 글자 아는 사람은 결코 주관적 답변을 하지 않는다. 누가 짜장면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나는 짜장면이 좋다’거나 혹은 ‘나는 짜장면이 싫다’거나 하는 자기소개식 답변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의 전매특허인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야.’ 하는 자기소개식 언행은 못 배운자의 언어습관이다. 창피한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언어는 대칭성을 따른다. 짜장과 짬뽕을 대비시켜 말해야 한다. 이런 때는 짜장면이 좋고 저런 때는 짬뽕이 좋다는 식으로 말하면 된다.


    무심코 자기 자신과 대비시키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일기를 쓸 때는 첫 줄에 ‘나는 오늘’을 쓰면 안 된다. 자기를 배제하는 객관적 말하기를 훈련했다면 지식인의 계급을 획득한 것이다. 자로는 공자를 물었지만 공자는 자로와 자공을 대비시켰다. 옆에서 자공이 듣고 있었다면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감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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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富가 구해서 된다면 비록 마부노릇을 할지라도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가 구해지지 않으므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다.”


    누구나 부를 구하면 부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자는 부가 구해지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공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가 넌지시 자기자랑을 한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이런 거다. 위에서 필자가 하지 말라고한 자기소개다. 물론 이런 우회적인 자기자랑은 해도 괜찮다. 공자의 말처럼 인격자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 돈이 생기는 즉시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공자와 같은 인격자는 부를 구할수록 도리어 빈털터리가 된다. 역시 이런 내용은 깨달음의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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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조심하는 것은 제사와 전쟁과 질병이었다.


    각각 종교, 정치, 민생이다. 일의 복제, 조합, 연출과 같다. 일의 처음은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듯이 모두가 공평해져야 한다. 그것이 복제다.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한 가지 사명을 가지고 하나의 방향으로 도열하여 서야 한다. 이는 종교의 역할이다. 다음 일이 진행될 때는 중대한 의사결정부터 먼저 해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과 지도자를 따르는 팔로워십이 필요하다. 오늘날 야당의 난맥상은 팔로워십의 부재 때문이다.


    조련되지 않은 병사와 같다. 나설 주제가 아닌데 소인배가 함부로 나서서 까불어대고 있다. 마지막 일의 완성은 민생이다. 민생이면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 혹은 질병이 문제가 되는데 당시로는 생산력이 낮아 가뭄과 홍수의 영향보다 전쟁으로 인한 질병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 시체가 부패하면서 전염병이 돌게 된다.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제사에 해당하는 것은 철학과 이념, 인문학이다. 전쟁에 해당하는 것은 민주주의다. 질병에 해당하는 것은 경제다. 젊은이의 실업이야말로 가장 큰 현대의 질병이라 하겠다. 이념이 으뜸이고 민주주의가 다음이며 마지막으로 경제라는 수순을 아는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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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임금의 음악 소韶를 듣고 석달 동안 고기맛을 잊더니 가로되
    “음악에 이런 경지가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공자는 시詩와 악樂을 깨달음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삼았다. 공자가 단지 음악에 심취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시경에 수록된 시詩는 민요에 불과하다. 내용도 음탕한 것이 많다. 요즘의 유행가와 같다. 공자가 시詩에 각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뜻은 그 구조 안에서 예술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은 깨달음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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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이와 숙제는 옛날의 어진 사람이다. 어진 것을 구하여 어진 것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는가.”


    과거에 운동권 백이숙제를 비난하고 박정희 주무왕을 찬양하는 풍조가 있었다. 교과서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있었는데, 교사는 백이숙제를 두고 현실을 모르는 꽁생원으로 비판하도록 학생들을 유도했다. 나는 크게 분개하여 가슴에 맺힌 것이 있었고 오래도록 이 주제를 생각했다.


    한 동안 가슴 한 켠이 아팠다. 수년동안 생각해서 내린 내 결론은 이렇다. 선善은 선에 이름으로써 이미 보상받았고, 악惡은 악에 이름으로써 이미 징벌받았다. 고흐는 그림을 얻어서 행복했고, 소로은 호숫가에 있어서 즐거웠고, 백이숙제는 어짐을 얻어서 행복했다. 고흐를 동정하거나 백이숙제를 비난한다면 박제가 된 천재 이상이 비웃는다.


    인간의 큰 기쁨은 우주에 답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확인하는데 있지 구태여 그것을 내게로 가져와 사람들 앞에 전시하고 인정받는데 있지 아니하다. 고흐의 그림이 팔리지 않았거나, 소로의 책이 팔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들은 승리자다. 패배한 쪽은 세상이다. 내가 이기면 되는 거다. 좋은 것을 내가 찾아냈는데 세상이 가져가지 않으면 그들이 진 거다. 좋은 것을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귀한 어짐을 백이숙제가 독점하지 남주겠는가? 한창 사유에 빠져있던 시절 나를 가장 강력하게 끌어당긴 주제 중의 하나다.



aDSC01523.JPG


   백이와 숙제를 비웃는 것은 신을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신도 지금 개고생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이렇듯 교만하게 만든건 신의 대실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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