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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370 vote 0 2016.02.12 (10:41:59)

 

   
    제 8편 태백泰伯


    “태백은 덕이 지극하다. 세 번 천하를 사양했는데도 은거하였기에 사람들은 그의 덕을 모르고 칭찬하지 않는다.”


    태백은 주나라의 성립기에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은거한 사람이다. 공자는 주나라를 칭송하면서도 무왕이 은나라를 치는데 반대한 백이, 숙제를 떠받든다. 태백 역시 아버지 고공단보가 장차 정복사업을 일으킬 야심을 보이자 이에 반대하여 떠난 인물이다. 공자의 이런 점은 언뜻 모순으로 보인다.


    공자는 하은주로 이어지는 왕조의 계승을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법칙으로 보았기에 인위적인 개입을 지지하지 않았다. 망할 나라가 망하고 흥할 나라가 흥하는 것은 천지의 도에 따른 것이지 폭군의 학정이나 혁명가의 위업 때문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자공은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이 부당하게 폭군으로 매도되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공자도 이 노선으로 보아야 한다. 백제 의자왕처럼 망국의 군주는 정치적 조작에 의해 공격받는 법이다. 근래 갑골문 발견으로 주왕이 동이를 정벌하고 인신공양을 폐지하는 등 선정을 펼친 사실이 확인되었다. 주왕은 폭군이 아니다. 다만 은나라가 노예사냥과 인신공양에 의해 유지되는 시스템이므로 역사의 순리에 따라 망해야 했던 것이다. 주왕의 학정으로 기록된 내용은 은나라 역대 왕들의 학정을 몰아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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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가 가까운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백성이 어질어지고, 군자가 옛친구를 저버리지 않으면 백성이 온화해진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일의 첫 단계인 복제는 균일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통령도 국무회의 때는 평등하게 원탁에 앉아야 한다. 유비, 관우, 장비 3형제는 같은 침상에서 자고 같은 밥을 먹었다. 그래야 좋은 계책이 나와준다. 회사라도 회의석상에서는 같은 의자에 앉아야 한다.


    이는 달리기 시합에서 선수들이 출발선상에 나란히 서는 것과 같다. 일이 진행되면 앞서고 뒤서며 차별이 일어나지만 일의 시작단계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 CEO는 상석의 높은 의자에 앉고 직원은 말석의 낮은 의자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면 분위기가 얼어붙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일은 틀어지고 만다. 서열과 계급을 따지면 회의를 할 수 없다. 새 일에 착수할 수 없다. 임금의 일하는 방식은 백성들에게도 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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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자가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나의 발과 손을 펴 보아라. 시경에 '조심함이 깊은 못가에 서있는 듯, 살얼음을 밟는 듯 전전긍긍한다' 하였으니 나는 이제부터 그런 근심에서 해방되겠구나.”


    증자는 군자가 아니다. 공자의 ‘군자는 쿨하고坦蕩蕩 소인은 찌질하다長戚戚’로 보면 증자는 찌질한 사람이다. 군자인척 연기하느라 일생토록 전전긍긍한 사람이다. 증자는 철학인 유교를 종교로 퇴행시켰다. 자유로운 깨달음을 억압적인 관습으로 퇴행시켰다. 안회 외에는 공자의 깨달음을 물려받을 사람이 없었으니 공자의 가르침은 당대에 끊어지고 말았다. 이후 2500년간 아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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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로써 뜻을 일으키고, 예禮에서 뜻이 확립되고, 악樂에서 뜻이 완성된다.”


    일은 복제, 조합, 연출된다. 복제는 철학이요 조합은 과학이요 연출은 미학이다. 시는 종교와 같고, 예는 정치와 같고, 악은 예술과 같다. 종교는 철학적으로 해야 하고, 정치는 과학적으로 해야하고, 예술은 미학적으로 해야 한다. 시와 예와 악은 하나의 일이 기획되고, 진행되고, 완성되는 연속적인 과정이다. 공자의 깨달음이 구조론과 같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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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이 깨달음을 따를 수는 있으나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구조론도 같다. 모든 사람이 구조론의 심오한 깨달음에 이를 수는 없다. 깨달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언어능력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장벽이 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은 돈오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깨달음의 미학적 스타일을 따를 수는 있다. 돈오의 쿨한 스타일을 따를 수 있다. 깨달음의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는 될 수 없어도 깨달음의 좋은 승객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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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년을 배우고 벼슬에 뜻을 두지 않기는 어렵다.”


    당시만 해도 학문의 절대량이 많지 않았다. 3개월이면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전부 외어버린다. 3년 안에 공부를 끝내고 벼슬하러 가는게 정상이다. 3년을 넘게 공부해야 한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의 가르침은 지식의 학습이 아니라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시詩에서 일으킨 뜻을 예禮로 확입하고 악樂으로 완성하는 경지에 도달하기로는 10년이 걸려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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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의 가치는 굳게 믿고, 올바른 도는 죽음으로 지켜라. 위태로운 나라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살지마라. 천하에 도가 행해지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서 숨어라. 나라에 도가 행해지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데 부귀를 누리면 부끄러운 것이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나아가 벼슬하는게 정답이고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물러나는게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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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이 미치지 못할까 서두르면서도 잊어버릴까 두려워한다.”


    공자의 학문은 깨달음의 학문이다. 그러므로 층위가 있다. 수준 차가 있다. 시詩로 뜻을 일으키고, 예禮로 뜻을 확립하고, 악樂으로 뜻을 완성하는 경지는 보통사람이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경지다. 범인은 이상의 시詩 오감도를 백 번 읽어도 아무런 뜻이 일어나지 않는다. 고흐의 그림을 백 번 봐도 아무런 뜻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싯적에 이상의 날개 첫 두어 페이지를 읽고 머리 속에 생각이 가득차서 한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전율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도서관 구석구석에 또다른 이상의 날개가 잔뜩 숨어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몇 년 간 종로서적과 교보문고를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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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다. 순과 우는 천하를 가지고도 연연하지 않았다."


    공자의 위대함은 ‘창세기’의 관점에 서기 때문이다. 순과 우는 백지상태에서 처음 황토지대를 개척하여 문명을 일군 사람이다. 신대륙에 처음 도착한 개척자와도 같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려두면 곡식은 여름의 햇볕을 받아 저절로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개척자가 신대륙에 문명을 옮겨심으면 문명의 꽃은 저절로 피어나기 마련이다. 황토지대가 온통 숲으로 뒤덮여 정글을 이루었을 때 순과 우는 청동기를 들여와서 처음 문명의 씨앗을 뿌렸고 공자는 그 순과 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천하인의 호연지기로 바라보는 것이다. 천지창조를 앞둔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쩔 것인가? 초심자에게는 바둑보다 장기가 더 재미있다. 당신이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의 재미를 위해 흑돌과 백돌 외에 청돌과 홍돌을 추가하고 싶은 욕심을 억눌러야 하지 않겠는가? 장기의 말 종류만큼 다양한 돌을 추가하고 싶지 않겠는가? 순과 우는 그 욕망을 극복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각자의 이상을 실현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한 편으로 그 욕망이 법가의 지나친 개입주의와 증자에 의한 종교화로 퇴행할 것을 알고 있었다.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꿔야 하지만 동시에 무뇌진보의 폭주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aDSC01523.JPG


    우리는 아는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틀렸습니다. 숨은 전제가 작동합니다. 이미 왜곡되어 있습니다. 영화감독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겁니다. 그래서 예술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처음 시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 때는 모두가 아는 사람이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나의 말에 호응하게 하는 테크닉입니다. 일의 시초에 대한 확실한 관점이 깨달음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6.02.13 (11:24:24)

숨은 전제는 이 몸도 항상 말해 왔던 건데, 숨은 전제를 말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지요. 

여러 책을 보아도 숨은 전제를 이야기 한 사람은 몇 사람 안되더이다. 


철학에 페티시오 프린시피라는 게 있는데, 일전에 한번 이야기 한 적이 있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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