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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90 vote 0 2015.09.08 (17:38:39)

     

    우주의 기원..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과학자에게 한 움큼의 에너지를 쥐어주고 그걸로 어떻게든 주물러서 각자 하나씩 우주를 창조해 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우주 창조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고 답하는 과학자도 있다. 수학적 구조 안에서 에너지로부터 시공간과 물질을 도출하는 모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견해다.


    프로그래머들은 무에서 뭔가를 이루어낸다. 처음에는 모니터로 출력된 결과물만 보여줬는데 이용자는 아케이드 게임이나 할 뿐이었다. 일반인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컴퓨터 내부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과정을 모니터로 보여준 사람이 애플의 워즈니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컴퓨터에 달려들었다.


    초창기 애플의 공로는 많은 천재들이 컴퓨터에 달려들도록 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대량으로 복제하여 천재들에게 공급했다. 장군과 병사만 있던 군대에 중간허리 역할의 장교가 가세한 꼴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21세기 세상은 여전히 모니터에 출력된 결과물만 보여준다. 세상 앞에서 인류는 철저히 을이다.


    세상이라는 컴퓨터가 있어도 할 게 없다. 컴퓨터 내부를 부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시공간과 물질이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양자역학이 그 뒤를 열심히 뒤져보고 있다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는 시공간과 물질로 되어 있다. 세상을 창조하되 물질을 먼저 창조하고 별도로 시공간을 창조해야 한다면 피곤한 일이다. 이중창조론이 된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시공복합체를 창조하면 물질은 자동으로 딸려나오거나, 혹은 물질을 창조하면 시공간이 딸려나오는 식이라야 한다.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에이다 러브레이스다. 이전에도 컴퓨터의 기초가 되는 계산기는 있었지만 정해진대로 출력되는 단순 반응기계일 뿐이었다. 반복문만 있고 if를 쓰는 조건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에 의해 비로소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조건문이 중요하다. 모니터의 게임 아바타가 오른쪽이나 혹은 왼쪽으로 자세를 틀게 하는 것이다. 이게 되어야 다 된다. 계산기는 그냥 직선으로 쭉 가는 거다. 선과 같다. 선에서 면으로 도약하게 하는 것이 조건문이다.


    사람의 일을 줄여주기만 하는 계산기와 달리 사람이 지시하면 컴퓨터가 스스로 일하는 것이 컴퓨터다. 농기구 수준에서 하인이나 집사로 컴퓨터의 지위가 격상되었다. 무엇인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견인하는 역전현상이다. 개인용 컴퓨터도 워즈니악이 컴퓨터가 일하는 과정을 모니터로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먼저 구상하고 거기에 맞는 하드웨어를 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수학은 발견되는 것일까 아니면 발명되는 것일까? 콘체비치는 발견설을 주장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발명설을 주장했다. 바둑의 많은 수는 발견되는 것일까 아니면 발명되는 것일까? 유한이냐 무한이냐다. 바둑판 사이즈는 유한하다. 바둑을 두면 판이 모두 메워진다. 그러므로 바둑의 수는 발견이다. 그런데 만약 바둑판 없이 바둑을 둔다면? 무한히 많은 수가 나온다. 이 경우 바둑의 수는 발명이다. 어쨌든 오목은 가로세로 19칸으로 된 바둑판 형태와 상관없다. 오목은 본질에서 무한이다.


    바둑판이 하드웨어라면 바둑의 수는 소프트웨어다. 사실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견인한다. 둘은 본질에서 일치한다. 시공간이 하드웨어라면 물질은 소프트웨어다. 아니 반대다. 물질이 운동하여 시공간을 연출한다. 컴퓨터의 진짜 기원은 소프트웨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조건문 if에 의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송나라 때 소주蘇州의 직공들은 비단에다 정교한 꽃무늬를 넣는 기술이 있었다. 설계하는 사람이 모란꽃이든 장미꽃이든 꽃무늬를 설계하면 직공이 설계도 대로 막대에 구슬을 꿰어 직기를 조작했는데 초기의 컴퓨터 저장매체로 쓰던 천공카드punched card와 원리가 같다. 최초의 컴퓨터라 할 수 있다. 단 조건문이 없다는 점에서 시계와 함께 유행하던 음악상자와 다를바 없다.


    우주는 발견일까 발명일까? 아인슈타인 우주는 발견에 가깝다. 아인슈타인은 시공의 상대성을 밝혔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시공간의 절대성을 웅변한다. 상대성이 둘 모이면 절대성이 하나 탄생하는 것이다. 승부는 어떤 팀을 만나느냐에 따라 상대적이지만 룰은 절대적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을 알았으므로 오히려 절대적인 우주를 생각했다. 그의 우주관은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은 정적우주론이다.


    그러나 허블 망원경이 관측한 바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으로 폭발해서 팽창하고 있고 조만간 몰락할 예정이다. 우주의 팽창이 절대온도 0도에 이르면 모든 것이 균일해져서 시공간은 몰락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신이 제한된 크기의 바둑판에서 바둑을 둔다는 말이고, 보어의 입장은 무한히 넓은 바둑판에서 오목을 둔다는 말이다. 구조론은 보어를 지지한다.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조건문으로 풀 수도 있다. 뉴턴 우주는 시계와 같아서 감우준 태엽이 풀리는대로 정해진 길을 간다. 아인슈타인 우주는 음악상자와 같아서 악보를 읽는다. 저장장치를 쓴다. 단 조건문이 없다. 당연히 조건문이 있어야 하지 않나? 뭔가 하나 결정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점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고교때 ‘발빠른 아킬레스가 한 걸음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다.’는 제논의 궤변을 배웠기 때문이다. 구조론의 핵심 중 하나는 그때 착안되었다. 가장 작은 시공간의 크기는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궁극적인 레벨에서는 하드웨어를 없애버려야 한다. 바둑판이 없는 바둑을 두어야 한다. 시공간은 물질이 즉석에서 조달한다.


    그것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 안에 둘이 들어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에너지는 ‘일을 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왜 일을 하지? 하나 안에 둘이 들어갔을 때 그 중의 하나가 거기서 기어나오기 때문이다. 스프링의 반발력과 같다. 에너지는 기어나오려는 상태다. 그러므로 방향이 있다. 에너지에 대한 보다 진전된 개념이다.


    무엇인가? 바둑판은 가는 길이 미리 정해져 있다. 이는 비단에 꽃무늬를 넣는 직조기와 같아서 중간에 방향을 틀 수 없다. 복권을 사놓고 추첨을 기다리는 것과 같아서 번호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은 마우스를 잡고 그 방향을 트는 것이다. 이용자는 아바타의 방향을 바꿔서 아이템을 먹거나 혹은 전진한다.


    계산기는 아무리 복잡한 계산이라도 사실은 미리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더하거나 빼라고 명령할 수 있지만 더하라면 이렇게 하고 빼라면 이렇게 하라고 미리 정해놨다. 송나라 직공의 기술과 하등 다를게 없다. 게임은? 축구든 야구든 게임은 상대가 하는걸 보고 수시로 작전을 바꾼다. 조건문을 쓰는 것이다. 우주에도 마땅히 조건문이 있어야 한다. 물질이 시공간을 틀어야 한다. 우주는 게임이어야 한다.


    신은 주사위를 던져야만 한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주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우주에 크기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기는 물질이 방향을 틀어서 생긴 것인데 방향을 틀 수 없기 때문이다. 물질이 방향을 틀지 못하는 우주는 선이 되고 점이 되며 점점 쪼그라든다. 결국 사라져 버린다.


    가장 작은 것은 점이다. 점은 크기가 없으므로 숫자 0과 같아서 아무리 더하고 곱해도 0이다. 그러므로 점으로는 우주를 지을 수 없다. 하느님 할배라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거다. 초끈이론은 점의 깊은 허무에 좌절한 학자들이 선을 대타로 세운 것이다. 뭔가 되어가는 그림이다. 그러나 약간의 진전일 뿐이다.


    구조론은 대칭을 쓴다. 존재의 최소단위는 작은 알갱이 입자가 아니라 대칭으로 이루어진 쌍이다. 초끈과 다른 것은 축이 있다는 점이다. 방향을 틀 수 있다. 조건문을 쓸 수 있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쌍이 해체되어 1+1로 전개하면서 물질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하나인데 둘이다. 자의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모형은 시공간의 바다에 당구공처럼 생긴 소립자가 떠 있는 모형이다. 시공간의 방향을 틀 수 없다. 시공간이라는 모눈종이 위에 올려진 당구공은 직진 외에 할 수 있는게 없다.


    구조론 모형은 에너지가 깨지면서 당구공이 나타나고 시공간은 그때 연출된다. 모눈종이는 없고 에너지가 깨지면서 당구공이 방향을 틀 때 만들어진다. 컴퓨터 게임이면 아바타가 가는 곳이 밝아지면서 맵이 드러나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은 예측가능성이다. 미리 정해진 시공간의 좌표를 보고 물질의 위치를 예측하는데 물질이 좌표를 발생시켜 시공간을 연출한다면 사전예측은 불가능해진다.


    과연 예측가능한가? 천재와 바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천재가 이긴다. 우리는 승부를 뻔히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천재가 진다. 왜냐하면 천재는 손자병법을 쓰기 때문이다. 손빈이 제나라 장군 전기의 빈객으로 있을 때다.


    말 세 마리가 차례로 나서는 경마시합에서 첫 게임을 져주고 나머지 두 게임을 잡는 2승 1패 전술로 돈을 쓸어담으니 이를 삼사법三駟法이라 한다. 첫 게임은 자신의 3등말을 상대의 1등말과 붙인다. 두 번째는 1등말을 2등말과 붙이고, 세 번째는 2등말을 3등말과 붙인다. 프로야구라면 한국시리즈 첫 게임은 무명의 신인을 내세워 상대팀을 헷갈리게 한다. 첫 게임을 지지만 운이 좋으면 이길 수도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확실히 이긴다. 김성근 감독이 큰 경기에서 첫 게임을 지는 일이 많았는데 삼사법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기려면 져야 한다는 모순 때문에 우주는 확률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거시세계는 많은 확률이 집적되었으므로 이길 자가 이긴다. 예측이 가능하다. 미시세계는 의도적인 우연이 있다. 존재는 게임이다. 상대의 예측을 빗나가게 한다. 컴퓨터와 바둑을 둔다면 컴퓨터의 계산에 없는 수를 두어야 한다. 바둑판 귀퉁이 엉뚱한 데를 놓아서 컴퓨터를 헷갈리게 하면 된다. 의도적인 비합리성의 연출이다.


    길을 가다가 벽을 만나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까 아니면 오른쪽으로 틀까? 50 대 50이다. 적을 헷갈리게 하려면? 무질서한 선택을 해야 한다. 적이 이쪽의 패턴을 예측하면 패배하기 때문이다. 신은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도록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안에 숨어야 한다. 룰을 정해놓고 싸우는게 아니라 싸우면서 룰을 만들어간다. 정치판이 늘 그러하듯이.


    뉴턴은 기계론-결정론적 세계관을 열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세계를 전복시켰지만 큰 틀에서는 뉴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자역학은 확실히 뉴턴을 엎어버렸다. 길을 따라 가는게 아니라 가면서 길을 만들어낸다.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었을 때 에너지가 있었다. 에너지가 깨지면 물질이 되고 시간과 공간은 부산물이다.


   21.jpg 상대성은 물질과 시공간 사이에 있는게 아니라 물질의 존재 이전에 그 물질과 시공간을 모두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속성이다. 에너지는 게임의 원리를 쓴다. 우리는 거시세계에 위치하여 있으므로 그 속사정을 엿보지 못한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이기는 자가 강한 것도 아니고, 져줄 게임을 져줄줄 아는 자가 강하다. 존재는 효율적이지 않다.


    모든 세포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대표세포 하나만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될텐데 말이다. 기차는 철길 하나를 공유하는데 전차는 각자 철길을 가지고 다닌다. 구조의 세계는 각자 자기 시공간을 갖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그것은 조건문이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이전에도 데이터를 입력하는 저장장치는 있었지만 그것이 컴퓨터는 아니다.


    ◎ 뉴턴.. 기차처럼 정해진 길을 간다.
    ◎ 아인슈타인.. 가장 빠른 길을 찾아서 간다.
    ◎ 구조론.. 상대보다 한 걸음만 빨리 가면 된다.


    컴퓨터는 계산기가 아니다. 우주는 수동적인 계산기가 아니다. 컴퓨터가 바둑으로 인간을 이기려면 상대를 속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데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아직은 인간이 바둑으로 컴퓨터를 이긴다. 존재의 근본원리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존재는 한 게임 져주고 두 게임 잡는 전략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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