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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600 vote 0 2013.12.31 (11:46:23)

      완전성과 모순


    진화는 무한정 계속되지 않는다. 진화는 일정한 방향과 목적이 있으므로 그 목적을 달성한 지점에서 중단된다. 태엽이 풀린 시계는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진화는 완전한 상부구조와 불완전한 하부구조의 모순에 의해 일어나므로 모순이 해소되는 지점에서 진화를 멈춘다.


    이는 게임의 전략에 의한 것이며 이를 종교적인 목적과 혼동하면 곤란하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가 정답이다. 화살은 과녁에 명중하기 ‘위하여’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궁수의 겨냥에 ‘의하여’ 날아가는 것이다.


    ◎ 우연론 – 진화의 화살은 우연히 과녁에 맞았다.
    ◎ 목적론 – 화살은 하느님의 목적을 수행하여 과녁을 찾아갔다.
    ◎ 구조론 – 화살은 궁수의 판단에 의해 과녁에 겨냥되었다.


    진화의 활을 쏜 궁수가 있으므로 화살의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화살이 우연히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바둑을 두는 기사가 그곳에 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무데나 두었더니 우연히 이기고, 결과적으로 이긴 놈이 살아난게 아니라 애초에 이기려고 그곳에 둔 것이다.


    진화를 추동하는 힘은 준비하는 상부구조의 완전성과 실행하는 하부구조의 불완전성 사이의 모순에서 나온다. 모순의 크기가 에너지의 낙차를 만들고 에너지의 낙차가 결을 만들어 진화의 방향을 정한다.


    이를 논하려면 먼저 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서 있어야 한다. 말싸움하기 좋아하는 애들은 신만이 완전하다고 한다. 과연 신은 완전할까? 그 기준으로는 우주 안에 완전이 없다.


    철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를 애매하게 하는 수법을 쓴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는 늦게 내는 사람이 유리하다. 그들은 속임수를 쓰려는 의도를 가지고 의미가 불확실한 단어를 선택한다. 그 경우 무한개념을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자가 이긴다. 그러나 과학에 무한은 없다


    그들은 완전성의 의미를 ‘무한한 완전성’이라고 주장한다. 전지전능한 신이나 되어야 완전하다고 우기는 것이다. 철학은 언어학에 기초해야 한다. 언어의 의미는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자물통과 열쇠가 만나 문이 열리면 곧 완전하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상부구조는 준비하고 하부구조는 실행한다. 상부구조는 하부구조를 복제하며 만약 상부구조가 불완전하면 하부구조는 복제되지 않는다. 불완전하면 애초에 존재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부구조는 무조건 완전할 수 밖에 없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대칭이며, 대칭은 공간이고 이를 시간으로 전환한 것이 세계다. 상부구조는 완전할 수 밖에 없으며 하부구조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부구조는 시간축에 서기 때문이다. 시간은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에너지 투입을 필요로 하고 외부에서 에너지 공급을 멈추면 그 시점에 죽는다. 그러므로 불완전하다.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상부구조는 불완전한 것이 없고 하부구조는 완전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완전성과 불완전성을 동시에 가진다. 모든 존재는 어떤 것의 어미이면서 동시에 다른 것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녀 포지션은 불완전성이고 어미 포지션은 완전성이다. 이는 포지션에 불과하며 어떤 대상이 완전한가 불완전한가는 따질 필요도 없다. 둘은 동시에 공존한다. 심지어 사대강 바기도 제 아들자식 앞에서는 완전한 부모다.


    하부구조가 또다른 하부구조를 만들면, 그 하부구조의 상부구조로 올라서므로 그 지점에서 진화는 멈춘다. 씨앗은 완전하지만, 싹을 틔우면 불완전하고 꽃을 피우고 또다른 씨앗이 나오면 완전하다. 제 2의 노무현이 나오는 지점에서 노무현은 완전하다. 이러한 구조의 관점이 없이 노무현이 완전하냐 망작이냐 이런 소리 하는 넘은 패죽여야 한다. 김기덕이 완전한 이유는 제자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김기덕은 낳음이 있으므로 무조건 완전하다.


    모순도 마찬가지다. 완전이라고 하면 막연히 종교의 신을 떠올리거나 모순이라고 하면 막연히 나쁜 것으로 여긴다면 대화가 불통이다. 모순은 때려죽일 공산당이 아니다. 창과 방패는 모순이 아니고 실제로는 무조건 창이 이긴다. 닭과 닭걀은 모순이 아니고 무조건 닭이 이긴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착각이고 양자수준의 높은 레벨에서는 그런거 없다. 엔트로피 증가에 의해 우주는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질량보존을 성립시키는 입자설은 허구이고 양자설이 정답이다. 입자의 관점, 순환논리 관점을 버려야 한다. 입자는 둥글기 때문에 교환이 된다. A에서 B로 갈 수 있듯이 B에서 A로도 갈 수 있다. 엔트로피는 이를 부정한다. 확률로만 나타나는 불확정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순은 단순히 어떤 닫힌계에서는 질량보존을 이루는 환원주의가 성립되지 않으므로 A에서 B로는 가는데 B에서 A로는 못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작동은 외부에서의 에너지 순유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부구조는 상부구조보다 약하며 그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로 더 많은 시간동안 더 많은 일을 한다. 상부구조는 강하고 하부구조는 약하다는 모순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과 일의 투입에 의해 불완전하나마 해소되는 것이 모순의 해결이다.


    ◎ 모순 - 부모는 자식을 낳을 수 있지만 자식은 부모를 낳을 수 없다.
    ◎ 모순의 해결 - 자식은 또다른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된다.


    한국인들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투자한 정성을 나중에 보답받을 것으로 여기지만 착각이다. 그 보답은 국가에 청구해야 한다. 국가가 효자다. 자식이 안 주는 용돈을 국가에서 준다. 모순은 분명히 있지만 팀플레이에 의해 해결된다. 이때 에너지와 시간과 일이 추가투입되므로 모순의 본질은 그냥 남아있다. 모순이 완전히 해소된건 아니지만 하나의 의사결정 단위 안에서는 해결된다. 축구선수가 공을 받았는데 동료에게 패스를 하면 일단 모순의 해결이다. 그걸로 시합을 이긴건 아니지만 일단 자기몫은 한 거다. 자기몫만 하면 된다.


    생물의 진화는 목적과 방향을 가지는데 자연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방향이 잡힌다. 자연과 생물 사이에 자물통과 열쇠의 대칭구조가 만들어졌다. 코끼리는 코로 한 번 해보겠다고 방향을 잡았는데 불완전하다. 코만 길어져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귀도 커져야 하고 상아도 길어져야 한다. 밸런스를 잡을때까지 진화를 계속하는데 더 이상 진화를 못한다. 코가 이미 땅에 닿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와 한번 살아보겠다고 덤볐는데 나무밑 환경에 적응할때까지 진화를 하고 더 진화를 안 한다.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레이어가 층을 맞추는데 층이 맞으면 더 진화를 하지 않는다. 인간은 특히 집단생활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집단생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면 더 진화를 안 한다. 시계 태엽이 다 풀려버린 거다.


    일정한 의사결정 단위 안에서 상호작용을 완성시켰기 때문에 더 진화는 없다. 인간이 더 진화하려면 새로운 유전자 모듈을 만들고 새로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게 없기 때문에 인간은 더 진화하지 않으며, 레이어를 퇴적하지 않는 미세한 진화는 배척한다.


    코끼리 코는 코가 바닥에 닿을 때 길어지기를 멈추고, 사슴뿔은 나뭇가지에 걸렸을 때 커지기를 멈춘다. 유전자는 환경을 읽는 능력이 있으며 환경을 거기까지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대한 재난이 닥쳐서 지구환경이 완전히 변한다면 또다른 진화가 촉발될 수 있다. 또다른 레이어의 퇴적이 일어날 수 있다.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http://newspeppermint.com/2013/12/25/free-will/


    과학이 발달하자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많은 부분을 유전자와 뇌과학으로 설명하려는 흐름이 생겨났다. 이런 때 기능해야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자는 언어학에 토대를 두고 언어의 의미를 엄밀히 규정하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수학자는 수를 쓰는데 철학자는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게 함정이다. 철학자는 되도록 언어의 의미를 모호하게 한다.


    ◎ 수학자 – 나는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하면 승리한다.
    ◎ 철학자 – 너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하면 승리한다.


    수학자는 문제를 풀기 위해 숫자의 의미를 엄밀히 규정한다. 철학자는 타인의 문제풀이를 방해하기 위해 언어의 의미를 애매하게 규정한다. 수학자의 게임에서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이기고, 철학자의 게임에서는 언제나 나쁜 사람이 이긴다. 철학이 망해서 인류는 혼돈에 빠져버렸다.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자유의지라는 단어의 뜻을 애매하게 만들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그는 제거되어야 할 철학의 적이다. 자신이 사건의 원인측에 설 수 있으면 그것이 곧 자유의지다. 사건의 원인이 되려면 먼저 독립적인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의사결정의 단위를 정해야 한다.


    사건의 층위가 개인 레벨인지, 가족레벨인지, 부족레벨인지 정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장기전이냐 단기전이냐로 판단되며 그 결과는 생존게임이냐 세력게임이냐로 나타난다. 개인레벨에서 세력게임으로 가서 장기전을 하면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고 그 반대가 되면 자유의지가 없는 것이다.


    관건은 에너지다. 존재는 사건이고, 사건은 대칭이며, 대칭은 공간이고, 이를 시간화 하는 것이 전략이며, 시간은 일을 하고,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에너지는 협력에 의해 조달되며, 협력하려면 먼저 내것을 양보하는 이타적인 게임을 해야 하며, 그것이 자유의지다.


    종은 원래 협력게임을 하도록 진화했으며 그 방법은 암수구분이다. 암컷은 생존이 목적이며 수컷은 동료와의 협력을 위해 비축된 에너지의 잉여다. 남자는 동료와 협력하여 에너지를 조달하고, 여자는 자식과 남편을 통제하여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 유전자의 설계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판단하여 에너지를 비축함으로써 사건의 원인측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부족본능이다. 일베충의 범죄는 집단에 긴장을 걸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다. 자유의지는 합리적인 판단일 때만 의미있는 것이고 일베충의 범죄는 비합리적인 판단이므로 자유의지가 아닌 유전자의 본능이다. 범죄자는 대개 본인이 고통받고 있고, 그 고통은 집단에 가해지는 미지의 어떤 위험요소 때문이며, 집단에게 이를 경고해야 한다는 무의식의 조종에 따른 사명감을 갖고 있다. 경고하는 방법으로는 자신의 고통을 집단에 전가하는 방법을 쓰는데 그것이 범죄다.


    범죄자는 위험요소를 발굴하여 집단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성은 협력을 설계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 범죄자는 그러한 해답의 등장을 두려워 한다. 자신의 역할을 뺏기게 되기 때문이다.


    ‘내 문제가 제일 센 거야. 이보다 더 센 문제는 있을 수 없어. 이건 내 범죄심, 아니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내건 누구도 풀 수 없는 문제지. 절대 안풀려야 해. 절대 통일되면 안돼. 절대 민주화는 안돼. 이렇게 가다가 다 같이 죽는거야. 너도 죽고 나도 죽고. 그 방법으로 인류는 운명적으로 한 덩어리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말거야.’ 이런 심리에 빠져든다.


    mo11.jpg

    둘은 쌍둥이인데 한 사람은 담배를 피웠고 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두 사람이지만 16년이 지나자 운명이 달라졌다. 자유의지로 운명을 바꾸었다.


    운명을 바꾸는 사람은 운명을 바꿀 위치에 서야 하며 그 위치로 간 사람만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 위치로 가려면 에너지를 가져야 하고, 에너지는 협력에 의해서만 획득된다. 인류는 협력게임을 발전시켜왔으며 그것이 진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상호작용의 레벨을 선택한다. 상호작용의 레벨은 자기규정의 레벨이 결정한다. 원본이 복제본을 결정하는 것과 같다. 좋은 원본을 가져야 한다. 일관된 자기 삶의 스타일을 가져야 한다. 길에서 주운 100만원을 닦아쓴 사람은 길바닥을 살피는 두리번스타일로 인생을 살게 된다. 평생 요행수나 바라며 복권이나 긁다가 끝내게 된다. 길에서 주운 100만원을 주인에게 되돌려준 사람은 협력의 쾌감에 중독된다. 그는 평생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게 된다. 그 에너지는 친구의 전화번호일 수도 있고, 통장의 금액일 수도 있고, 뇌 속의 지혜일 수도 있고, 상냥한 성격일 수도 있고, 영감을 주는 정상에서의 이미지일 수도 있다.


    자기를 누구로 정하는가에 따라 개인민이 되거나 가족민이 되거나 부족민이 된다. 부족민이 되면 소리를 질러서 타자를 끌어들이고 의사결정을 위임한다. 그들은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그들의 운명은 소속집단의 군중심리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군중심리는 본능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 본능은 팽팽한 긴장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 방법으로는 전투를 명령한다. 부족민은 언제나 모의전쟁을 벌인다. 인류학자의 어떤 연구에 의하면 부족민 중에 40세 이상 산 사람은 거의 없으며, 모두 축제 후에 벌어지는 모의전쟁에서 몽둥이로 대가리를 때려서 죽인다고 한다. 그들의 운명은 40세가 되기 전에 대가리를 맞고 죽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일베충이 하는 짓도 그런 부족사회의 모의전쟁이다. 그들은 끝없이 적을 만들어내고 선인과 악당, 천사와 사탄, 강자와 약자, 남자와 여자, 정상과 변태, 우리편과 나쁜편으로 갈라서 서로 죽이게 한다.


    아무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본인이 범죄를 저지른다. 부족에 범죄가 한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범죄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범죄가 없으면 긴장이 없고, 긴장되지 않으면 소속감을 느낄 수 없고, 소속감이 없으면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족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개인으로 올라선 사람만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때 주체측과 대상측의 레벨은 반대가 된다. 부족민은 군중심리에 의해 영웅심과 패기와 마초근성으로 무장하여 즉자적인 사건을 판단할 수 있다. 가족민은 탐욕과 우월감, 열등감에 의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개인민은 자기스타일을 만들어 인생전체를 통째로 디자인할 수 있다.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


    운명을 바꾸려면 자기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의지는 일관된 자기스타일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이 없는 사람은 상호작용의 현장에서 의사결정의 핵이 되는 소스를 조달하려는 바 무의식의 조종을 받는다. 자유의지가 아니라 집단의지를 자유의지로 착각한다. 일베충들은 자신이 판단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의 지령이다. 그들은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북극쥐와 같다.


    ◎ 쌓아둔 지식
    ◎ 깨달은 스타일
    ◎ 사회적 포지션
    ◎ 저축해둔 돈
    ◎ 사귀어둔 친구


    결론적으로 자유의지는 지식과 스타일과 돈과 포지션과 동료라는 에너지를 비축하였다가 필요한 때 꺼내쓸 수 있는 게임이며, 이는 자연의 법칙이고 진화의 동력이다. 당신은 자유의지를 가졌는가? 당신은 비축해둔 에너지가 있는가? 당신은 공부해둔 지식이 있는가? 당신은 깨달은 스타일이 있는가? 당신은 사회 안에서 대표자의 포지션이 있는가? 당신은 저축해둔 돈이 있는가? 당신은 사귀어둔 동료가 있는가? 만약 당신에게 지식도 없고, 스타일도 없고, 포지션도 없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다면, 자유의지는 없는 것이며 일베충의 패배감을 맛볼 뿐이다.


    진보의 편에 선 사람만이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다. 진보는 협력이고 협력은 에너지의 공유이기 때문이다. 진보만이 인류의 지적 공유자산을 빼서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며 논문을 쓰는 이유는 인류에 기여했다는 증거를 만들어서 인류의 지적 공유자산을 빼서 쓸 수 있는 권리를 얻자는 것이다. 당신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법으로 인류와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운명적인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얻어 인류의 것을 자기것으로 해야 한다. 자유의지는 곧 자유에너지다. 가장 큰 자유에너지는 인류의 공유에너지다.

 

09876.jpg 

 

    협력을 알게 되면 캐릭터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폭주한다. 협력은 자기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현재와 미래가 의도를 가지고 절충할 수 있다.

   


[레벨:5]희정

2013.12.31 (22:33:02)

 "제 2의 노무현이 나오는 지점에서 노무현은 완전하다. 이러한 구조의 관점이 없이 노무현이 완전하냐 망작이냐 이런 소리 하는 넘은 패죽여야 한다. 김기덕이 완전한 이유는 제자가 여럿이기 때문이다. 김기덕은 낳음이 있으므로 무조건 완전하다."

 

수 많은 이야기중 이 부분만 딱 잘라서 말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예전에 어느 스님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깨달음을 증명하고 싶거든 남에게 전달하라."

"전달 되지 않은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다."

 

불교의 시작점이라는 것도, 싯달다 태자가 탄생한 싯점이 아니고,

입산 수도 싯점도 아니고,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룬 싯점도 아니고,

따르던 다섯 비구들을 찾아가 설명을 하고, 그 비구들이 알아 차렸을 때가

불교의 탄생이라는군요.

 

일맥상통 하는것 같아서 옛 기억을 떠 올려 보았습니다.

새해에는 이미 여기에 올려졌거나 앞으로 올려질 동렬선생의 팔만사천 활구가

모든이들에게 속속들이 전달되기를 희망합니다.

 

문제는 "소통"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으니 크게 기대가 됩니다.

 

[레벨:2]하늘곳간

2014.01.02 (17:22:02)

우매한 질문 하나!

목적론의 하느님과 구조론의 궁수는 다른 존재인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2 (18:04:12)

목적론은 심리적인 반응일 뿐

정립된 이론이 아니므로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같다붙이기로 하면 안 되는게 없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개똥도 실은 하느님이라고 하면 말이 되거든요.

 

구조론은 아는 것만 이야기합니다.

아는 것은 그곳에 어떤 의사결정단위가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종교인들이 말하는 어떤 인격적 실체는 아닙니다.

예컨대 님도 분자단위로 해체하면 600원 정도 쳐주는 물질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님을 600원짜리라고 하면 화를 내겠지요.

우리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궁수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실체가 없는데 그렇다고 무시한다면

그런 식으로는 사람도 600원짜리에 불과하니 허무하기 짝이 없는 거죠.


사람이 비록 600원짜리 단백질 + 물 + 회분덩어리지만 우리가 그 이상으로 치듯이

궁수 역시 불교식으로 말하면 공에 불과하지만 그 이상입니다.


그 이상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굳이 거기에 초월적 인격을 부여할 이유는 없습니다.

[레벨:8]상동

2014.01.04 (00:03:29)

목적론의 하느님은 허구이고,

구조론의 궁수는 실체입니다. 당연히 다른 존재이지요.


신에게 목적이 있다? 모순입니다. 목적을 가진다는 말은 불완전하다는 말과 동의어이고

그렇다면 신이 아니죠. 목적은 궁수에게 있습니다.


신의 목적 운운하는 놈들은 장사꾼일뿐입니다.

신은 쿨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4 (21:35:31)

존재를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얻어야 합니다.


사람은 물질로 보면 600원의 가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600원으로 보인다면 


아직 그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일베충은 300원도 많이 쳐준 것이지만 걔들은 사람이 아니라 해충이므로 논외. 


사람이 아닌 국가로 치면 어떨까요?

국가의 존재는 전쟁을 할 때나 드러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조선왕조라면 국가는 과연 존재할까요?

어쨌든 국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간다 사람이 보면 국가는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간다는 700원짜리 국가니까요.


비유하여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

인간도 지푸라기 같은 것이며 국가도 마찬가지로 지푸라기입니다.


가치있는 것은 의사결정이며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의사결정 가치입니다.


우간다가 1억명 단위의 

인간이 죽고 사는 전쟁을 벌이면 그 가치의 평가는 달라집니다.


결국 존재는 가치를 의미하며, 가치는 의사결정을 의미하며,

의미있는 의사결정만이 그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이며


돼지나 개는 의미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므로 안 쳐주는 것이며

바기쥐와 그네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그것이 가치있다고 해서 함부로 인격을 부여해서

국가를 국인으로 여기면 곤란합니다.


국가는 의사결정을 하지만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이니 하는 말은 함부로 인격을 부여한 것입니다.


비인격적 의사결정의 주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700원짜리 인간도 있고 700원짜리 국가도 있습니다.


인간은 국가가 아니고 국가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격적 실체가 아닙니다. 


국가는 비인격적 의사결정 주체로 존재하며 

구조론의 궁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 치우고 국가느님으로 대체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자리에 궁수님이 들어갈 이유도 없습니다. 

[레벨:2]하늘곳간

2014.01.05 (22:20:07)

망설이다 답글 올립니다.

 

" 화살은 궁수(하느님)의 판단에 의해 과녁에 겨냥되어 궁수(하느님)의 목적을 수행하여 과녁을 찾아갔다"

가  하나의 문장으로 읽힙니다.

 

같은 의사결정 주체라도 국가와는 다릅니다. 

국가는 인간 이후의 존재이고 궁수(하느님)은 인간 이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지요.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것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믿음의 영역을 객관적 비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밀도를 측정하는데 길이를 재는 자로 재서 틀렸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더 이상 답글 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06 (00:07:07)

그러니까 그건 목적론이자 종교에 해당하구요.

이 사이트는 과학을 하는 사이트이므로 여기서 그런 이야기 하면 안 되구요.


오독하신듯 한데 

제가 이야기하는 궁수는 


위의 곽백수화백 만화 이야기처럼 캐릭터 만화를 그리면 

캐릭터가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행하여 제멋대로 만화를 끌고간다는 거죠.


여기서 만화가가 하느님이겠죠. 

근데 캐릭터가 고집에 세서 만화가도 못건드린다잖아요.


지들이 알아서 지 갈길을 가는데

하느님도 궁수를 못말린다는 말이죠.


하여간 제 글의 요지는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며

자유의지는 전략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상대의 예상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겁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는 이유는 

애초부터 어긋난 행동을 할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칙이 있다면 그 법칙을 알아채고 

의도적으로 법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법칙을 파괴할 의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입니다.


[레벨:8]상동

2014.01.06 (09:26:28)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신의 목적을 성취할수 없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신의 몫이고

따라서 우리입장에서는 신의 목적은 없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초적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배움이 없고 순진해서 입니다. 그래서 사기당합니다.


자식이 자신의 자유를 버리고 부모의 바람대로 사는 것처럼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아랍이 알라의 뜻대로 살려고하니 저모양인 겁니다.

기독교도 망해가고 있습니다.


본능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과녁)를 향해 도전(활쏘기)하는

당신이 바로 궁수입니다. 이 행위가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통해 당신의 그릇은 점점 커져갑니다.

[레벨:3]파워구조

2014.10.30 (22:30:00)


http://youtu.be/Coi7ubAIfaE


이 영상 보고 어처구니없이 화가 났었는데, 
역시 선생님께서 한 말씀 들려주셨군요. 


팀플레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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