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883 vote 0 2014.01.06 (23:55:24)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 몇 급이나 두느냐고 물으면 안 된다. 바둑을 잘 두든 못 두든 이미 완전하다. 처음 태어난 아기가 완전하듯이 모든 것의 첫 출발은 완전하다. 완전성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자물통과 열쇠가 만나서 문이 열리면 완전하다. 불완전성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구조론은 다 맞는 이야기다. 구조론이 과연 맞는가 하는 물음은 필요없다. 구조론은 ‘맞는’ 그 자체를 논하기 때문이다. 어원으로 보면 ‘맞다’는 말은 거푸집에서 나온 주물이 거푸집과 맞다는 뜻이다. 복제본이 원본과 맞다는 말이다. 바로 그 부분을 논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세상은 원형과 복제로 이루어졌다. 둘은 이가 맞물리므로 맞다. 톱니바퀴가 들어맞듯이 맞다. 그것이 세상의 첫 출발이다. 첫 출발은 오류가 없다. 문이 열리고 아기가 태어날때까지는 오류가 없다. 씨앗이 싹틀때까지는 오류가 없다. 아기새가 둥지를 떠날때까지는 오류가 없다.


    모든 존재는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복제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복제하기까지는 완전하며, 복제한 다음부터 불완전해진다. 그 다음은 외부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시간 속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완전해진다. 그 전까지는 공간속에서 대칭된다. 손뼉이 마주치는 것과 같다.


    남녀가 만나 결합하는 것과 같고, 자물통과 열쇠가 만나 문을 여는 것과 같고, 범종과 당목이 만나 소리를 내는 것과 같고, 자동차가 운전자를 만나 시동을 거는 것과 같고, 씨앗이 때를 만나 싹을 틔우는 것과 같고. 초등학생이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는 무오류다.


    엄마 손 잡고 가는 첫 등교는 오류가 없다. 잘못되어도 이끌어주는 엄마 책임이다. 하부구조가 원본을 복제한 다음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몸은 독립했으나 에너지는 모체에 의존한다. 외부의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시간 속에서 일하여 할당된 제 몫을 채워야 하므로 불완전하다.


    두 입술을 맞물어보면 ‘맞다’가 발음된다. meet와 같다. 맞다는 만나다이다. 만남은 맞는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든, 볼트와 너트가 만나든, 자물통과 열쇠가 만나든 모든 만남은 서로 마주보고, 마주쳐서, 맞닥들여 맞다. 그리고 사건은 일어난다. 그 다음부터는 알수없게 된다.


    구조론은 그러한 일치와 불일치의 문제를 논한다. 입술은 둘이나 일치하면 하나다. 구조론은 그러한 일치의 순간에 성립하는 하나와 둘의 관계를 논한다. 거기까지만 논하면 오류가 없다. 구조론은 거기서 멈추므로 오류가 없다. 그 다음은 오류가 있지만 이미 구조론을 벗어났다.


    구조론은 딱 들어맞는 이야기다. 다만 큰 줄거리는 맞는데 세부적으로는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큰 줄거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큰 원칙만 본다. 만남의 순간까지만 본다. 첫 등교까지만 논한다. 신과 그대의 만남까지만 논하는 거다. 그 다음 이야기를 하므로 오류가 일어난다.


    연못에 낚시를 던져 물고기가 잡힐지는 운에 달렸지만, 둑을 막고 물을 퍼낸다면 고기잡이는 시간문제다. 시간이 문제지만 언제 되어도 되기는 된다. 그대는 선택해야 한다. 낚시를 던지고 고기를 기다리는 상대성의 길을 갈 것인지, 둑을 막고 물을 퍼내는 절대성의 길을 갈 것인지.


    상대성의 길을 가면 처음에는 낚이지만 갈수록 안 낚인다. 그대가 낚은 만큼 고기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둑을 막고 물을 퍼내면 처음은 빈손이지만 갈수록 성공은 가까워진다. 물이 감소하는 것에 비해 고기의 비중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대성의 방법도 있고 절대성의 방법도 있다.


    선 절대성 후 상대성이 정답이다. 먼저 확실한 원칙을 정하고, 절대로 이기는 방법을 확보해놓고, 다음에는 현장의 상황에 맞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일단 고기가 도망치지 못하게 둑을 막아놓고 낚시를 해도 해야 한다. 세상이 구조론만으로 다 되는건 아니지만 구조론이 먼저다.


    이 순서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 혼란해졌다. 먼저 만나고 다음에 일하기다. 만남은 구조론의 절대성을 지켜야 한다. 완전성의 길을 가야 한다. 첫 수업부터 요령을 익히고 꼼수를 쓴다면 곤란하다. 첫 인사, 첫 만남, 첫 등교, 첫 출근, 첫 키스의 순간 그대는 완전해야 한다.


    구조론은 순수한 진리다. 개별적인 사실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진리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하부구조로 내려가서 구체적인 사실을 논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게임의 법칙이다. A면 B다. A나 B의 내부적인 사정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다만 그 둘의 사이에 대해서 논한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오류가 없다. 단 구조론을 사실에 적용함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 사실이 개입하면 벌써 속임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미 하부구조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추상의 영역이며, 추상은 공통요소를 뽑아내고, 서로 일치하는 부분만 다루므로 무오류다.


    구조론은 간단한 게임의 규칙이다. 그러므로 쉽다. 어려운건 게임에서 이기는 거지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건 쉽다. 규칙은 둘이 공유하며, 둘 중 하나만 옳아도 전부 옳기 때문이다. 둘 다 맞을 필요가 없다. 이쪽이 맞으면 저쪽도 맞다. 자물통이 열쇠에 맞으면, 열쇠도 자물통에 맞다.


    열쇠는 자물통에 맞는데, 자물통은 열쇠에 맞지 않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구조론은 일을 절반으로 줄인다. 그래서 구조론은 쉽다. 반대로 구조론의 추상화 단계를 떠나 하부구조의 사실 단계로 내려가면 하나가 틀려도 둘 다 틀리게 된다.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본다.


    둘이 헤어져 서로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끊어진다. 약한 고리 하나가 끊어졌을 뿐인데 사슬 전체를 못 쓰게 된다. 구조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한다. 질은 완전하나 입자, 힘, 운동을 거쳐 양으로 갈수록 일이 잘못될 확률은 높아진다.


    질의 군대는 한 명의 뛰어난 장수 때문에 상승부대가 되고, 양의 군대는 한 명만 자기 위치를 이탈해도 대오가 붕괴하여 전멸당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관점을 잡아야 한다. 구조론을 보급하는데 있어서의 문제는 사람들이 개별적인 사실에 집착하고 큰 줄거리를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사격을 하려면 0점부터 잡아야 한다. 원근법을 쓰려면 소실점을 잡아야 한다. 구조론을 배우려면 관점부터 잡아야 한다. 작은 한 점에 전체를 연동시켜야 한다. 그것은 최소의사결정 단위의 형태로 존재한다. 반드시 그것이 있다. 수학에는 숫자로 있고 물리학에는 소립자로 있다.


    생물에는 세포로 있고, 화학에는 분자로 있고, 사회학에는 개인으로 있다. 최소의사결정단위부터 잡아야 한다. 그것이 구조론의 관점이다. 그 관점을 잡지 않고 덤비므로 혼란이 일어난다. 숫자를 익히지 않은 사람이 수학을 배우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출발점의 기초가 안 되어 있다.


    첫 키스를 하고 와야 연애가 시작되는 법이며, 첫 등교를 하고 와야 수업이 시작되는 법이며, 첫 출근을 하고 와야 직장생활이 시작되는 법이다. 그 완전한 첫 날밤, 완전한 첫 수업, 완전한 첫 출근을 빼먹은 사람이 길을 잃고 중간에서 헤매는 것이다. 구조의 완전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만유는 복제되므로 복제의 원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최소 의사결정단위가 되는 낱개로 존재하며 사회의 어느 분야든 반드시 그것이 있다. 차는 한 대 아니면 두 대다. 차가 1.5대 있다는 건 없다. 말은 한 마리 아니면 두 마리다. 그 하나에서 원형을 찾고 완전성을 찾아야 한다.


    그 기초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뒤틀려 있다. 뒤틀린 시각을 교정하지 않으면 진도를 나갈 수 없다.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입을 열 수 있다. 본 만큼 안다. 구조론의 세부에 대해서는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했다. 첫 출발점의 문제를 보태는 거다.


   


[레벨:8]상동

2014.01.07 (10:24:21)

바둑을 처음 발명한 사람에게 몇 급이나 두느냐고 물으면 안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칼 만들기 명인에게 검도 몇단인가 물으면 안되죠.
원인부에는 원인부대로 잣대가 있고
결과부에는 결과부대로 잣대가 있습니다.
결과부의 잣대를 원인부에 들이미는 행위는 똥오줌을 못가려서 입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5362
2771 존재의 원형 image 김동렬 2014-01-08 8919
2770 운명을 디자인하기 1 김동렬 2014-01-08 11311
» 소통으로 출발하라 1 김동렬 2014-01-06 8883
2768 마르크스와 케인즈 극복하기 9 김동렬 2014-01-05 10119
2767 모형으로 이해하라 김동렬 2014-01-02 9399
2766 파리대왕과 로빈슨 크루소 김동렬 2013-12-31 10845
2765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image 9 김동렬 2013-12-31 11601
2764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 1 김동렬 2013-12-31 9484
2763 영화 미스트의 부족민들 image 2 김동렬 2013-12-29 10365
2762 어린 신부 잔혹사(추가버전) 6 김동렬 2013-12-25 10364
2761 구조론의 대의 image 3 김동렬 2013-12-23 9066
2760 선이 굵어야 한다 image 2 김동렬 2013-12-21 10063
2759 왜 깨달음인가? image 3 김동렬 2013-12-19 9925
2758 응답하라 세 가지 1 김동렬 2013-12-19 9672
2757 지성인의 자격 1 김동렬 2013-12-18 10584
2756 응답하라 대한민국 1 김동렬 2013-12-17 9811
2755 마지막 한 걸음 김동렬 2013-12-16 9260
2754 인생의 정답 김동렬 2013-12-15 11335
2753 구조론 독자 여러분께 image 3 김동렬 2013-12-13 10106
2752 의사결정의 방법 2 김동렬 2013-12-12 9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