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은 무엇인가? 구조론은 만유의 원형이다. 구조론 사이트에서 ‘원형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어폐가 있다. 구조론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같다. 구조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무수히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맥락을 따라가지 않고 문득 생각난 듯이 질문하면 뜬금없는 질문이다. 어차피 좋은 질문을 해 주는 사람도 없지만. 참고로 말하면 뜬금은 막대자에 금을 치는 즉 판정의 기준을 세운다는 말이다. 확실한 기준을 세워놓고, 좌표를 찍어놓고, 주소를 입력해놓고 맥락을 따라가며 말을 해야 한다. 사실 그것은 어렵다. 하여간 생각에도 좌표가 있고 기준이 있고 맥락이 있다. 있을건 다 있다. 만유의 원형은 존재다. 존재의 원형은 물질이다. 물질의 원형은 원자다. 원자의 원형은 소립자다. 소립자의 원형은 통일장이론이다. 통일장이론의 완성은 모르겠다. 이것이 현재 과학계 입장이다. 이는 얼버무린 거고 정확히 말하면 소립자의 원형은 없다. 소립자의 원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무한대나 무한소를 찾으려는 것과 같다. 소립자는 하나의 밸런스이며 가장 작은 밸런스 따위는 없다. 소립자는 밸런스가 맞는 포지션 조합이다. 불완전하고 엉성한 것이며 더 큰 소립자와 더 작은 소립자에 의해 곳곳에 누더기 땜빵이 되고 대략 덧칠되어 있다. 깔끔하게 마감되지는 않는다. 통일장이론은 맞지 않는 퍼즐의 조각들을 대충 맞추어 보려는 노력이다. 설령 그게 맞다 한들 또다른 전제가 드러나서 ‘처음부터 다시’가 되고 만다. 왜냐? 시간을 해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형=존재=물질=원자=소립자=통일장이론은 공간의 얼개를 추구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시간을 빼고 논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바 있다. 아직도 학자들은 아인슈타인에 미치지 못한다. 구조론의 원형은 사건이다. 사건은 기승전결이고 인과율이다. 원인에서 시작해서 결과에서 끝나고, 기에서 시작해서 결에서 끝나고, 입력으로 시작하여 출력에서 끝나고, 질에서 시작하여 량에서 끝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하나의 원형이다. 사건이다. 자체적으로 완성되어 있다. 이것이 복제된다. 무엇이 다른가? 시간+공간을 통합했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해놓고 시작하면 답이 안 나온다. 만유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설계-시공된 것도 아니고 복제-전개된 것이다. 복제가 정답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복제에 무관심한 이유는 원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형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뜬금없이 존재를 원형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는 막연한 상상의 산물이다. ‘있다’는 말의 어원은 턱으로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냥 턱으로 가리켜진 것이다. 영어로 being가 있는데 이는 입술로 사물을 가리킨 것이다. it나 is는 턱으로 가리킨 것이다. 결국 있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그냥 입술이나 턱으로 가리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막연하다. 존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략 물질을 존재로 보고 있다. 물질을 손과 발과 입술과 턱으로 가리킬 수 있으니까.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일찍이 개척한 바 물질은 허(虛)다. 색즉시공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없다. 2500년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물질은 공간을 에너지로 때린 것이다. 에너지는 결국 시간개념이다. 공간을 에너지로 때리면 물질이 생긴다. 확실한 것은 밸런스다. 밸런스를 맞추는 포지션조합이다. 통일장이론이 아이디어가 된다. 특정한 포지션 조합이 맞으면 물질이 생긴다. 필요한 전제는 어떤 베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명되어 있지 않다. 하여간 있다. 거기에 에너지를 투입하여 광속에 도달하면 진공에 물질이 후두둑 생겨난다. 수소가스가 발생하여 천지에 가득찬다. 수소는 헬륨으로 변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포지션 조합에 의해 일어나며 포지션은 복제된다. 이러한 내막은 수학적으로 입증된다. 4색문제가 답이다. 그런데 이는 문제고 답으로 말하면 구조론의 5색원리가 있다. 5개의 포지션이 지정될 때 하나의 포지션이 복제된다. 위상의 균일을 유지한 채 네 포지션까지 지정된다. 5개가 되면 대칭이 성립한다. 이때 위상차가 발생하고 하나가 둘을 통제한다. 계급, 차원, 레벨, 등급, 수준이 만들어진다. 4포지션까지는 계급이 없다.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꼬리인지 특정할 수 없다. 5포지션에서는 위상차가 생기므로 머리와 꼬리, 입력과 출력, 질과 양이 구분된다. 운동장에 4명의 어린이가 있다 치자. 이들 사이에 서열을 결정할 수 없다. 한 넘이 다른 한넘과 짝지어 우리는 2명이다. 우리가 형님이다고 주장하면 나머지 한 명이 다른 한넘과 짝지어 대응한다. 결국 서열이 생기지 않는다. 이때 구성원 모두는 다른 모두와 임의로 짝지을 수 있다. 그런데 다섯명이 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가운데 세명이 짝짓고 그 셋을 벽으로 두 명이 갈라져서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완전히 같은 포지션 둘이 태어나는 것이며 이에 대칭이 만들어지고 둘은 절대 짝짓지 못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사건의 원인과 결과,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영화의 시작과 끝, 게임의 승부가 결정된다. 이들은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공간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시공간 복합체다. 이것이 모든 것의 원형이고 이는 순수한 정보다. 세상은 물질이 아닌 정보, 포지션과 밸런스로 이루어진다. 물질이란 이러한 포지션 조합이 맞아서 내부적으로 독립된 계가 생겨난 것이다. 에너지를 가둘 수 있는 구조다. 당구대 위에 여러개의 당구공을 흘려놓고 그 중 하나를 치면 그 에너지는 흩어진다. 당구공은 어디로든 굴러가서 어디에든 에너지를 전달하고 만다. 에너지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러나 5색원리에 따라 포지션 조합이 만들어지면 내부에서 진동이 발생한다. 에너지가 그곳에 머물러 있는다. 5포지션에서 둘은 대칭이므로 에너지를 서로 상대방에게 전한다. 주파수가 생겨난다. 이때 에너지의 1회전달이 구조의 1복제이며 1복제가 1시간단위다. 시간의 탄생이다.
◎ 당구공을 치면 어디로든 에너지가 새나간다. ◎ 5포지션의 마주본 둘이 서로 에너지를 핑퐁하면 내부에 머무른다. 물질이란 5포지션 조합이 맞아서 밸런스가 이루어져서 에너지가 계 내부에 머무르는 파장이 생겨난 것이다. 모든 물질은 고유한 진동수가 있다. 에너지를 머무르게 하는 최소의 포지션 숫자가 1 공간단위다. 테크노마트가 왜 흔들렸겠는가?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고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공진이 일어나야 하며 5포지션에서 그것이 가능하므로 양자역학이 태어난다. 양자개념은 막연한 것이고 사실은 공진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포지션 숫자를 지정한 것이다. 에너지가 전달되다가 일정한 포지션에서 되돌아오므로 파장이 불연속성을 가지는게 양자(量子)다. 양자는 하나의 덩어리다. 그것은 닫혀있는 것이며 계가 성립된 것이고 에너지가 안에 머무르는 구조다. 간단히 철판을 에너지로 졸라리 때리면 일정한 숫자의 포지션에서 빛이 튀어나온다. 음악으로 치면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있는데 에너지를 점차 올렸을 때 각 옥타브의 솔에서만 빛이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그 포지션에서만 밸런스가 맞기 때문이다. 계와 밀도가 만들어진다. 시간이란 정보를 복제하는 단위이며 공간은 정보의 복제에 필요한 포지션 숫자간의 밸런스다. 간단히 다섯명이 있으면 서로에게 공을 토스할 수 있다. 1토스가 1시간단위이며 5명이 1공간단위다.
◎ 다섯명이 서로 공을 토스할 수 있다. ◎ 1회의 토스가 1시간단위다. ◎ 5명의 포지션 밸런스가 1공간단위다. ◎ 포지션이 맞지 않으면 공은 밖으로 튀어나간다. 4명일 경우 한 명이 공을 잡을 때 동시에 다른 세명도 공을 잡은 셈이 되기 때문에 서로 간에 공을 토스할 수 없다. 자기네들끼리 공을 주고받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수는 5인 것이다. 물론 사람은 둘이서도 공을 주고받지만 실제로는 두 손을 쓰므로 10개의 손가락으로 잡는 것이라 20포지션이 되고 만다. 손가락 숫자를 최소화 시킬 때 공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몇 손가락이 필요하냐다. 시간이란 어떤 둘이 한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며 공간이란 거기에 필요한 포지션 숫자간의 밸런스다. 이에 시공간과 에너지와 물질이 해명되는 것이며 이에 필요한 기본전제인 최초의 베이스는 해명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물질과 생물과 존재는 이 구조가 복제된 것이다. 세포든 유전자든 반도체든 소프트웨어든 복제되는 포지션 숫자는 정해져 있다. 그 숫자에 도달하면 에너지 혹은 정보가 내부에 머무른다. 단순한 복제는 양을 증대시킬 뿐 질을 상승시키지 않는다. 질적 상승을 끌어내려면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이 또한 일정한 포지션 안에서 가능하다. 구조론은 이 부분을 낱낱이 해명한다. ◎ 최초의 베이스가 있다. ◎ 에너지로 베이스를 때리면 물질이 생긴다. ◎ 5포지션에 의해 에너지는 물질에 갇혀 핑퐁된다. ◎ 시간단위는 1핑퐁이다. ◎ 공간단위는 5포지션 대칭이다. ◎ 물질은 에너지가 구조에 갇힌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도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은 다른 생각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인식한다. 진화론은 창조론과 비교되므로 머리 속에 각인되어 인식되는 식이다. 구조론은 비교대상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
이상의 진술이 맞고 틀리는지 생각할 필요없다. 문제는 아무도 이 원형에 대해서 탐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게 더 무서운 사실이다. 아무도 등잔밑을 찾지 않았다는거. 외계인 백만명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물질이 무엇인지, 시공간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생각이나마 좀 해보고 살자는 거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삶이 살아진다는 건가? 그게 더 무섭다. 생각없이 살 수도 있다는 거.
그러나 70억 인류 중에 생각해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충격을 받아야 한다. 그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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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안되는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을 감히 부탁드려도 되는지요?
"...구조론의 5색원리가 있다.
5개의 포지션이 지정될 때 하나의 포지션이 복제된다. 위상의 균일을 유지한 채 네 포지션까지 지정된다. 5개가 되면 대칭이 성립한다. 이때 위상차가 발생하고 하나가 둘을 통제한다.
계급, 차원, 레벨, 등급, 수준이 만들어진다. 4포지션까지는 계급이 없다.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꼬리인지 특정할 수 없다. 5포지션에서는 위상차가 생기므로 머리와 꼬리, 입력과 출력, 질과 양이 구분된다.
운동장에 4명의 어린이가 있다 치자. 이들 사이에 서열을 결정할 수 없다. 한 넘이 다른 한넘과 짝지어 우리는 2명이다. 우리가 형님이다고 주장하면 나머지 한 명이 다른 한넘과 짝지어 대응한다.
결국 서열이 생기지 않는다. 이때 구성원 모두는 다른 모두와 임의로 짝지을 수 있다. 그런데 다섯명이 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가운데 세명이 짝짓고 그 셋을 벽으로 두 명이 갈라져서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완전히 같은 포지션 둘이 태어나는 것이며 이에 대칭이 만들어지고 둘은 절대 짝짓지 못한다...."
위 단락에서 5명이 될때 가운데 3이 뭉쳐 2를 나누어서 순서가 나누어지는 과정을 a,b,c,d,e 로 직접 기호를 사용하여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가운데 3이 뭉치는 과정에서 기존 4포지션에서 추가되는 1이 특별한 존재인지 아니면 4포지션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인지도 궁금합니다.
특히 빨간색 부분 "완전히 같은 포지션 둘이..."에서 둘은 어느것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a,b,c,d,e에서 바깥 a와 e를 지칭하는 것인가요? 그럼 대칭이 이루어 진다는 것은 a와 e를 말하는 것인가요? a와 e는 어떤 특성을 가지게 되는지, 예를 들면 선후가 정해지는지? 그렇다면 a와 e중 어느것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될지는 누가, 혹은 어떤 계기로 결정되는지? 또한 가운데 3이 뭉칠경우 그 중심은 또한 누가, 혹은 어떤계기로 결정 되는지? 위상차가 발생된다는 것은 a와 e간에 발생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a,e와 b,c,d간에 발생한다는 것인지)
질문을 하다보니 끝도 없이 나오네요.
감히 설명을 청합니다.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물질이 무엇인지, 시공간이 무엇인지, 우주가 무엇인지 생각이나마 좀 해보고 살자는 거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삶이 살아진다는 건가? 그게 더 무섭다. 생각없이 살 수도 있다는 거.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그것만으로 버거워하는...
그렇게 살아오고 살아가는 날들 중에서...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가 무엇인지, 물질이 무엇인지는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지만... 그 이후로는 모른다 였는데...
모르니 사이비가 사이비 되고, 사이비 아니어도 사이비 될 수 밖에 없는데...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에서 세상은 한꺼풀을 벗고 원형을 탐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