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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0203 vote 0 2006.04.22 (00:31:01)

보편성과 특수성의 짝이 있고 일반성과 다양성의 짝이 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짝이 있고 일반성과 다양성의 짝이 있다. 보편성은 종이 다른 별개의 여럿이 하나의 소재를 공유하는 것이고, 일반성은 동종간에 전체와 부분이 하나의 몸통을 공유하는 것이다.

몸통이 있는 것은 일반성/다양성으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식물은 광합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모든 식물이 광합성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몸통이 없는 것은 보편성/특수성으로 파악된다. 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화폐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과 일반성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몸통이 있느냐로 구분한다. 하나의 인체에 속한 팔과 다리가 몸통을 공유하는 것이 일반성이고, 소속이 다른 개와 고양이가 하나의 룰(질서)을 공유하는 것이 보편성이다.

 

컨버전스에서 디버전스로 간다

요즘 시중에 나오는 전자제품들은 컨버전스에서 디버전스르 가는 경향이 있다. 컨버전스는 휴대폰에 디카와 MP3를 결합하는 것이고, 디버전스는 이들 제품이 각각 따로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휴대폰과 디카와 MP3가 별도로 상품화 되었다. 이것들이 점점 휴대폰과 결합하고 있는 것이 일반화 현상이다. 하나의 몸통을 공유하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중 사용빈도가 적은 기능은 점차 퇴출된다.

휴대폰만 남고 별도의 부가기능은 점차 배척된다. 이는 특수화 현상이다. 컴퓨터도 그렇다. 처음에는 프린터, 웹캠, 스피커, CD, 플로피 디스크, 게임기 등이 결합되었다.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큰 일 나는줄 알았다.

지금은 어떤가? 플로피 디스크는 없어도 된다. 웹캠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프린터는 한 달에 한 번 쓸까말까 한다. 필요없는 것이 점차 탈락하는 경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제자백가와 진시황제

춘추전국 시대에 제자백가가 출현함은 다양화 현상이다. 그러나 진시황에 의해서 하나의 전제국가로 통일된다. 봉건제가 무너지고 군현제가 채택된다. 이는 일반화 현상이다. 그러나 진시황의 통일제국은 다시 무너지고 만다.

한 고조 유방은 봉건제와 군현제를 절충하고 있다. 중앙은 군현제로 가고, 외곽은 봉건제로 간다. 이는 특수화 현상이다. 무엇인가? 다양화≫일반화.보편화≫특수화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화≫일반화로 갔다가 다시 보편화≫특수화로 가는데 이 두가지 흐름의 원인은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 일반성과 보편성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걸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화에서 획일화로 갔다가 다시 본래의 다양화로 되돌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춘추전국에서 진시황의 군현제로 가는 흐름과 진시황의 군현제에서 다시 한나라의 절충형으로 가는 흐름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역사가 과거로 되돌아간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진시황에 의해 한 번 통일된 도량형과 법치주의와 관료제도와 문자는 그대로 통일을 유지한다. 군현제가 후퇴한 것이 아니라 변경백의 전문성을 살려준 것이다.

휴대폰에 MP3와 디카가 결합되는 컨버전스의 흐름과 이들이 다시 분리되는 디버전스 흐름은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다. 일반성과 보편성은 구분이 다르다. 이를 혼동하는 데서 대부분의 논쟁과 오류와 시행착오가 일어나는 것이다.

 

표준경쟁 다음에는 성능경쟁

컴퓨터가 처음 탄생했을 때 OS는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손정의가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온갖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생산되었다. 게임만 해도 수백, 수천 종이요 워드만 해도 수십 종이 있었다.  

그 중 MS와 매킨토시가 살아남았다. 워드는다 죽고 아래한글 정도가 살아남았다. 이 건 일반화 현상이다. 일반화가 일어나면서 표준화가 진행된다. OS는 MS가 표준을 장악하고 워드는 아래한글이 표준을 장악한다.

지금 MS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리눅스가 출현한다. 익스프롤러의 독점에 제동을 거는 모질라의 파이어 폭스도 있다. 이건 특수화 현상이다. 역사이래 이와 유사한 패턴은 끝없이 반복된다.   

인터넷에서도 그렇다. 처음 야후가 나오면 네띠앙도 나온다. 딴지일보가 나오면 망치일보도 나온다. 그러나 표준을 장악한 야후가 승리한다. 딴지일보는 승리하고 망치일보는 퇴조한다.

서프라이즈가 나오면 동프라이즈도 나오고 시대소리도 나오고 남프라이즈도 나오고 노하우21도 나온다. 그러나 점차 서프라이즈로 일반화 된다. 표준을 장악한 하나가 독과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다시 야후가 퇴조하고 네이버와 구글이 득세하는가 하면 옥션의 아성에 G마켓이 도전하기도 한다. 제 2 분화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흐름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 초기의 다양성이 죽고 옥션과 야후로 일반화 ≫ 표준의 장악
● 현행 G마켓과 네이버의 도전 ≫ 성능경쟁시대의 개막

표준의 경쟁과 성능의 경쟁이 있다. 다양성에서 일반성으로 가려는 것은 표준과 그에 따른 효율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MS가 매킨토시보다 나을 것이 없지만 표준의 필요에 따라 MS로 통합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두벌씩 자판이 공병우 박사의 세벌씩 자판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지만 표준문제 때문에 두벌씩이 채택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성능이 후져도 표준을 장악한 쪽으로 힘을 몰아주게 되어 있다.

제품이 좋아도 호환이 안되면 고철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다시 성능의 문제가 제기된다. 표준 때문에 MS를 밀어줬는데 성능이 기대에 못미쳐서 후회가 막급이다.

 

프랑스 혁명력의 경우

제자백가 시절에는 표준이 없었다. 지역마다 화폐가 다르고 도량형이 다르고 마차바퀴의 규격이 달랐다. 표준을 장악한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강한 구심력을 받는다.

그러나 한 번 표준이 정해진 다음에는.. 다시 그 획일성에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다시 강한 원심력을 받는다. 전 세계가 미터법을 써도 영미는 악착같이 파운드법을 쓴다. 그러다가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홀랑 날려먹었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혁명력이라는 것이 있었다. 미터법으로 도량형을 통일하여 재미를 보더니 표준에 집착하여 아예 달력도 표준으로 만든 것이다. 혁명력을 쓰면 1년 365일의 요일을 외울 수 있기 때문에 달력이 필요없어진다.

혁명력은 곧 폐기되었다. 이는 지나치게 표준에 집착한 경우다. 표준이 확보되고 나면 그 표준의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표준이 없을 때는 불편했지만 표준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 표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쓰시다의 경우  

신산업이 출현하면 소재경쟁이 시작된다. 소재에서 기능으로 가는 시점에는 다양성에서 일반성으로 간다. 획일화 된다. 처음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는 소켓을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그때는 돌을 쪼아서 소켓을 만들기도 했다.

이때 마쓰시다가 표준을 만들었다. 플라스틱으로 값싼 전기기구를 대량생산한 것이다. 이후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전기제품은 플라스틱으로 통일되었다. 다양한 소재가 하나의 소재로 완전히 획일화 되는 것이다. 이는 일반화 현상이다.

타이어는 고무로 만드는게 정답이고 자동차는 쇠로 만드는게 정답이다. 그 상품에 적합한 소재가 찾아지는 것이다. 소재경쟁이 끝나면 기능경쟁으로 간다. 이때는 뭐든지 합쳐보려는 습관이 생겨난다.

컴퓨터가 처음 탄생할 때도 그랬다. 온갖 잡다한 것들이 컴퓨터와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개 정리가 되었다. 컴퓨터에 붙일 것과 뗄 것이 거의 확정된 것이다. 이 단계를 지나면 성능의 경쟁이 벌어진다.

성능을 살리려면 디버전스로 가야한다. 휴대폰의 성능과 디카의 성능을 동시에 살릴 수는 없다. 휴대폰을 살리자니 디카가 울고 디카를 살리자니 휴대폰이 운다. 그렇다면 따로 살림을 내는 수 밖에 없다.

● 소재경쟁 - 다양성에서 일반성으로 간다.
● 기능경쟁 - 컨버전스로 간다.(복합제품 등장.. 보편성으로 간다.)
● 성능경쟁 - 디버전스로 간다.(고급제품 등장.. 특수성으로 간다.)
● 효능경쟁 - 일반성으로 간다.(저가제품 등장.)
● 외형경쟁 - 다양성으로 간다.(디자인의 변화)

최고의 소재는 하나 뿐이다. 최고의 천은 비단이고 최고의 타이어는 고무다. 가볍고 튼튼한 쇠붙이는 알루미늄이고 확실한 부도체는 플라스틱이다. 컴퓨터라면 진공관이 아니라 반도체를 써야 한다.

이런 경우는 하느님 할아버지가 와도 획일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나는 다양성이 좋아요’ 하고 고집을 부려봤자 안 통하는 거다.

시장에서 경쟁의 요소는 이 다섯 뿐이다. 문제는 시간적 순서다. 소재≫기능≫성능≫효능≫외형 순으로 전개한다. 여기서 예외는 절대로 없다. 무조건 이 순서로 간다. 이건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철칙이다.

다양성≫일반성≫보편성≫특수성≫일반성≫다양성으로 간다. 이렇게 1사이클을 그리면서 시장의 순환주기가 완성된다. 겉으로 보면 획일성과 다양성 밖에 안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차이가 있다.

 

황박사건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 사회가 지금 소재≫기능≫성능≫효능≫외형의 경쟁요소들 중에서 어느 단계의 경쟁을 하고 있는가이다. 근대주의는 철강과 석탄 따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신소재의 출현에 토대를 둔다. 당연히 다양성에서 일반성으로 간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근대국가의 건설 과정은 기능경쟁이다. 이 때는 컨버전스가 붐을 이룬다. 사회의 모든 면에서 보편성이 강조되고 획일적인 룰이 강요된다. 괜히 국민교육 헌장 외어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 읽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초, 중등교육을 받아야 하고 모든 사람이 홍수환 선수와 카라스키야의 경기를 봐야한다. 모든 사람이 상투를 자르고 고무신을 신어야 한다. 획일주의가 강조된다. 이 시기에 지도자는 군중을 통제하는데 집중한다.

이 시기에 지도자의 역량은 새로운 표준을 만들고 이를 재빨리 보급하는데서 찾아진다. 군중동원, 집단행사, 주입식 홍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표준보급 경쟁이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표준이 확보되고 사회가 성숙하면 다시 성능경쟁으로 간다. 이 때는 디버전스로 간다. 이 시기에는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힘을 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조명을 받고 사회가 점차 분업화, 전문화, 개인화 된다.

지나친 표준에의 집착은 도리어 성능의 저해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국기에 대한 맹세나 하고 있어서는 개인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박정희, 전두환의 획일주의가 사라지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이 두각을 나타낸다.

법조인들은 헌법재판소를 앞세워서 한 번 들이대 보고 스포츠맨은 박찬호를 앞세워서 한 번 들이대본다. 민중들은 월드컵 길거리 응원을 앞세워서 한번 들이대 본다. 각자가 이렇게 한 번씩 들이대 보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한류를 앞세워서 한번 들이대보고, 기업가들은 이건희를 앞세워서 한 번 들이대본다. 노동자는 민주노총으로 집결하여 한 번 들이대고, 교사는 전교조로 결집하여 한 번 들이대고..

언론은 조중동으로 집결해서 한 번 들이대고.. 이렇게 각자 집단 안에서 대가리를 맹글어서 한번 씩 들이대기가 완전히 붐을 이루고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전문화 단계를 지나면 다시 대중화 되는 양상이 출현한다. 황우석 현상은 성능경쟁에서 효능경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출현한다. 대중문화가 꽃을 피우고 대중들이 변혁의 주체가 되고 대중이 사태의 중심에 선다.

그리고 다시 다양화 현상이 나타난다. 최후의 다양화 단계에서는 철저히 개인주의가 되어 정치사안에 무관심해진다. 국민이 대통령이나 수상 이름도 잘 모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일부 선진국은 이미 이렇게 되어 있다.

이러한 과정이 전체적으로 1사이클의 순환주기를 이룬다. 이는 시장의 순환구조다. 모든 진보하는 것은 이러한 패턴을 한 번씩 거친다. 이 거대한 사이클이 끝나면 새로운 산업, 새로운 문명이 출현한다.

 

소재≫기능≫성능≫효능≫외관

컴퓨터라도 그러하다. 처음 반도체냐 진공관이냐의 소재경쟁에서 반도체의 승리다. 다음 MS냐 애플이냐의 기능, 표준경쟁에서 MS의 승리다. 그 다음은 286이냐 386이냐의 성능경쟁이다.

지금은 어떤가? 컴퓨터를 구매할 때 성능을 논하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모든 컴퓨터가 일정한 수준에 올라왔기 때문에 성능의 비교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요즘 컴퓨터는 다들 성능이 좋다.

이제는 효능경쟁이 붙어 가격파괴 바람이 일어난다. 최후에는 디자인 경쟁이 벌어진다. 시장이 사망단계에 도달한 라디오가 그렇다. 라디오를 선전하는데 ‘음질이 좋아요’하고 자랑해봤자 안팔린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방법 외에 없다.

286이냐 386이냐의 성능경쟁이 한창이던 시대에는 비싸도 성능이 좋은 것을 구매하려고 한다. 가격이 싸다 해도 286은 안팔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가격이 싸야 팔린다.

이 원리를 모르고 후진국에서 값싼 제품으로 승부하다가 망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선진국에서 싸구려가 먹히고 후진국에는 도리어 고가제품이 먹히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성능 다음에 효능(가격)이다.  

텔레비전도 그렇다. 과거에 기계식 텔레비전이 있었다. 기계식이냐 전자식이냐의 소재경쟁에서 전자식의 승리다. 흑백이냐 컬러냐의 기능경쟁에서 컬러의 승리, 평면브라운관이냐 일반브라운관이냐의 성능경쟁에서 평면브라운관의 승리, 그 다음에는 가격 후려치기 경쟁과 디자인 경쟁이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 벽걸이 텔레비전이라는 전혀 새로운 TV가 등장하면서 다시 LCD냐 PDP냐의 소재경쟁으로 들어갔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경쟁의 1사이클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대한전선의 원투제로 냉장고를 기억하시는지? 1977년에 있었던 성에논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원투제로 냉장고의 직접냉각방식이 더 냉각력이 강력하고 전기가 적게먹는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만.. 삼성전자의 하이콜드 냉장고가 큰 문제가 아닌 성에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승리하고 있다.

자동차의 SOHC냐 DOHC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 단계에서는 성능을 효능보다 윗길로 치기 때문에 비싸도 제품이 좋아야 팔린다. 그러나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하면 실용성을 찾게 되어 다시 효능이 부각된다.

성에논쟁에서 대한전선의 완패는 지난 97년경 대우전자가 중국에서 소형냉장고를 출시했다가 실패한 것과 유사하다. 시장진입 초기단계에서는 소비자들이 비싸도 우수한 성능을 찾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97년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외제 냉장고를 장만하려면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이왕 돈 들일 바에 동네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대형냉장고를 사지 창피하게 소형내장고를 사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냉장고가 일반화 되어 냉장고 없는 집이 없어진다면 중국에서 소형냉장고도 잘 팔릴 것이다. 이 원리를 잘 파악해야 한다. 성능을 경쟁하는 후진국에서는 비싸야 팔리고 효능을 경쟁하는 선진국에서는 싸야 팔린다.

 

주의 만들기 좋아하는 주의

좌파냐 우파냐, 진보냐 보수냐의 2분법은 너무 유치하고 원시적이고 투박한 논의다. 세상이 그리 간단하게 주먹구구식이겠는가? 진실은 좀 복잡하다. 정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고온초전도체가 발명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저온핵융합장치가 발명되어 에너지의 수율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면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하다. 그렇다면 경쟁해야 하는데 무엇을 경쟁할 것인가이다. 시장의 성숙도에 따라 경쟁내용이 다르다. 역사의 발전단계에 따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다른 것이다.  

컨버전스로 가는 이유는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이고, 디버전스로 가는 이유는 표준이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동그라미의 완성을 추구한다. 그 시점에서 지향하는 목표가 다른 것이다

각각의 완성이 있다. 각자의 가치가 있다. 이들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고 트렌드가 있고 흐름이 있다. 집단의 표준이 주목받는 시기도 있고 각자의 개성이 주목받는 흐름도 있다.

표준만 중요하다거나 혹은 개성만 강조한다거나 하는 것은 전체를 보는 시야가 없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걸핏하면 무슨 주의 하고 딱지붙이기를 좋아하는 것은 전체를 보는 시야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주의라도.. 주의는 집단의 표준이든 각자의 개성이든 혹은 보편이든 특수이든, 또는 일반이든 다양이든.. 혹은 소재든 기능이든, 성능이든 효능이든 둘 중에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취하자는 거다.

나는 모든 주의를 반대하는 주의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다 필요하니까 있는 것이다. 중요한건 지금 21세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이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대정신과 대화하라

자동차도 기술을 추구하는 혼다가 있고 편의를 추구하는 도요타가 있다. 선발주자는 성능을 추구하고 후발주자는 편의를 추구한다. 선발주자는 성능을 내세워서 고가품을 팔고 후발주자는 효능을 내세워서 중저가제품을 판다.

도요타가 잘 팔리는 이유는 후발주자의 잇점을 살렸기 때문이다. 한국도 현대나 기아나 후발주자다. 그러므로 성능 보다는 효능 곧 편의성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한국은 독일차 보다 일본차를 베끼는 것이 시장흐름에 맞다.

근대주의는 인류문명이 컨버전스로 가는 흐름이었다면 탈근대는 디버전스로 가는 흐름이다. 역사가 그렇게 가는 것이다.

컨버전스의 흐름에는 모두가 오른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디버전스로 가는 흐름에는 왼손잡이, 장애인, 소수자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컨버전스 안에 디버전스가 있고 디버전스 안에 컨버전스가 있다.

과거의 남성우월주의가 가족의 통합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컨버전스라면 근래의 여성주의는 각자의 개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디버전스다. 그러나 그 여성주의라는 디버전스 안에 또 컨버전스가 있다.

여성주의가 초기에는 지나치게 남성과의 경쟁을 내세웠던 것이 그러하다. 여성도 남자처럼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컨버전스다. 이제는 양상이 일변해서 여성들이 야한 옷을 입어도 남자들이 알아서 시선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몸집불리기에 골몰하는 것은 컨버전스로 가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로 부도난 대우계열사를 따로 떼놓았더니 오히려 더 기업이 잘되더라는 것은 지금이 디버전스로 가는 흐름이라는 증거다.

 

왜 이 시대에 강한 개인인가?

딱정벌레는 뼈대가 겉에 있고 인간은 뼈대가 속에 있다. 뼈대가 몸 안에 있는 것이 나을까, 거죽에 있는 것이 나을까? 뼈대가 몸 거죽에 있으면 외부의 위험을 막는 껍질의 형태를 띤다.

살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물렁물렁해지고 거의 액체 상태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그 껍데기를 뚫고 어떤 뾰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면,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뼈대가 몸 안에 있으면 가늘고 단단한 막대 모양을 띤다. 꿈틀거리는 살이 밖의 모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상처가 수없이 많이 생기고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바로 밖으로 드러난 이 약점이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고 섬유의 저항력을 키워 준다. 살이 진화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출중한 지력으로 ‘지적인 갑각’을 만들어 뒤집어쓰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견고해 보였다.

그들은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비웃었다. 그러나 어떤 상반된 견해가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비집고 들어갔을 때, 그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아주 사소한 이견, 아주 사소한 부조화에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열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에 민감했고 어떠한 공격에서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지금 세계사의 큰 조류로 말하면 우리나라는 기능경쟁이 얼추 끝나고 전문가 집단이 목청을 높이는 성능경쟁과 대중이 발언권을 얻는 효능경쟁의 단계에 와 있다. 수구들이 발호하는 이유는 기능경쟁의 시대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컨버전스가 효과를 내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가문의 장남이 혼자 공부를 하고 다른 가족들은 장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장남이 판검사가 되어 출세하면 나머지 가족들이 한꺼번에 신분상승을 이룬다.

조갑제가 살던 시대가 그랬다. 그 때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 논리가 먹혔던 것이다. 삼성이나 현대를 국가적으로 밀어준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과 현대는 장남이라고 혜택을 본 것이다. 그래놓고는 막내를 괄시하고 있다.  

지금은 디버전스가 효과를 내는 시대이다. 삼성이나 현대를 밀어주는 것이 국가경쟁력에 보탬이 안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 이제는 각자 자기 힘으로 커야 한다. 한일간에 FTA라도 하면 누가 몽구차를 타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헌재, 조중동, 검찰, 법조계, 문화계, 노조, 전교조, 교장단, 종교단체 할것없이 저마다 목청을 돋우고 보는 것은 우리나라가 바야흐로 성능경쟁의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황우석 사태에 민초들이 목청을 높이는 것이나 월드컵 길거리 응원은 효능경쟁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이건 누가 동원한 것이 아니다. 민중이 자발적으로 앞서가는데 지식인이 진도를 못 따라오는 것이다

좌파들이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은 철 지난 컨버전스 개념이다. 수구들은 주로 가족 중심으로 컨버전스를 하고.. 좌파들은 조직, 단체, 지식인 중심으로 컨버전스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수구들은 돈과 뇌물과 부패와 비리로 술집에서 차떼기로 컨버전스를 붙어먹고 좌파들은 강단에서 조직에서 지식인의 살롱에서 붙어먹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컨버전스에 집착하고 있다는 본질은 같다.

무엇인가? 좌파들의 컨버전스는 개미의 베르베르가 말하는 ‘지적인 갑각’인 것이다. 그들은 갑각류처럼 몸뚱이를 단단한 외피로 둘러싸려고 한다. 집단으로 다구리를 놓아 황박사를 조지고 보자는 태도가 그렇다.

컨버전스가 먹히는 시대에는 룰과 조직과 표준이라는 ‘갑각’이 효과적이더라는 경험칙 때문이다. 황박사는 룰을 지키지 않고 조직에 복종하지 않고 표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서울대 마피아가 ‘가문’ 차원에서 손을 본 것이다.

그렇다. 일시적으로는 박정희의 총칼식 갑각이 효과를 내고, 재벌의 8000억 갑각과 1조원 갑각이 효과를 내고, 좌파들의 황박사 다구리로 조지기 갑각이 효과를 낸다. 그것이 그들의 룰이고 표준이다. 조직의 쓴맛이 힘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 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자신을 방어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진보할 수는 없고 몸을 키울 수는 없다는 거다.

성장하려면 뼈가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뼈를 보이지 않게 안으로 감추어야 한다. 황박사를 조지고 보는 룰은 뼈다. 파충류와 곤충류의 갑각이다. 그 뼈가 밖으로 돌출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은 몸의 살과 같다. 지식이 속으로 숨어서 뼈대가 되고 대중이 밖으로 감싸서 살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정은 어떤가? 수구와 좌파들은 공통적으로 살을 속으로 감추고 뼈대를 겉으로 싸서 갑각하려고만 든다.

 

-그들은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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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한국형만 살아남는다 김동렬 2006-05-24 14694
1607 게임 끝 김동렬 2006-05-24 15902
1606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김동렬 2006-05-23 16878
1605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김동렬 2006-05-21 14034
1604 황라열에 정운찬이면 김동렬 2006-05-18 11978
1603 스승의 날을 보내고 김동렬 2006-05-16 14482
1602 왜 나는 분노하는가? 김동렬 2006-05-14 12297
1601 그래도 기죽지 말기 김동렬 2006-05-13 12191
1600 깊은 슬픔 장 탄식 김동렬 2006-05-12 11125
1599 똥개는 무죄 인간이 유죄 김동렬 2006-05-03 12219
1598 변희재가 변하자 김동렬 2006-04-27 11764
1597 진중권 현상에 대한 소고 김동렬 2006-04-25 14398
1596 노회찬 치사하다 김동렬 2006-04-25 12908
» 파충류가 된 지식 김동렬 2006-04-22 10203
1594 독도에 장보고함을 출동시켜라 김동렬 2006-04-20 12165
1593 김한길 뻘짓 김동렬 2006-04-18 12603
1592 강금실과 케네디 김동렬 2006-04-13 14272
1591 한나라당의 붕괴 김동렬 2006-04-13 13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