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판단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중의 판단은 사건 자체와는 별개로 다른 목적을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똥녀 사건의 경우.. 마녀사냥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다는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대중의 판단은 일단 존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판단은.. 사건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적인 혹은 정치적인 어떤 하나의 ‘기록’을 남기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므로 이제는 공중도덕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개똥녀 사건을 이용하여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선한 목적은 일단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거창한(?) 목적을 위해 특정인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위험하다.
결론적으로 대중은 선한 의도로 나쁜 수단을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지도자의 역할은 그런 상황에서 적절히 흐름을 조정해 주는 것이다.
대중을 비난하지 않고 통제하려면 테크닉이 필요하다. 국민이 먹어야 할 욕을 정치가가 대신 먹어주는 것이 참된 정치가의 자질.(노무현과 유시민의 정치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주의는 명백히 국민의 잘못인데 정치가는 차라리 자신이 욕먹는 길을 택하는 것.)
대중의 선한 의도와 나쁜 수단
‘본프레레’ 감독의 능력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위험한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프레레 감독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군중심리에도 이와 같은 숨겨진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대중은 인터넷을 활용하여 하나의 ‘성공모델’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걸로 역사적인(?) 교훈을 남기고 싶어한다. 대중이 주체가 되어 액션을 취하는 방법으로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길거리 응원이나 촛불시위와 같은 선의의 성공사례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나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네티즌들이 여론을 조성해서 감독을 갈아치운다면? 그것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 반복된다면?
필자의 의견을 말한다면.. 일부 축구팬들이 지나치게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꼭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만큼의 성적을 내야만 맛인가?
우리가 한때 박항서를 지지했던 것은 그의 ‘자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해서라기 보다는 히딩크가 전수한 것을 과연 한국의 코치진이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그 부분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설사 성적이 약간 부진하더라도, 그 방법으로 우리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건 더 중요한 상위의 가치일 수 있다. 박항서가 낙마한 것은 그가 히딩크 없는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박항서의 낙마에는 성적의 부진 뿐만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가 있으며, 그 플러스 알파는 비전의 상실로 인한 의미의 실종이다. 박항서 실험이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수준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코엘류가 왔다. 우리가 코엘류를 부른 것은 그에게는 히딩크에게 없는 부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딩크에게 배웠으니 이제는 다른 부분을 배우자는 건방진(?)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쫓아냈다. 우리는 코엘류에게서 성적 뿐 아니라 플러스 알파까지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적이 나쁘니 그 플러스 알파도 무의미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플러스 알파를 포기하고.. 한국 축구의 자생력도 포기하고.. 히딩크가 미처 전해주지 못한 남은 부분도 포기하고.. 오직 성적 하나 바라고 데려온 사람이 본프레레다. 여기서 우리가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이다.
우리에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성적? 단지 성적만을 위한다면 거액을 투입하여 히딩크를 한번 더 부르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히딩크의 축구가 아닌 한국의 축구를 해야한다.
플러스 알파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의미다. 의미가 없으면 재미도 없다. 그 의미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히딩크식 성공모델에 이은 본프레레식 성공모델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한국축구.. 사실 가능성은 있었지만.. 다만 뭔가 하나가 부족해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족한 하나를 우리는 히딩크에게서 배웠다. 그러므로 이제 제 힘으로 날아야 한다.
즉 한국 축구는 원래부터 싹수가 있었던 거다. 이건 좋은 시나리오다.
다시 히딩크를 데려온다면? 그것은 한국 축구의 싹수를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 한국 축구는 원래 싹수가 없었는데 히딩크의 초인적인 지도력으로 없는 실력을 만들어낸 것으로 된다. 이건 나쁜 시나리오다.
재미를 원한다면 좋은 시나리오를 채택해야 한다. 원래부터 싹수가 있었기에 히딩크가 꽃을 피워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본프레레를 믿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싹수를 믿는다면 말이다.(그런데 중국 축구는 원래 싹수가 없으므로 히딩크가 가도 안된다.)
이륙의 법칙과 활공의 법칙은 다르다
본프레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히딩크의 엘리자베스를 비난하지 않았듯이 그의 개성으로 인정해야 한다.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감독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구단이 분열될 수도 있다. 통제불능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기에 따라서는 본프레레의 고집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일이 통 크게 납치를 시인했다가 총체적 난국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도자는 신중하게 발언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김정일에게는 납치를 시인하지 않든지, 아니면 통 크게 납치를 시인하고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 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험한 것.. 명장이 되려면 일정부분 정치도 해야한다.
그러므로 본프레레에게 잘못을 인정하라는 말은 물러나라는 말과 같은 말일 수 있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에게 낙선하면 뭐할거냐고 묻는 것과 같다. 대선후보는 낙선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지도자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낙선 후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지지자의 사기가 추락하고 지지율이 폭락한다. 그러므로 장세동도 김길수도 한사코 당선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보고 “훅 불면 날아갈것 같다”고 말한 것을 트집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필자는 지도자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발언으로 본다. 이는 본프레레의 목에 힘이 들어간 경우지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오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박주영을 쓰는 것을 보고 본프레레가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억지다. 본프레레 입장에서는 박주영에게 한 마디 툭 던져주는 방법으로 격려하고 지켜본 것이다.
그것은 관심의 표시다. 다만 그것이 목에 힘이 들어간 발언이 되다 보니 격려가 아닌 비아냥으로 잘못 해석된 것이다.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후반 조커로 기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을 뛰게 한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탁월한 결단이었다고 본다. 그것은 히딩크가 실축에도 불구하고 안정환을 빼지 않는 것과 같은 승부사의 타고난 감각이었다고 본다.
A 매치를 처음 뛰는 박주영이 후반 조커로 나와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뛰게 할 것이면 처음부터 뛰게 하는 것이 맞다.
또 고참을 먼저 테스트 하고 나중에 신인을 전격 기용하는 수순도 승부사의 방식에 맞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고참을 제외하고 먼저 신인을 기용했다가 잘 안되어서 나중에 고참을 쓴다면? 대혼란이 일어난다.
감독이 신인을 귀여워 하면 고참들은 마음이 돌아선다. 고참들 마음이 돌아선 상황에서 고참들에게 팀을 의존하면? 그 경우 고참들이 기세등등해서 컨트롤이 안된다. 또 그 방법으로 무너졌을 때 대응책이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고수들은 좋은 패와 나쁜 패를 가졌을 때 나쁜 패를 먼저 쓰고 좋은 패를 나중 쓴다. 나쁜 패는 버리는 카드로 써서 정보수집에 사용하고 적에게 역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막판에 좋은 패로 승부를 낸다.
그러므로 고참을 먼저 써야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정환, 유상철 등 고참을 먼저 기용하고 박주영 등 신인을 나중 실험한 그의 방식은 정확히 고수의 방식이다. 이 수순으로 했을 때는 설사 잘못되었더라도 뒷탈이 없다.
명장의 조건은?
명장이 되려면 천재이거나 아니면 감이 좋거나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한다. 히딩크는 천재다. 본프레레는? 지금 단계에서 속단할 수 없지만.. 나는 16강으로 목표를 낮춰잡고 있으므로, 히딩크 만큼은 못하더라도 골 터지는 축구를 해주기만 하면 고맙겠다. 적어도 감각은 있다고 본다.
본프레레 이후 한국 축구는 뭔가 달라진 점이 있다. 그것은 선수들이 덜 뛰고 정확한 슛을 쏜다는 점이다.(골을 많이 넣겠다는 그의 장담에 주목하라.)
과거의 한국 축구는 어땠는가? 분주하게 뛰고 무수한 슛을 날려 무승부를 기록하는 식이었다. 본프레레 축구는 확실히 덜 뛴다. 이것이 옳은가 여부를 떠나서 만약 이것이 본프레레 스타일이라면.. 그렇다면 본프레레 축구 아직은 과도기라고 보아야 한다.
진짜 본프레레 축구의 진수를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국가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면 말이다.
요는 본프레레 축구에 개성이 있느냐이다. 개성이 없고 특징도 없다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 경우 배운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 그러나 뭔가 개성이 있다면? 적어도 배우는 것이 있다. 남는 것이 있다. 재미도 있다.
개인전술에 의존하고 조직력이 없다지만 조직력에 기대다가 골 못넣는 일본축구보다는 통쾌한 맛이 있다.
매니아가 아닌 필자 입장에서 성적 보다는.. 덜 뛰고 슛을 덜쏘고 더 많은 골을 넣는, 조직력 보다는 개인전술을 앞세우는 본프레레의 축구가 과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정치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다. 스타일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시행착오도 있고 오류시정도 있어야 한다. 본프레레는 적어도 자신의 오류를 조금씩 시정해 가고 있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잘못을 인정 안하는 점이 특이하지만 잘못을 숨기기 위해 똥고집을 피우는 그런 감독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어떨지.
예컨대 개똥녀 사건의 경우.. 마녀사냥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나치다는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대중의 판단은 일단 존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중의 판단은.. 사건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역사적인 혹은 정치적인 어떤 하나의 ‘기록’을 남기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므로 이제는 공중도덕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그렇게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개똥녀 사건을 이용하여 널리 알리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선한 목적은 일단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거창한(?) 목적을 위해 특정인을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위험하다.
결론적으로 대중은 선한 의도로 나쁜 수단을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지도자의 역할은 그런 상황에서 적절히 흐름을 조정해 주는 것이다.
대중을 비난하지 않고 통제하려면 테크닉이 필요하다. 국민이 먹어야 할 욕을 정치가가 대신 먹어주는 것이 참된 정치가의 자질.(노무현과 유시민의 정치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주의는 명백히 국민의 잘못인데 정치가는 차라리 자신이 욕먹는 길을 택하는 것.)
대중의 선한 의도와 나쁜 수단
‘본프레레’ 감독의 능력에 대한 인터넷 여론은 위험한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프레레 감독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군중심리에도 이와 같은 숨겨진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대중은 인터넷을 활용하여 하나의 ‘성공모델’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걸로 역사적인(?) 교훈을 남기고 싶어한다. 대중이 주체가 되어 액션을 취하는 방법으로 뭔가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다.
길거리 응원이나 촛불시위와 같은 선의의 성공사례도 물론 있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의 나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네티즌들이 여론을 조성해서 감독을 갈아치운다면? 그것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 반복된다면?
필자의 의견을 말한다면.. 일부 축구팬들이 지나치게 성적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꼭 독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만큼의 성적을 내야만 맛인가?
우리가 한때 박항서를 지지했던 것은 그의 ‘자도자로서의 능력’을 인정해서라기 보다는 히딩크가 전수한 것을 과연 한국의 코치진이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그 부분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설사 성적이 약간 부진하더라도, 그 방법으로 우리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건 더 중요한 상위의 가치일 수 있다. 박항서가 낙마한 것은 그가 히딩크 없는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박항서의 낙마에는 성적의 부진 뿐만이 아니라 플러스 알파가 있으며, 그 플러스 알파는 비전의 상실로 인한 의미의 실종이다. 박항서 실험이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수준까지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코엘류가 왔다. 우리가 코엘류를 부른 것은 그에게는 히딩크에게 없는 부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딩크에게 배웠으니 이제는 다른 부분을 배우자는 건방진(?)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별로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쫓아냈다. 우리는 코엘류에게서 성적 뿐 아니라 플러스 알파까지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적이 나쁘니 그 플러스 알파도 무의미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플러스 알파를 포기하고.. 한국 축구의 자생력도 포기하고.. 히딩크가 미처 전해주지 못한 남은 부분도 포기하고.. 오직 성적 하나 바라고 데려온 사람이 본프레레다. 여기서 우리가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이다.
우리에겐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성적? 단지 성적만을 위한다면 거액을 투입하여 히딩크를 한번 더 부르면 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히딩크의 축구가 아닌 한국의 축구를 해야한다.
플러스 알파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의미다. 의미가 없으면 재미도 없다. 그 의미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히딩크식 성공모델에 이은 본프레레식 성공모델은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한국축구.. 사실 가능성은 있었지만.. 다만 뭔가 하나가 부족해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족한 하나를 우리는 히딩크에게서 배웠다. 그러므로 이제 제 힘으로 날아야 한다.
즉 한국 축구는 원래부터 싹수가 있었던 거다. 이건 좋은 시나리오다.
다시 히딩크를 데려온다면? 그것은 한국 축구의 싹수를 부인하는 결과가 된다. 한국 축구는 원래 싹수가 없었는데 히딩크의 초인적인 지도력으로 없는 실력을 만들어낸 것으로 된다. 이건 나쁜 시나리오다.
재미를 원한다면 좋은 시나리오를 채택해야 한다. 원래부터 싹수가 있었기에 히딩크가 꽃을 피워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본프레레를 믿어야 한다. 한국 축구의 싹수를 믿는다면 말이다.(그런데 중국 축구는 원래 싹수가 없으므로 히딩크가 가도 안된다.)
이륙의 법칙과 활공의 법칙은 다르다
본프레레..!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히딩크의 엘리자베스를 비난하지 않았듯이 그의 개성으로 인정해야 한다.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감독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구단이 분열될 수도 있다. 통제불능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기에 따라서는 본프레레의 고집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일이 통 크게 납치를 시인했다가 총체적 난국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도자는 신중하게 발언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지휘봉을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김정일에게는 납치를 시인하지 않든지, 아니면 통 크게 납치를 시인하고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 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험한 것.. 명장이 되려면 일정부분 정치도 해야한다.
그러므로 본프레레에게 잘못을 인정하라는 말은 물러나라는 말과 같은 말일 수 있다. 대선에 출마한 후보에게 낙선하면 뭐할거냐고 묻는 것과 같다. 대선후보는 낙선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맞다.
지도자는 배수진을 쳐야 한다. 낙선 후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지지자의 사기가 추락하고 지지율이 폭락한다. 그러므로 장세동도 김길수도 한사코 당선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보고 “훅 불면 날아갈것 같다”고 말한 것을 트집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발언이다. 필자는 지도자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발언으로 본다. 이는 본프레레의 목에 힘이 들어간 경우지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오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박주영을 쓰는 것을 보고 본프레레가 자신의 말을 뒤집은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억지다. 본프레레 입장에서는 박주영에게 한 마디 툭 던져주는 방법으로 격려하고 지켜본 것이다.
그것은 관심의 표시다. 다만 그것이 목에 힘이 들어간 발언이 되다 보니 격려가 아닌 비아냥으로 잘못 해석된 것이다.
본프레레가 박주영을 후반 조커로 기용하지 않고 처음부터 풀타임을 뛰게 한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탁월한 결단이었다고 본다. 그것은 히딩크가 실축에도 불구하고 안정환을 빼지 않는 것과 같은 승부사의 타고난 감각이었다고 본다.
A 매치를 처음 뛰는 박주영이 후반 조커로 나와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뛰게 할 것이면 처음부터 뛰게 하는 것이 맞다.
또 고참을 먼저 테스트 하고 나중에 신인을 전격 기용하는 수순도 승부사의 방식에 맞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고참을 제외하고 먼저 신인을 기용했다가 잘 안되어서 나중에 고참을 쓴다면? 대혼란이 일어난다.
감독이 신인을 귀여워 하면 고참들은 마음이 돌아선다. 고참들 마음이 돌아선 상황에서 고참들에게 팀을 의존하면? 그 경우 고참들이 기세등등해서 컨트롤이 안된다. 또 그 방법으로 무너졌을 때 대응책이 없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고수들은 좋은 패와 나쁜 패를 가졌을 때 나쁜 패를 먼저 쓰고 좋은 패를 나중 쓴다. 나쁜 패는 버리는 카드로 써서 정보수집에 사용하고 적에게 역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막판에 좋은 패로 승부를 낸다.
그러므로 고참을 먼저 써야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정환, 유상철 등 고참을 먼저 기용하고 박주영 등 신인을 나중 실험한 그의 방식은 정확히 고수의 방식이다. 이 수순으로 했을 때는 설사 잘못되었더라도 뒷탈이 없다.
명장의 조건은?
명장이 되려면 천재이거나 아니면 감이 좋거나 둘 중에 하나는 되어야 한다. 히딩크는 천재다. 본프레레는? 지금 단계에서 속단할 수 없지만.. 나는 16강으로 목표를 낮춰잡고 있으므로, 히딩크 만큼은 못하더라도 골 터지는 축구를 해주기만 하면 고맙겠다. 적어도 감각은 있다고 본다.
본프레레 이후 한국 축구는 뭔가 달라진 점이 있다. 그것은 선수들이 덜 뛰고 정확한 슛을 쏜다는 점이다.(골을 많이 넣겠다는 그의 장담에 주목하라.)
과거의 한국 축구는 어땠는가? 분주하게 뛰고 무수한 슛을 날려 무승부를 기록하는 식이었다. 본프레레 축구는 확실히 덜 뛴다. 이것이 옳은가 여부를 떠나서 만약 이것이 본프레레 스타일이라면.. 그렇다면 본프레레 축구 아직은 과도기라고 보아야 한다.
진짜 본프레레 축구의 진수를 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국가대표팀의 경기 스타일이 바뀌고 있다면 말이다.
요는 본프레레 축구에 개성이 있느냐이다. 개성이 없고 특징도 없다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 경우 배운 것도 없고 남는 것도 없다. 그러나 뭔가 개성이 있다면? 적어도 배우는 것이 있다. 남는 것이 있다. 재미도 있다.
개인전술에 의존하고 조직력이 없다지만 조직력에 기대다가 골 못넣는 일본축구보다는 통쾌한 맛이 있다.
매니아가 아닌 필자 입장에서 성적 보다는.. 덜 뛰고 슛을 덜쏘고 더 많은 골을 넣는, 조직력 보다는 개인전술을 앞세우는 본프레레의 축구가 과연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정치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다. 스타일이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시행착오도 있고 오류시정도 있어야 한다. 본프레레는 적어도 자신의 오류를 조금씩 시정해 가고 있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잘못을 인정 안하는 점이 특이하지만 잘못을 숨기기 위해 똥고집을 피우는 그런 감독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차분히 지켜보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