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으로 보면 Think는 Thorn, through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쏘는Thorn' 것이다. 가시로 찔러 내부를 관통through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은 객체 내부에 주목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생각한다는 것은 내부를 통과하는 것이다. 생각할 때 가시로 머릿속을 찌르며 아이디어가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류는 생각할 줄 모른다. 생각하는 대신에 반응한다. 생각은 내부를 통과하고 반응은 외부에서 집적댄다. 인류의 방법은 내부를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다. 인류는 상호작용하며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여 맞대응하는 과정에 아이디어를 얻는게 보통이다. 그것은 수동적인 사고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의사결정 플랫폼을 공유한다. 인류가 모르는 것이 그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의사결정구조를 설명하는 것이다. 플랫폼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인류는 외부에서 객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가리켜놓고 설명했다고 착각한다. 반응해놓고 생각한 걸로 친다. 국어사전부터 잘못되어 있다. 원인은 '결과를 낳는 작용'이라고 설명하고 결과는 '원인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기술한다. 이것은 대칭을 지렛대로 사용하여 객체를 가리킨 것이다. 외부를 가리켰을 뿐 내부를 관통하지 않는다.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이게 잘못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일찍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과학적 사유의 첫 단추를 꿰었다. 그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원자론은 틀렸다. 원자는 결정된 것을 외부에 전달하는 단위이지 내부에서 결정하는 단위가 아니다. 요리사는 도마 위의 생선을 자른다. 도마가 플랫폼이다. 원자는 도마에서 잘린 결과물이지 자르는 원인물이 아니다. 원자는 객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가리키는 것과 설명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결정하는 구조와 전달하는 단위를 구분하지 못한다. 인류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일단 생각할 줄 모른다. 생각은 내부를 관통하는 것이며 그러려면 내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원자는 내부가 없어 생각할 수 없다. 유체와 강체가 있다. 유체는 내부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강체는 외부에 그 변화를 전달한다. 유체가 원인이고 강체는 결과다. 유체는 내부가 있고 강체는 내부가 없다. 우주가 유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체는 힘을 생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강체는 전달할 뿐 힘을 조직하지 못한다.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유체의 내부냐, 강체의 외부냐다. 내부에 주목하느냐, 외부에 주목하느냐다. 내부는 전제하고 외부는 진술한다. 인류는 내부의 전제와 외부의 진술을 하나의 도마에 올려놓고 사유하는 방법을 모른다. 밖을 알되 안을 모르고, 전달을 알되 결정을 모르고, 강체를 알되 유체를 모르고, 가리키되 설명할 줄 모른다. 겉이 아니면 속이다. 생각은 속이다. 생각을 알 수 없으면 속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인류의 문명은 겉문명이다. 속문명으로 갈아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