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키舵는 몸통 밖으로 나와 있다. 외부를 향해 돌출되어 있다. 스크류 뒤에 있는 Rudder 말이다. 자동차의 핸들은 외부를 연결한다. 권총의 방아쇠도 외부로 돌출되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외부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에너지의 공급원은 외부와 통해야 한다. 그것이 도구다. 도구는 어떤 둘을 연결한다.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은 도구의 장악문제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도 꼼수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다. 외부를 닫아걸고 내부를 조이면 된다. 권투선수는 코너로 뒷걸음질 치면 된다. 싸움꾼은 벽을 등지면 된다. 구석으로 숨으면 상대방이 공격할 수 있는 받음각이 줄어든다. 문제는 이 방법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방어에만 일시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은 공간이 넓을수록 좋고 수비는 공간이 좁을수록 좋다.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좁은 복도에서 싸우듯이. 문제는 공간이 무한히 좁아질 수 없다는 점이다. 좁힐수록 더 좁힐 수 없게 된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권투선수는 뒷걸음질 치다가 코너에 몰린다.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지만 갈수록 궁지에 몰린다. 문제는 역사상 안다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죄다 이 수법인 거. 뒷걸음질 쳐라. 등 뒤는 안전해. 벽을 등지라구. 구석에 숨어. 그걸로 한숨 돌리지만 외부가 단절되므로 결국 말라죽는다. 선택지가 감소한다. 들어갈 수는 있는데 빠져나오지 못한다. 진궁의 거듭된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하비성 밖을 나가지 않았다가 죽었다. 문제의 해결에는 외부를 연결하는 방법과 내부를 쥐어짜는 방법이 있다. 내부를 쥐어짜는 방법이 일시적으로 흥하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쉽다. 왜 진궁은 본인이 성을 나가지 않고 여포더러 나가라고 했을까? 진궁은 포위를 돌파할 실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점에 손을 빼고 외부를 연결하여 대세력을 만드는 것이 바둑의 정석이지만 알파고만 할 수 있는 고급기술이다. 하수들은 불안해서 한 수를 더 둔다. 안전운행을 하다가 집부족으로 말라죽는다. 중요한건 그 외부의 연결도구가 무엇이냐다. 내부엔 그게 없다. 그것은 창의다. 그것은 혁신이다. 그것은 신대륙이다. 그것은 개혁이다. 그것은 만남이다. 그것은 플러스알파다. 현재는 상호작용이 밸런스를 이룬다. 50 대 50의 팽팽한 대칭구조 안에 없는 그 무엇이 플러스알파가 된다. 상호작용구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문재인은 지갑을 주운 셈이다. 박근혜의 삽질에 반사이익을 얻었다. 그러나 그 행운은 문재인이 그 자리에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2년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2017년에도 출마하지 못했을 거다. 미지의 플러스알파에 미리 대비해야 하는 거다. 그것이 방향성이다. 방향이 올바르면 확률이 증가하고 무슨 수가 나도 난다. 그것은 현재 없는 것이므로 설명할 수 없다. 사회를 움직이는 그것은 권력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그것은 이윤이다. 자연을 움직이는 그것은 기세다. 단 이미 반영된 것은 유효하지 않다. 이미 반영된 기득권, 이미 반영된 이윤, 이미 반영된 기세는 플러스알파가 아니다. 속도가 아닌 가속도라야 한다. 상호작용의 밸런스에 반영된 기득권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창출이라야 한다. 그것이 찾아야 하는 플러스알파다. 그것이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도구다. 도구로 이겨야 진짜 승리다. 양심이다. 도덕이다. 진정성이다 하는 것은 승리자가 광을 내고 폼을 잡는 것이다. 응원을 잘해서 승부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이길 싸움을 더 크게 이기게 하는데는 도덕이 도움이 되지만 질 싸움을 이기려면 답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외부에서 지원군이 와야 한다. 인터넷과 SNS는 외부에서 갑자기 찾아온 지원군이다. 코로나19도 진보진영에 나쁘지 않았는데 막판 오미크론 변이가 망쳤다. 여포는 진궁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외부로 나가서 뭐든 변화를 만들어야 했다. 백 퍼센트 보장은 안 된다. 외부환경은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해로우면 힘껏 버티면 된다. 이로우면 흐름에 편승하면 된다. 조조도 관도싸움에서 크게 몰렸으나 힘껏 버텼다가 오소를 들이쳐서 변화를 만들어냈다. 외부에서 찾아온 허유가 답을 줬다. 행운이지만 방향이 맞았다. 철학은 숨은 플러스알파를 찾는 것이며, 그것은 상호작용구조에 반영되지 않은 미지의 것이며, 새로운 물결이며, 알 수 없는 것이며 그러므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변화의 형태로 나타나며, 경직된 자는 변화를 피하여 숨고 유연한 자는 그 변화에 적응하여 이용한다. 조조는 철학이 있었고 여포는 철학이 없었다. 조조는 위험을 감수하고 외부에서 찾아올 행운의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여포는 위험을 회피하여 외부의 변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스스로 궁지로 걸어들어갔다. 변화는 또 일어난다. 두려움이 없는 자가 이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