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다. 구조란 한 마디로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는 여자’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지만, 어떤 사이가 ‘아는 사이’일까? 이름만 아는 정도로는 ‘내가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화 한 통화로 이 자리에 불러낼 정도가 되어야 ‘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안다는 것은 그 대상에 관여하여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구를 통제하려면 손잡이를 잡아야 하고, 동물을 잡으려면 머리를 붙잡아야 하고, 집단을 장악하려면 리더를 잡아야 하고, 국가를 지배하려면 왕을 잡아야 하고, 자동차를 통제하려면 운전석을 잡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 중핵이 되는 축이 존재한다. 그 축을 잡아야 통제가 된다. 안다는 것 역시 그러하다. 구조의 축을 알아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축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둘의 대칭 사이에 있다. 구조의 축과 대칭을 알때, 그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존재는 공간상에서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고 시간상에서 내부를 유지함으로써 존재 그 자체를 성립시킨다. 유령이나 허깨비처럼 외력의 작용에 맞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또 시간상에서 유지되지 않고 곧 사라져 버린다면 존재가 아니라 무(無)다. 그건 없는 거다. 존재는 외력에 대항하고 내부를 유지한다. 외력의 작용은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성립시킨다. 이 법칙을 충족시켜야 존재가 인정된다. 그래야 거기에 무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외부의 작용에 대응하여 자기존재를 유지하고 반작용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구조의 축이다. 축은 물체의 무게중심, 운동중심, 에너지의 중심 형태로 존재한다. 축은 물체의 중심에 있지만 그 중심은 공간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의 중심이다. 에너지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므로 변화의 중심, 진보의 중심, 성장의 중심으로 존재한다. 하나의 존재에는 다섯 개의 축이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다섯가지 형태로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여 축을 성립시킨다. 축이 다섯 개나 있는 이유는 존재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변화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성장하고 발전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양의 대칭에는 운동이, 운동의 대칭에는 힘이, 힘의 대칭에는 입자가, 입자의 대칭에는 질이 축 역할을 한다. 최종적으로 질의 대칭에서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에너지를 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존재의 최고 단계에서는 외부를 향하여 성장할 때만 자기 존재를 유지시킨다. 호랑이 콧털만 뽑고 와서 호랑이를 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상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는 다섯 개의 축을 가진다. 그 다섯 개의 축을 단 한번의 개입으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의 작용이 그 존재의 전부에 전면적으로 전달된다. 공간의 좌표를 읽어 가만있는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진행의 방향을 읽어 움직이는 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구조의 대칭을 찾아 힘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대응의 센터를 찾아 머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세력을 발견하여 성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대상을 백퍼센트 장악할 필요는 없다. 51퍼센트 장악으로 충분히 축을 제압하고 임의대로 조정할 수 있다. 칼의 손잡이만 잡으면 된다. 칼날까지 손으로 잡을 필요는 없다. 적을 99퍼센트 장악했는데 단 하나가 이탈했다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하나가 리더라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러므로 수순이 있다. 머리를 먼저 잡고 꼬리를 나중 잡아야 한다. 꼬리를 잡으면 꼬리를 떼고 도망갈 것이다. 머리를 잡으면 그 머리에 눈과 귀와 코와 입이 소속되어 있으므로 도망갈 수 없다. 머리가 없이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먹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질을 먼저 잡고 량을 나중 잡아야 한다. 눈이 되는 생장점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 부분이 진짜 중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부분이 요원의 들불을 일으키는 한 알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다. 구조를 모른다는 것은 핵심을 모른다는 것이며 거의 전부 모른다는 것이다. 구조를 모르면 대상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 그 대상이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으며, 진보하고 있으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돌멩이를 알기 쉬우나 살아있는 생명, 살아있는 문명, 살아있는 집단지능, 살아있는 역사, 살아있는 인간의 드라마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시간, 공간, 물질, 에너지, 질서. 시공이 연동하고(축1), 물질과 에너지가 또 연동하고(축2), 물질은 공간에 대해작용하고(축3), 에너지는 시간에 대해 작용하고(축4), 질서는 시간, 공간에 대한 물질과 에너지의 작용(축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