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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360 vote 0 2021.12.30 (18:24:42)


    망원경은 발명된 지 1년 만에 갈릴레이의 손에 들어가서 개량되었다. 갈릴레이는 멀리까지 내다본 사람이다. 빅 픽처가 그려졌다. 그는 판을 완전히 갈아엎으려고 했다. 세상을 다 바꾸려고 한 것이다. 하나의 단서를 잡았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구체제의 관성력에 다치고 깨졌다. 물질의 관성은 보았는데 구질서의 관성은 보지 못한 셈이다. 갈릴레이 이후 과학사는 갈릴레이의 해석에 불과하다. 이후 인류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게 없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어떻게 다른가? 하늘이 돈다는 것은 세상이 신의 뜻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할 이유가 없다. 신의 뜻을 헤아리고 복종하면 된다. 버스의 운전석은 신이 장악했고 인간은 얌전히 각자의 좌석에 앉아 있다가 하차할 때는 벨을 누르면 된다. 그런데 지구가 돈다면? 달도 돌고 별도 돈다면? 각자 알아서 도는 것이다. 각자 자기 핸들을 잡아야 한다. 버스가 아니라 승용차였다는 말인가? 신이 인간을 대신하여 운전해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자연을 관찰해야 한다.


    지구는 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구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지? 원심력이 작용할 텐데? 지동설에 대한 천동설의 공격이다. 이에 대한 갈릴레이의 대답이 관성이다. 뉴턴이 최종적으로 해결했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다. 갈릴레이는 무리들에 공격받아서 상처 입고 죽었다. 갈릴레이의 관성이 무엇일까? 그것은 맞물려 있음이다. 관성이 구조다. 구조론은 세상이 톱니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견해다. 그것이 물질의 성질을 결정한다.


    소금은 짜고 설탕은 달다. 그것은 속성이다. 왜 그럴까? 그냥 그렇다.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게 아니고 구조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떤 둘이 맞물리는 방식에 따라 소금처럼 짜게도 되고 설탕처럼 달게도 된다. 하늘은 왜 푸르지? 누가 푸른 물감을 뿌렸는가? 자연의 많은 파란 색은 실제로 파란 색이 아니다. 둘 사이의 간격이 특정할 때 빛이 산란되어 파랗게 보인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색이 바뀐다. 새의 날개나 곤충의 색깔이 그러하다. 코발트와 같은 안료가 푸른 빛을 반사하는게 아니다. 하늘이 푸른 이유도 마찬가지다.


    원래 그런 것과 구조가 그런 것은 다르다. 파란색 안료가 포함되어 있다면 원래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무지개 빛깔의 칼라를 획득하듯이 둘의 관계가 색깔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조절될 수 있다. 하늘이 푸른 것은 색소가 뿌려진 것이 아니고 프리즘의 각도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녁에는 노을이 붉게 변한다. 대낮의 푸른 하늘은 높은 하늘의 미세입자가 빛을 산란시키고 저녁의 붉은 노을은 낮은 하늘의 수증기가 빛을 산란시킨다. 하늘은 무색이고 태양의 고도가 색을 결정한다. 그런데 원래 그런 것도 깊이 들어가면 역시 관계가 결정한다. 우주 안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 그것은 얼버무리는 말이다.


    갈릴레이의 의미는 세상을 원래 그런 것 곧 속성으로 간주하고 덮어 놓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소금은 왜 짜지? 원래 그런 거야. 설탕은 왜 달지? 원래 그런 거야. 얼버무리는 말이다. 세상을 물질의 속성으로 이해한다면 비과학적인 태도다. 갈릴레이는 신에게 맡겼던 핸들을 빼앗아 인간에게로 가져왔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신이 그렇게 창조했다는 말이다. 신을 붙잡아와서 취조할 수도 없고. 커튼 뒤의 일은 알려고 하지 마라는 이야기다. 인간의 한계를 그은 것이다. 금 넘어가기 없기다.


    갈릴레이가 금을 넘어갔다. 속성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던 것이 인간의 탐구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늘이 왜 푸르지? 하늘은 원래 푸른 거야. 이런 식으로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각도에서 보니까 색깔이 다르던데? 그렇다. 갈릴레이는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뉴턴이 운동 3법칙으로 정리했지만 그냥 그렇더라는 말이다. 하늘이 푸르더라고. 설탕이 달더라고. 소금이 짜더라고. 왜 그런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구조론이 처음 질문을 던진다.


    언어는 주어와 술어다. 세상은 물질과 성질이다. 물질은 원자고 성질은 관성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 원자는 의사결정단위고 관성은 의사결정구조다. 21세기 이 시대에 또다른 빅 픽처가 필요하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지구가 돌든 태양이 돌든 엔진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우주를 돌리는가? 뉴턴의 실험해보니 그렇더라는 말은 결과론이다. 원인론으로 답해야 한다.


    노자 -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인간은 진리를 알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신경 꺼라.
    천동설 - 하느님이 우주를 돌린다. 어련히 알아서 돌리겠는가?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지동설 - 각자 알아서 돌고 있더라. 그런데 핸들은 누가 잡았지? 큰일이네.
    갈릴레이 - 물질은 성질에 따라 돈다. 그 성질은 관성이다.
    뉴턴 - 관성을 실험해 보니 아귀가 딱 맞더라.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과 갈릴레이의 관성설을 합치면 구조다. 원자가 무엇인지는 다들 알 것이다. 아니 원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다. 막연히 감으로 아는건 빼자. 옛날 사람들은 물질을 연속적인 존재로 보았다. 원자는 불연속적으로 떨어져 있다.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 하는 논쟁과 같다. 구조론은 서로 떨어진 두 입자가 계를 이루고 맞물려 돌아가면 파동의 성질을 획득한다는 거다. 파장이 같아져서 균일한 계를 이룬다. 우주를 돌리는 엔진은 그곳에 있다. 인류에게는 또 하나의 망원경이 필요하다. 그것은 의사결정구조를 보는 망원경이다. 구조론은 둘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것이다. 맞물리면 안정된다. 안정되면 이긴다. 지면 하나의 맞물림에서 또다른 맞물림으로 옮겨간다. 그 엔진에서 변화가 격발되는 것이다.


    원자는 하나의 존재이고 관성은 둘의 맞물림이고 구조는 거기서 일어나는 의사결정이다.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는게 관성이다. 원자는 하나이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관성은 둘 이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에서 나타난다. 움직이는 것을 멈춰 세우면 즉시 멈춰야 한다. 그런데 왜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려고 할까?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지면 멈추고 이기면 계속 가고 비기면 방향이 틀어진다. 천동설을 지지하며 릴레이를 비판한 사람은 자신이 관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구가 돌면 사람은 원심력에 의해 우주 밖으로 튕겨 나갈 텐데? 갈릴레이 아저씨 설명해 봐.' 질문 속에 답이 있다. 사실 이 지점에서 관성은 발견된 것이다. 갈릴레이가 대답했다. '응. 그런데 안 튕겨 나가. 내가 딱 봤는데 안 튕겨 나가더라구. 너도 봤잖아.' 그게 관성이다. 튕겨나가야 하는데 튕겨나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게 물질의 성질이구만. 거기에 이름을 붙이자. 관성이라고 명명하면 된다. 소금은 염도 때문에 짜고, 설탕은 당도 때문에 달고, 물질은 관성 때문에 튕겨 나가지 않는다. 쉽잖아. 사과는 왜 떨어지지? 떨어지니까 떨어지는 거다. 내가 딱 봤는데 뚝 떨어지더라고. 여기에 이름을 붙이는 자가 승리자다. 뉴턴은 중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성공적이다.


    왜 사람들은 엄청난 발견을 하고서도 거기에 이름을 붙여 선점하지 않고 갈릴레이와 뉴턴에게 양보했을까?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우주를 연속적인 존재로 보았다. 연속적이라면 죄다 붙어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셀 수 없다. 우주는 무한하고, 시공간은 영원하고, 신은 전지전능하다는 말은 그것을 셀 수 없다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조차 이런 잘못된 세계관에 낚여서 정적우주론을 주장한 것이다. 왜? 세려니까 엄두가 나지 않아서. 겁 먹은 거다.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은 인간을 쫄게 한다. 겁먹지 말아야 한다.


    원자론은 하나씩 셀 수 있다는 거다. 센다고? 나이스라는 말의 어원은 세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는 것은 싫다. 그런데 사이언스라는 말의 어원은 센다는 뜻이다. 나이스는 노+사이언스다. 뭐든 세어보려고 한 것은 그리스인이다. 아랍인은 신의 뜻을 알아내려고 했을 뿐 세어보지 않았다. 르네상스는 아랍을 거쳐 들어온 것이다. 세지 않으려는 비과학적인 태도가 묻어온 것이다. 임금이 갑자기 미쳐서 좁쌀 한 말이 몇 알인지 세어오라고 하면 도망쳐야 한다. 그건 정말이지 나이스 하지 않다. 그걸 세어보려고 한 사람이 수학을 만들었다. 하인들을 소집한 다음 한 홉씩 나눠주면 금방 세어온다. 사실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일단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갈릴레이가 세어볼 대상을 지목한 것이 관성이고 뉴턴이 실제로 세어봤더니 계산이 맞았다.


    사람들이 막연히 성질이라는 단어 뒤에 숨는다. 왜 그렇지? 성질이 그런 거야. 아 그렇구나.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동양인들은 대충 기라고 한다. 왜 사과가 떨어지지? 천지의 기운이 그렇다네. 아하 그렇구나.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지구가 사과를 당긴다면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세어보아야 한다. 깃털과 쇠공을 떨어뜨려 보면 된다. 구조는 무엇을 세어봐야 하는지 지목한다. 어떤 둘의 간격이 좁으면 파란색이 되고 넓으면 파란색이 된다. 색깔은 간격이다. 그 간격을 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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