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강준만의 전세역전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리 하는 자들 있다. 심지어 노빠 중에도 우리는 브루투스가 되어야 한다고 떠드는 자들 있다. 게임이 바뀐 줄도 모르고. 로마 게임에서 로마 + 지중해 + 그리스 + 게르만 게임으로 룰이 바뀐 줄 모르고. 한국이 후진국일 때 지식인이 선두에 섰다. 원로원이 나름 역할을 했다. 이제 한국은 후진국이 아니다. 판이 커진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자 지식인은 일제히 바보가 되었다. 한경오는 수렁에 빠졌다. 그들의 알량한 지식은 남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선두에 서는 방법은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꼴찌에서 2등까지는 남의 지식으로 가고 선두에 서면 자기 힘으로 바람에 맞서야 한다. 여기서 진짜와 가짜가 가려진다. 진중권, 강준만, 최장집뿐이랴. 난다 긴다 하는 지식인들이 일제히 똥이 되었다. 기레기와 검사, 의사, 목사, 판사들만 민폐를 끼치는게 아니다. 왜 그들은 한결같이 똥탕 속에서 탭댄스를 추는 것일까?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2등까지는 쉽게 간다. 선두에서 바람을 막아주니까. 일등은 자기 판단으로 가야 한다. 바람을 이겨야 한다. 교과서에 안 나온다. 한국이 세계 1위가 되자 복제된 지식은 쓸모가 없어졌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초딩도 안다. 시골에서 소쿠리 들고 미꾸라지 잡아도 그렇다. 물고기를 어느 방향으로 몰아야 하는지는 황금률이 있다. 잡아보면 안다. 가운데서 몰면 물고기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구석에서 몰면 물고기는 넓은 곳으로 도망쳐 버린다. 전체가 10이라면 3으로 약간 치우쳐서 시작하여 점차 가운데로 나와야 한다. 곧장 가운데로 나오면 안 된다. 3에서 2로 좁히면서 훑고 다음 4에서 3으로 좁히며 훑으며 지그재그 방향전환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물고기가 잡힌다. 국민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중도에 서면 양쪽에서 협공 당한다는 사실을. 안철수 포지셔닝은 꼭 죽는 위치라는 사실을. 정의당은 구석에서 기어 나오지 못하고 거기서 말라 죽는다는 사실을. 도랑 치며 가재 잡아 봤잖아. 촌놈들은 안다. 정의당 가재는 안전한 돌 밑에 숨었다가 잡힌다는 사실을. 지식인이 욕 안 먹고 일관성을 지키려다가 돌 밑의 가재가 된다. 국힘당 붕어떼는 가운데로 나왔다가 그물에 걸린다. 지식인은 혼자이므로 정의당에 숨었다가 죽고 국힘당은 쪽수가 많으므로 가운데로 밀려나와서 죽는다. 자기판단은 없고 쪽수의 법칙에 지배된다. 김어준이 감으로 아는 것을 지식인은 왜 모를까? 나무의 가지가 흔들려도 밑둥은 흔들리지 않는다. 가지가 흔들리는 것은 나무가 넘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바람이 잦아들면 가지는 조용하다. 밑둥이 흔들릴 때 조짐이 있다. 한 방에 넘어간다. 이곳저곳을 툭툭 건드려 보라. 반응이 오는 지점이 있다. 스팟이 있다. 급소가 있다. 돌아오는 메아리가 유난히 큰 곳이 있다. 살짝 건드렸는데도 비명소리 들리는 곳이 있다. 거기가 급소다. 김어준은 안다. 철도원은 망치로 바퀴를 툭툭 때려보고 고장난 위치를 안다. 음이 갈라지는 곳에 균열이 있다. 강준만의 내로남불 타령은 백 번을 해도 나무의 가지 끝을 흔드는 것과 같아서 문재인 대나무는 금방 원위치 된다. 조국에 흔들리고 추미애에 휘어져도 끝내 그 바람을 잘 타고 넘는다. 지식인은 도덕가인 척하며 일관성을 지킨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권위주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말 꼬투리 시비에 책잡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방어하므로 구석에 숨어서 바람을 타지 못하는 것이다. 바람을 타려면 가운데로 나와야 한다. 국힘당은 바람에 의지한다. 바람에 편승하다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한 방에 간다. 몰살 당한다. 지식인처럼 구석에 숨어서 바람을 피해도 안 되고 국힘당처럼 바람에 편승하려 해도 안 된다. 바람을 읽고 바람을 이겨야 한다. 시류의 변화를 반기고 이용해야 한다. 김어준은 도덕가가 아니다. 일관성에 관심이 없다. 음모론이 틀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적군의 스팟을 찾을 뿐이다. 자신의 체면이나 위신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적진의 급소를 찾을 뿐이다. 왜? 민중은 언제나 팀플레이를 하기 때문이다. 혼자 싸우는 지식인은 실수를 견딜 수 없다. 자신을 검열하다 결벽증 생긴다. 팀플레이 하는 민중은 내가 틀려도 동료가 받쳐주므로 걱정이 없다. 김어준이 틀려도 노빠는 계속 간다. 옳고 그름은 관심이 없다. 에너지를 보존하는 기세의 연결이 중요하다. 방향이 옳으면 자잘한 오류가 있어도 계속 전진한다. 두들겨 보면 반응이 오는 지점이 있다. 유독 메아리가 큰 지점이 있다. 거기가 스팟이다. 그곳을 공략하면 정권도 한 방에 넘어간다. 국민은 다 아는데 진중권, 강준만, 최장집은 절대로 모른다. 왜냐하면 교과서에 안 나오니까. 이등까지는 지식인이 목에 힘을 준다. 일등이 되면 지식인은 찌그러지고 현장을 아는 민중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일등은 선두에서 바람을 맞기 때문이다. 외부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하니까.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경험과 적응이 필요한 것이다. 뒤따라 가는 사람은 갈림길에서 판단을 잘해야 한다. 선두에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막힌 곳을 뚫어서 새로 길을 열기 때문이다. 있는 길의 판단이 아니라 없는 길의 개척이다. 기세를 모아 정면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진국은 지도자가 잘해야 하지만 선진국은 국민이 잘해야 한다. 강준만은 자신이 잘난 척 하지만 김어준은 국민을 잘난 척 하게 만든다. 그런데 한국인 진짜 잘 났다. |
교과서적인 지식과 합리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체험으로 느끼는 감각과 직관을
고려해야 한다
감각과 직관은 간접적인 지식과 논리를 초월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영감과 과학자의 직관처럼
닮은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