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스』님의 『노무현, 해하싸움을 기대한다』편이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있군요. 이 글은 그 해설판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중국은 넓은 나라입니다. 허허실실의 손자병법식 사고는 중국인들에게 잘 맞아떨어집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한번 싸움에 지고나면 도망가서 숨을 곳이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이전투구를 벌여서라도 무조건 이기려고만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개혁을 견인하려면 인내하는 법 부터 배워야 한다! |
모택동이 고난의 장정을 하면서 기회를 엿본다든가, 등소평이 문혁의 와중에 은인자중 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든가 하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이나라에는 도무지 발을 붙일 수가 없지요.
져주므로서 이긴다는 정치의 역설, 살을 내주고 뼈를 벤다는 역의 발상,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는다는 사소취대(捨小取大)의 개념, 정치는 온통 새옹지마이고 전화위복이더라는 전략적 사고를 한국인들은 잘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직 돌아가는 판 밖으로 밀려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대가리를 들이밀고, 한계단이라도 위에 있는 사람의 빤쭈를 벗겨가면서 매달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한국인들입니다.
일본만 해도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인(忍)이 있었고, 바둑의 포석을 두듯이 천하를 설계한다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유연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근데 한국인들은 매번 사생결단입니다. 『올인 즉 오링』이 되고 말죠.
유(柔)가 강(剛)을 이긴다
모택동의 장정, 등소평의 참을성, 토쿠가와의
인(忍), 료마의 웅지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정치적 유연함, 인내, 신념, 역설,
기다림. 결론은 노자의 『유(柔)가 강(剛)을 이긴다』는
개념입니다. 온유한 유방이 강고한 항우를 이긴 것입니다.
지금 한국의 돌아가는 정치판을 보세요. 온통 강(剛)으로 강을 치고, 강으로 약(弱)을 짓밟고, 대놓고 강을 주문하기 일색입니다. 유(柔)는 도무지 발붙일 곳이 없어요. 아무도 노무현의 유(柔)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물태우식의 물러터진 유(柔), 귀가 얇아서 남의 말에 솔깃하는 유, 우유부단한 유는 쓸모가 없습니다. 대어를 낚는 낚시꾼이 릴을 조이다가 다시 풀어주듯, 유 속에 강을 숨기고, 강 가운데 유를 적절히 배치하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도의 기본개념은 적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급소가 있습니다. 힘이 꺾어지는 관절부분입니다. 그곳을 공격하면 작은 힘으로도 강한 상대를 너끈히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의 턱밑까지 접근해야 합니다.
천하의 유도 고수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를 업어치기 할 수 없습니다. 적의 턱밑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적의 요구를 들어주어 적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최병렬의 부상은 적의 방심의 결과입니다. 노무현의 유(柔)가 벌써 효험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최병령의 부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병렬은 이데올로그입니다. 그들은
실전에서 이기기보다는 체면에서 이기고, 논리에서 이기고, 명분에서 이기고, 말싸움에서
이기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노무현이 만만해보였다 이거죠.
지난 413총선을 전후로 이회창이 개혁파를 전면배치한 것은 그들이 궁지에 몰려서 체면이고 명분이고 다 팽개치고 오로지 이기는 싸움에만 집중한 것입니다. 이는 여포가 모사 진궁에게 의존한 것이나 항우가 범증을 군사(軍師)로 모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총선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김영일, 양정규, 하순봉, 윤여준, 맹형규 등 친위대를 중용하다가 망가졌습니다. 이는 여포가 조조와의 서전에 승리하고 도취되어 진궁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나, 항우가 유방과의 싸움에 몇 번 이기고 기고만장해져서 범증의 말을 듣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옛말에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한마디로 배가 불렀다 이거죠. 그들은 특검을 승리로 착각하고 도취되어 체면세우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은 사실상 이회창이 이긴 선거였어. 이나라의 정신적 대통령은 이회창이다.』
이 말이 하고싶은 거죠. 5억불의 비밀이 진작에 밝혀졌더라면..! 150억불이 대선 이전에 폭로되었더라면..! 기양건설비리 등 폭로전에서 누명을 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라면사재기를 하면서 잠못들어하는 한나라당지지자 많습니다. 그들의 착각이 최병렬의 부상을 낳은 것입니다.
노무현의 전략은 약자의 전략이다
68년 대선에서 닉슨은 월남전의 지속여부에
대해 의중을 밝히지 않는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모든 정치세력이 닉슨의 침묵을 자기네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했습니다. 반전파는 닉슨이 전쟁을 중단할 것으로 믿었고,
주전파는 닉슨이 전쟁을 계속할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말 그대로 노무현은 반통령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 진짜 대통령이 됩니다. 그것도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고, 개혁 대 수구의 총력전에서 자력으로 이겨야만 명실상부한 노무현의 승리가 됩니다.
제 정치세력이 노무현의 행보를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것이 약자의 전략입니다. 노무현의 행보는 표면적으로는 어떤 정치세력이든 합당한 요구는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게 하므로서 적들로 하여금 『노무현에게는 엉기면 된다』는 오판을 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는 한도 끝도 없고 .. 노무현의 『약자의 전략』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년 대선 이전에 써두었던 『노무현과 김구』 시리즈를 읽으셔야 합니다. 틈나는대로 올려서 『박력의 정치』 코너 게시판 상단에 링크된 『노무현의 전략』에 쌓아두기로 합니다. 노무현과 김구 무엇이 닮았나? 노무현과 김구의 일생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노무현과 김구가 닮은 이유는 전략이 닮았기 때문이고 전략이 닮은 이유는 성장환경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약자의 전략』입니다.
1. 타고난 쇼맨십이 닮았다 드라마는 ‘기승전결’이라는 일정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극적인 반전이다. 예컨대 주인공을 오해하고 외면하던 동리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몽둥이 하나씩 들고 몰려와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주는 식이다. 백범과 노무현의 삶에는 무수히 연극적인 요소가 있다. 그들은 곧잘 주어진 상황을 소설 같은 드라마로 연출해내곤 한다. 타고난 쇼맨십이다. 그들은 늘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는 약자의 배역을 맡는다. 처음에는 비웃고 있던 관객들이 보다못해 일제히 들고일어나서 위기에 처한 백범과 노무현을 구해준다. 엘리트들은 남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돈이나 권세나 인맥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그것을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방법으로 지도자가 된다. 서민 출신의 지도자에게는 그 나누어줄 자산이 없다. 그들은 타인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악당에게 도전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위기에 빠뜨리고 군중이 자신을 구해주게 하는 방법으로 지도자가 된다. 노무현 후보는 모든 순간을 일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감각이 뛰어나다. 노후보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실상 모두 정확히 연출된 것이다. [문화일보 김용옥기자] 노무현은 즉흥적인 자기연출이 뛰어난 사람이다. 무심코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관객을 의식하고 계산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주 몸에 배어 있어서 자연스러운 단계에 까지 도달하고 있다. 즉 연출된 행동이면서도 가식적인 행동은 아닌 것이다. 동료 죄수들부터 나를 이인(異人)으로 여긴다. 사형을 당하는 날인데도 평소와 똑같은 언어, 음식, 동작을 한 것이 자기가 죽지 않을 것을 미리 아는 듯 하였다고 한다. [백범일지] 백범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태연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그것이 가식적인 행동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인격의 수련이 뒷받침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높은 경지가 하루아침에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2. 백범의 환등기와 노무현의 컴퓨터 백범은 당시로는 첨단기기였을 것이 틀림없는 환등기를 구해서 각 읍을 순회하며 웅변대회를 개최한다. 노무현은 다른 어떤 국회의원보다도 먼저 컴퓨터를 익히고 ‘노하우 2000’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 개량형 독서대를 발명하여 실용신안 특허를 딴 일도 있다.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노무현어록 - 독학으로 컴퓨터를 배워 프로그램을 개발한 일에 대해] 엘리트지도자는 굳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확보하고 있는 인맥과 명성 만으로도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일은 선비의 체면을 손상하고 조직 내에서 튀는 행동으로 보여서 견제를 당하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범이 운남 이승만,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설산 장덕수, 몽양 여운형 등 명웅변가의 계보를 잇는 웅변가였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양반문화의 잔재가 여전하던 시대에 점잖은 선비의 체면을 따지는 사람이 군중들 앞에서 웅변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서민후보다운 파격적인 행보도 마찬가지다. 서민 출신의 지도자는 애초에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체면이고 위신이고 명성이고 없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도 없다. 백범과 노무현이 신문물에 적응하려 애쓴 것은 스스로의 서민적 정체성을 십분 의식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