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민주화의 과도기를 걷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비교될 수 있다. 집권한 순서는 다르지만 러시아 지도자들과 스타일 면에서 공통되는 점을 찾아보기로 하면.

●영삼 ≫ 옐친.. 찬스에 나타나서 한골 줏어먹고 뻐기는 허풍선이 타입.
●DJ ≫ 고르바초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초석을 놓는 역사의 기획자 스타일
●노무현 ≫ 푸틴..
어질러진 일을 마무리 짓는 뚝심의 해결사

이렇다. 문제는 그릇이다. 그 인간의 그릇 크기 말이다.

인물됨에 있어서의 세가지 유형
영삼은 옐친과 비슷하다. 무대가 주어지면 찬스에 뛰어들어 활약할 수 있지만, 스스로 무대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인물은 못된다.  결정적 상황에서『조커』로나 써먹을 타입이다.

DJ는 옳았지만 그 스타일에 있어서는 대중 정치가로 성공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상가에 가깝다.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할 때 보다 무대 뒤에서 연출할 때 더 빛나는 사람이다.

DJ와 고르비는 둘 다 역사를 바꿔놓은 대담한 기획을 성공시켰지만, 대중정치가로 처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비운의 정치가라 할 것이다.

노무현과 푸틴은 DJ와 고르비에 비해 한 수 아래의 인물이다. 그러나 대중정치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타입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DJ와 유능한 노무현
위대하다는 것과 유능하다는 것은 다르다. 위대하다는 것은 한 시대의 프레임을 짜는데 성공한 인물을 말한다. 무대 뒤에서 기획하고 연출하고 감독하는 일이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과 푸틴은 유능한 인물일 수는 있어도 위대한 인물은 아니다. 노무현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것은 DJ가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서나 작동하는 것이다. 그 점은 푸틴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사랑하지만 진정 위대한 인물은 고르바초프다.

더 많은 노무현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노무현을 지켜보아 왔다. 그리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라 15년 묵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15년간 변하지 않은 사람이 한두달 사이에 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신뢰할 수 없다. 노무현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왜 노무현이 고전하고 있는가? 혼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노무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노무현으로 안된다면 열사람의 노무현, 100사람의 노무현, 만 사람의 노무현으로 덤벼야 한다.

왜 노무현이 고전하고 있는가? 우리의 총체적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된 것은 명백히 DJ의 실패다. 개혁세력의 역부족이었다. 김정일이 배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분명 DJ의 실패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거품 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소수파이며, 우리의 활동공간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 작은 힘을 어느 한 곳에 몰아주어야 한다면,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최적화에 이르는 길인가?

왜 노무현이 DJ를 완성하는가?
어떤 경우에도 노무현은 DJ의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부분을 완성시키는 역할이다. 노무현이 갑자기 새로운 시대의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삼장법사가 차마 못하는 일을 손오공이 한다. 그러나 손오공이 무슨 일을 저질러도 삼장법사의 손바닥 안에서 논다는 사실을 잊어서 안된다. 사상가 DJ가 미처 해내지 못하는 일을 수완가 노무현이 해내는 것이다.

삼장법사는 요괴를 설득하려 한다. 손오공은 요괴를 때려잡는다. 삼장법사는 물불을 가린다. 손오공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DJ는 김정일을 설득하려 한다. 노무현은 김정일을 혼내준다.

DJ는 수십번도 더 김정일을 때려잡고 싶었을 것이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한다. 2000만 북한 민중들을 위해서이다. 결코 김정일이 이뻐서가 아니다. 사상가 DJ의 한계이다. 역사의 큰 프레임을 짜는 사람은 그렇게 한다.

기름빼고 따귀 빼고 냉정하게 가자
정치는 정치다. 감상적으로 접근해서 안된다. 목숨 걸고 하는 도박에 낭만주의가 깃들 여지는 없다. 객관식 교리문답으로 정답이 나오지 않으므로, 이를 일러 『다스림』이라 한다.

위대한 사람은 삼장법사이지만 주인공은 손오공이다.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옳지마는 그걸로 통일이 되지는 않는다. 통일의 초석은 사상가 DJ가 놓았지만, 통일의 완성을 위해서는 콜 총리의 뚝심이 필요하다.

노무현의 뚝심에 기대를 걸어도 좋다. 왜? 그는 적어도 물불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자존심, 체면, 권위 이딴거 안따지는 노무현이 못할 일이 뭐 있어? 권위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결코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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