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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어는 가장 뻔뻔스러운 언어" - 김 현(문학평론가, 89년 작고) -

"가장 뻔뻔스러운 언어"의 주체가 '정치'에서 '언론'으로 자리바꿈한지가 이미 오래다. 군사 정권에 아첨과 아양을 떨면서 확장한 사세를 두고 '국민의 선택'이라고 우기는 짓도 이젠 무감할 뿐이다. 그냥 그 언론 떨거지 새끼들의 생존 방식이 불쌍해 보일 뿐이다.

조폭에도 등급이 있다고나 해야 할까. 아침에 동아닷컴에 접속했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모든 조폭이 처음부터 조폭은 아니었을게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하천도 그 '시원'이 있는 것처럼 조폭들도 조폭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근원지'와 '과정'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도 '유수'와 같은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란 말이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그러했던 것처럼.

조폭이 되기 전게 거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동네나 학교에서의 불량배 => 깡패 => (별)빵살이 => 소조직책 => 중조직책(변두리 나이트 클럽 물관리나 영업 등) => 대조직책(지역 두목)' 등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조폭다운 조폭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반칙왕>이라는 영화, 혹시 보셨는가? 송강호가 지나다니는 동네 어두운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서 '약해 보이는' 행인들 골라서 패는 동네 불량배들이 등장한다. 이런 얘들은 어떻게 쳐줄까? 이런 떨거지 개새끼들을 쳐 주는 유효적절한 '등외 등급'이 하나 있긴 하다. 뭔고 하니..

'양아치'

한마디로 말해, 국어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동아일보>가 욕먹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조폭'도 아닌 새끼가 조폭 흉내나 내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조폭'놀음으로 인기를 구하고 있으니까 그거 흉내내면 비슷한 '인기'가 따라 올 줄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아치'가 제아무리 조폭 흉내를 낸다고 해서 양아치에서 조폭으로 신분의 수직상승이 어디 가당키나 하던가? 바로 '양아치 짓'을 <동아일보>가 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해 내내 <조중동> 조폭 양아치 떨거지 집단이 노무현을 공격했던 줄기찬 주제가 바로 '노무현 = 불안'이다. 그런 공격에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자, 바로 변주가 시작된다. '노무현 = 파격'이다. 항용 따라붙는 형용어가 있다. '논란'과 '파란'이다. 그 지저분한 '변주곡'은 거의 항상 같은 테마로 반복이 된다. '파격적인 노무현 행보 => 신선함 대 파격 논란 => 불안스러움'이 그것이다.

그만큼 써먹었으면 질릴 때도 되었건만, 양아치들의 눈에는 여전히 그것이 '신선한' 주제인 모양이다. <노무현 청와대 50일 분석>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동아닷컴(신동아 기사였겠지만)의 기사의 헤드라인은 <노대통령 청와대 행보 소탈? 불안?>이다. 내 짧은 국어실력과 언어 사용 능력으로는 '소탈 = 불안'이 어떻게 믹스가 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어쨌껀 그 헤드라인이 암시하는 바는 노무현의 소탈한 행보가 곧 불안스럽다는 것이겠다.

기사는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소소한 청와대 일상을 보여준다. 비서동에 찾아가 청소용역직 아주머니와 악수를 했다는 둥, 직원들과 같이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식판에 떨어진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는 둥 따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동원한다. 소탈한 행보라는 것이다. 여기에 주석이 따라붙는다. 남의 입을 동원한 비아냥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권위와 체통이 도통 헷갈리는 나로서는 기자의 그런 깜냥이 이해난망일 뿐이다.

대통령의 소탈 행보 중엔 청와대로 이메일을 보낸 초등학생에게 친필 답장을 보낸 일도 들어 있다. 뿐만 아니다. 정해진 회의 시간 보다 대통령이 일찍 나타난 것도 '파격'이란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큐사인'을 알아보지 못해 'NG'가 날 뻔한 일도 '파격'과 '소탈'의 일부로 들어간다. 예의 평검사와의 공개 토론회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검찰 인사에 실세가 개입한다는 검사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문재인, 박범계 수석을 주목해서 일어서게 한 것을 '파격'이라고 규정한 데에 이르면, 양아치 언론의 '파격 기준'은 팬티 고무줄에 다를 바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다.

기사는 그렇게 '신선함'이라는 양념과 '파격'이라는 고추가루를 반반씩 섞어가면서 흘러가다 마지막 한 문장에 이른다.

<대통령을 오랜 세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참모들의 눈엔 대통령의 행보가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보는 뭔가 정리되지 못한 ‘불안한 파격’”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 있다.>

조폭과 양아치 언론들의 쌍따옴표질은 국어에 대한 모독이라는 게 내 평소 생각이지만, 위의 양아치 언론의 마지막 문장에 쓰인 쌍따옴표질은 한마디로 저질스러운 짓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하기야 양아치들이 '저질스럽게' 노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는 일이라 할 것이지만..

자기들의 말을 쌍따움표질에 묶어서 '여론'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은 조폭언론이나 떨거지 양아치 언론이나 익숙한 수법이겠다. 나는 그 떨거지 새끼들의 그런 저질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다.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고 욕이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조선일보>의 제호만 봐도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는 고종석의 말이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동아일보>의 양아치질은 대체 언제쯤 끝날 것인가. 나는 그들이 조폭 언론 <조선일보>를 모방하기 위해 양아치질을 일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치졸한 짓은 마케팅의 '마'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1등을 모방함으로써 3등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사업적 마인드' 자체도 양아치스럽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기업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라. 내 손에 기꺼이 장을 지져 줄 것이다. 그러나 1등 모방을 통해 3등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 기업이 있는가? 그렇게 해서 망가진 기업의 예는 10개도 넘는다.

한번 양아치는 영원한 양아치일 뿐이다. 조폭세계에서 양아치는 개새끼들과 다름없다. 동네 불량에는 등급이 있지만 양아치는 등급이 없다. 그냥 양아치일 뿐이다. 오늘의 <동아일보>가 바로 그 실상이다.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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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노무현 청와대 50일 분석

"아니, 각하…"
 2003년 3월24일 낮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콩나물밥을 담던 중 음식이 떨어지
 자 손으로 집어 먹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임시국회 국정연설을 준비하던 2003년 3월말, 대통령의 국회 연설원고를 준비하던 윤태영(尹太瀛) 연설담당비서관이 대통령 관저로 불려 들어갔다. 노대통령은 임시국회 첫 연설의 ‘컨셉트’를 잡기 위해 윤비서관과 이미 두어 차례 미팅을 가졌었다. 노대통령은 연설 내용을 두고 토론을 하던 도중 윤비서관에게 갑자기 “초안(草案)을 잡은 사람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연설초안을 만든 사람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한 K행정관 등 2명. 노대통령은 그들과 함께 관저에서 식사를 하면서 밤 늦게까지 토론을 벌이고 원고도 가다듬었다.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청와대 안팎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예전 정권에서는 대통령 연설문은 실무자인 홍보수석에게 올리고 홍보수석은 대통령에게 들고 가 결재를 받는 게 전부였다. 실무 행정관이 관저에 출입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뿐 아니라 더욱이 대통령과 함께 식사하면서 토론을 벌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번 노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작성에 홍보수석은 일절 간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행정관에서 대통령으로 ‘다이렉트’로 의사결정이 이뤄진 셈이다.

노대통령은 4월3일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또 다른 ‘깜짝 쇼’을 연출해낸다. 노대통령은 32분간 준비해간 연설문을 읽은 뒤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한 말씀드리겠다”며 운을 뗀 뒤 시시콜콜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뒷얘기까지 다 털어놓았다. 이날 연설시간은 예정보다 6분이나 늘어난 38분이나 돼서야 겨우 끝났다.



대통령은 참모들과 상의 없이 국회로 가던 자동차 안에서 논란거리가 된 KBS 사장선임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잇따른 ‘깜짝 쇼’

이날 국회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에도 들러 KBS 사장 선임경위를 둘러싸고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했다. 대통령은 “말리는 참모들을 밀쳐내고 기자실에 왔다”는 말도 했다. 대통령은 오전 11시40분부터 12시10분까지 30분 동안이나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기자들에게 구구절절이 KBS 사장 선임과 관련해 경위를 해명하면서 열변을 토했다.

대통령은 이날 밤 KBS 노조 간부들과 시민단체 대표들까지 청와대로 불렀다. 이 역시 공식일정에 잡히지 않은 ‘돌발 사건’이었다. 노대통령은 “방송을 장악할 생각은 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노조나 시민단체에서 환영받을 만하다고 생각해 ‘선의’로 서동구씨를 추천했을 뿐인데 정말 난감했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KBS 노조에 “서동구 사장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겠다”는 약속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날 대통령은 회의에서 “어제는 취임 후 최악의 날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은 “파격에 파격을 더하다 엉켜버렸다”고 보도했다.

노대통령의 파격 행보는 3월 중순경에도 드러났다. 노대통령이 TV 생중계를 통한 ‘평검사와의 대화’를 전격 제안할 때 참모들 사이에서는 무모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갈등의 현장이 바로 정치의 현장이고 갈등을 푸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의지를 관철시킨다. TV로 생중계되던 토론회에서 노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주도하는 실세로 논란을 빚었던 문재인(文在寅) 대통령 민정수석과 박범계(朴範界) 민정2비서관을 평검사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노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생중계 토론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자 참모들에게 “이번에 검찰은 꽉 쥐었는데…”라며 흐뭇해했다.


장관시절에도 시위대와 즉석 논쟁


대통령의 이같은 행보는 신선하다는 반응도 얻었지만 일부 국민들에게는 낯설게 비쳐진 게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진짜’ 대통령이 됐는데도 ‘온갖 일에 다 나선다’는 말도 꼭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혹평도 들린다.

대통령의 이런 파격 행동은 뿌리깊다. 2000년 하반기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노무현 장관은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마치고 해양수산부 청사로 들어가려던 중이었다. “청사 앞에 경북 후포에서 올라온 아주머니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비서관의 연락을 받은 노장관은 후문으로 청사건물에 들어가지 않고 현장의 시위 아주머니들을 만나 즉석 간담회를 했다. 이들과의 대화가 제대로 안 되자 아예 사무실로 데려가 토론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시위대의 민원은 사안의 성격상 해수부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노장관이 민원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시위 아주머니들은 결국 노장관에게 설득당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노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했던 386 세대의 한 청와대 참모는 “평검사와의 즉석대화나 KBS 노조 간담회는 대통령의 문제해결 방식을 읽을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중요한 핵심문제를 대통령이 정면 돌파하지 않을 경우 리더십이 생기지 않는다고 대통령은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가 전체의 시점에서 보면 사소할 수도 있는 일개 공사의 사장 선임 문제를 대통령이 국회에서 장황하게 설명한 일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핵심 국정 현안’이라는 대통령의 기본 마인드에 기인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상 행보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파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예전 정권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노대통령에게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003년 4월9일 청와대 본관. 노대통령은 대통령 직속기구인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추진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28명에게 위촉장을 주려고 위원들 앞으로 다가섰다. 의전 절차대로라면 위원들이 위촉장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와야 했지만 대통령이 먼저 다가서 위촉장을 주려고 했다. 당황한 의전팀의 만류로 결국 정해진 룰에 따라 위원들이 앞으로 나왔지만 대통령은 “임명장도 아니고 위촉장이어서 앞으로 나와서 받으라고 하기가 뭐해서 그랬는데…”라며 겸연쩍어했다. 노대통령은 위촉장을 받는 위원들이 꾸벅인사를 하자 “너무 고개를 숙이지 마십시오. 나중에 사진이 흉합니다”라며 목례(目禮)로 대신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형식을 따지지 않는 노대통령의 소탈한모습이 의전의 파괴로 이어지는 현장이었다.

대통령이 의전 절차를 따지지 않는 모습은 신임 군 간부 임명장 수여식 때도 나타났다. 대통령은 계급 순으로 임명장을 주었지만 악수는 서열 반대 순으로 해 참석자들이 당혹해했다. 대통령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 실수로 그랬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장을 지켜본 기자들의 눈에는 이 또한 이례적인 장면으로 포착됐다.

대통령의 격식파괴가 장관의 파격 행보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창동(李滄東)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러 청와대 회의실에 들어갈 때 대통령보다 앞장서서 걸어가기도 했다. 의아스러운 일로 비쳐졌다. “파격도 좋지만 의전상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장관은 업무보고에서도 간부들을 소개할 때 통상 본부 간부를 먼저 인사시키고 나중에 산하단체장을 소개하는 관례에 서 벗어나 산하단체장을 먼저 소개했다.


“미자씨,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네요”


대통령 취임 후 이틀이 지난 2월27일 노대통령은 비서동을 깜짝 방문했다. 비서들이 예고 없는 노대통령의 방문에 놀란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은 국가안보보좌관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나하고는 초면이죠”라고 말을 건네며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악수합시다. 악수해야 친구에게 자랑하죠”라며 악수를 청했다. 비서동을 청소하던 아주머니들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참여기획비서관실에 가서는 평소 알던 행정요원에게 “미자씨, 청와대 오니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네요”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이메일을 보낸 한 초등학생에게 직접 친필 답장도 보냈다. 4월3일 구로2동 영일초등학교 6학년 5반에 재학중인 김대길 학생이 노대통령에게 북한 핵문제를 잘 해결해달라는 소망과 함께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고백할 때 줄 선물은 무엇이 좋은지, 권여사님께는 어떤 선물을 했는지”를 묻고 답장을 부탁했다는 것. 대통령은 부속실 직원 보고를 받고 친필로 답장을 썼다. 답장 내용도 파격이었다. “궁리만 하다가 아무것도 안 보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괜찮더라.” 대통령은 김군에게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책을 선물로 보냈다.

3월19일에는 코엑스에서 열린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뒤 대통령이 수행비서진에게 “오늘 점심은 청와대 경비대(충정관) 구내식당에서 하자”고 즉석 제안했다. 역대 대통령이 경비단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은 경비단이 만들어진 1963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통령은 같은 달 11일에는 청와대 본관 구내식당에서 경호원과 본관 기능직 직원들과 점심을 했다. 일부 신문에는 배식을 받던 대통령이 식판에 떨어진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는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국무회의에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타나 장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 대통령은 장관들이 모두 착석한 후에 들어오는 것이 관례다. 3월18일 노대통령은 회의 시작시간 13분 전에 나타났다. 미처 예상치 못한 대통령의 출현에 한명숙(韓明淑) 환경부 장관이 “이렇게 불쑥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라고 하자 노대통령은 “옷 다 입고 있는데 뭘…”이라고 조크해 장관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3월초 수석비서관과 보좌관 회의에서 노대통령은 자기보다 키가 작은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의 앉은키가 커 보이자 “의자에 앉으니 내 앉은키가 작아 보인다.

유수석은 의자 밑에 뭘 깔고 있나요”라고 농을 던졌다.

노대통령의 ‘파격’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절에도 노대통령과 같은 특유의 파격은 없었다. 대통령의 행보엔 대통령의 유머가 양념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노대통령이 농촌의 서민 출신이라는 점에서 권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한 행동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순간도 적지 않다.


소탈함인가, ‘불안한 파격’인가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한 우리 정부 입장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TV생중계 과정에서 대통령은 방송시작을 알리는 ‘Q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때문에 생중계 필름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지금 얘기해도 됩니까”라며 촌극을 연출했다. 또 국회 국정연설에서도 카메라를 향해 “지금 시작하면 됩니까”라며 실수를 빚었고, 3월19일에는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개관식 축하 영상메시지 촬영을 위해 손짓 대신 고개를 꾸벅하는 VIP용 Q신호가 나왔으나 대통령이 한참 뒤에 이 신호를 알아차려 NG를 낼 뻔하기도 했다.

노대통령의 행보에는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에 8개월 정도 재임한 뒤 대통령 출마준비를 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주변 참모들이 “그래도 장관을 했는데 비서를 3명 정도 둬야 한다”고 건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라해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볼보코리아 사장과 김정태(金正泰) 국민은행장을 봐라. 그 사람들은 해외 출장도 혼자다닌다고 한다”고 잘라 말했다. 노대통령은 겉치레보다는 실속과 효율을 중시한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대통령 취임 후 50일 동안의 노대통령 행보는 분명 이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달라보인다. 대통령을 잘 아는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은 “지금은 권위적이던 최고권력자의 상이 바뀌는 시대”라고 말했다. 윤태영 연설담당비서관은 “국민들은 권위적인 대통령을 싫어하면서도 아직까지는 소탈한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서도 당혹해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대통령을 오랜 세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본 참모들의 눈엔 대통령의 행보가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보는 뭔가 정리되지 못한 ‘불안한 파격’”이라고 여기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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