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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714 vote 0 2018.09.17 (16:08:29)

      

    왜 엔트로피인가?


    엔트로피란 한마디로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다는 거다. 손자병법은 아이디어에 의존한다. 반면 오자병법은 갈고 닦은 실력으로 승부한다. 손자병법으로 실전에서 이긴 장수는 없다. 오자병법으로 이긴 장수는 무수히 많다. 이순신장군이 대표적이다. 아니 거의 전부다. 대중은 아이디어에 환호하지만 이는 공부 안 하는 애가 꼼수를 피우는 것과 같다. 사회는 비정하고 현실은 더 냉혹하다. 어리광은 안 통한다.


    어설픈 아이디어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물론 아이디어가 전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창호 국수가 아이디어로 바둑을 이기겠는가? 알파고가 자질구레한 아이디어로 이기겠는가? 대단한 계산능력으로 이기는 것이다. 그 계산능력은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 각별하다. 반면 아이디어는 특정상황에만 잘 들어맞는다. 아이디어로 어쩌다 한 번 뜰 수도 있지만 길게 가지는 못한다.


    상황은 바뀌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의 가치는 투자유치에 있다. 투자자들은 바보이므로 그럴듯한 아이디어로 꼬시면 넘어온다. 곽백수 화백의 웹툰 가우스 전자에서 거품기획에 입사한 고득점이 엉터리 우산 아이디어로 투자를 유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로 잠시 연명할 수는 있어도 성공은 못한다. 정주영이 잔디공사를 할 수 없는 겨울에 대신 보리를 심어서 미군을 속여먹은 아이디어도 나름 재미가 있다.


    엉터리 자서전에 써먹을 이야깃거리는 된다. 단지 대중의 흥밋거리일 뿐이다. 정주영이 그런 식의 사기로 사업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쓸데없는 아이디어는 리스크를 높일 뿐이다. 대신 방향이 바르면 아이디어는 마구마구 쏟아진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고민할 필요는 없고 아이디어가 쏟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를 구조론적 경영으로 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프 베조스의 성공비결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한 거다. 다만 방향이 옳았다. 저커버그는 확실히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버드 졸업앨범을 도둑질한거다. 그러나 저커버그의 성공은 열심히 한 대가이지 아이디어가 훌륭해서는 아니다. 아이디어는 초반에 잠시 써먹는 거다. 고행석 화백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 그는 문하생 시절에 그림실력이 별로여서 늘 구박받았다. 아이디어라도 짜야만 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형편없는 것이었다. 불청객 시리즈가 나오기 전에 발행된 고행석 초기작을 보면 알 수 있다. 대여섯 편이 있는데 죄다 재미가 없다. 그의 초기작 주인공 구영탄은 키가 컸고 눈이 꺼벙하지 않았고 얼굴이 잘생겼다. 그러다가 망했다. 어느날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다. 확산에서 수렴으로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다. 키가 작고 못생기고 눈이 졸린 천재 구영탄 캐릭터의 등장이다.


    구영탄은 천재인데 바보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정을 하나 안에 때려넣으면 된다. 그것이 에너지의 수렴이다. 천재인데 미남이고 키가 크고 성격까지 좋으면 에너지는 확산 방향이다. 단지 에너지를 수렴방향으로 바꾸기만 했을 뿐인데 대박이 터졌다. 사실이지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이 수법을 썼다. 스탕달의 적과 흑부터 그랬다. 적색이 의미하는 혁명가의 에너지와 흑색이 상징하는 성직자의 길이 수렴된다.


    한 사람 안에 두 가지 에너지 방향이 충돌한다. 수렴방향이다. 정의의 사나이인데 동시에 멍청이인 돈 키호테 시절부터 그랬다. 입체적 캐릭터 탄생이다. 그냥 잘생기고 똑똑하고 천재이고 유능하면 애초에 사건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시선이 외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이 내부를 향해야 한다. 사건을 일으키려면 선한데 악당이고 천재인데 바보이고 미남인데 무언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그 내부의 갈등에 의해 저절로 굴러가는 것이다. 조석의 마음의 소리가 그렇다. 시선이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 그 조석도 초기작을 보면 아이디어 부족 때문에 고민하는 점이 보인다. 전경시절 이야기할까 알바시절 이야기할까 하고 온갖 궁리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내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통은 자학개그를 한다. 외부를 바라보며 자기 콤플렉스를 외부에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다 망했다.


    어느 시점에 캐릭터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공격과 방어의 균형이 만들어져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졌다. 아이디어가 없는 작품들은 대부분 그 균형이 무너져 있다. 대부분 복수를 한다며 자기 콤플렉스를 전시하고 외부를 의식한다. 돈키호테처럼 주인공이 공격적이어야 하는데 언제나 수세적이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다. 고행석의 구영탄도 돈키호테도 적과흑의 쥴리앙 소랠도 공격적 캐릭터다.


    마음의 소리도 공격적으로 변한 시점에서 떴다. 이유없이 공격적이어야 한다. 발자크의 인간희극도 주인공이 공격적이다. 고리오 영감은 돈키호테처럼 되도 않는 싸움에 씩씩하게 덤벼든다. 그런 구조를 건설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며 억지로 짜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이미 실패해 있다. 물론 아이디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아이디어는 작품이든 사업이든 뭐든 첫 시작이 아니라는 거다.


    작가를 희망한다면 아이디어 300개 정도는 쟁여놓고 시작해야 한다.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뭔가 해보자는 얼치기는 일단 오백 방을 맞자. 아이디어는 원래 열 개 던져서 하나 건지는 거다. 아이디어의 성공률은 5%로 보면 된다. 먼저 구조를 건설한 다음에 아이디어를 투입하는 것이다. 서랍에 쟁여놓은 아이디어를 공장에 집어넣기만 하면 작품이 나와준다. 만화를 서랍에서 꺼낸다는 설은 곽백수 화백 신화다.


    첫째는 아이디어를 버려야 한다. 둘째는 중간기술을 버려야 한다. 중간기술이란 삽보다는 뛰어나지만 트랙터보다는 못한 경운기 같은 것이다. 이왕 만들려면 트랙터를 만들지 박정희는 왜 등신처럼 애물단지 경운기를 만들었을까? 멍청해서 그런 것이다. 물론 중간기술도 써먹을 데가 일부 있다. 강원도의 비탈밭에 경운기가 먹힐 수 있다. 그러나 잠시 먹힐 뿐 그걸로 세계정복은 못한다. 애초에 소박한 짓거리다.


    전 세계에 1천만 대의 경운기를 수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는 불능이다. 예컨대 이런 거다. 어떤 사람이 300킬로를 지고갈 수 있는 바퀴지게를 발명했다. 한국에는 수요가 없으니까 인도와 같은 후진국에 바퀴지게를 팔아먹으려고 했다. 당연히 망했다. 오늘날에도 기발한 아이디어로 아프리카를 돕겠다고 중간기술로 어쩌려는 자들이 무수히 있다. 뜻은 갸륵한데 그게 대부분 코미디다. 큰 도움이 안 된다.


    아프리카는 폴 카가메와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중간기술이 약간의 도움은 주겠지만 기대만큼의 쓸모가 없다. 인터넷이 뜨자 여러 가지 중간기술이 등장했다. 대부분 아이폰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그걸로 돈다발 깨나 만져본 사람은 없다. 전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중간기술에 열광하는게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이 망한다. 중간기술 히트작은 목욕탕 때수건이다.


    이태리타올이라 부르는 그것 말이다. 이태리 공업사는 그걸로 돈을 좀 만졌을까? 뭐 그것도 나름 상품이 되기는 하지만 구조론사람이라면 그런 어설픈 코미디에 현혹되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디어에 대한 미련 버리고 중간기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 천재는 못 되어도 바보는 면할 수 있다. 네티즌들이 잘 낚이는 음모론도 일종의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참 잘 속는다. 그런데 오래 속아주지 않는다. 라디오 모자 좋다.


    야구장에서 라디오도 듣고 햇볕도 피하고 좋잖아. 야구모자에 라디오를 달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런 식의 미련한 짓이 구글 글라스다. 그거 처음부터 필자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미친 거다. VR도 원래 잘 안 된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면 대개 안 되는 거다.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의 방향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삿된 길로 빠지지 말고 정도를 가야 한다. 큰것을 이루면 아이디어는 저절로 따라온다.


    한때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고행석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디어? 화실 동료들과 잠담하다보면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는데요? 무슨 말인가? 아이디어는 고행석의 뛰어난 머리에서 나온게 아니라 화실 동료들과의 잡담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냥 잡담만 하면 아이디어가 나와줘? 그럼 개나소나 잡담해서 다 만화가 되고 잡담해서 스토리 작가 되겠네? 아니다. 캐릭터가 만들어져야만 아이디어가 나와주는 것이었다. 


    아이디어가 죽어도 안 나와서 한때는 소주 두어 병 까고 한강둔치에 앉아 하늘 쳐다보고 번뇌하며 자살까지 생각하게 했던 그 아이디어가 그냥 화실 문하생들과의 잡담에서 나올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엔트로피의 힘이다. 애초에 방향이 맞아야 한다. 수렴방향이어야 한다. 내부에 대칭이 있어야 한다. 밸런스가 맞아줘야 한다. 고행석의 그 많은 아이디어는 상당부분 문하생들이 생각해냈을 수도 있다.


    플랫폼이 갖춰지면 아이디어는 누구나 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에게 아이디어가 없는 것은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지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질로 승부해야 한다. 중간의 입자와 힘과 운동이 아이디어다. 그 중간은 질을 갖추면 저절로 딸려나오는 것이다. 먼저 질을 세팅하라. 에너지를 수렴방향으로 조직하라.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에너지를 한 가슴 안에 동시에 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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