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저번주 구조론라디오 녹음 오프 모임 때 라디오 시작 전부터도 비트코인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다뤄졌기에 '화폐란 무엇인가'로 글을 써보려 했으나 막상 시작해보니 올해 안에 글을 게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에 일단은 차근차근 조금씩이라도 글을 게시해보고자 한다.
화폐를 다루기에 앞서 시장에 대해 언급해야 하겠으며 좀 더 연구해보니 인류사에 있어서 시장의 성립을 구조론적으로 세력전략과 생존전략으로 나누어 볼 필요성까지 느끼게 되었다. 이번엔 먼저 초기 원시 부족민 집단의 생존전략의 일환으로서 필연적으로 벌어진 물물교환이라는 사건에 대해 다루기로 하겠다.
동렬님이 즐겨 인용하는 나무위키를 보니 거래란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란다. 먼저 물건이라는 명사 하나, 산다는 것과 판다는 것 동사 두개. 구조론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은 결국 한 길로 통하게 된다는 것을 발명이 아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니 3 대 1이면 붙어볼만 한 것 같기도 하고 만만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시작해봐야겠다.
거래라고 했으니 인류의 초기 경제활동 매커니즘에서의 생산활동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것들의 교환에 촛점을 맞추어야겠다. 좀 거슬러 올라가 볼까? 구조론연구소에서 많이 언급되는 원시 부족민 시대로 가봐야겠다. 물론 생산물이란 채집, 수렵, 농사 등 자연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얻어내는 모든 것을 칭하겠다.
보통 물물교환의 기원으로 알려진 매커니즘을 보면 일단 그림 안에 원시민 두 명의 조우가 있다. 한 명은 토끼를 들고 있고 한 명은 나무 열매를 가지고 있다. 둘은 서로의 것을 가지고 싶다. 수요와 공급이다. 그래서 교환했다. 사건 종결. 과연 이게 다인가? 전제를 건드려보자. 저 둘이 한솥밥 먹는 가족이라면? 수요고 공급이고 간에 저 둘이 어머니와 어린아이라면?
수요는 그 가족이 내고 공급은 자연이 해줄 뿐이다.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채집할 때 생산이라고 하지 거래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이지 중요한 걸 짚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거래라는 사건이 성립되려면 타자성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즉 타자성이 작동하도록 서로 다른 두 계가 있는 것이 먼저고 그러한 불균일이 낳는 것이 물물교환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닫힌 계, 곧 두 세력을 설정하자면 원시 부족민 집단은 공동소유 체제라고 했으니 서로 다른 두 개의 부족민 집단이 있어야겠다. 이전의 동렬님 말을 인용하자면 같은 부족 내에서는 어제까지 얘가 차던 장신구를 오늘 쟤가 와서 가져가 놓고는 '어제까지 니가 썼으니까 오늘은 내 차례'라는 일도 벌어진다던데.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본래 이웃한 인간 부족민 집단은 이웃이 아니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사이라는 거다. 그러니 현시대에서처럼 시장 조성자라는 제 삼의 세력이 중재하는 환경에서 나름 규칙을 정하고 젠틀하게 거래가 이루어질 거란 이미지는 집우치우자. 그렇다면 평소에 으르렁 거리던 두 부족민 집단이 거래에 임할 땐?
당연히 서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어서 상대편을 쳐죽이고 빼앗고 싶지만 그러자니 세력의 힘이 대등하기에 예상되는 출혈이 너무 커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한 번 가능성을 따져보자는 심산으로 조우하게 된다. 앞에는 눈을 부릅뜬 양측 대표가 있고, 뒤에서는 병력들이 죽창을 갖춘 채 대기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 상태일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보면 A부족은 다가올 겨울을 얼어죽지 않고 나기 위해 모피가 필요하다. B부족 역시 긴 겨울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비축해 놓을 식량이 매우 부족하다. 거래 현장에서는 교환 가능성에 대해 얘기가 오갈 것이다. 하지만 본래부터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거기에다 심지어는 적대 세력이라 평소에도 수틀리면 죽창을 꽂아버리는 판에 두 재화가 각기 부족에게 남아돌아서 썩어나가지 않는 한 교환 비율에 대해 곱게 입을 맞출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최소한 며칠은 제대로 된 사냥에도 나서지 못한 채 전쟁이란 가능성에 한 발을 담근 채 치열한 협상에 협상을 거쳐 에너지를 쏟아 겨우 이루어지는 게임이 저 당시의 물물교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잘 쳐줘도 원숭이에서 조금 더 나아갔을 뿐인 초기 인류에게 있어서 거래란 본래 일상적이지 않고 가끔 가다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좀 낯선' 생존전략의 일환일 뿐인 것이다. 이제 물물교환이라는 매커니즘의 결을 잡아내는 데에는 작게나마 성공한 것 같다.
먼저 수요가 있고 공급이 있으며 시장도 있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전제하고 들어가는 건 경제학과 사람들이 세력전략이라는 가정을 먹고 하는 일이다. 대체 수요는 어디서 왔으며 공급은 어디서부터 해오고 시장은 어떤 모습이고 판매자라는 건 이마에 표딱지를 붙여놓고선 딱 판매 밖에 하지 못하는 건가?
시장의 원초적인 매커니즘을 풀어내기에는 너무 관념적이어서 어색하다. 거래란 어떠한 매커니즘인가는 우선 서로 다른 세력 간 각자의 자원 즉, 환경에 대한 상호작용 가능성의 불균일이 상부구조인 질로서 형성되었으며 그 때 생존전략(부족민 시대에는)이라는 에너지가 투입되어 전쟁이나 물물교환 중 통제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결 따라 간다는 거다.
그 결과? 두 집단 중 한 집단이 멸하는 것이 아닌 둘이서 보다 긴밀해지는 방법을 통해 불균일이 해소되어 균일해 졌으니 상호작용 증대 방향 일원론으로 설명 가능하다. 산다는 것과 판다는 것은 그 사이에 재화가 자리바꿈, 구조론적으로 뒤뚱뒤뚱한 것 뿐. 결 따라 간다는 건 비효율이 팽하고 효율적인 길이 남게 된다는 것이므로 아무리 의사결정 구조가 취약한 원시 부족민이더라도 전투가 견적이 안 나오는 조건에서는 물물교환 쪽으로 기울게 된다는 거다.
혹은 툭하면 쌈박질만 일삼던 부족들은 점점 피를 많이 흘려 상대적으로 퇴출되고 반면 동일한 분기점에서 거래를 하는 쪽으로 합리적 선택을 했던 부족들 중에서도 한 번이라도 상대적으로 이익이 큰 거래를 경험한 집단의 경우, 굳이 표현하자면 깨달음을 얻게 되어 상대적으로 장기전을 도모하는 세력전략을 취한 셈이 되어 흥하는 결을 따라 진보해 살아남게 되었다는 거다.
수요와 공급은 오히려 한참 나중에 거래에 재미를 붙인 집단이 세력전략을 펼쳐 거래의 통제 가능성을 높여나가는 무역 세력으로 변모함에 따라 계산 기술이 진보하다보니 도입된 개념이라고 본다는 거. 한 마디로 경제란 것도 결국 인류 진보사의 한 모습이므로 역시나 구조론적으로 상호작용 총량의 증대 한 맥락으로 엮어낼 수 있으니 즐거운 것이고 오늘도 맘 편히 잘 수 있다는 거.
원시 부족민들은 1년에
한 두 차례식 모의전쟁 겸 축제를 했습니다.
어느 한 부족이 다른 부족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데 손님이 빈손으로 오면 안 되죠.
주최측이 좋아하는 선물을 들고 가야 합니다.
축제가 아니라도 다른 부족을 방문할 때는 선물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빈 손으로 오면 적으로 간주하고 즉시 공격들어갑니다.
축제는 섹스파티와 잔치로 벌어지는데 결말은 전쟁이 되는게 다반사입니다.
잘 먹고 난 다음에는 꼭 시비를 걸어요. 이게 차린 거냐?
어쭈 해보자 이거지. 그래 해보자. 선수를 선발하여 일대일로 명치 쥐어박기를 하는데
한 넘이 거품 물고 쓰러지면 곧 집단난투극이 벌어집니다.
나이 40넘은 남자는 거의 죽는다고 봐야지요.
이는 부족민 사회이고 고대문명국가들은 주로 제사 때 거래가 일어납니다.
제사에는 공물을 바쳐야 하는데 무거운 공물을 들고갈 수 없으므로 개오지조개를 갖고 갑니다.
신전 앞에서 조개를 공물로 바꿔서 신에게 바치는 데서 거래가 시작된 거지요.
혹은 젯삿날 부족민이 모두 모이는데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부족에서 제외됩니다.
징기스칸을 쫓아낼때 제사시간을 허위로 알려줘서 늦게 도착하게 한 다음
넌 음복하지 않았으니 오늘부터 우리 부족 아니다. 사형선고.
그러므로 아무리 멀리 나가있는 사람이라도 제삿날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장돌뱅이들도 설날 하루는 꼭 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삿날 빈 손으로 가면 안 되고 선물을 갖고 가야 하기 때문에 거래가 발생한 거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명목으로 거래가 발생했겠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거래한다?
시장원리? 수요와 공급? 이런건 좀 개소리라고 봅니다. 그런게 어딨어?
인간은 원래 필요한게 별로 없어요.
그 보다는 제사를 주최하는 제사장의 권위를 위임하는 봉건적 주종관계에서
철기와 청동기를 장악한 왕이 지방 제후에게 제사에 쓰는 청동솥과 거울과 청동검을 하사하는데
이게 있어야 제사를 지낼 수 있걸랑요. 세발솥이 없고 세발술잔이 없으면 제사를 못 지냅니다.
이걸 왕에게 얻어와야 하는데 왕만이 이걸 제작할 권한이 있고 청동광산을 소유하고 있어요.
제기를 얻으려면 마땅히 모피라든가 개오지조개라든가 뭔가 돈될만한 것 바쳐야 합니다.
여기서 거래가 시작되었다는게 합리적 판단입니다. 제사와 축제 곧 행사를 위해 거래가 일어난 거.
틀린 생각 -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거래를 시작했다.
바른 판단 - 제사나 축제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다 거래가 시작되었다.
결론적으로 수요는 존재하는게 아니라 발명된 것이라는 말씀이 되겠다.
제사는 권력을 위해서 만들어낸 것이고 거래는 제사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 가장이나 부모가 가족과 자녀를 지배하는 권력을 위해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친구를 지배하려면 자동차를 끌고 와야 한다.
권력구조가 작동을 시작하면 그 에너지 흐름에 끌려서 어쩔 수 없이
거래하는 구조 속으로 말려들어가버리는 것이며 권력구조의 작동이 상품거래의 본질이다.
인간은 원래 필요한 것이 별로 없다. 먼저 글에서 가정한 매커니즘이라면 침팬지 집단 간에도 진작에 무역 시스템이 출현했어야 했다. 본래 인류가 사회적으로 긴밀해져 대집단을 이루는 방향성이 있었다.
이는 부분으로 보면 비효율적이지만 전체로 보면 자연과의 상호작용 총량을 효율적으로 증대시키는 의사결정 구조를 건설하는 방향성이며 그러한 맥락의 일환로서 생존전략에 있어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물품을 거래한다는 사건의 출현 역시 이해 할 수 있다.
먼저 세력이 있었으며 그 세력이 장악한 토대가 권력의 매개물로서의 포지션이었다. 즉 권력의 상호작용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매개물이 단순 언어적 명령에서 눈에 보이는 사물이라는 입자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한 입자가 사람들을 동원하여 전보다 생산을 더욱 증대시켰으며 곧 자연과에 대한 장악력 증대이다.
이런식으로 거래를 세력전략의 부산물로서 이해하는 것이 바를지요?
원래 이후의 글에는 제사장의 출현과 함께 필연적으로 생존에 있어 실용적이지 않은 제사 관련 물건이 제사장의 권력을 대표해 최초의 화폐로서 등장했을 거라는 맥락의 글을 게제하려 했었으나 이만 줄이게 된 것인데 벌써 답글 하나만으로도 덕분에 방향성이 꽤 트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군요.
세상은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입니다.
권력은 인간이 임의로 만든게 아니라 자연에 있는 것을 복제한 것입니다.
자연의 권력은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포지션의 우위입니다.
기가 승을 승이 전을 전이 결을 지배하는 것이며 구조론의 용어로는
질이 입자를 입자가 힘을 힘이 운동을 운동이 량을 지배합니다.
사건은 그냥 기승전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경이 갖추어진 다음 기가 촉발됩니다.
기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라면 그 이전에 그럴만한 환경적 조건이 갖추어진 거지요.
인간은 보이지 않는 질을 못 보고 눈에 보이는 입자부터 생각을 하므로
기승전결로 가지만 기 이전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원인에서 기승전을 거쳐 결 곧 결과로 가는 거지요.
여기서 권력은 앞선 것이 다음 것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대집단을 만들면 전쟁에 이기므로 인간은 대집단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대집단의 결성에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제 힘만 믿고 깽판 치는 항우장사넘 때문에.
종교가 등장한 이후 대집단이 결속된 것이지요.
대집단이 깨지지 않고 견고한 상태로 유지된다면 전쟁에 항상 이깁니다.
여기서 권력이 도출된 것이며 권력자는 대집단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소집훈련을 하게 되는데 그게 제사입니다.
제사에는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거래가 일언난 것입니다.
생존전략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구조론은 세력전략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필요해서 한다는건 거짓말이고 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거지요.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아 이거 좋네 하는건 부스러기고 큰 가지는 필연성입니다.
글이라고는 어렸을 때 숙제로 쓴 독자를 심히 의식한 일기나 독후감 정도 이후로는 써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거의 난생 처음 쓰는 글이 되겠군요. 책도 좀처럼 가까이 하지 않다가 동렬님의 책들 중 전자책으로 출판된 것들과 구조론 연구소 칼럼 및 다른 분야에서 전략가로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의 칼럼을 평소에 읽는 것 뿐이라 글이 얼기설기하고 그나마도 스타일이 제가 접하는 칼럼들을 따라하게 되더군요. 나름 계속해서 구조론스러운 것이 어떻다느니 언급한 것이 많으나, 후에 반응이라도 기대하려면 지르기라도 해야겠다는 각오로 주저하지 않은 것이니 첨삭이면 첨삭, 사실 관계에 대한 지적이면 지적, 오히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맞다. 전 눈팅만 하다 최근 가입한 신규회원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글부터 다 쓰고 댓글로 하다니 참. 그나저나 글을 등록하고서도 다시 읽을 때마다 왜 이렇게 썼는지 생각이 들어 제차 수정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