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皆知善知爲善 斯不善已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다수가 주장하는 아름다움은 추하고
다수가 따르는 도덕은 도덕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소수가 주장하는 아름다움이 아름다우며
소수가 따르는 도덕이 선하다..
다수는 본능과 보수를 대표하고
소수는 훈련과 진보를 대표한다.
소수가 다수가 되는 과정이 죽어가는 과정이므로
살고자 한다면 부단히 새로운 소수가 탄생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수가 아름답다..
작은세상
상동
맞습니다.
다 맞는데 한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소수는 약자가 아니라는 것이죠. 약자편도 아니고요.
소수는 강자입니다. 그래서 소수일수 있지요.
약자는 소수일수 없습니다. 약자가 소수라면 바로 사망입니다.
약자가 다수이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며, 소수는 강자이기 때문에 버티는 겁니다.
소수가 다수되는 과정이 죽음이고
강자가 약자되는 과정이 죽음이고
진보가 보수되는 과정이 죽음이고
비주류가 주류되는 과정이 죽음입니다.
애초에
소수였던 적이 없던 사람
강자였던 적이 없던 사람
진보였던 적이 없던 사람
비주류였던 적이 없던 사람은
죽음에서 죽음으로 귀결된
태어나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태어나보기 위해 소수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 길은 죽어도 역사로 남는 길입니다.
구조론 연구소가 그대를 소수의 길로 인도합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길 힘써라. 예수 선생의 말이죠.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 하는 문이나 넓어서 가는 가는 사람이 많다고 했죠.
좁은 문은 소수의 편에 서는 문이며 약자의,비주류의 편에 서는 문이죠.
용꼬리의 문이 아니라 뱀머리의 문이죠.
넓은 문은 다수의 노예로 살겠다는 길이며
좁은 문은 소수의 주체자로 당당히 살겠다는 길이죠.
다수의 길은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잡는 길이며
작전권 환수를 반대하는 똥별들의 길이며
아베의 길이며 박근혜의 길이지만
소수의 길은 못먹어도 배짱을 내밀어 보는 길이죠.
조중동과 싸우는 길이며 노무현의 길이죠.
동렬선생이
소수의 길은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얻는 길이라고 했지요.
그만큼 힘이 드는 길이며 어려운 길이나 인생의 보람과 가치를 획득하는 길이지요.
정말 그렇게 살고 싶어요. 내일 죽어도 그렇게 살다 죽고 싶어요.